잡담

밥 값 한 번 낼 생각이 없는 자식들, 서글퍼지네요

해암도 2014. 7. 17. 08:45

자식 농사 잘 지었다는 말의 참뜻은 무엇일까요?

삼십년의 수고 끝에 참된 결실을 얻었다는 뜻일 텐데......

그 결실이라는 것이 자식의 박사학위나 고액 연봉은 아닐 겁니다.


어미새에게 먹이를 물어나른다는 까마귀처럼

늙은 부모를 이제는 저희들이 보살피겠다는 살뜰한 마음가짐이 느껴질 때

부모는 그 모든 땀방울과 눈물을 잊는 것 아닐까요?

부모 노릇이 점점 더 길고 힘겨워지는 요즈음,

이제는 장성한 자식들에게서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대접받고 싶다는 오늘의 손님입니다.

 

밥값 한 번 낼 생각이 없는 내 자식들

고단하고 서글픈 부모노릇...

 

저는 딸 둘 아들 하나를 길러 시집 장가 보낸 육십대 초반의 어머니입니다.

친구들은 저를 보고 다들 부럽다고들 하네요.

요즘 늦게까지 결혼 안 하고 애먹이는 애들도 많은데 일찌감치 숙제를 다 끝냈으니 얼마나 홀가분하냐고요.

그런 말 들으면 저는 모르는 소리 말라고 고개를 젓지요. 속사정 들여다보면 부러울 거 하나 없다고요.

사실 저는 제가 부럽다는 그 친구가 오히려 부럽습니다.

저보다 형편은 빠듯해도, 자식 키운 보람을 느끼며 사는 것 같아서입니다.

 

물론 우리 애들이 지금 크게 잘못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어도 말썽은 안 피우고 컸고, 남들과 엇비슷한 대학은 나왔습니다.

어울리는 짝 만나서 오순도순 살고 있으니 그 자체로 효도하는 셈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아이들이 아직도 부모한테 도움을 받을 생각만 한다는 겁니다.

이제는 저희가 부모를 보살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도무지 안 드는 모양입니다.

 

큰 딸은 그래도 대기업 다니는 신랑 만나서 알찬 월급봉투 받아가며 재미나게 살림 사는가 했습니다.

그런데 애들이 너댓살 될 때부터, 저만 만나면 우는소리를 하더군요. 사교육비 때문에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온다고요.

사는 모양 보면 네 식구가 뭐든지 고급만 걸치고 다니고, 먹는 것도 유기농이다 뭐다 해서 보통 사람 곱절 값은 들이고 살면서 엄마만 만나면 그저 죽는 소리입니다. 겉만 멀쩡하지 속은 말이 아니라고요.

지난 몇 년간 엄마한테 그 흔한 영양제 한번, 로션 한 병 사다준 적이 없는 것도 다 그 때문인 모양이니,

서운한 내색도 할 수가 없네요.

 

둘째 딸은 맞벌이라 좀 나은가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 말로는 둘이 합쳐봐야 형부 한 사람 월급만큼도 안 된다네요.

딸 둘을 봐달라며 저희 집 근처로 이사 온 후로 저희 부부 생활은 그야말로 육아 도우미 생활입니다.

애들은 얌전해서 또 그럭저럭 봐줄만 한데, 딸과 사위 퇴근 후에 밥을 해대는 것이 고역입니다.

그래서 한번씩 나가서 사먹자고 하죠. 그럼 밥값은 남편이 내야 합니다. 딸도 사위도 낼 생각을 안 하니까요

그 아이들 생각에는 엄마 아버지는 돈 쓸 데가 없어 고민일 거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하루는 이렇게 묻더군요. 엄마는 연금 받으면 거의 다 남지? 부럽다.

 

아들 얘기는 꺼내기도 우울합니다.

서른 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했습니다.

시험을 보겠다, 자격증을 따겠다 하며 낭비한 세월이 몇 년입니다.

그동안 저한테 용돈 받아가고, 학원비 받아갔지요.

그러다 서른 살 넘고 나니, 이제는 친구와 동업을 해보겠다고 밑천을 달라고 하더군요.

장가 보낼 때 전세라도 얻어주려던 돈은 그렇게 빠져나갔지요.

염치는 있는지, 실제로 장가를 갈 때는 알아서 하겠다고 하더군요.

알아서 하기는 뭘 알아서하랴 했지만, 남편이 극구 말려서 가만 두고 봤습니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둘이 알아서 하게 놔둬보라더군요.

결국 25평짜리 아파트 얻어 살림 차리기에 그나마 장하다 했는데.......,

지금은 며느리 눈치가 보여서 월세는 결국 우리가 내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딸들은 생일에 명절에 십만원짜리 봉투 하나씩은 달랑달랑 들고 오는데, 아들내외는 그것도 생략입니다.

뭐라고 말도 못 합니다.

몇 달씩 집에 가져오는 돈이 없을 때도 있다며 며느리가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는데, 능력 없는 아들 둔 죄로 찍소리도 못하지요.

 

하긴 부모가 되어서 자식을 도와줄 수 있는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요.

우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속수무책인 사람들에 비하면 말입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부모한테 얻어먹으려는 심보는 더해만 가네요.

다른 건 다 놔두고 어떻게 부모한테 밥 한 번 사려는 녀석이 없는가 싶으면, 참 서글퍼지네요.

다 같이 식사라도 하게 되면, 어느 한 녀석 밥값 내겠다고 일어서는 놈이 없습니다.

곰 같은 큰 사위는 눈치가 없어서 엉덩이를 못 떼고, 눈치 빠른 둘째사위는 지갑이 얇아서 못 일어납니다.

딸들은 아들이 내려니 하고, 아들놈은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타이밍을 놓치겠지요.

그러다보니 언제나 엉덩이 가벼운 아버지가 계산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아예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 같네요. 아버지가 내시겠지......

 

얘기를 하고보니 자식 흉이 되었습니다.

잘난 자식 경쟁하듯 자랑하는 친구들 속에서는 한 마디도 입을 못 떼어본 이야기네요.

그러나 저는 왜 내 아이들은 더 잘나지 못했느냐고 한탄하는 게 아닙니다.

공부 잘해서 교수, 의사 된 자식 둔 친구들은, 부러워하기에도 너무 먼 당신입니다.

 

요즘 제가 제일 부러운 사람은 같이 수영장 다니는 친구입니다.

저보다 형편도 빠듯하고 남편하고도 잘 안 맞아서 삐걱대는 친구지만 자식 하나는 참 잘 키웠더군요.

핸드백 열고 립스틱 꺼내며 이건 딸이 사주더라, 앙증맞은 양산 꺼내면서 이건 며느리가 사주더라.

사위가 어디 어디 드라이브에 외식 시켜주더라 아들이 십만원을 몰래 찔러 넣어주더라 그럽니다.

우리 아이들보다 잘 되어 있는 아이들이 결코 아닙니다. 액수만 따지면 대단한 것도 아니고요.

다만 엄마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과 정성이 부러워서 제 속이 다 아플 지경입니다.

자식을 어떻게 키웠기에 이렇게 대접을 받나 싶어서요.

 

늙어 꼬부라진 부모, 그 좁은 어깨가 가엾게 느껴지지를 않는 내 자식들.

저는 어디에서 자식 키운 보람을 찾아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