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4.25
지난 16일 침몰한 세월호에서 마지막까지 승객들의 대피를 돕다 숨진 고(故) 박지영 씨의 구조 활동이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됐다. 미국 토모뉴스사가 제작하여 22일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을 25일 현재까지 약 6만 명이
봤다.
영상에는 세월호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선체가 흔들리고 기울어지기 시작하자 승무원 박씨는 승객들을 “4층으로 올라가라(Go to the fourth floor)”며 차례차례 대피시킨다. 박씨가 단원고 학생들에게 “너희들을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선원은 마지막이야(After saving you, I will get out. The crew goes out last)”라며 구명조끼를 입히고 탈출시키는 장면도 그려졌다. 미국 CNN 등 외국 언론들은 박씨를 ‘영웅’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승객들보다 먼저 배에서 탈출한 이준석 선장의 모습도 담겼다. 토모뉴스는 이 선장이 자신을 ‘일반 승객’이라고 밝힌 부분을 꼬집었다.
토모뉴스는 세계 곳곳의 사건·사고를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해왔다. 이 영상을 접한 해외 네티즌들은 ‘영웅 소녀(a hero girl)’의 희생에 안타까워했다.
☞ 아래는 보도 전문 번역본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의 세월호 사건은 영웅과 겁쟁이가 대비돼 더욱 비극적이다.
22세의 박지영 씨는 카페에서 일하는 선원이었다. 그날은 그녀의 근무일이었다. 대다수의 승객은 그녀와 함께 배 3층에 있었다.
당시 세월호의 키를 잡고 있었던 사람은 26살의 박 모씨였다. 그녀는 이 항해길이 처음이었다. 사고가 났을 때 이준석 선장은 숙소로 들어간 상태였다.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공포에 질린 학생들은 박지영 씨에게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는지 물었고, 그녀는 학생들에게 4층으로 가라고 말했다.
배가 물속에 잠기고 있을 때 이 선장은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했다. 많은 승객들이 선원들의 지시에 따라 물이 차오르는 동안에도 가만히 구조를 기다렸다.
하지만 박지영 씨는 구명조끼를 모아 학생들에게 줬고, 구명보트에 학생들을 태웠다. 학생들이 박 씨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박씨는 “너희들을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선원은 마지막이야”라며 구명조끼를 받지 않았다.
당시 이 선장과 조종키를 잡았던 젊은 여성은 구조 보트에 황급히 몸을 실었다.
박지영 씨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300여 명이 탈출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배가 전복되는 데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배에 남아있던 이들은 갇혔고, 정부는 승객들 대부분이 익사했거나 질식사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구조대원은 죽은 이든 산 이든, 할 수 있는 대로 물속에서 건졌다. 박지영 씨는 얼굴이 수면 아래를 향한 채 물에 떠 있었다. 그녀는 사망한 것이다.
이 선장을 포함한 4명의 선원들은 체포됐고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은 책임을 물을 것이다. 당시 구조현장에 있던 한 의사는 이 선장이 구조된 후에 자신을 일반 승객이라 밝혔다고 말했다.
몇몇 한국인들은 박지영 씨의 이름이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 박 씨를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한다며 정부에 청원하고 있다. 국립묘지에는 보통 전 대통령들과 전쟁 영웅들이 묻힌다.
김현중 프리미엄뉴스부 견습기자 E-mail : kimhjc@chosun.com 한양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습니다. 3년간 보도사진에 미쳐서..
영상에는 세월호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선체가 흔들리고 기울어지기 시작하자 승무원 박씨는 승객들을 “4층으로 올라가라(Go to the fourth floor)”며 차례차례 대피시킨다. 박씨가 단원고 학생들에게 “너희들을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선원은 마지막이야(After saving you, I will get out. The crew goes out last)”라며 구명조끼를 입히고 탈출시키는 장면도 그려졌다. 미국 CNN 등 외국 언론들은 박씨를 ‘영웅’으로 지칭하기도 했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승객들보다 먼저 배에서 탈출한 이준석 선장의 모습도 담겼다. 토모뉴스는 이 선장이 자신을 ‘일반 승객’이라고 밝힌 부분을 꼬집었다.
토모뉴스는 세계 곳곳의 사건·사고를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해왔다. 이 영상을 접한 해외 네티즌들은 ‘영웅 소녀(a hero girl)’의 희생에 안타까워했다.
☞ 아래는 보도 전문 번역본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의 세월호 사건은 영웅과 겁쟁이가 대비돼 더욱 비극적이다.
22세의 박지영 씨는 카페에서 일하는 선원이었다. 그날은 그녀의 근무일이었다. 대다수의 승객은 그녀와 함께 배 3층에 있었다.
당시 세월호의 키를 잡고 있었던 사람은 26살의 박 모씨였다. 그녀는 이 항해길이 처음이었다. 사고가 났을 때 이준석 선장은 숙소로 들어간 상태였다.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공포에 질린 학생들은 박지영 씨에게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는지 물었고, 그녀는 학생들에게 4층으로 가라고 말했다.
배가 물속에 잠기고 있을 때 이 선장은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했다. 많은 승객들이 선원들의 지시에 따라 물이 차오르는 동안에도 가만히 구조를 기다렸다.
하지만 박지영 씨는 구명조끼를 모아 학생들에게 줬고, 구명보트에 학생들을 태웠다. 학생들이 박 씨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박씨는 “너희들을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 선원은 마지막이야”라며 구명조끼를 받지 않았다.
당시 이 선장과 조종키를 잡았던 젊은 여성은 구조 보트에 황급히 몸을 실었다.
박지영 씨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300여 명이 탈출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배가 전복되는 데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배에 남아있던 이들은 갇혔고, 정부는 승객들 대부분이 익사했거나 질식사했다고 파악하고 있다.
구조대원은 죽은 이든 산 이든, 할 수 있는 대로 물속에서 건졌다. 박지영 씨는 얼굴이 수면 아래를 향한 채 물에 떠 있었다. 그녀는 사망한 것이다.
이 선장을 포함한 4명의 선원들은 체포됐고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은 책임을 물을 것이다. 당시 구조현장에 있던 한 의사는 이 선장이 구조된 후에 자신을 일반 승객이라 밝혔다고 말했다.
몇몇 한국인들은 박지영 씨의 이름이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 박 씨를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한다며 정부에 청원하고 있다. 국립묘지에는 보통 전 대통령들과 전쟁 영웅들이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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