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차는 이제 안녕! 나는 신이 나서 중고차매매센터를 찾았다. 그런데, 60 정도 드릴 수 있겠네요. 폐차하면 40만 원이고요. 그때부터 내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그렇게 똥차는 아닌데…. 마치 내 아이가 괄시당한 것 마냥 언짢아지더니, 이제 저 가도 되나요? 센터를 떠날 땐, 쉽사리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다. 똥차를 거기 두고, 나만 집에 온다는 것이 어쩐지 어색해서, 나는 몇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람 마음 간사해. 똥차 팔고 나오는데 왜 섭섭하냐.’ 솔직히 나는 이런 답들을 예상했다. ‘섭섭하긴! 그깟 똥차! 진작 팔았어야지!’ 내 차를 볼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던 친구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속 안 썩이고 기특한 녀석이었지. 우리 그 차 타고 부산도 가고 경주도 가고 여행 많이 다녔는데.’ ‘나 결혼할 때도 그 차 타고 공항 갔잖아.’ ‘어쩐지 조강지처 떠나보내는 느낌인데? 그래 우리의 조강지처 얼마에 팔아넘김?’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더 섭섭해하며 그 차와의 추억들을 쏟아내는 친구들.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 집 베란다에는 TV장(欌)만 세 대가 있다. 언니네가 이사했을 때, 오빠네가 이사했을 때, 또 엄마네 TV장이 너무 낡아서 내가 바꿔드렸을 때도, 엄마는 낡은 TV장들을 버리지 못하셨다. 좀 버려! 내가 늘 하던 말. 엄마 집 옷장에는 우리 삼남매가 독립하기 전에 입던 몇십 년 전 옷들까지 가득하다. 좀 버려! 내 친구들도 각자의 엄마들과 비슷한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잘 버리지 못하는 것, 우리는 그저 힘든 시절을 살아온 엄마세대의 궁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실은, 우리의 엄마들도, 지금 우리의 마음과 같았던 건 아닐까?
나이를 먹는다, 시간이 흐른다, 추억이 쌓인다. 헤어짐이… 어려워진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조금씩은 더, 능숙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도리어 미숙해지는 것도 있었다. 조금 더 어렸을 땐 조금 더 헤어짐이 쉬웠던 것도 같다. 또 새것 사면 되는데 뭐, 또 새로운 사람 만나면 되는데 뭐. 그리고 나이를 먹었다, 시간이 흘렀다. 추억이 깊은 물건들이, 추억이 깊은 사람들이 쌓여갔다. 시간의 누적은 어떤 새것으로도 이길 수가 없다.
‘이제는 결혼식은 안 가도, 문상은 꼭 가게 돼.’ 언젠가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 우리는 점점 이별이 어려운 나이로 다가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어쩌면 기쁜 일인지도 모른다. 지키고 싶은 추억들이 많아졌다는 것. 하지만 그건 어쩌면 조금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헤어지게 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어쩐지 내 마음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나보다. 차값보다 수리비가 더 나올 똥차, 그 낡디 낡은 똥차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 마냥 홀가분하기만 할 줄 알았던 그 길이.
강세형 에세이스트 동아 201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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