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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생각 - 무슨 자격으로 "하지마라" 하는가?

해암도 2014. 4. 1. 10:40


동양철학 톺아보기

 

오늘날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같은 글로벌 상황에 대해 찬반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미 우리 사회 경제와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의 시대에도 외부 환경에 의해 고통받았던 것은 마찬가지다. 철기문화, 중앙집권적 관료 국가, 약육강식의 전쟁 상황은 민중들을 힘겹게 했다. 철기와 국가는 현대사회 저변을 이루는 제도로 정착했지만, 장자 시대만 해도 생소했다. 철기는 토기와 청동기에 머물러 있는 공동체를 순식간에 절멸시킬 수 있는 가공할 만한 무기를 가능하게 했다. 국가는 또 어땠나. 낭만적 원시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권리와 의무의 관계를 새롭게 조정하지만 어떤 견제도 받지 않는 무시무시한 기구가 국가였다.

 

철기를 가진 국가는 원시 공동체에 비해 발달한 문명이란 점을 자처하면서 사람들에게 무한한 기여와 변화를 요구했다. 이로 인해 제자백가들은 이런 ‘문명’이 과연 역사의 필연적인 발전 과정인지, 아니면 거대한 탐욕의 장식인지 고민했다. 또 설령 문명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진행 중인 모습이 과연 최선의 결실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논란을 벌였다.

 

‘장자’가 워낙 난해한 언어로 쓰인 탓에 장자가 세상의 변화를 강 건너 불구경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논제와 관련해서 장자는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때로는 직설적인 어법으로, 때로는 우화를 이용해 전국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벌거벗은 모습을 그려냈다. 아울러 철기를 소유한 국가의 폭력을 비난하고 그것을 넘어 자연의 삶을 살고자 했다.

 

이제 장자가 자신의 시대에 고통을 가져온 문명의 속살을 어떻게 들춰내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장자는 ‘마제(馬蹄)’에서 말을 잘 조련하는 전설적인 인물인 백락(伯樂)의 이야기를 다룬다. 백락은 “어떤 말이든 내게 보내면 명마로 만들어 주겠다”고 장담했다. 그는 말의 털을 지지고 발굽을 깎아내고 편자를 박는데, 이 과정에서 말의 2~3할이 죽는다. 훈련시킬 때 굶기기도 하고 채찍을 휘두르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또 말의 5할이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백락을 명조련사라고 생각한다.

 

장자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말은 원래 제 발로 서리와 눈을 밟고 털로 바람과 추위를 막으며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발을 들었다 놓았다 뛰어논다.”

 

장자는 바로 이런 모습이 말의 참된 본성 혹은 진성(眞性)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장자는 백락을 ‘명조련사’라는 명예의 이면에 말의 진성을 억압해 수많은 말을 죽인 사람이라고 봤다.

 

이 이야기는 말과 조련사의 이야기이면서도 철기를 가진 국가와 백성의 관계를 패러디했다. 전국시대 통치자들은 촌락 공동체 촌민(村民)을 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 전사(戰士)로 길러내기 위해서 수많은 요구를 했다. 장자는 전국시대 억압과 요구를 말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변무(騈拇)’에서 장자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신체 이야기에 빗대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람은 두 개의 손과 두 개의 발을 갖고 있다. 손과 발은 각각 5개의 손가락, 발가락으로 돼 있다. 장자는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이 붙어서 발가락이 4개로 보이는 ‘변무’와 다섯 손가락에다 혹이 하나 붙어서 손가락이 6개로 보이는 ‘지지(枝指)’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리는 수술을 해서라도 변무와 지지를 없애려고 한다. 왜 그럴까? 다른 사람과 달라서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장자는 변무와 지지가 없어도 되는데 뭔가 덧붙어 있는 상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봤다. 여기서 그는 이야기를 사람의 자연스러운 성정과 의무로 주어지는 도덕의 관계로 넓혀간다.

 

도덕은 사람에게 “무엇을 하지 말고 무엇을 하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자는 도덕이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우리에게 “하라 마라”라는 요구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묻는다. 그는 도덕이 어떤 자격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말을 키운다면서 수많은 말을 죽인 조련사처럼 도덕도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면서 수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과제로 여겼다.

 

인의(仁義)의 도덕은 네 발가락의 변무와 육손이의 지지처럼 원래 사람에게 없었지만, 국가나 지배자의 요구에 의해 사람에게 억지로 부과된 것이다.

 

“오장(몸)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군더더기를 붙이면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인의의 실행에 푹 빠지고 귀와 눈의 해맑은 작용을 온갖 곳에다 쓰게 된다.”

 

장자는 철기 국가가 부국강병의 논리로 백성에게 합의되지 않은 과제를 의무로 부과하는 방식을 새로운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노(魯)나라의 교외에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노나라 제후는 경사스러운 일이라 생각하며 새에게 소와 돼지 등 맛난 고기를 내놓고 최고의 음악을 들려줬다. 하지만 새는 음식을 거들떠보지 않고 음악을 귀찮아하다 죽었다.

 

장자는 이 이야기를 한 뒤 자신의 촌평을 덧붙였다.

 

“노나라 제후는 자신을 돌보는 방식으로 새를 돌보았다. 새를 돌보는 방식으로 새를 돌본다면 마땅히 깊은 숲속에 살게 하고 강과 호수에 떠다니게 하여 미꾸라지나 피라미를 잡아먹게 하고 제 습성대로 무리 지어 살게 해야 한다. 그러면 새는 편안히 살았을 것이다.” (‘달생’)

 

장자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철기를 가진 국가의 부국강병은 백성을 평화가 아닌 위험과 고통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장자는 온갖 비유와 우화를 통해서 ‘위험 사회’의 출현을 경고했다. 당시에도 장자처럼 위험 사회의 징후를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다.

 

‘양왕’에 나오는 월나라 왕자 수(王子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왕이 될 자격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월나라는 이미 삼대에 걸쳐서 왕을 죽이는 쿠데타가 일어났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자 수는 전혀 뜻밖의 행동을 취했다. 그는 궁성을 빠져나와 굴속에 숨어 살았다. 월나라는 갑자기 ‘왕이 없는 나라’가 됐다.

 

사람들이 왕자 수가 숨은 굴에 왔지만, 그는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굴속으로 연기를 피우자 어쩔 수 없이 굴을 나와 울면서 수레에 올랐다.

 

“임금이 뭔데, 임금이 뭔데, 어째서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가?”

 

어찌 보면 장자는 세상의 변화를 잘 모른 채 겁을 집어먹고서 도망을 치려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그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 철기 국가가 내세우는 ‘문명’의 한계를 밝히려고 했다.

 

자공의 이야기를 통해서 장자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자공이 한수(漢水)를 지나다가 한 노인이 힘들게 물을 길어 밭에 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공은 노인이 안타까워 가던 길을 멈추고 노인에게 일종의 ‘양수기’를 알려줬다. 노인은 자신도 그런 기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면 처음에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다가 나중에 기계의 노예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노인은 노예가 되는 마음을 ‘기심(機心)’으로 말하면서 오히려 자공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천지’)

 

장자는 또 세상의 흐름을 알고 있기에 자신만의 유토피아, 즉 아무것도 없는 ‘무하유지향’을 찾고자 했다.

 

“싫증이 나면 또 아득히 멀리 나는 새를 타고 육극(六極·위와 아래 그리고 동서남북)의 밖으로 나가서 아무것도 없는 곳(無何有之鄕)이나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들판에 머물고자 한다. 너는 무엇 때문에 세상을 다스리는 일로 네 마음을 쓰며 괴로워하느냐?” (‘응제왕’)


 

 

신정근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4.04.01기사입력 2014.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