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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사람들]10년째 매출의 15% 만두기부…남미경 대표

해암도 2014. 3. 21. 11:44


만두회사 2번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결국 맛으로 재기
"돕기위해 열심히 일하다보면 돈은 자동으로 벌려"


	[따뜻한사람들]10년째 매출의 15% 만두기부…남미경 대표
쓰레기만두 파동으로 가게가 망하면서 신용불량자로까지 전락했지만 3년만에 재기에 성공한 뒤 10여년 동안 직접 빚은 손만두를 소외이웃에게 나눠주는 사장님이 있다. 남미경(52·여) 한만두식품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 뉴시스 기자와 만난 남 대표는 2644㎡(800평) 규모의 만두공장에서 7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사장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왜소한 체구였지만, 대화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긍정 에너지는 굉장했다.

그러나 그도 자살을 결심한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남 대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외부 출입을 끊고 수개월간 집에서만 지낸 적이 있다.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었다"고 회고했다.

1남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남 대표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어려웠던 집안 형편 탓에 학비를 제때 못내 초등학교에서 수없이 쫓겨났다. 차비가 없어 거리가 먼 학교를 못간 적도 수두룩하다. 게다가 24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1남1녀)까지 낳았지만 6년만에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혼 후 보험판매업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남 대표가 만두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9년 초였다. 우연히 신라호텔 주방장 출신이 만든 만두를 맛본 뒤 총판계약을 따냈다. 당시 백화점과 마트 등에 만두를 납품하면서 거둬들인 매출은 월 2000만원이 넘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사업을 3개월만에 접어야 했다. 그 해 3월 만두소에서 대장균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거래선이 끊기면서 매출은 곧바로 10분의 1로 줄었고, 두어달 지나자 적자가 났다.

그 때 남 대표는 자신이 직접 만두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제조기술 없이 시작한 사업은 순탄할 리 없었다. 총판 계약으로 번 수입을 1년만에 모두 써버리고 금융기관서 수억원대 빚을 지게 됐다. 3년이 되는 해에는 급기야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그는 "'남이 만든 만두를 파는 것보다 직접 빚으면 소비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겠지'란 생각이 들어 사업을 벌였지만, 공장 입지 선정부터 쉽지 않았다. 6개월간의 시행 착오끝에 만두 빚는 노하우를 터득했지만 이미 많은 빚을 진 상태였다. 하루 수십통의 빚 독촉 전화를 받았고, 월급을 주지 못해 10명 남짓이던 직원들이 모두 떠났다. 정말 앞이 깜깜했다"고 전했다.

공장 문을 닫고 선교사로 전향하려던 남 대표는 신앙의 도움으로 '빚만 갚고 관두자'고 마음을 굳혔고, 하루 2시간만 자며 일에 매진했다. 그렇게 3년. 빚을 모두 청산했다.

이 때 또한번의 시련이 닥쳤다. 2004년 6월 우리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던 불량 만두소 파동이 일어난 것. 쓰레기로 버려지는 단무지로 만든 만두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는 경찰청 발표가 나오면서 매출이 뚝 끊겼다. 폐업하는 만두가게도 속출했다.

그러나 남 대표의 손만두 공장은 한 달 가량만 가동이 중단됐을 뿐, 만두 맛을 인정받으면서 주문이 다시 밀려들기 시작했다.

빚을 갚은 후 선교사의 길로 가려던 남 대표였지만, 그와 잘 알고 지내던 하용조 목사님이 극구 말렸다. 남 대표는 "'굳이 선교사가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일을 통해 사회에 얼마든지 기여할 수 있다'고 조언해주셨다. 그때부터 만두 공장 사장인 내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남 대표가 '1+1' 기부식으로 가게를 운영하게 된 계기다.

이 방식은 만두 3개가 든 세트상품을 구매하면 동일한 양만큼 소외이웃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초창기 홍보가 덜 된 탓에 기부하는 양이 적었다. 입소문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홈페이지까지 운영했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가 컸다. '돈 벌어서 남준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나 남 대표는 꿋꿋이 혼자서 8년간 '1+1' 기부식으로 사업을 계속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기아대책과 인연을 맺어 만두를 기증하고 있다.

남 대표는 "전체 매출액의 15% 가량 기부 중인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면서 "이익이 나면 돕는 게 아니라 돕기 위해 일하다 보면 돈이 벌린다"고 강조했다.

남 대표는 한 달에 한번 70여 명의 직원들과 장애인요양시설을 찾는다.

'나사로의 집'에 머무는 중·고등학교 여학생에게는 만두공장 견학 기회도 주고 있다. 여기는 범죄를 저지른 여학생이 소년원에 가기 전 잠시 거치는 곳이다. 남 대표는 지난해 여름 나사렛의 집에 잠시 머문 여고생 A(18)양의 치과 치료비로 200만원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남 대표는 훗날 목표는 고아원을 설립하는 것이다. 북한의 기아아동을 도울 방법도 찾고 있다. 그는 "부모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면서 "얼마 전 북한 기아아동들의 실상을 전해듣고 많이 울었다. 이 아동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다"라고 말했다.          뉴시스   조선 : 201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