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슈퍼스타인 예브게니 키신의 연주회에는 항상 관객들의 열광적인 커튼콜과 키신의 답례 ‘마라톤 앙코르’의 공식이 따라다닌다. 크레디아 제공 |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
다음달 내한공연 1주만에 매진
천부적 재능에 지독한 연습
콩쿠르 없이도 세계적 스타로
열렬 커튼콜엔 마라톤 앙코르 화답
예브게니 키신(43). 공처럼 동그랗게 부푼 곱슬머리에 드문드문 여드름이 돋아난 얼굴, 어눌한 말투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듯 순진한 눈빛, 그러나 건반 앞에 앉는 순간 좌중을 압도하는 기묘한 아우라. 이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가 한국에 오면 소동이 벌어진다.키신은 2006년 첫 내한공연부터 한국에서 전례가 없는 사건들을 일으켰다. 공연 한달 전 티켓이 모두 매진됐고,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공연장 로비에 진을 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2009년 두번째 내한공연 때는 더 했다. 온라인 예매 시작 5시간 만에 2300석이 모조리 팔렸으며, 접속자 폭주로 예매 사이트가 마비됐다. 두 차례 내한공연 모두 그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모든 공연 중에서 유료 관객수 1위를 기록했다. 다음달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세번째 내한공연 역시 최고 18만원에 이르는 높은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 티켓 판매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전석 매진됐다. 천재성과 흥행력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슈퍼스타로 불리는 키신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들도 많다. 불혹이 지나도록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와 1년 내내 연주 여행을 다니며,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가든 공연장과 연습실, 공항만 오간다. ‘사회성이 결핍된 자폐 예술가’라는 말도 나오고, 천재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스스로 고립을 택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과연 이 괴물 같은 피아니스트의 정체는 뭘까. 건반 위의 조용한 괴물 키신이 2006년 한국을 처음 방문하기 전까지, 10년 넘게 국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과 공연기획자들은 새카맣게 속을 태웠다. 90년대 초부터 돌풍을 일으킨 키신을 초청하려고 수없이 구애했지만, 그는 향후 몇 년간 일정이 꽉 차 있었다. 키신에게 줄기차게 접촉한 국내 두 공연기획사는 결국 “수년 내에 꼭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이례적으로 두 기획사의 공동 주최로 첫 공연을 성사시켰다. 막상 그가 한국에 온 뒤 기획사 관계자들은 다시 한번 진땀을 빼야 했다. 좌석이 모두 매진된데다 현장 취소표도 나오지 않아 연주회 당일 관계자와 취재진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 예술의전당은 콘서트홀 객석 통로에 전무후무한 보조석 설치를 허가했다. 두 시간짜리 연주회가 끝난 뒤에는, 30번이 넘는 커튼콜에 보답해 밤 11시를 훌쩍 넘어서까지 10곡의 앙코르 연주가 이어졌다. 2009년 공연 뒤에도 사인회가 자정 무렵까지 이어졌다.관객들의 열광적인 커튼콜과 키신의 ‘마라톤 앙코르’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2007년 미국 카네기홀 독주회에선 앙코르 곡이 무려 12곡이나 됐다. 키신은 평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보다 독주회를 선호하는데, 한 인터뷰에서 “모든 걸 내가 주도할 뿐 아니라, 앙코르 연주를 얼마든지 더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피아노의 신이라 불리는 이유 키신은 어린 시절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43), 막심 벤게로프(40)와 더불어 ‘러시아 3대 신동’이라 불렸고, 성인이 된 뒤 ‘피아노의 신’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의 천재성이 처음 드러난 것은 생후 11개월 때. 10살 위 누나가 피아노로 치는 바흐 푸가 주제 선율을 따라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라디오, 음반 등 모든 곳에서 나오는 노랫소리를 따라 불렀다고 한다. 2살 때 처음 피아노 앞에 앉아서는 머릿속에 외운 선율을 건반에 옮겨 연주했다.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는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6살 때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원 영재교육 과정에 입학시켰다.키신은 콩쿠르에 단 한 번도 나가지 않고 연주력만으로 단숨에 유명세를 얻은 매우 예외적인 피아니스트다. 그는 13살 때 드미트리 키타옌코 지휘로 모스크바 국립 필하모닉과 녹음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 2번 음반이 서방세계에 소개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 이후 수많은 지역을 돌면서 협연과 독주회를 거듭하며 승승장구했다.그의 연주는 본능적이고 직관적이다. 자연스러운 감성 표현과 무결점의 기교에서 인간적이기보다 절대적인 아우라가 느껴진다는 평을 듣는다. 그리고 음향에 감각이 탁월해, 음반보다 실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가 공연장의 울림에 맞춰 타건과 페달 사용을 조정하며 섬세하게 음향을 빚어내는 모습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래서 깐깐한 거장들도 그에게 매료됐다.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은 키신과 협연하던 중 피아노 연주에 귀를 기울이다 지휘할 부분을 놓치기도 했고, 주빈 메타(78)는 키신과의 협연 뒤 감격해 악수를 청하는 키신에게 키스 세례를 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의 신동으로 불린 키신이 10대 때 연주하는 모습. 유니버설뮤직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