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화타' 109세 장병두옹, 시인 김지하 살려내며 명성 얻어… 대법원 유죄 내리기 전 종적 감춰
문계수씨, 그의 의료행위
도와 유죄… 후두암, 시아버지, 시어머니 고쳐
목숨 부지하려면 病에 안 걸려야
- 문갑식 선임기자
도사(道士)들이 꼽는 으뜸 해법은 육경신(六庚申) 수련이다. 삼시충이 경신일에 못된 짓을 하기에 그날 밤 자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60일 만에 돌아오기에 1년에 6번인 경신일에 1초도 졸지 않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희대의 돌팔이' 혹은 '현대판 화타(華陀)'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장병두(張炳斗)옹은 올해 109세다. 동양학자 조용헌이 "그 신통한 의술은 육경신 수련의 결과이며 하늘에서 받은 면허"라고 장옹을 평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할아버지는 시인 김지하를 살려내며 명성을 얻었다. 젊은 시절 구치소에서 지낸 날이 시인의 골수를 멍들게 했다. 사방이 죄어오는 듯한 공포는 양의(洋醫)도 한의(韓醫)도 고치지 못했다. 병세는 악화됐다.
장병두옹은 기계를 들이대지도 맥을 짚지도 않는다. 등을 만진 뒤 내놓는 진단이 병원에서 흔히 듣던 것과는 딴판이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인 고질병 환자들이 필사적으로 그를 찾는다. 김지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 논란의 인물이 3년 전 홀연 종적을 감췄다.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 근처에 산다는 이야기만 들릴 뿐이었다. 2012년 7월 대법원이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며 유죄판결을 내리기 한 해 전 이미 속세를 떠난 것이다.
지겨워서 그만뒀다, 한의사 아들이 말렸다, 젊은 여자가 생겼다…. 설(說)은 무성했지만 확인된 건 하나도 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병(病)을 못 고치면 괜찮고, 고치면 죄인(罪人)이 된다."
문계수(56)씨는 전북 군산에 산다. 1980년 3월부터 2006년 9월 15일까지 군산남중 한문교사로 재직했다. 그런 그의 교직 인생이 끝장났다. 장병두옹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도왔다는 혐의로 유죄(집행유예)를 받은 것이다.
문씨는 1990년 디스크인 줄 알고 찾은 병원에서 후두암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이었다. 그의 가계엔 암 전력이 있다. 어머니가 40대에 위암으로 사망했다. 스님인 오빠도 암이 위·대장에 번졌다가 겨우 목숨을 건졌다.
그런 오빠가 소개한 사람이 장옹이었다. 할아버지는 "위암이 후두까지 번졌다"며 "보름만 늦었어도 죽었을 것이다"고 했다. 문씨는 장병두옹의 약을 넉 달 먹고 혹이 점점 작아져 가는 걸 느끼자 시아버지를 데려갔다. 대소변조차 못 가려서 대학병원에서 쫓겨난 시아버지가 석 달 만에 벌떡 일어서 15년을 더 살다 갔다. 다음엔 시어머니였다. 혈압과 당뇨가 심해 역시 대학병원에서 담석증 수술을 거절당한 할머니도 장 할아버지가 살렸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그때부터 문씨와 동생은 할아버지가 하는 말을 받아 적는 일을 하게 됐다. 돈을 받기는커녕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지 제 돈 들여 싸들고 곁을 지켰다. 목숨을 살려준 데 대한 보은이라고 생각했다.
은인을 돕다 교직에서 쫓겨난 사연만으로 무면허 의료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세상엔 편작(扁鵲)보다 사기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만병통치, 무병장수라는 그 달콤한 어휘에 우리는 얼마나 지갑을 열었던가.
그렇지만 "1만분의 1이라도 가능성 있다면 시도해야 하지 않나"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을 한 이는 박태식 전북대 교수다. 그 역시 암세포가 위와 장과 복막에 퍼져 치료를 포기하고 시한부 인생을 살다 장옹 덕에 살아났다.
과연 하나뿐인 목숨과 치료받을 권리를 법은 온전히 보장해주는가? 미국 하버드대를 비롯해 영국·독일·일본·중국도 관심을 갖는 대체의학을 왜 우리는 한사코 외면할까? 그것을 막는 것은 정부인가 의료인인가?
문씨는 기간제교사로 교단에 서는 한편 장애아 언어치료도 돕고 있다. 그의 좌우명은 '지성감천(至誠感天)'이다. 밤바람 거센 군산 바닷가에서 헤어지며 그는 "언젠가 대통령께서 사연을 알게 되면…"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교단에 돌아갈 날이 올 것이라고 했지만 전망이 밝진 않다. 의사들이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면서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에 반대해 총파업을 벌인다는데 그 퍼런 서슬에 누가 감히 장삼이사(張三李四)를 돌아보겠는가.
이 땅에서 목숨 부지하고 싶으면 병에 걸리지 않을 일이다. "돈 벌지 않아도 이름나지 않아도 좋으니 시한부 선고 받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한 그는 교직을 떠나게 된 충격에 암이 재발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