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 “비트코인은 금융의 미래를 바꿀 것” ▼
비트코인은 2009년 등장한 가상화폐이자 글로벌 전자지불네트워크의 이름이다.
2008년 전대미문의 금융위기가 세계를 충격으로 몰고 갔던 그해 가을, 온라인상의 암호학 커뮤니티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비트코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이듬해 1월 3일 홀로 그 시스템을 시동했던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일본식 가명을 사용했던 인물의 존재는 지금까지도 베일에 가려 있다.
비트코인이 처음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난해하고 낯선 시스템에 초기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암호학 전문가나 해커들이 전부였다. 비트코인에 대해 한번쯤 들어본 이들이 엄청나게 많아진 요즘도, 이 새로운 발명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기는 하다. 유럽중앙은행이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가상화폐”라고 평가한 바 있고 타임지는 “이론상 가장 이상적인 화폐”라고 했으며, 얼마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벤 버냉키 의장까지 나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지급수단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아직 제도금융권의 시선은 싸늘하다.
하지만 필자는 결론적으로 비트코인이 금융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고 본다. 현재의 비트코인 열풍에 투기적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급격한 가치변동이 회계의 척도라는 화폐의 기능성을 저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비트코인의 화폐적 가치가 신기루에 불과하다거나 내재가치가 전혀 없는 ‘튤립버블’(14세기 네덜란드를 휩쓸었던 투기광풍)과 유사하다는 등의 지적은 악의적이거나 순진한 오해, 둘 중 하나다.
비트코인은 화폐이기 이전에 역사상 가장 고효율의 글로벌 금융네트워크다. 금융기관의 개입이 없고, 중앙집중적인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거래비용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고 속도는 빠르기 때문이다. 버냉키 의장이 평가했던 ‘장래성’은 바로 이런 글로벌 지불시스템적인 특성에서 비롯한다.
비트코인은 지금껏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혁신적 금융플랫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오지에 가면 금융시스템이 미비해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금융시스템 없이도 양자간의 거래가 가능하다. 장소의 구애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화폐적 가치는 네트워크적이며 생태계적인 가치가 반영된 것이다. 비트코인을 단순히 화폐로만 바라보면 거품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실체는 매우 중층적이다.
왜 사람들은 사람들의 수다를 이어주는 네트워크(페이스북, 트위터)나 정보를 이어주는 네트워크(구글)에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서 정작 아프리카 오지까지 금융적 수요를 이어주는 네트워크가 지닌 가치를 평가하는 데 인색한 것일까?
전자상거래가 발달하면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보안 문제에서도 비트코인은 훨씬 안전하다. 금융기관 보안망이 뚫리고 금융사기가 빈발하는 동안에도 비트코인 시스템 자체는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았다. 이유는 인터넷뱅킹 등 기존 금융시스템과 달리 해커들의 표적이 될, 단 하나 또는 소수의 데이터베이스 서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수백만의 똑같은 데이터베이스가 산재해 있고 그것을 대략 10분에 한 번꼴로 동기화하는 획기적인 분산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다. 이런 구조가 알려지자 해커와 보안전문가들이 초기에 열혈 이용자가 된 것이다.
국가와 금융기관이 보증하지 않아 취약할 것이라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 달러의 구매력이 무려 95%나 하락해 왔다는 점, 그리하여 어느 누구도 개인의 구매력과 자산가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을 잊었는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12조 달러 상당의 통화가 발행돼 신용버블이 지구를 뒤덮은 동안에도 비트코인의 구매력과 가치는 꾸준히 상승해왔다.
시대를 앞서간 기술적 혁신은 처음에는 언제나 의심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1845년 대서양 횡단에 도전했던 철제 증기선 그레이트브리튼호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쇳덩어리가 과연 바다에 뜰 수나 있겠냐는 식이었다. 필자는 지금 비트코인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을 보면서 당시를 생각해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것이다. ‘혁신’이 세상에 처음 등장할 때 많은 사람은 그것에 열광하거나 조롱하지만 현명한 이들은 그 혼란의 와중에 혁신의 가능성을 주목하고 그것으로 세상을 바꿔왔다는 것이다.
김진화 한국비트코인거래소 공동설립자·이사
:: 필자 소개 ::
2013년 한국비트코인거래소 ‘코빗(Korbit)’을 공동 설립했다. 사회혁신 및 디지털 트렌드 전문가로 비영리법인인 타이드인스티튜트 이사로도 재직 중이다.
▼ “신기한 것에 쏠리는 일시적 유행일 뿐” ▼
비트코인은 기존 화폐, 금융시스템에 대한 반발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폐 발행을 독점하면서 필요에 따라 통화증발을 일삼는 중앙권력, 고객이 맡긴 자금을 잘못 운용하여 대규모 손실을 입고도 멀쩡하게 되살아나는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불만이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이다. 비트코인이 처음 나온 시점이 리먼 쇼크 이후 세계경제가 한창 혼란을 겪던 2009년 초라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앙권력의 통제에서 자유로운 화폐시스템을 추구하는 비트코인은 인터넷과 컴퓨터, 암호 등 여러 정보기술(IT)의 발전 덕에 출현이 가능했다. 파일공유 시스템과 유사하게 P2P 네트워크 내에서 시스템에 내재된 일정한 법칙에 따라 새로운 비트코인이 발행된다. 중앙은행 없이도 화폐 발행이 가능하므로 중앙권력의 통제에서 자유롭다. 신규 발행 규모는 4년마다 절반씩으로 줄어들고 최종적으로 2100만 단위까지만 발행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아예 통화 남발에 따른 통화가치의 저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없앤 것이다.
비트코인 시스템은 금융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 간에 직접 자금 이전과 거래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자금 거래에 대한 인증도 네트워크에 접속한 다수의 가입자들에 의해 집합적으로 이루어진다. 금융기관에 지불되는 수수료가 크게 절약될 수 있는 구조다. 개인의 자금은 컴퓨터나 휴대전화 또는 웹에 설치된 전자지갑에 보관해 자신이 직접 관리한다. 비트코인은 개인의 신상을 노출하지 않고도 자금 거래가 가능하기에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이 장점과 매력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곧 비트코인이 화폐 또는 화폐시스템으로 기능하는 데 약점으로도 작용한다. 무엇보다 비트코인 화폐시스템 내에서는 통화 발행을 하는 주체가 따로 없기 때문에 통화량 변화를 통한 경기조절 수단이 없다.
발행 규모 제한은 구조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최종 발행량이 고정되어 있어 비트코인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 그러면 비트코인을 사용하려 하기보다 가치 상승을 기대하고 축적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또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상품가격은 점점 낮아진다. 비트코인은 소수점 8단위까지 분할하여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 가치가 올라가도 결제가 불가능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품가격 하락이 예상되면 소비와 투자를 뒤로 미루게 되어 극심한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이 유발된다. 경제 규모 확대에도 불구하고 통화량 증가가 원활하지 않아 경기침체가 야기되곤 했던 금본위제와 유사한 것이다.
비트코인이 지닌 익명성은 범죄자들에게 큰 이점이다. 불법거래와 탈세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이미 미국에서는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받는 마약거래 사이트가 적발돼 폐쇄한 바 있다.
비트코인을 담는 전자지갑도 파일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항상 분실과 해킹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 비트코인 전자지갑에 대한 해킹이 여러 차례 발생해 대량의 비트코인을 분실 당한 사례가 있다. 금융기관의 실패로 인해 예금 손실을 볼 위험이 없는 대신 자신의 책임하에 자신의 자금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 것이다.
그 자체로서 내재가치가 없고 정부 권위에 의해 보증되지도 않는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가치가 불안정하여 안정적인 결제수단으로 기능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여기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투자 또는 투기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정부규제, 시스템 불안 등이 계기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지면 단숨에 가치가 급락할 위험성이 있다.
통화당국과 정부, 금융기관에 대한 비트코인 지지자들의 불만에도 일리가 있다. 현재의 화폐시스템이 완벽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화폐시스템은 나름의 혼란과 경쟁, 진화를 거쳐 오늘날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비트코인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이고 장점도 많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이 때문에 현재 화폐시스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은 사용과 거래가 확산될수록 단점이 드러나고 한계가 부각될 뿐만 아니라 정부 규제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가 미래의 잠재적인 경쟁자인 비트코인의 성장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비트코인은 성공할수록 실패할 운명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필자 소개 ::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 경제학박사를 취득했다. 1991년 LG경제연구원에 입사해 금융재무담당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 후보로 올릴 정도라고 하네요. 국내에도 최근에 인천의 한 빵집이 처음으로 비트코인 결제를 시작하면서 문의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여러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새로운 화폐나 금융상품으로 기존 화폐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최근 한국은행은 “현행법상 화폐로도, 금융상품으로도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격 폭락으로 손실을 봐도 ‘투자자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과연 비트코인은 ‘새로운 화폐’가 될 수 없을까요? 전문가 두 분의 찬반을 들어봤습니다. 》
▼ “비트코인은 금융의 미래를 바꿀 것” ▼
비트코인은 2009년 등장한 가상화폐이자 글로벌 전자지불네트워크의 이름이다.
2008년 전대미문의 금융위기가 세계를 충격으로 몰고 갔던 그해 가을, 온라인상의 암호학 커뮤니티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비트코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이듬해 1월 3일 홀로 그 시스템을 시동했던 개발자,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일본식 가명을 사용했던 인물의 존재는 지금까지도 베일에 가려 있다.
비트코인이 처음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난해하고 낯선 시스템에 초기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은 암호학 전문가나 해커들이 전부였다. 비트코인에 대해 한번쯤 들어본 이들이 엄청나게 많아진 요즘도, 이 새로운 발명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기는 하다. 유럽중앙은행이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가상화폐”라고 평가한 바 있고 타임지는 “이론상 가장 이상적인 화폐”라고 했으며, 얼마전 미국 연방준비제도 벤 버냉키 의장까지 나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지급수단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아직 제도금융권의 시선은 싸늘하다.
하지만 필자는 결론적으로 비트코인이 금융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고 본다. 현재의 비트코인 열풍에 투기적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급격한 가치변동이 회계의 척도라는 화폐의 기능성을 저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비트코인의 화폐적 가치가 신기루에 불과하다거나 내재가치가 전혀 없는 ‘튤립버블’(14세기 네덜란드를 휩쓸었던 투기광풍)과 유사하다는 등의 지적은 악의적이거나 순진한 오해, 둘 중 하나다.
비트코인은 화폐이기 이전에 역사상 가장 고효율의 글로벌 금융네트워크다. 금융기관의 개입이 없고, 중앙집중적인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거래비용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고 속도는 빠르기 때문이다. 버냉키 의장이 평가했던 ‘장래성’은 바로 이런 글로벌 지불시스템적인 특성에서 비롯한다.
비트코인은 지금껏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혁신적 금융플랫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오지에 가면 금융시스템이 미비해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금융시스템 없이도 양자간의 거래가 가능하다. 장소의 구애를 전혀 받지 않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화폐적 가치는 네트워크적이며 생태계적인 가치가 반영된 것이다. 비트코인을 단순히 화폐로만 바라보면 거품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실체는 매우 중층적이다.
왜 사람들은 사람들의 수다를 이어주는 네트워크(페이스북, 트위터)나 정보를 이어주는 네트워크(구글)에는 높은 가치를 부여하면서 정작 아프리카 오지까지 금융적 수요를 이어주는 네트워크가 지닌 가치를 평가하는 데 인색한 것일까?
전자상거래가 발달하면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보안 문제에서도 비트코인은 훨씬 안전하다. 금융기관 보안망이 뚫리고 금융사기가 빈발하는 동안에도 비트코인 시스템 자체는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았다. 이유는 인터넷뱅킹 등 기존 금융시스템과 달리 해커들의 표적이 될, 단 하나 또는 소수의 데이터베이스 서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수백만의 똑같은 데이터베이스가 산재해 있고 그것을 대략 10분에 한 번꼴로 동기화하는 획기적인 분산 컴퓨팅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다. 이런 구조가 알려지자 해커와 보안전문가들이 초기에 열혈 이용자가 된 것이다.
국가와 금융기관이 보증하지 않아 취약할 것이라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 달러의 구매력이 무려 95%나 하락해 왔다는 점, 그리하여 어느 누구도 개인의 구매력과 자산가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을 잊었는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12조 달러 상당의 통화가 발행돼 신용버블이 지구를 뒤덮은 동안에도 비트코인의 구매력과 가치는 꾸준히 상승해왔다.
시대를 앞서간 기술적 혁신은 처음에는 언제나 의심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1845년 대서양 횡단에 도전했던 철제 증기선 그레이트브리튼호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쇳덩어리가 과연 바다에 뜰 수나 있겠냐는 식이었다. 필자는 지금 비트코인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을 보면서 당시를 생각해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이것이다. ‘혁신’이 세상에 처음 등장할 때 많은 사람은 그것에 열광하거나 조롱하지만 현명한 이들은 그 혼란의 와중에 혁신의 가능성을 주목하고 그것으로 세상을 바꿔왔다는 것이다.
김진화 한국비트코인거래소 공동설립자·이사
:: 필자 소개 ::
2013년 한국비트코인거래소 ‘코빗(Korbit)’을 공동 설립했다. 사회혁신 및 디지털 트렌드 전문가로 비영리법인인 타이드인스티튜트 이사로도 재직 중이다.
▼ “신기한 것에 쏠리는 일시적 유행일 뿐” ▼
비트코인은 기존 화폐, 금융시스템에 대한 반발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폐 발행을 독점하면서 필요에 따라 통화증발을 일삼는 중앙권력, 고객이 맡긴 자금을 잘못 운용하여 대규모 손실을 입고도 멀쩡하게 되살아나는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불만이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이다. 비트코인이 처음 나온 시점이 리먼 쇼크 이후 세계경제가 한창 혼란을 겪던 2009년 초라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앙권력의 통제에서 자유로운 화폐시스템을 추구하는 비트코인은 인터넷과 컴퓨터, 암호 등 여러 정보기술(IT)의 발전 덕에 출현이 가능했다. 파일공유 시스템과 유사하게 P2P 네트워크 내에서 시스템에 내재된 일정한 법칙에 따라 새로운 비트코인이 발행된다. 중앙은행 없이도 화폐 발행이 가능하므로 중앙권력의 통제에서 자유롭다. 신규 발행 규모는 4년마다 절반씩으로 줄어들고 최종적으로 2100만 단위까지만 발행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아예 통화 남발에 따른 통화가치의 저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없앤 것이다.
비트코인 시스템은 금융기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 간에 직접 자금 이전과 거래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자금 거래에 대한 인증도 네트워크에 접속한 다수의 가입자들에 의해 집합적으로 이루어진다. 금융기관에 지불되는 수수료가 크게 절약될 수 있는 구조다. 개인의 자금은 컴퓨터나 휴대전화 또는 웹에 설치된 전자지갑에 보관해 자신이 직접 관리한다. 비트코인은 개인의 신상을 노출하지 않고도 자금 거래가 가능하기에 익명성을 보장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들이 장점과 매력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곧 비트코인이 화폐 또는 화폐시스템으로 기능하는 데 약점으로도 작용한다. 무엇보다 비트코인 화폐시스템 내에서는 통화 발행을 하는 주체가 따로 없기 때문에 통화량 변화를 통한 경기조절 수단이 없다.
발행 규모 제한은 구조적으로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최종 발행량이 고정되어 있어 비트코인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 그러면 비트코인을 사용하려 하기보다 가치 상승을 기대하고 축적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또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상품가격은 점점 낮아진다. 비트코인은 소수점 8단위까지 분할하여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트코인 가치가 올라가도 결제가 불가능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품가격 하락이 예상되면 소비와 투자를 뒤로 미루게 되어 극심한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이 유발된다. 경제 규모 확대에도 불구하고 통화량 증가가 원활하지 않아 경기침체가 야기되곤 했던 금본위제와 유사한 것이다.
비트코인이 지닌 익명성은 범죄자들에게 큰 이점이다. 불법거래와 탈세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이미 미국에서는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받는 마약거래 사이트가 적발돼 폐쇄한 바 있다.
비트코인을 담는 전자지갑도 파일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항상 분실과 해킹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 비트코인 전자지갑에 대한 해킹이 여러 차례 발생해 대량의 비트코인을 분실 당한 사례가 있다. 금융기관의 실패로 인해 예금 손실을 볼 위험이 없는 대신 자신의 책임하에 자신의 자금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 것이다.
그 자체로서 내재가치가 없고 정부 권위에 의해 보증되지도 않는 비트코인은 화폐로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가치가 불안정하여 안정적인 결제수단으로 기능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여기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투자 또는 투기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정부규제, 시스템 불안 등이 계기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지면 단숨에 가치가 급락할 위험성이 있다.
통화당국과 정부, 금융기관에 대한 비트코인 지지자들의 불만에도 일리가 있다. 현재의 화폐시스템이 완벽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화폐시스템은 나름의 혼란과 경쟁, 진화를 거쳐 오늘날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비트코인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이고 장점도 많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이 때문에 현재 화폐시스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은 사용과 거래가 확산될수록 단점이 드러나고 한계가 부각될 뿐만 아니라 정부 규제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가 미래의 잠재적인 경쟁자인 비트코인의 성장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비트코인은 성공할수록 실패할 운명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필자 소개 ::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 경제학박사를 취득했다. 1991년 LG경제연구원에 입사해 금융재무담당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동아 :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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