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제약 회장 “영양제 안 먹어”…91세 그가 꼭 먹는 ‘4알’ 정체
동네 사람들은 아이를 이렇게 불렀다. 부모님이 축구공, 배구공 같은 걸 만들어서 파는 가난한 집 애라는 놀림이 담긴 별명이었다. 아이는 그 별명이 부끄럽고 싫었다.
아이는 그림을 빼어나게 잘 그렸다. 누구나 그의 그림을 보면 “환쟁이(화가를 낮춰 부르는 말) 뺨칠 솜씨”라며 놀랄 정도였다. 아이도 자신이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아이는 5남매의 장남으로 가족의 생계와 집안의 장래를 책임져야 할 자신의 숙명을 알았다. 학창 시절 내내 자신을 따라다니던 “볼집 아이”라는 꼬리표로 제 손으로 떼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약대에 진학했다. 배고픈 환쟁이가 아닌, 돈 많은 약장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유명 제약회사에 들어가 30대에 중역에 올랐고 40대에 상무이사가 됐다. 이후 회사를 떠난 그는 자신의 회사를 창업해 전문의약품 업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으로 일궜다.
다시 붓을 잡은 건 일흔이 넘어서다. 사업체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물감 냄새를 맡으니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다.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 4시간을 꼼짝 않고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다.

박해룡 회장이 여주미술관 수장고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를 들어 보이고 있다. 힘차게 달리는 말과 바람에 나부끼는 갈기에서 평생 멈추지 않고 달려온 자신의 모습을 본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볼집 아이에서 약장사로, 다시 환쟁이가 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박해룡(이하 경칭 생략) 고려제약 창업주다. 1935년생인 그는 올해 91세, 망백(望百)의 나이다. 자신을 옭아맨 가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타고난 재능과 꿈을 버렸던 그는 결국 먼 길을 돌아돌아 다시 꿈의 세계에 들어왔다.
지난달, 그를 만난 취재진은 세 번 크게 놀랐다. 망백의 나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꼿꼿하고 단단한 체격에 한번, 반나절 이상 긴 인터뷰를 두 차례 진행했을 정도로 긴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뾰족한 모서리라곤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할 만큼 시종 둥글고 온화한 말투에 두 번, 1만5000원짜리 셔츠도 기워서 입는다는 수백억 자산가의 ‘찐 패션’에 세 번….
그리고 박해룡의 자택을 찾은 취재진이 진짜 놀란 순간은 따로 있었다. 국민 감기약 ‘하벤’으로 유명한 고려제약 창업주인 만큼, 그의 집 이곳저곳엔 비싼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이 쌓여있을 것이라 여겼다. 90대에 저토록 단단한 몸을 유지하고 이젤 앞에서 4시간씩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대작을 그려내는 놀라운 체력을 만들어낸 ‘비밀의 약’이 뭔지 꼭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집 어디에도 약병 하나 눈에 띄는 게 없었다. 결국 평소에 건강 관리를 위해 챙겨 드시는 약이 뭔지, 박해룡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약? 약은 가급적 먹지 말아야지. 먹을 이유가 없는데 굳이 챙길 필요가 있나요?
제약회사 창업주라면 “겉으로 괜찮은 것 같아도 늘 이런저런 약을 챙겨 먹어야 한다”고 말해줄 줄 알았던 취재진의 표정이 순간 아연해졌다. 박해룡은 빙그레 웃더니 “약 대신 챙겨 먹는 것들, 꼭 지키는 생활 습관은 있지요. 이런 게 약보다 더 중요합니다”고 그만의 건강 비기(秘器)를 공개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은 박 회장. 올해부터는 추상화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아흔에도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장진영 기자
〈100세의 행복3〉 12화에선 가난한 집 장남이 굴지의 제약회사 회장으로 우뚝 서기까지 지난한 삶의 여정을 걸어온 박해룡의 인생 철학, 마침내 먼 길을 돌아 화가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원천인 건강 비결을 모두 담았다. 자수성가로 이뤄낸 수백억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그만의 방식, 자신의 장례식에 대한 계획까지 공개한다.
※ 박해룡 회장이 매일 아침 붓을 드는 화실은 어떤 곳일까요. 그래서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집 안 곳곳에 물감이 튀고 화구와 작품이 쌓인, 꾸밈없는 그의 작업 공간을 영상에서 확인해 보세요.
목차
📌‘약’ 대신 아침저녁 챙겨먹는 네알의 정체
📌사원에서 회장까지…그를 만든 두 가지 철칙
📌사표 7번 막히자 등기로...고려제약 시작은 이랬다
📌인생 후반, 100억 털어 새 꿈을 시작하다
📌아내에겐 기꺼이 졌다…회장님의 ‘사랑법’
📌1만5000원 셔츠 기워 입는다, 그가 말하는 진짜 ‘멋’
※〈100세의 행복〉 다른 이야기를 보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①“뇌 살아나 암산만으로 자수” 96세 할머니 초간단 ‘손 운동’
②박카스에 ‘이 가루’ 타먹는다…전립선암 이긴 90세 약학자 비밀
③“당뇨에 독약…그래도 못 끊어” 99세 박정희 책사, 푹 빠진 가루
④“췌장암 시한부서 완치했다” 89세 ‘이부진 요리스승’ 보약탕
⑤당뇨·암 다 이겨낸 96세 권노갑…“이것 타먹는다” 아침 4잔 비밀
‘약’ 대신 아침저녁 챙겨 먹는 네 알의 정체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건 음식에 다 들어 있어요. 음식 골고루 잘 먹고 소화 잘 시키면 건강의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 거거든.
제약회사 창업주이자 열정 넘치는 화가로 다채로운 인생을 살아낸 박해룡. 그의 지치지 않는 체력을 만들어낸 일등공신은 식단이었다.
난 지금도 하루 세끼를 정성껏 챙겨 먹어요. 특히 ‘이것’은 하루도 빠뜨리는 날이 없어요.

젊은 시절에는 술을 많이 마셨다는 박 회장. 현재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식사하며 와인 한두 잔 정도로만 즐긴다. 장진영 기자
박해룡의 식단에 절대 빠지지 않는 이것은 바로 삶은 달걀이다. 아침에 두 알, 저녁에 두 알씩 하루 네 알을 반드시 챙겨 먹는다.
나이가 먹을수록 단백질 섭취에 만전을 기울여야 해요. 그런데 단백질은 소화가 잘 안 되잖아요. 내가 소화를 잘 시킬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을 찾아 충분한 양을 매일 빠뜨리지 말고 섭취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자신이 먹을 달걀을 직접 삶는데, 이때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 물을 먼저 팔팔 끓인 뒤, 달걀을 넣고 딱 5분 있다 꺼낸다. 이 정도 시간이면 흰자는 부들부들하게 익지만 노른자는 살짝 흐를 정도로 부드러운 죽 같은 상태가 된다.
박해룡은 달걀 윗부분의 껍질만 살짝 벗겨낸 뒤, 유동식 같은 달걀을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퍽퍽한 완숙과 달리 삼키기 좋고 소화도 잘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요리 과정도 복잡하지 않고 그릇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어 치우기도 간단하다.
이 밖에도 떠먹는 요구르트와 과일을 매일 챙겨 먹고, 고기도 주기적으로 먹는다. 그는 어떤 음식이든 한번에 많이 먹기보다 매끼 소화할 수 있는 양을 규칙적으로 알맞게 먹는 게 중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가 단백질을 챙겨 먹는 건 근육 생성을 위해서다. 근육은 식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박해룡은 매일 오후 3시면 헬스클럽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최고령 회원이다. 일주일에 엿새, 한번 갈 때마다 90분씩 상체와 하체를 고루 단련한다.

박 회장은 일주일에 엿새씩 근력 운동을 한다. 그는 "운동은 한꺼번에 많이 하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그는 하체와 상체 근력 운동으로 전신의 열을 올린 뒤 트레드밀 등을 타며 유산소 운동으로 마무리한다. 개인 트레이너 없이 혼자 운동하며, 자신의 몸에 최적화한 그만의 운동 루틴이다. 헬스클럽에서 보낸 시간 외에도, 그는 틈만 나면 집 앞 도산공원을 산책하며 하체를 단련하고 마음을 상쾌하게 정돈한다.
나는 아흔이 넘도록 늙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늙었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 정말 늙어버리거든요. 늙었다는 생각에 빠지기 싫으면 매일, 계속 움직이면 됩니다.
사원에서 회장까지…그를 만든 두 가지 철칙
망백의 나이에 계속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이건 박해룡이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 가능한 게 아닐까? 하지만 다부져 보이는 그의 몸은 사실 노력의 산물이었다. 종근당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상무까지, 그리고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한국에서 손꼽는 제약회사로 끌어올리기까지 그는 매 순간 자신이 체력을 극한으로 몰아붙여야 했다.
제 삶의 철학이 ‘최선과 정성’입니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고 정성껏 공을 들이면 안 될 게 없어요. 회사원일 때 늘 다른 사람보다 최소한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했어요. 탈진할 정도로 일했고 그 결과 성과가 따라왔죠. 30대에 중역에 오르는 고속승진도 그렇게 이뤄진 겁니다.

그가 현역 시절 직원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하면 된다"였다. 끝까지 전력투구하면 못 할 일이 없다고 믿었다. 장진영 기자
고려제약 창업 이후엔 사장인 그가 직접 영업을 뛰었다. 그는 “물건을 판다는 건,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사는 것이고 결국 인간관계가 기본”이라 믿었다. 박해룡이 사람의 마음을 사는 방법은 ‘정성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 정성이 닿으면 판매는 자연히 이뤄진다 여겼다.
당시에 거제도에 약국이 딱 하나 있었어요. 거제도에 가려면 부산에서 배를 타야 했거든요. 부산항에는 풍랑이 그렇게 자주 와요. 풍랑 가라앉길 며칠 기다렸다가 겨우 배 타고 거제에 도착하면 약사님이 만나주지도 않아요. 그럼 다음 달에 또 갑니다. 그 다음 달에도 또 가고요. 그 약국 하나 보고 계속 정성을 들이는 거죠. 이런 식으로 영업하니까, 우리 회사 영업팀 직원 스무 명 전체가 올리는 매출만큼 저 혼자 올릴 수 있었어요.
월급쟁이 시절에도, 사업가 변신하고도 박해룡은 매사에 최선과 정성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건강은 뒷전이었다. 오랜 세월 관절 통증으로 고생했다. 4년 전 퇴행성 관절염으로 무릎 수술을 받을 때는 수술실에 톱과 망치 소리가 난무했다. 수술을 받던 박해룡은 의사에게 “여기가 병원인가, 공작소인가 모르겠네요”라며 농담을 건네는 여유까지 보였다.
박해룡의 또래 친구들 대다수는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걷지만, 관절 수술까지 받은 박해룡은 여전히 쭉 뻗은 두 다리와 곧은 허리를 자랑하며 가볍게 걷는다. 관절 강화를 위해 단백질 섭취와 근력 운동, 산책에 만전을 기한 결과물이다.
얼마 전에 건강 검진을 했는데, 관절 상태가 아주 좋대요. 주치의가 ‘간과 심장, 콩팥 상태도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해요. 매일 꾸준히 움직인 덕분이지요. 나이 들었다고 쉬어야 한다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어떻게든 잘 먹고 움직이세요.
제약회사 회장이 내놓은 건강 처방은 어떤 특별한 약보다 단순하고, 또 강력했다.
사표 7번 막히자 등기로...고려제약의 시작은 이랬다
“회사에서 나를 ‘불자동차’라고 불렀어. 내가 나서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었거든.”
박해룡의 직장 생활은 평사원에서 시작됐다. 성균관대 약학대학을 졸업한 뒤 처음 들어간 곳은 종근당이었다. 약국을 차리기보다 더 큰 규모의 사업에 뛰어들고 싶어 제약회사 사원의 길을 택했다.
입사한 뒤에는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주변에서는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라”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당장 받는 월급보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며 얻는 경험이 훗날 더 큰 재산이 된다고 믿었다.
그렇게 일한 결과 승진도 빨랐다. 30대 초반에 임원이 된 그는 종근당 상무이사를 거쳐 한국메디카공업과 한국롱프랑제약 대표이사까지 맡았다.
그는 마흔일곱에 돌연 미국 유학을 택했다. 쉼 없이 달려온 만큼 1년 동안 새로운 경영 지식을 배우고 싶다고 회사에 요청했다. 처음에는 MIT 청강생으로 미국에 갔지만, 현지에서 만난 도올 김용옥의 권유로 하버드대 최고경영자과정에 들어갔다.

도올 김용옥이 직접 찍어준 하버드대 최고경영자과정 졸업사진. 졸업장을 들고 있는 사람이 박해룡 회장이다. 사진 박해룡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회사에는 이미 그의 빈자리를 대신할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박해룡은 후배들의 자리를 밀어내면서까지 회사에 남고 싶지 않았다. 결국 사표를 냈다. 회장이 일곱 번이나 그의 사표를 반려하자 마지막에는 등기우편으로 사직서를 부쳤다.
종근당을 나온 그에게 옛 직장 동료가 찾아왔다. 퇴사 후 세운 제약회사가 3년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해 문을 닫을 형편이라며 경영을 맡아달라고 했다. 박해룡은 1982년 7000만원을 투자해 지분 절반을 갖고 경영에 합류했다. 그의 고려제약 경영은 그렇게 시작됐다.
취임식은 없었다. 적자 회사에서 행사를 치를 여유가 어디 있느냐며 직원들을 데리고 곧장 영업 현장으로 나갔다.
“적자 회사에서 무슨 취임식이야. 돈 벌러 나가야지.”
그는 사장이라는 직함을 내려놓고 직접 영업가방을 들었다. 고려제약 제품을 팔기 위해 약국을 한 곳씩 찾아다녔다. 아침 일찍 약국을 찾아가 약사와 함께 셔터를 올리고 연탄불을 피웠다. 문전박대를 당해도 물러서지 않고 거듭 찾아갔다. 종근당에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달려가던 ‘불자동차’의 방식 그대로였다.
회사는 그가 경영을 맡은 첫해 흑자로 돌아섰다. 생산량이 늘어나자 3년 뒤에는 2억원짜리 공장을 사들였다. 가진 돈은 2000만원뿐이었고, 나머지 1억8000만원은 은행에서 빌렸다.
그의 승부수는 제품 개발과 광고에서도 이어졌다. 고려제약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종합감기약 ‘하벤’도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광고 문구와 판매 전략까지 직접 챙겼다. 소비자가 제품의 특징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어야 팔린다는 생각이었다.

고려제약의 대표 종합감기약 하벤. 사진 고려제약
하벤이 시장에 자리 잡으면서 고려제약은 적자에 허덕이던 작은 제약회사에서 탄탄한 중견 제약사로 성장했다. 2000년에는 코스닥시장에도 상장시켰다. 박해룡이 7000만원을 들고 경영에 뛰어든 지 18년 만이었다.
아흔인 지금도 그는 고려제약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평사원에서 상장 제약회사의 회장이 되기까지, 그를 키운 것은 화려한 직함보다 남들이 피한 일을 맡으며 쌓은 경험이었다. 고려제약 역시 그 ‘불자동차’의 경험 위에서 성장했다.
인생 후반, 100억 털어 새 꿈을 시작하다

박해룡 회장은 매일 새벽 붓을 든다. 한 번 작업을 시작하면 서너 시간씩 몰입한다. 김서원 기자
우와~!
도산공원 맞은편에 있는 박해룡의 자택을 둘러보던 취재진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올린 순간이 있었다. 그의 작업실 문을 열었을 때다. 압구정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통창, 바닥부터 벽까지 가득한 물감 자국, 여기저기 널려 있는 화구들, 그리고 방 가운데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은 커다란 이젤과 그 위에 얹혀진 한 폭의 그림….
노(老) 예술가의 열정과 낭만, 그리고 여유로움이 한 장면으로 뇌리에 와 박혔다. 취재진의 탄성에 박해룡은 멋쩍은 듯 계속 “아이 참, 거보라니까. 내가 볼 거 없고 지저분하다고 했죠?”라며 민망해했다.
그는 이곳에서 매일 새벽 4시간씩 유화 작업에 집중한다. 아무리 중요한 약속도 아침 그림 작업 시간을 피해 잡는다. 그에게 그림은 ‘늦게 이룬 꿈’인 만큼, 나이가 들수록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최우선 순위다.
그리면 그릴수록 실력이 늘어요. 그러니 매일 붓을 드는 게 즐겁죠. 젊은 시절엔 해야 할 일을 했고, 이제야 내가 하고픈 일을 합니다. 늦은 만큼 소중하고, 그래서 놓을 수가 없어요.
이 부지런한 화가의 작품은 빠르게 쌓였다. 30대부터 모아온 그림까지 더해지자 그림을 보관할 공간이 필요했다. 장소를 물색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곳이 경기도 여주였다. 인근 양평과 이천에는 미술관이 여러 곳인데 여주엔 이렇다 할 현대 미술관이 없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단순히 제가 소장한 그림을 보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과 젊은 작가들이 함께 이용할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미술관이 하나도 없던 여주에 제대로 된 미술관을 지어 사회에 환원하자 싶었습니다.

여주미술관 마당 한편에는 황소를 탄 돈키호테 조각상이 서 있다. 돈키호테는 박해룡 회장이 가장 좋아하는 문학 속 인물이다. 장진영 기자
그렇게 사재 100억원을 쏟아부었다. 특히 정원에 꾸미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미술관 설계는 건축가인 친동생 박길룡 국민대 명예교수에게 맡겼지만, 정원은 박해룡이 직접 챙겼다. 3000평 대지에 심을 나무를 박해룡이 직접 하나하나 골랐고 100년 된 탱자나무도 직접 구해왔다. 그리고 그가 특별 주문 제작한 돈키호테 조각상도 하나 세웠다.
난 문학 작품 속 인물 중에 돈키호테를 가장 좋아해요. 엉뚱하지만 정직하고, 때로는 무모할 만큼 밀고 나가는 모습이 어쩐지 나랑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거든.
그렇게 여주미술관은 2019년 문을 열었다. ‘볼집 아이’로 태어나 약장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일흔이 넘어 다시 붓 든 박해룡의 지치지 않는 꿈은 이 미술관 마당의 돈키호테처럼 여전히 힘차게 달리고 있다.
아내에겐 기꺼이 졌다…회장님의 ‘사랑법’
인터뷰 내내 여유 넘치고 온화한 태도를 잃지 않던 박해룡이 딱 한 번, 공허한 표정을 보인 순간이 있었다. 6년 전 심장 문제로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였다.
그가 보여준 사진 한 장. 그 안에서 박해룡은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고 있었다.
아내가 곤돌라를 한 번 타보더니 다음 날 또 타자는 거야. 그렇게 타고 또 타고. 여행하는 동안 곤돌라를 다섯 번 탔어요. 세상에 이런 마누라가 어디 있어요?
아내를 타박하는 듯한 그 말 속엔, 아내가 하자는 대로 다 들어주는 남편 박해룡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박해룡은 결혼 생활 내내 아내 앞에서 자기 뜻을 내세운 적이 없었다. 회사에선 지고는 못하는 승부사였지만, 집에선 그저 아내가 하자는 대로 따르는 남편이었다.
아내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잖아. ‘그래, 당신 말이 옳아’ 하면 싸울 일이 없다니까.

여행 내내 두 사람을 다섯 번이나 태운 ‘문제의 곤돌라’. 박해룡 회장은 아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려고 곤돌라를 거듭 탔다고 했다. 사진 박해룡
그런 아내가 떠난 뒤, 박해룡은 상실감에 시달렸다. 평생 종교와 거리를 두고 살았던 그가 성당을 찾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예닐곱 명의 또래 친구도 새로 사귀었다. 미사가 끝나면 함께 밥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눈다. 아내를 떠나보낸 뒤 적막했던 그의 일상도 사람들의 온기로 다시 채워지기 시작했다.
박해룡이 챙기는 소중한 커뮤니티는 또 있다. 일곱 살 때부터 알고 지낸 80년지기 친구 모임이다. 박해룡은 요즘도 일주일에 네댓 번씩 그들을 만나 함께 설렁탕을 먹는다.
친구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 잡담해도 좋고, 아무 소리를 안 해도 만나면 행복해
그에게 긴 삶을 살아오며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답은 망설임 없이 나왔다.
사랑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이기려 하지 말고 늘 아끼고 챙기세요.
1만5000원 셔츠 기워 입는다, 그가 말하는 진짜 ‘멋’
인터뷰에 나온 박해룡의 옷차림은 정갈했다. 셔츠와 바지의 색을 조화롭게 맞춘 데다 모자까지 곁들였다. 화가답게 색에 대한 감각이 남달라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 셔츠 깃 한쪽이 조금 달랐다. 해진 부분에 천을 덧대 기운 흔적이었다. ‘비싼 명품에 추억까지 어린 물건이라 버리지 못하고 고쳐 입은 것이려니’ 지레짐작했다. 취재진의 눈길이 셔츠 깃에 머문 걸 느낀 박해룡이 먼저 사연을 털어놨다.
난 옷은 멋있게 입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싼 걸 입을 필요는 없지. 이건 1만5000원 주고 산 건데 내가 이렇게 기웠더니 감쪽같고 멋있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색깔 맞춰 입으니까 산뜻하잖아요. 이렇게 입는 게 다 능력이라니까. 하하.
그는 아직 충분히 입을 만한 옷을 버릴 이유가 없다고 했다. 값비싼 명품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멋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가진 것을 자기 방식대로 활용하는 감각, 예술가 박해룡이 말하는 진정한 멋이었다.

박해룡 회장이 천을 덧대 기운 셔츠 깃을 보여주고 있다. 곱게 개어 놓은 바지에도 작업 중 묻은 물감 자국이 가득하다. 선희연 기자
진정성을 중시하는 그의 기준은 삶의 마지막에 대한 계획에도 이어졌다. 박해룡은 죽음에 대한 언급을 꺼리거나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
나는 죽으면 바로 화장하고,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말라고 했어.
이미 세상을 떠난 자신을 위해, 산 사람들이 먼 길을 오가고 슬퍼하는 것이 오히려 폐가 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죽은 뒤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보다 살아 있을 때 만나 함께 즐기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조금 특별한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아흔일곱 또는 아흔여덟까지 건강하다면 여주미술관에 친구들을 불러 성대한 파티를 여는 것이다.
‘생전 장례식’이니 뭐니, 거창하게 이름 붙일 것도 없어. 그냥 오랜만에 다들 얼굴 보고 웃는 파티지 뭐. 그때까지 건강하면 멋있게 한번 해야지.
죽은 뒤 작별은 짧게, 살아 있는 동안의 만남은 마음껏, 마지막에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바탕 웃고 떠나는 것. 박해룡이 꿈꾸는 진정성 있는 마무리였다.

중앙일보 발행 일시2026.07.27 에디터 선희연 김서원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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