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취가 알려주는 병
[센트&스토리] (9)
영국의 전직 간호사인 조이 밀른이 파킨슨병 환자의 옷에 밴 체취를 맡는 모습. /조선일보DB
영국 간호사 조이 밀른은 후각이 유난히 예민했다. 그는 남편에게서 이전과는 다른 냄새가 나는 것을 감지했다. 10여년 뒤 남편은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어느 날 파킨슨병 환자 모임에 참석한 밀른은 그곳의 환자 대부분에게서 남편과 똑같은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맨체스터 대학 연구진은 파킨슨병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티셔츠를 섞어 밀른에게 맡겼다. 그는 티셔츠에서 나는 냄새만으로 환자들을 거의 완벽하게 구별해냈다. 더 놀라운 것은 환자가 아니었지만 밀른이 “파킨슨병 냄새가 난다”고 지목했던 사람이 몇 년 뒤 실제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는 점이다. 연구 결과 원인은 피부 피지의 변화였다. 파킨슨병 환자는 피지 성분 구성이 달라지며 특정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증가했고, 이것이 특유의 체취를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병이 생기면 냄새로 신호를 보낸다. 병원에서는 오래전부터 냄새가 진단의 단서였다. 혈액 검사 장비도, 자기공명영상(MRI)도 없던 시대 의사들은 환자의 구취와 체취, 상처에서 나는 냄새까지 확인했다.
당뇨 환자에게서는 달콤한 네일 리무버 같은 냄새가 났다. 당뇨 환자의 호흡에서 나는 이 냄새는 케톤체 때문이다. 혈당 조절이 무너지며 지방이 분해될 때 생기는 아세톤 성분이 호흡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간질환 환자에게서는 곰팡이와 유황이 뒤섞인 듯한 구취가 풍겼다. 간이 독성 물질을 충분히 해독하지 못하면 황화합물이 혈액과 폐를 통해 배출되기 때문이다. 신부전 환자에게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드레싱실에서 오래 근무한 간호사들은 “균마다 냄새가 다르다”고 말한다. 감염된 상처에서는 특정 세균이 만들어내는 VOCs 때문에 각각 다른 냄새가 난다. 난치성 감염 및 패혈증을 유발하는 녹농균에 감염된 상처에서는 포도처럼 달콤하고 과일 같은 냄새가 난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암과 알츠하이머 같은 질환을 냄새로 조기에 발견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폐암 환자의 호흡, 피부암 조직, 알츠하이머 환자의 체액 속 특정 VOCs 패턴을 인공지능(AI)과 전자코(e-nose) 기술로 분석하려는 시도들이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후각을 가진 개가 암 환자를 구별해 낸다는 연구 역시 같은 흐름 속에 있다.
우리는 흔히 냄새를 감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냄새는 생존의 감각이기도 하다. 몸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이상 신호를 가장 먼저 밖으로 드러내는 언어인 셈이다. 우리가 그 냄새의 언어를 잊고 살아왔을 뿐이다.
오하니 조향사 조선일보 입력 202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