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식

흉선암 이긴 의사의 5:5 식단 돌연 수족냉증, 암 신호였다…

해암도 2026. 2. 16. 06:42

2013년 4월의 햇살은 따스했지만, 외과 전문의 김병천 교수의 손끝은 기이할 정도로 서늘했다. 평소 아내와 손을 잡을 때마다 “난로처럼 따뜻하다”는 말을 듣던 그였다.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마네킹의 의수’를 이식한 듯한 이질적인 차가움이었다. 수만 명의 암세포를 도려내온 베테랑 의사의 직감이 머릿속에서 경보를 울렸다.

검사 결과는 잔혹했다. 가슴 속 흉선에서 발견된 7㎝의 거대 종양. 5년 생존율이 40%도 안 되는 흉선암 3기였다. 더 기막힌 현실은 그의 동료이자 아내 역시 유방암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의사 부부의 거실은 순식간에 암 환자 둘의 병실이 되었다.

 아내가 먼저 암에 걸렸을 때 이미 한 차례 무너졌던 덕분일까요. 제가 암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땐 오히려 덤덤하더군요. 그때부터 우리는 생존 전략을 공유하는 ‘투병 전우’가 되었죠. 


2013년 유방암 투병 중이던 아내 이은희 녹십자진단검사센터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왼쪽)와 김병천 교수가 함께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찍은 사진. 부부는 현재 모두 건강한 상태다. 사진 김병천 교수 제공



의사에게 암은 ‘아는 게 병’이었다. 논문을 뒤질수록 냉정한 통계 수치가 숨통을 조여왔다. “다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위로는 전문의인 그에게 공허한 소음에 불과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를 살린 것 역시 의사로서의 경험이었다.

김 교수는 결심했다. 교과서에 갇힌 통계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암세포가 가장 혐오하는 환경을 제 몸속에 구축하기로.

가슴을 절개하는 대수술을 마친 직후, 운전대를 잡을 기력조차 없는 몸을 이끌고 그는 운동장으로 기어 나갔다. 의사로서의 지식, 아내를 병간호하며 얻은 경험, 그리고 자신의 몸을 생체 실험실 삼아 증명해낸 ‘새로운 항암 로드맵’을 만들었다.

뉴스페어링에선 암을 이긴 의사 김병천(65) 한림대강남성심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가 직접 만든 ‘5:5 식단 원칙’부터, 항암 10년이 지나도록 재발 없이 건강을 유지하게 한 운동법까지 모두 공개한다. ‘저염식만 먹어야 한다’ ‘수술 후엔 걷기가 최고다’ 등 암환자들의 고정관념에 대해 의사이자 암 생존자로서 명쾌한 해답을 내놨다.

[인터뷰 목차] 
📌부부가 매일 먹은 음식 두가지
📌불량음식 먹었다면, ‘5:5 원칙’
📌불가능은 없다 ‘기적의 생존 운동’
📌암세포가 가장 싫어하는 환경
📌의사도 혹했다, 가짜뉴스 정체
📌암 부부 지켜낸 돌봄 원칙

※다음은 방송 전문 스크립트입니다.

🎤진행 : 정세희 기자
🎤답변 : 김병천 한림대강남성심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손발이 찬 건 흔한 일인데요. 심상치 않음을 느끼셨나요? 
원래 손이 따뜻한 사람이었는 데다, 계절적으로 춥지도 않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외부 요인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몸의 면역 체계가 무너졌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느꼈죠. 당시 제 나이가 암 발생 빈도가 급증하는 50대 초반이었기에, ‘면역 체계 이상이 암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미쳤죠. 만약 수족냉증을 단순한 컨디션 난조로 무시했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지도 몰라요.


김병천 교수가 흉선암 수술을 마쳤을 때의 모습. 사진 김병천 교수 제공



그래서 바로 정밀 검사를 받으신 건가요?
네. 처음에는 위나 대장, 췌장 쪽을 의심하고 복부 CT를 찍었어요. 그러다가 흉부까지 범위를 넓혔는데 상부 쪽에서 생각지도 못한 혹이 발견된 겁니다. 막상 결과를 마주하니 충격이 컸습니다. 영상의학과 동료 교수가 덤덤하게 “암입니다. 수술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데, 그 한마디가 참 섭섭하더군요.

항암 치료 중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항암제가 몸에 들어가면 입안부터 식도까지 모든 점막이 헐어버립니다. 목구멍에 뜨거운 불덩이를 집어넣은 것 같은 고통이 24시간 계속되더라고요. 먹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됐어요. 의사인 저조차 ‘굶어서 죽겠구나’ 싶었어요. 절망의 끝에서 다시 숟가락을 들었어요. 암과의 싸움은 결국 기력 싸움이고, 그 기력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결정된다는 걸 아내의 항암 치료를 지켜보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암 환자 부부가 매일 먹은 음식 두 가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식단을 하셨어요? 암 환자가 피해야 할 음식이 많잖아요.
흔히들 고기는 먹으면 안 된다 하는데 고기를 완전히 끊으면 환자의 몸이 무너집니다. 짠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몸의 염분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무염식은 좋지 않아요. 결국 ‘어떻게 먹느냐’가 핵심입니다. 저는 ‘5:5 원칙’을 세웠습니다.

기름진 음식이나 맵고 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피하는 게 좋죠. 하지만 암 환자도 사람인데 평생 풀만 먹고 살 순 없어요. 가끔은 기름진 고기도 당기고 달콤한 디저트도 먹고 싶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가 만든 기준이 ‘반반 원칙’입니다. 만약 오늘 내 입에 즐거운 구운 삼겹살을 먹었다면, 반드시 그만큼 암세포가 싫어하는 채소와 과일을 먹어서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는 겁니다.

옛날에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 말을 떠올리면 식단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있어요. 암세포들도 영양 공급을 받아야 자라거든요. 이를 죽이려면 단순해요. 암세포가 좋아할 만한 음식 공급을 끊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음식을 먹을 때도 ‘암세포가 싫어하는 게 뭘까’ 이렇게 생각하고 먹어요. 반대로 내 입맛에 좋은 것, 달콤하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암세포가 좋아하겠구나’ 생각하죠.

고기 섭취는 어떻게 하셨어요?  
근 손실을 막고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단백질 섭취는 필요해요. 다만 고기를 구우면 기름 성분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아요. 또 보통은 소고기가 제일 비싸니까 좋다고 하는데 포화지방이 많아 권하지 않습니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오리고기나 닭고기, 그다음에 돼지고기, 소고기 순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챙겨 먹은 음식이 있다면서요? 
바로 카레입니다. 강황 속에 있는 커큐민은 항염 작용이 뛰어나고 암세포의 전이와 증식을 억제하는 데 탁월해요. 중요한 건 카레의 ‘그릇’ 역할입니다. 항암 중에는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하는데, 생채소는 소화가 안 되고 양도 많이 먹기 힘듭니다. 그런데 카레로 만들면 브로콜리, 당근, 양파, 버섯 같은 항암 채소들을 한데 모아 푹 익혀서 아주 부드럽게 넘길 수 있어요.


카레 속 강황의 커큐민은 항염 성분이 뛰어나다. 중앙포토


김병천 교수가 지금도 즐겨 먹는다는 고수. 중앙포토



또 있어요. 고수인데요. 사실 저는 원래 고수를 안 좋아했어요. 암과 마주하고 나니 입맛보다 중요한 게 ‘생존’이더군요. 고수가 의학적으로 체내 중금속을 배출하고 염증을 억제하는 데 강력하다는 걸 알고 먹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재료 중 하나입니다.

간병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치료

암 환자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여야 할까. 김병천 교수는 단호하게 말한다. “가족이 없었다면 나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의학적 지식이 아무리 해박한 의사라도, 항암이라는 외로운 싸움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힘은 사람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긍정의 말은 지식보다 힘이 세다
“힘들어하고 있는 환자에게 ‘힘내’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독이 되면 어쩌나 고민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순간적으로는 가족들의 위로가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긍정적인 위로, 감정적인 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인 방법 함께 찾기
김 교수가 항암 치료 중 70㎏에서 50㎏대로 체중이 급감하며 걷기조차 힘들었을 때, 이미 항암을 겪었던 아내는 무조건 “먹으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영양제 주사나 수액 치료를 병행하자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직접 야채를 듬뿍 넣은 카레를 추천한 것도 아내였다.

🧡환자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기
김 교수는 “암 환자라고 해서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해 제쳐놓지 말라”고 조언한다. 가족들이 환자를 평소와 다름없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할 때, 환자는 비로소 암과 싸우는 고립감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할 용기를 얻는다.

불가능은 없다 ‘기적의 생존 운동’

테니스 채를 들고 있는 김병천 교수. 2019년부터 한국의사테니스연맹 회장을 맡고 있다. 사진 김병천 교수 제공



수술 한 달 뒤에 바로 운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수술 후 한 달쯤 지나자 힘이 생겼어요. 바로 테니스장을 찾았죠. 게임은 할 수 없었지만 바구니 가득 담긴 공을 홀로 치는 연습을 했어요. 제가 너무 숨차고 힘들어 보이니 옆에 있는 사람들이 불안해했죠.

현실적으로 가능한 걸까요? 평소 운동을 하셔서 괜찮았던 게 아닐까요?
아니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시 흉골 절제술을 하고 철사줄로 수술 부위를 묶어놓은 상태였어요. 사실상 골절돼 있는 상태였죠. 수술하고 한 열흘 후 강의를 하러 운전을 하는데 핸들을 돌릴 힘이 없어서 좌회전, 우회전도 못 했어요. 하지만 어느 정도 회복이 됐다면 누구나 운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된 항암 치료가 끝났다면 휴식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요?
많은 분이 수술이 끝나면 암과의 싸움도 끝났다고 생각하시죠. 하지만 암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고, 또 다른 암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일상 속의 스트레스, 공기, 음식 등 암 유발 요인은 널려 있으니까요. 결국 몸을 지켜주는 건 내 몸의 ‘면역 기능’인데, 잘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운동입니다.


김병천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는 모습. 뉴스페어링



환자 몸으로 운동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나 해야 하나요?
‘열심히’ 해야 합니다. 보통 하루에 1만 보, 2만 보씩 걸었다며 뿌듯해하시는데, 사실 무작정 오래 걷는 건 몸에 무리만 줄 뿐 큰 도움이 안 됩니다. 일주일에 최소 3번 이상, 한 번을 하더라도 심박수가 치솟고 땀이 날 정도의 중등도 이상 운동하는 게 좋아요.

테니스 외에 따로 챙겨 하신 운동이 또 있으셨나요?
산은 자연의 생명력을 수혈받는 곳이었어요. 암에 걸리기 전에는 산에 오르면 무조건 정상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중요한 건 정상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흘리는 ‘땀’이었어요.

왜 내가 암에 걸렸을까, 원인을 짚어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술을 많이 마시는 편도 아니었고 담배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선 만성적인 과로와 스트레스인 것 같아요. 전공의 시절부터 2~3일간 한잠도 못 자는 건 예삿일이었고, 밤새 당직을 서고도 다음 날 아침 8시면 어김없이 수술대에 서야 했죠. 그런 극한의 생활이 수십 년간 반복되었습니다. 물론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하진 않아요. 다만 암을 겪고 나서 ‘내 몸이 그동안 나에게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구나’ 알게 된 거죠.

환자가 돼보니 보이는 것들 
인터넷에 떠도는 ‘기적의 약초’나 ‘특수 식품’ 같은 말에 혹해본 적 있으신가요?
제 아내가 유방암으로 사투를 벌일 때였습니다. 병원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두고 간 쪽지와 얇은 책자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누군가가 이 식품을 먹고 기적처럼 나았다’ 이런 사례가 빼곡했어요. 저도 흔들렸어요. 이성적으로는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본능이 생기더라고요.

의사조차 흔들릴 정도였다니 그만큼 간절하셨던 거군요. 
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일반 환자나 가족들은 오죽할까.’ 그래서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 치료 사례들은 의학적으로 검증된 데이터가 아녜요. 암을 이기는 기적은 검증되지 않은 약초가 아니라, 현대의학의 충실한 치료와 여러분의 일상적인 습관입니다.

암 환자가 돼보니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암 환자가 되기 전에는 이성적이고 딱딱한 의사였죠.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책에서 배운 대로 “이건 찌르는 통증, 이건 비트는 통증”이라고 분류했죠. 수술 결과가 나오면 가장 우려되는 것부터 알려줬어요. 환자가 받을 충격보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먼저 본 거죠.


지금은 암이라는 사실을 전할 때 어떻게 말씀하시나요?
이제는 말을 아주 많이, 그리고 길게 합니다. 환자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벌어주는 거죠. 예를 들어 “내시경을 보니 혹이 좀 있는데, 조직 검사 결과 일부에서 암세포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뿌리가 깊지 않을 수 있고, 지금은 수술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상태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식이죠. 결론은 같아도 과정이 다릅니다. 환자들은 나쁜 말만 기억하거든요. 그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도 의사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암에 걸리기 전보다, 암을 겪고 난 지금의 내가 더 행복하다?” O, X로 답한다면요?
답은 ‘O’입니다. 암이라는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얻은 게 많아요. 오십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나를 돌아볼 시간이 단 1초도 없었는데, 암은 제게 인생을 돌아보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지 고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재미있는 변화도 있어요. 전에는 술을 거절하기 참 힘들었는데, 이제는 제가 암 환자였다는 걸 아니까 주변에서 알아서 술을 권하지 않아요. 저를 힘들게 하는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된 거죠. 무엇보다 인생의 바닥까지 내려갔다 온 경험은 제게 엄청난 정신적 면역력을 줬습니다. 이제는 웬만한 충격이 와도 쓰러지지 않을 자신감이 생겼어요. 일종의 ‘다시 태어난 기분’이랄까요. 물론 암에 걸리는 것을 추천하진 않지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거나, 암을 두려워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제 암은 3명 중 1명이 걸릴 정도로 흔한 병입니다. 내가 안 걸린다는 보장은 없지만, 반대로 현대의학의 치료율도 놀라울 만큼 좋아졌습니다. 암에 걸렸다고 해서 ‘곧 죽을 사람’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격리하지 마세요. 긍정적인 생각은 수치보다 힘이 셉니다. 직장이 있다면 출근하고, 모임이 있다면 나가서 웃으세요. 치료될 수 있다고 믿고 일상으로 복귀하세요.


에디터   정세희   홍성현  중앙일보   발행 일시202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