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
그간 찍은 사진이 100만여장에 달한다. 일본에서는 일본 정부에서 쉬쉬해 온 ‘미나마타병(수은중독병)’의 실체를 사진으로 알렸고, 한국에서는 1960년대 이후 격동의 현대사를 가감 없이 담아냈으며, 베트남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실감나게 포착해냈다. 그의 고향인 시마네(島根)현 쓰와노(津和野)에 있는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미술관’에서는 그의 사진을 상설전시한다.
지난 11월 22일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이 열리는 경기도 안양의 ‘A-one’ 갤러리에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 사진을 찬찬히 감상했다. 전시 주제는 ‘격동의 한국’. 1964~1980년대 초반의 사진 33점이 전시돼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장례식 행렬을 보기 위해 서울 남대문에 모인 수만 명의 시민들, 베트남 파병을 떠나는 아들을 붙잡고 우는 어머니, 고려대 정문 앞 반일(反日)집회 현장, 미군 기지촌의 한국 여성,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부산, 서울 청계천변의 판자촌 아이들, 젖가슴을 다 드러내고 일하는 아낙…. 선명한 흑백 사진은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을 웅변하고 있었다. 어떤 사진은 역동감이 넘쳤고, 또 어떤 사진은 가슴 한편을 아리게 했다. 군중 누군가의 표정에 역사를 실어 찍은 그의 사진들은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는 듯했다.
약속 시간에 정확하게 나타난 구와바라 시세이는 한국어로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작은 체구였지만 강렬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노장 사진가는 이마에 주름이 깊었다. 걸음걸이가 약간 부자연스러웠다. 50여년간 사건 현장을 누비면서 10㎏이 넘는 사진 장비를 어깨에 메고 다니느라 척추가 휘었다고 했다. 그의 부인은 한국인이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래 가지고” “안 돼요”라며 한국어를 간간이 섞어서 말했다.
그에게 먼저 카메라 보디에 대해 물었다. “니콘 d3 기종을 쓰고 있다. 그동안 쓴 카메라가 50대가 넘는다. 새로운 기종이 나오면 쓰다가 팔기도 하고, 남한테 주기도 했다. 나는 수동 카메라 느낌이 좋다. 디지털카메라로 바꾼 건 2007년이다. 1958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니 50년 동안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다. 지금도 필름 카메라로 인화한 느낌이 좋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후 암실에 들어가서 옛날 방식으로 인화한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프린트하면 이런 느낌이 나지 않는다.”

- ▲ 서울 청계천변. 1965
구와바라는 1964년 8월, ‘아리랑’ 잡지 초청으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대학교 1학년 때 한국인 친구로부터 ‘아리랑’을 듣고 한국에 매료된 지 8년 만이었다. 그가 한국을 찍기 시작한 1964년부터 한국은 격동의 역사였다.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한국을 찾았고, 한·일협정 반대시위, 베트남 파병, 미군 기지촌, 농어촌 풍경, 민주화운동, 북한의 모습 등이 그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해에는 박근혜 후보자와 문재인 후보자의 대통령 선거 유세 현장을 따라다니면서 500장 넘게 찍었다. 50년간 찍은 한국 사진은 10만장에 달한다. 그는 “기록 사진가에게 한국은 과분할 만큼 매력적인 소재들로 가득 채워진 곳”이라고 말했다. “한 개인에게 한국은 인정과 의리가 있고, 술과 음식이 맛있는 나라”라고 덧붙였다.
그는 목숨 걸고 사진을 찍는다. 미나마타병 환자를 찍을 때에도, 한국의 시위 현장을 찍을 때에도 그랬다. 그와 함께 ‘미나마타 사진가’로 알려진 미국의 유진 스미스는 수은 폐수를 흘려 보낸 공장 직원들에게 맞아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한국 시위현장에서 그는 시위대와 진압대가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한가운데로 뛰쳐들어가 사진을 찍고 도망쳤다. 뒤따라오는 진압대에게 필름을 압수당한 적도 있고, 경찰 조사도 여러 번 받았다.
그는 주섬주섬 펜을 꺼내더니 종이 위에 ‘記錄=歷史(기록=역사)’라고 썼다. 그리고 “나는 죽어도 역사는 남는다”라고 결연하게 말했다.
“아름답고 예쁜 것은 다시 찍을 수 있지만 역사의 한순간은 다시 찍을 수 없다. 한 아이의 중학교 입학식도 역사다. 평생 단 한 번뿐인 사건. 사진은 기록이다. 역사를 찍어야 한다.”
그에게 언제까지 현장을 누빌 것인지 물었다. “80까지만 사진을 찍고, 그 다음에는 현역에서 떠나고 싶다. 80부터는 그동안 찍은 100만장의 사진을 정리해야 한다. 찍어둔 필름이 3만개 정도 된다. 수십 개의 박스에 담겨 있다. 살아생전 정리를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웃음) 다시 태어난다면 사진을 안 할 거다. 절대. 경제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80세까지 3년간 뭘 찍고 싶으냐고? 모른다. 저널리스트는 사건이 발생하면 그때 출동하니까.”
구와바라 시세이의 이번 한국 전시는 4년 만으로, A-one 갤러리 관장이자 계원예술대 객원교수인 마틴리(본명 이용하)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마틴리는 고엽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찍어온 사진가다. A-one 외에도 인천의 ‘사진공간 배다리’(관장 이상봉)에서 합동 전시한다. 전시는 11월 20일부터 12월 19일까지 3주간 이어진다.


- ▲ 이승만 전 대통령 장례식 행렬. 서울 남대문. 1965

- ▲ 달동네 주민. 부산. 1964

- ▲ 어머니와 면회 중인 파월병사. 서울 여의도비행장. 1965

- ▲ 경찰에 쫓기는 반일데모 대학생들. 서울 신촌. 1965

- ▲ 베트남에서 전사한 아들이 잠든 묘지 앞에서 통곡하는 어머니. 서울 동작동. 1965

- ▲ 미군 기지촌 앞. 경기도 동두천. 19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