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루게릭이 찾아왔다
2화. 어느 날 루게릭이 왔다
루게릭병 환우 신은정씨가 지난 5일 경기도 안양시 자택에서 12년 지기 '평심이' 엄마들과 만나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이날 '(친구들 방문 덕에) 생기가 돌고 환자임을 잊게 된다'고 했다. 아이 친구 엄마에서 친구가 된 이들은 아픈 은정씨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돕고 있다. (왼쪽부터) 유영화·권재원·신은정·김미경·이종은씨. 전민규 기자
# 2015년 11월
언젠가부터 왼쪽 다리에 힘이 빠져 절뚝거렸다. 통증도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평소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으니까. 그것보다 초등 2학년생 아들과 네 살 딸, 직장 일을 챙기는 게 우선이었다. 하루 3~4시간밖에 못 자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친정엄마가 등 떠밀어 3개월 만에 대학병원을 찾았다. 정형외과, 척추센터, 신경과로 옮겨다니며 계속 검사만 했다. 웬일인지 병명을 못 찾았다. ‘아픈 곳도 없는데 왜 이리 유난이지?’ 그러다 신경과 근전도검사에서 진단이 나왔다. 루게릭병.
‘꿈인가….’
그렇게 어느 날 루게릭이 찾아왔다.
‘10만 명에 한두 명 걸린다는 병에 내가?’ 병원 문을 나서는데 가을 하늘이 어찌나 맑고 푸른지, 단풍은 또 얼마나 붉고 고운지. 그 아름다움이 설움이 되어 마음에 박혔다.
운동신경세포만 사멸하는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은 치료법과 치료제가 없는 병이다. 생존 기간은 보통 2~3년. 하지만 루게릭병 환자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중이다.
투병 나이로 열 살을 맞이한 신은정(52)씨처럼. 은정씨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호흡을 위한 기도 절개 후 ‘묵언수행’ 중이다. 인터뷰는 지난해 7월과 올해 1~2월 안구마우스와 메신저를 통해, 그리고 지난 5일 경기도 안양시 은정씨 자택에서 이뤄졌다.
안구마우스는 모니터 아래에 달린 센서가 눈동자를 인식해 눈동자가 가는 방향으로 마우스 커서가 움직인다. ‘ㄱ’을 치고 싶을 때 화면 속 자판에서 커서를 ㄱ에 고정한 뒤 눈을 깜박이면 클릭이 돼 ㄱ이 써진다. 숙달된 은정씨는 한 글자 쓰는 데 5초 정도 걸린다. 이렇게 보내온 그녀의 답변과 표현을 최대한 그대로 살렸다.
기도 절개로 말을 못 하는 루게릭병 환우 신은정씨의 눈과 입이 되어주는 안구마우스. 침대 위에 달린 모니터 속 자판과 안구 인식 센서로 글자를 쓴다. 전민규 기자
# 2025년 2월
그녀는 움직이지 못한다. 눈과 일부 얼굴 근육, 오른 손가락 근육만 남아있다.
병은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힘 빠지는 증상이 왼 다리에서 오른 다리로 퍼져 5년 만에 휠체어가 아니면 이동할 수 없게 됐다. 팔에도 증상이 나타났다. 밥숟가락을 떨어뜨리는 일이 잦아지자 어린 시절 이불에서 노란 지도를 발견했을 때처럼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음식을 씹거나 삼킬 수도 없게 돼 위에 구멍을 내고 고무관을 꽂았다. 관으로 주입하는 물과 적당히 데운 액체 경관식이 배부름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식사다.
마라탕, 탕후루 맛이 제일 궁금해요.
혼자 호흡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위루술(위에 구멍을 내 관을 삽입하는 수술)은 별일도 아니게 느껴졌다. 기도를 절개해 인공호흡기로 숨 쉬며 24시간 식물인간처럼 누워 지낸 지 4년. 말을 전혀 못 하지만 그나마 안구마우스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게 고마울 뿐이다. 이걸로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하고, 영화·오디오북·인터넷 강의도 본다. 은정씨의 눈과 입인 셈이다. 다만 60㎝ 거리에서 눈을 계속 부릅뜨고 있어야 해 눈이 아주 아프고 시리다.
# ‘엄마, 죽지 마’
아이들이 어릴 때는 루게릭병을 앓았던 스티븐 호킹 전기를 읽어주며 엄마도 같은 병이라고 말해줬다.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을 드나들면서도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 했다. 휠체어를 타고 패럴림픽을 보러 가고, 다른 루게릭병 환우 가족도 만났다.
발병 전 신은정씨가 어린 딸과 사진을 찍었다. 발병 당시 네 살이던 딸은 이제 중학생이 됐다. 전민규 기자.
다행히 아이들은 담담하게 엄마의 병을 받아들인 듯하다. 종종 친구를 데려와 엄마를 소개하고, 안구마우스도 보여준다. 하지만 가끔 기침 등으로 괴로워할 때 고등학생 아들이 ‘엄마, 죽지 마’ 하면 가슴이 철렁한다.
“예전처럼 움직일 수 있다면 남편과 아이들에게 맛있는 집밥을 차려주고 싶다”는 은정씨. “영화 ‘올드보이’에서처럼 어딘가 갇혀 평생 가족들 밥만 해도 행복할 것 같다”는 그녀의 말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 한겨울에도 식은땀…아이 폭식 보고 좌절감 극복
처음에는 대소변도 누군가 받아줘야 하는 신체의 무력함이 가장 힘들게 다가왔다. 생존의 모멸감을 느꼈다. 몸이 굳으니 누군가 계속 주물러주거나 움직여줘야 한다. 누워서 한 자세로 있으니 답답하고, 한겨울에도 식은땀이 났다. 육체적 고통은 시간이 지나자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적응이 됐다. 가족들을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은 투병 10년 차인데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는 건 가혹한 일이다.
발병 초기에는 종일 멍했다. 정신 나간 사람 같았다. 잠도 잘 못 잤다. 꿈 같다가도 현실이구나 싶으면 울고 있는 날들이 한동안 계속됐다. 그러다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생겼다. 늘 장난치고 웃던 엄마가 이상하고 불안해 보였는지 초등학생 아들이 폭식을 하기 시작했다. 반찬도 먹지 않고 밥만 계속 입에 넣는 아이를 보며 은정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울고 있을 새가 없구나.’ 그 후로는 하루를 한 달처럼 살자고 마음먹었다.
지금도 쓸모없다는 생각,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숨겨둔다. 고립감, 외로움, 우울함 역시 당장 숨을 못 쉴 수도 있는 현실 앞에서는 이제는 사치로 느껴진다. 그저 오늘 하루 잘 ‘살아있음’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은정씨가 안구마우스로 얘기를 건넸다.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눈치채시길요. 낙엽을 밟으며 걷는 것, 친구와 커피 한 잔 마시는 것,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누리고 싶은 일상이거든요.
루게릭병 환우의 평균 생존수명은 2~3년 정도지만 인공호흡기 사용으로 10년 이상 생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들이 살아가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머리 위 모니터를 보며 안구마우스로 글자를 쓰면 왼쪽 노트북에 나타난다. 눈에 무리를 주지 않으려고 박스로 형광등 불빛을 막아 놓았다. 오른쪽에는 인공호흡기, 왼쪽 아래에 가래 제거를 위한 기침유발기가 보인다. 전민규 기자
은정씨가 만든 하루 일과표
오른 손가락 근육이 남아 있어 필요한 것이 있거나 위급할 때 벨을 누른다. 전민규 기자
남편과 두 아이, 친정 부모님,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나눠준 시간이 모여 은정씨의 하루가 된다. 세수, 식사, 체위 변경, 스트레칭, 소독 등은 지원사가 맡는다. 친정어머니는 집안 살림, 아이들 케어를 거든다.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남편은 진료와 간병에 관한 전반적인 관리를 한다. 은정씨에게는 남편이 전담 의사 혹은 간호사다.
안구마우스를 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휴식할 때는 자주 잔다. 밤에는 11~12시에 자고 아침 7시에 일어난다. 요즘은 잘 자는 편이지만 예전에는 두 시간도 채 못 자고 계속 깼다. 수면제도 소용없다. 깰 때마다 체위 변경에, 석션(가래 제거)을 해야 하니 보호자도 못 잔다. 보호자는 짜증 내고, 환자는 죄인 같고. 환자와 가족들은 밤마다 잠과의 전쟁을 치른다.
24시간 내내 누군가 옆에서 은정씨를 돌봐야 한다. 가래를 제때 빼주지 못하거나 인공호흡기에 문제가 생기면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상황이 닥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은정씨는 정전이 가장 두렵다. 과거 두세 번 정전이 됐을 때 등골이 오싹했다고. 보조배터리가 있지만 복구가 빨리 되지 않으면 어려움이 많다.
루게릭병 환우 신은정씨가 직접 보내온 일과표.
# 천수관음 엄마들 ‘평심이’
루게릭병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어요. 침대형 휠체어에 누워 여행도 다니고, 안구마우스로 주식·경매를 하는 환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혼·자살로 가는 이도 많아요. 어느 얼굴로 살지는 환자와 가족의 선택이지만 사회와 국가, 이웃이 그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죠.
은정씨는 전자에 가깝다. 밝고 긍정적이다. 기자가 예민한 질문을 앞에 두고 조심스러워하면 ‘물거나 때리지 않을게요’라며 분위기를 풀어준다.
안구마우스로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준 신은정씨. 사진 카카오톡 캡처
어릴 때 화가, 빵집 사장, 개그맨, 가수 등 다양한 꿈을 꿨던 그녀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뒤 2001년 첫 직장인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입사했다. 10년 동안 문화재를 보존·관리하는 문화재보존과학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문화재 발굴 현장을 누볐다. 일하면서 일렉트릭 기타를 배워 사내 밴드부 창립 멤버로 공연에도 참여하는 등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루게릭병을 만나고 나서도 발병 초기에는 휠체어를 타고 직장생활을 계속했다.
“왠지 더 포기하기 싫은 마음이 들었던 건가요?”
“원래 열정적이었어요. 루게릭에도 변하지 않았을 뿐.”
어떻게 불치병에 걸린 이가 이토록 ‘나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 그 비법에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그녀는 안구마우스를 이용해 줌으로 글쓰기 강좌를 들으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씩씩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마음이었지만 글을 쓸수록 혼란스러운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문화재 보존과학 연구원으로 일하던 신은정씨는 발병 7년 후부터 글을 써 수필 ‘꽃을 든 천수관음’으로 등단했다. 동네 엄마들의 도움에 대한 고마움을 40개 팔을 가진 천수관음에 빗대어 표현한 글이다. 전민규 기자
그해 춘계 등단상에 당선되며 수필가로서 인생 2회차를 살고 있다. 당선작은 ‘꽃을 든 천수관음’. 글 일부를 옮긴다.
‘(중략)… 친정엄마가 새벽 기도 다니시는 우리 동네 절에는 천수관음상이 있다. 2m가 넘어 보이는 근엄한 체구는 온통 황금색으로 뒤덮여 있고, 그윽하면서도 냉철한 눈빛으로 아래를 응시하고 있다. 등 뒤에는 날개처럼 40개의 팔이 펼쳐져 있다.… (중략) 나의 손발이 되어 준 그들의 도움은 중생의 고난을 해결해 준다던 천수관음의 그것이었다. 그들이 내어준 수십 개의 팔은 날개처럼 한껏 펼쳐져 내 등 뒤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다.…(중략)’
글에 등장하는 ‘그들’은 아들이 초등 1학년생일 때 같은 반 엄마들로 병 진단 때나 입원 때도 늘 함께했다. 일명 ‘평심이’ 모임. 은정씨까지 14명이 12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은정씨는 평심이가 ‘평촌의 심장인 이들’을 뜻한다고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만남을 함께하고 보니 ‘평심(平心, 평온한 마음)을 주는 이들’이라는 의미를 보태도 좋을 듯했다.
# 5월의 산타, 장미꽃 13송이
‘레디액션’
은정씨의 노트북에서 또박또박한 여성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구마우스로 원하는 문구를 쓴 뒤 ‘듣기’를 누르면 음성으로 바뀐다. 은정씨의 재치가 담긴 활자 내용과 딱딱한 기계음 사이의 이질감이 묘했다.
지난 5일, 오랜만에 집에 활기가 돌았다. “우리는 인연을 넘어 운명”이라며 은정씨의 인터뷰와 촬영에 기꺼이 동참하겠다고 찾아온 평심이 엄마들 덕분이다. 왕언니이자 간호사로서 의료지식 지원을 맡은 유영화씨, 개그를 담당하는 권재원씨, 아이들을 돌봐주는 김미경씨, 이동과 검색 ‘5분 대기조’ 이종은씨다. 마치 어벤저스 같다.
이들이 은정씨 옆을 꽉 채우자 남편 신기영(51)씨는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각자 방에서 할 일을 한다. 은정씨는 눈동자를 바삐 움직이며 ‘컨트롤타워’가 됐다.
처음 은정씨 발병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나.
유영화(이하 유): 조금씩 소문이 퍼지고 난 뒤 엄마들끼리 모였다. 우선 병에 대해 꼭 필요한 지식을 공유했다. 은정씨가 못 움직이게 되면 수시로 가서 바깥 소식도 전해주고, 필요할 때 각자 도움을 주자 이렇게 의기투합했다.
권재원(이하 권): 처음에 현실감이 없었다. 병명이 주는 공포감이 있지 않나. 안타까움과 슬픔에 모두 오열을 한 거로 기억한다.
2019년 5월, 루게릭병 환우 신은정씨가 생일을 맞아 항상 곁에서 자신을 도와주는 동네 엄마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집마다 다니며 현관문에 붙여 놓은 장미꽃과 카드. 사진 신은정
‘내 핑계로 모여 술 마셨구먼.’
답변 사이를 비집고 울린 기계음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유쾌하게 시작한 인터뷰는 때로 울음바다가 됐다. 은정씨가 흘린 눈물을 닦아내느라 몇 번이나 인터뷰를 멈췄다.
어떻게 도움을 주나.
김미경(이하 김): 각자 다 다른데 저 같은 경우는 은정 언니가 하고 싶은데 움직일 수 없어서 못 하는 일들을 한다. 예를 들어 주방 도구에 포스트잇을 붙여 영상을 찍어 보여주면 언니가 ‘1번은 2번으로 옮겨, 3번은 중고나라에 팔아’ 그런 식으로 일러준다. 또 언니가 원래 육아 상담이나 역사 얘기도 많이 해줬다. 그걸 갚고 싶어 책을 더 열심히 읽어서 언니에게 얘기해 주고, 꽃꽂이 강사인 친구를 불러다 꽃 강의도 하고 초 만들기도 같이 하고 그랬다.
은정씨는 어떤 사람인가.
유: 유머가 많다. 몇 년 전 만우절 저녁에 단체 카톡으로 KBS ‘인간극장’에 출연하게 됐다면서 평심이들 다 같이 나오면 어떻겠냐는 거다. 다들 밥 먹다가 한 시간 동안 톡으로 회의하고 난리가 났다. 근데 ‘오늘 만우절이야’ 이러는 거다. 으휴(웃음). 그러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사람.
이종은(이하 이): 한마디로 우리의 정신적 지주.
만우절 얘기에 은정씨 눈이 초승달처럼 휘고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얼굴 근육이 남아 있기에 가능한 ‘활짝 웃는’ 표정이다.
평심이가 곁에 있어 은정씨는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 아이들을 미용실에 대신 데려가 주고, 예방주사 맞을 때 손도 대신 잡아줬다. 간식도 사다 주고, 장 보러 갈 때 필요한 게 없는지 챙겼다. 코로나19 때는 줌으로 은정씨 생일파티를 열어줬다. 이들 덕에 휠체어를 타고 동네 공원에 소풍도 가고, 아이들 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했다.
신은정씨가 지난 5일 동네 '평심이' 엄마들과 함께 인터뷰를 하던 중 눈물을 흘리자 유영화씨가 닦아주고 있다. 은정씨는 조금이라도 간병 일손을 덜기 위해 머리를 아주 짧게 잘랐다. 전민규 기자
또 기억에 남는 일은.
권: 발병하고 4년 후 언니가 움직일 수 있었을 때 휠체어를 타고 온 동네 아파트를 돌면서 평심이 집집이 현관문에 장미꽃과 카드를 붙여놨다. 본인 생일이었는데 ‘당신 덕분에. 오늘 네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제가 문 밖에 붙은 그 꽃을 보고 목놓아 울었다. 언니가 또 아무렇지 않은 척 단톡방에 ‘가까이 좀 살아라. 멀어서 죽을 뻔했다’며 농담 섞어 올린 글을 보고 너무 감동받고 힘을 얻었다. 꽃은 시들었지만 마음은 아직 향긋하다.
유: 중학생 제 딸이 그걸 보고 ‘엄마, 나는 이거 못 떼겠어. 엄마가 와서 떼야 할 것 같아’라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은정씨의 얼굴이 이번에는 빨개지며 일그러졌다. 은정씨 볼 양옆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주는 영화씨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2019년 5월 말, 은정씨는 “오늘은 내가 산타가 되려는데, 루돌프가 되어주시겠느냐”며 활동지원사에게 도움을 청했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친구들과 뭘 제일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몇 분 뒤 글자 하나가 떴다.
술
은정씨가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평심이 멤버들과 가볍게 한잔하며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고 친구들은 설명했다.
신은정씨의 시 '가로등이고 싶다'가 지난해 안양시 버스정류장 문학글판 공모에 당선돼 정류장에 걸렸다. 사진 신은정
은정씨 발병 이후 내 삶에서 달라진 게 있나.
유: 루게릭 환자가 밝게 지내기 쉽지 않다. 환자는 물론이고 옆에 있는 가족까지 많이 어둡고 힘들어한다. 은정씨가 위루관(위에 연결한 관), 호흡기를 다 달고서 저렇게 글을 쓰고, 상을 받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기적을 이뤘구나 싶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몸이 멀쩡한데도 뭘 하고 사는 거야.’ 더 열심히 노력하며 살도록 항상 나를 일깨워준다.
옆에서 보기에 환자와 가족에게 필요한 부분은.
김: 평심이 같은 존재가 환자 옆에 있어야 한다. 은정 언니는 워낙 성격이 긍정적이고 병을 주변에 많이 알리는 편이지만, 많은 루게릭병 환자가 부정적으로 바뀌거나 누워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폐쇄적으로 살며 관계를 단절한다. 환자로 보지 않고, 친밀하게 도와줄 수 있는 지인이 많아지는 환경이 되길 바란다.
‘어쭈 연습 많이 했네.’
은정씨의 눈 깜박임으로 진지했던 표정들에 일순간 웃음꽃이 피었다.
동
네 '평심이' 엄마들이 휠체어를 탄 신은정씨와 함께 소풍을 간 모습. 사진 신은정
신은정씨가 휠체어를 타고 동네 '평심이' 엄마들과 아이 졸업식에 참석했다. 사진 신은정
코로나19 시기 자주 만남을 갖지 못하자 줌으로 은정씨의 비대면 생일 파티를 했다. 사진 신은정
은정씨에게 하고 싶은 말은.
유: 우리 아이들 시집, 장가갈 때 드레스 코드 맞추기로 했잖아. 은정씨도 꼭 함께하면 좋겠어.
이: 지금처럼, 이대로, 영원히. 언니의 5분 대기조 언제든 불러줘요.
김: 언니가 아프고 나서 더 사랑하게 됐어. 나의 정신적 큰 에너지. 더 자주 놀러 올게. 언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사랑해.
권: 누구보다 아름답게 웃는 신은정 작가님. 예쁜 글 쓰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나이 들어가자.
‘왜 울어 내게 쌓인 게 많구나.’
끝까지 은정씨다웠다.
루게릭병 환우 신은정씨가 지난 5일 경기도 안양시 자택에서 12년 지기 '평심이' 엄마들과 만나 활짝 웃고 있다. 전민규 기자
#에필로그
인터뷰가 끝난 뒤 은정씨가 톡을 보내왔다. 평심이를 비롯해 가족, 친구, 동창, 직장 동료, 환우 가족, 친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많은 분의 도움과 마음이 모여 저의 하루가 되고, 1년이 되고, 10년이 되었습니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데도 나답게 살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제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봅니다.
이들은 은정씨의 ‘희망’이다.
발병 초기에는 신약 소식이나 호전 사례에 희망을 얻었어요. 그런데 ‘일희일비’하니 마음이 더 힘들어졌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을 준 건 ‘잘 버텨줘서 고맙다’ ‘잘하고 있다’ 같은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였습니다.
발병 전 사내 밴드에서 공연을 하는 신은정씨 모습. 사진 신은정
발병 전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의 신은정씨 모습. 사진 신은정
은정씨는 가족도 모르는 비밀을 평심이 엄마들과 공유하고 있다.
병이 진행되는 걸 느끼면서 ‘마지막’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평균 생존 수명보다 더 장수(?)하면서 미리 준비하게 되더군요. 2~3년 전쯤 제 옷들, 소지품들을 모두 정리해서 버렸어요. 서울대병원에서 루게릭 환자들의 뇌를 연구한다고 하여 사후 뇌 기증도 등록했어요. 영정사진도 준비해 놓았고요. 가족들은 몰라요. 사후에 정리하려면 남겨진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요즘은 혼자 수목장 검색해 보고 있어요.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
두렵거나 슬프게 느껴지진 않아요. 이 세상에서 나의 소임을 마치고 떠나는 게 죽음이라 생각해요. 인생이라는 소풍에서 잘 놀다 간다는 걸 책으로 쓰고 싶어요. 나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증명이랄까요. 마지막 꿈이에요.
〈2월 21일 계속〉
에디터 최은경 중앙일보 기자 발행 일시202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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