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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 나온 ‘입주청소 아줌마’ 이 자격증, 의대 아들 키웠다

해암도 2025. 2. 11. 06:10

 1961년생, 올해 64세, 나는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공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던 중 결혼한 나는 결국 첫아이를 낳고 학교를 중퇴했다. 당시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다음 달 사정상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그때부터 나는 새벽에 우유·주스 등을 배달하며 생업에 뛰어들었다.

작은 회사에 재취업한 남편과 맞벌이하며 1원 한 푼 허투루 쓰지 않고 악착같이 모아 화장품 가게를 차렸다. 둘째도 낳고 작은 아파트도 장만하고 생활에 안정이 찾아오자 나는 2년제인 백석대(현 백석예술대) 음대에 진학해 교원 자격증을 따서 피아노 학원을 차렸다. 학원은 입소문을 타면서 금세 수강생으로 북적였다.

하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남편 회사가 사라져버렸고, 집 담보로 무리하게 확장한 학원엔 수강생이 뚝 끊겼다. 우리 가족은 학원은 물론 겨우 마련했던 아파트까지 날리고 빚더미에 앉았다.

이때부터는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입주 청소다. 이른 아침 직업소개소에 가서 “오늘 입주 청소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순서대로 봉고차에 실려 청소 현장에 도착한다. 대부분 이사 나가 엉망이 된 빈집, 폐가 수준의 낡은 집이다. 이런 곳을 하루에 서너 곳씩 쓸고 닦고 나면 온몸이 녹초가 된다.


지난달 21일 경기도 파주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임정열씨. 김종호 기자



무너져내리는 몸보다 더 힘든 건 바닥을 친 자존감이었다. 무릎으로 박박 기면서 온갖 먼지를 닦아낸 뒤 잠깐 봉지 커피라도 종이컵에 타 마시려 하면 관리인이 “빨리 차에 타라. 커피는 이동 중에 차에서 마시라”며 등을 떠밀었다. 커피 한 모금 마실 짬이 허락되지 않는 삶이었다. 집에 돌아와 먼지 뒤집어쓴 옷을 벗으면, 종일 얼마나 기어 다녔던지 무릎에 바지 솔기를 따라 피딱지가 맺혀 있었다.

한창 공부할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없어 가슴이 미어졌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이미 40대 중반이 된 우리 부부에겐 자금도, 젊음도 없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는 공부뿐이었다.

지금, 나는 현역 엔지니어이자 억대 연봉자다. 내겐 정년도 은퇴도 없다. 입에 풀칠도 힘들었던 입주 청소 아줌마의 믿기지 않는 변신이다. 내가 지금 어떤 일을 하느냐고? 어떻게 이런 변신이 가능했냐고? 이제부터 알려드릴 테니 따라와 보시라.

🔎 ‘마처세대’를 아시나요?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를 뜻하는 신조어로, 1960년대 생을 뜻합니다. 이전 세대보다 돌봄 의무가 길었던 이들이 이제 은퇴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노후 자금을 충분히 모으지 못한 이들에게 최고의 노후 준비는 ‘은퇴 없는 삶’ ‘평생 일자리’가 아닐까요.
40대 중반, 빚더미에 앉아 자격증 따기에 도전해 ‘은퇴 없는 평생 일자리’ 만들기에 성공한 사연을 소개합니다. 60대인 그에겐 정년도, 은퇴도 없습니다. 갱년기의 고통 속에 공부에 도전한 이유, 중년의 공부 노하우에 대한 생생한 조언도 들어보시죠.

은퇴Who 4화 〈목차〉

📌명함에 찍힌 세 개의 자격증
📌소방기사 자격증 2개, 1년 만에 딴 비결
📌기계설비기술사까지…한국에 스무 명 남짓
📌기술사 자격증, 나의 ‘작은 밥솥’

※ 〈은퇴Who〉 다른 이야기를 보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①밥 훔쳐먹다 퇴학당한 소년, 23개국 도는 황금노년 비결
②월 80만원에 해외 한 달 산다…은퇴자들의 여행·골프 성지
③“숨만 쉬어도 지출 200만원” 58년 개띠, 공포의 경조사비

명함에 찍힌 세 개의 자격증
 소방기술사·건축기계설비기술사·소방시설관리사….   

내 명함 적힌 자격증 목록이다. 사람들은 ‘임정열’이란 내 이름보다 이 자격증들을 먼저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사실 국내에서 분야별 최고 엔지니어를 의미하는 기술사 자격증 2개에, 기술사에 견줄 만한 상위 자격증인 시설관리사까지 보유한 사람은 흔치 않다.

내가 처음부터 기술사가 되겠다 결심한 건 아니다. 특히 소방 분야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없다.

생계를 위해 본격적으로 자격증 준비를 시작한 건 2006년 하반기, 45세 때다. 정보가 없으니, 일단 은퇴 준비자 대다수가 시작한다는 공인중개사부터 준비했다. 수업을 듣는데 강사가 수차례 “아파트 발코니 확장을 하면 구조적으로 화재에 취약해지는데 너무 쉽게들 한다. 소방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고 강조하는 거다.

소방? 그게 뭔데 이렇게 강조를 하나…. 궁금증이 생겼다.

시험 운이 따랐는지 공인중개사는 준비 3개월 만에 합격했다. 기쁜 마음은 가슴 한쪽에 젖혀두고, 나는 남편과 함께 가까운 소방학원을 찾았다. 원장은 한국 소방 분야에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면서 소방기계기사·소방전기기사 자격증을 추천했다. 기사 시험은 학사 학위가 있어야 응시 가능한데, 내 경우는 입주 청소를 하면서 틈틈이 독학사 과정으로 가정학과를 이수해 뒀기에 가능했다. 기사가 된 뒤 관련 분야에서 4년 경력을 쌓으면 소방기술사 응시 자격도 생긴다고 했다.

 기술사! 

나는 그 순간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내 인생 뒤집기는 여기다’ 싶었다. 공고 출신인 나는 기술사가 엔지니어 분야 최고 등급의 국가기술 자격증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해당 분야에서 박사급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그 순간 “기술사를 위해 뛰어보자”고 결심했다.


임정열 소방기술사가 지난달 21일 경기도 파주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소방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소방기사 자격증 2개, 1년 만에 딴 비결
상담을 마치자마자 남편과 서점으로 가서 소방기계기사와 소방전기기사 교재를 구매했다. 돈벌이와 가사를 병행하며 공부하다 보니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시험까지 교재를 한 권당 10회 독 이상 마쳤다. 시험 준비를 시작한 2007년, 바로 그해에 기사 시험 두 개에 모두 합격해 쌍(雙) 기사가 됐다.

응시하는 시험마다 척척 붙자, 사람들은 “보통 머리가 아니다” “시험 운이 좋다”고들 추켜세웠다. 나는 스스로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시험 공부의 요령은 있는 것 같다.

 교재를 볼 때, 절대로 처음부터 꼼꼼하게 암기하지 않아요. 전체 구조를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씩 파고들다 보면 지엽적인 내용에 함몰돼 삼천포로 빠지기 쉽거든요. 처음엔 목차와 소제목 중심으로 쉬운 내용만 슬렁슬렁 살피며 1회 독을 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4~5회 독까지 하고 나면 수수깡 쌓아 올린 것처럼 엉성하나마 전체 맥락이 잡혀요. 그 후에 밀도 있게 공부하면서 세부 정보를 채워갑니다. 큰 그림을 먼저 머릿속에 세워두고 지엽적인 내용을 암기해야 책 전체 내용이 딴 길로 새지 않고 체계적으로 들어오거든요. 


임정열(64)씨가 소방기술사를 준비하던 시기 보던 교재. 그는 교재를 여러 차례 회독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임정열 제공



취업에도 성공했다. 전기통신 공사를 맡아 하는 소규모 회사에서 주로 문서 작업을 했다. 월급이 많진 않았지만, 입주 청소 다니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게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실무 경력 2년이 쌓이자 소방시설관리사 시험 응시 자격이 생겼다. 합격만 하면 연봉이 두 배 가까이 뛰어오르게 된다.

 사실 그때 무용을 전공하는 둘째 딸이 고3이 되면서 생활비 박박 긁어서 학원비를 대야 했어요. ‘내가 이 시험(소방시설관리사)에 합격하지 못하면 딸 대학등록금을 못 주겠구나’ 하는 절박한 생각에 시험에 매달렸습니다.  

결국 2011년, 50세에 소방시설관리사에 최종 합격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소방시설관리사와 소방기술사의 업무가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맞물려 있다는 게 절감됐다. 소방기술사 자격까지 따야 현장 업무 총괄이 가능해지는 거다. “여기서 멈춰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소방기술사에 도전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임정열(64)씨가 취득한 소방시설관리사 자격증. 임정열 제공



기계설비기술사까지…한국에 스무 명 남짓
가족들은 반대했다. 소방시설관리사가 된 것도 대단하니 이제 힘든 공부는 그만하고 쉬엄쉬엄 살라고 설득했다. 특히 당시 의대를 다니는 큰아들은 “엄마 건강을 돌볼 때”라면서 “어려운 공부는 그만하셨으면 좋겠다”고 말렸다.

사실 나이 50대에 접어들자 갱년기가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온 내 몸은 손가락, 발가락 마디마디 아렸다. 손목에 힘이 빠져 펜을 들고 글씨 쓰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임정열 소방기술사가 지난달 21일 경기도 파주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소방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하지만 소방 전문가로 자리 잡으려면 기술사 자격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내 몸 상태를 보아하니, 시간을 끈다고 공부가 쌓일 게 아니더라고요. ‘딱 1년만 해보고 안 되면 깨끗하게 포기하자’고 마음먹고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은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어요. 

2013년 추석 이후, 본격적인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공부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회사에선 한직을 지망해 부서를 옮겼다.

시험 과목은 총 10개, 교재는 한 권당 1000쪽이 넘는다. 나는 다른 시험 준비와 마찬가지로, 별도 노트 필기는 하지 않고 교재 자체를 여러 번 회독하는 방식으로 공부해 나갔다. 시험 한 달 전엔 “나라는 존재는 없다”고 마음먹고,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 부탁해 독서실 대신 교회 한쪽 구석에서 새벽부터 밤중까지 공부했다. 시험장 들어가기 전까지 과목별로 교재를 최소 100회 독씩 마쳤다.

결국 2014년 11월, 최종 합격했다. 가족들은 “축하한다”는 말보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했다. 아들은 “엄마는 너무 훌륭한 분이라,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결코 젊다 할 수 없는 쉰셋의 나이에 기술사 시험에 합격하자 다들 신기해했다. “나이가 들면 머리도 굳게 마련인데 대체 어떻게 공부했냐”고들 물었다.


임정열씨가 취득한 소방기술사 자격증. 임정열 제공



나는 공부하는 방법은 여러 갈래고, 나이 든 사람만이 가진 장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이 암기를 잘한다면, 나이 먹은 사람들은 이해력이 탁월하다. 공부에는 자기에게 유리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 되는 거다.

특히 법 과목을 공부할 때, 내가 젊었다면 이 법령들을 지금처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교재의 내용과 나의 풍부한 인생 경험이 조화를 이뤄 쉽게 이해되고 종합적으로 고찰할 수 있었다. 세상에 나이 먹었다고 시험 공부에 불리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건축기계설비기술사까지…한국에 스무 명 남짓
소방기술사 합격 이후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인 영설계에프앤씨에 취업했다. 2년 뒤, 대표님이 내게 “건축기계설비기술사 자격증을 따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셨다. 소방에 특화된 회사 업무를 기계설비 분야로 확장하고 싶다는 거였다.

몸도 좋지 않고 더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죄송하지만 안 되겠다고 거듭 거절했다. 하지만 대표님은 회사에 관련 전문가가 꼭 필요하다며 계속 부탁하셨다.

“그래, 공부는 결국 날 위한 일이다”고 마음을 추슬렀다. 눈 딱 감고 다시 수험서를 펼쳤다. 그런데 시험 공부에 이골이 났는지 의외로 3개월 만에 합격했다. 건축기계설비기술사는 건축 분야의 최고 등급 자격증으로, 건축 설계와 감리 분야에 쓰인다. 건축 환경이나 위생 부분도 총괄한다. 한국에 소방기술사는 1000명 내외, 이 중 건축기계설비기술사를 가진 사람은 스무 명 남짓이다. 내가 그중 한 명이 된 거다.

이런 일도 있었다. 소방청에서 실무자들과 회의를 마치고 나왔는데, 깜빡 놓고 나온 물건이 있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었다. 그때 소방청 사람들이 모여 내 명함을 보면서 “기술사 2개에 관리사까지 딴 사람은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40대 중반까지 바닥을 기어 다니며 입주 청소를 하던 내가 10년 만에 모두가 신기해할 만큼 희소한 전문가가 된 것이다.


임정열씨가 취득한 건축기계설비기술사 자격증. 임정열 제공



기술사 자격증, 나의 ‘작은 밥솥’ 하나
현재 회사에서 내 직책은 전무이사다. 사무실에선 설계 업무를 주관하는 책임 기술자로, 현장에선 감리 업무를 주로 한다.

이 일엔 정년도, 은퇴도 없다. 현장에 나가보면 70대, 80대에도 소방기술사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선배님가 적지 않다. 나 역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임정열 소방기술사가 지난달 21일 경기도 파주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소방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내게 공부는 처음부터 생계의 수단이었다. 공부로 일확천금하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겨우 입에 풀칠하는 불안한 삶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생활 기반은 갖추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손에 넣은 소방시설관리사 자격증과 기술사 자격증 2개는 내게 평생 먹을 따뜻한 밥이 담긴 ‘작은 밥솥’이 돼줬다. 배가 고플 때 이 밥솥 뚜껑만 열면 언제든 뜨신 밥 한 공기쯤은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삶에 대한 불안과 시름이 사라진다.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해 많은 사람이 재테크에 관심을 둔다. 1억원 투자해 10억원을 벌고, 그것으로 여생을 편하게 살 자본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재테크의 계산법이다.

공부의 계산법은 전혀 다르다. 투자금 한 푼 없이 시작할 수 있고, 노후에도 따뜻한 밥이 끊이지 않게 지속적인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게 전부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건강한 상태로 노년을 맞이한 우리 세대에겐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평생 일감을 얻는 게 더욱 중요하고 즐거운 것 아닐까. 물려받은 재산도, 고액 연금도 없는 나 같은 흙수저에게 최고의 은퇴 준비란 ‘끝까지 일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이었다.

 저도 여행도 다니고 쉬기도 하죠. 하지만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할 곳이 있고 현장에 나오면 전문가로 대접받는 게 저의 자부심이고 기쁨입니다. 공부가 제게 준 최고의 선물은 ‘영원한 현역’입니다. 


임정열 소방기술사가 21일 경기도 파주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에디터     박형수   중앙일보 기자    발행 일시2025.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