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커서 뭐 될래? 초·중·고 시절부터 들었죠.
추천 경로로는 못 가서 ‘우회 경로’를 뚫으며 살았어요.
그랬더니 뭐가 되긴 됐더라고요.
방송인으로 알려졌지만 노홍철은 사실 사업가입니다. 2004년 지상파 데뷔 전부터 여행상품을 개발해 판매했어요. 삼성전자에 재직 중인 아버지에게 용돈을 챙겨드릴 만큼 사업이 잘됐죠.
그는 하고 싶은 걸 일로 합니다. 현재 운영 중인 사업은 4개. 북카페 겸 베이커리 카페 ‘홍철책빵’ 1, 2호점, 아이스크림 매장 ‘너 커서 뭐 될래 했더니 뭐가 된 노홍철’ 등을 오픈했어요. 2020년부터 시작한 사업은 연매출 6억원을 기록 중이죠.
하지만 어릴 때부터 추천 경로로 가지 못해 늘 우회 경로를 뚫어왔다고요. 아버지 뜻에 따라 유명 공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뜻대로 나오지 않았고요. 방송계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걸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했더니, 길이 열렸다”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어떻게 주변 시선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일을 만들어 나갔을까요? 베스트셀러『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저자 송길영 마인드마이너와 그가 나눈 대화를 공개합니다. 송 작가에게 노홍철은 대표적인 ‘핵개인’, 즉 자신의 삶에 주체적인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이죠.
💬목차
🔹추천 경로보다 우회 경로가 빠를 때가 있다
🔹마흔다섯 돼 보니 힘든 일은 쿠션 같아, 더 큰 것으로 돌아와
🔹‘노홍철’이라는 플랫폼을 키우는 법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홍철책빵'에서 만난 노홍철. 그는 4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다. 사진 폴인, 송승훈
추천 경로보다 우회 경로가 빠를 때가 있다
송길영(이하 ‘송’): 다양한 사업과 프로젝트를 하고 계세요. 그런데 아직 홍철 님을 연예인으로 알고 계신 분이 많죠?
노홍철(이하 ‘노’): 맞아요. 저도 그게 당황스럽더라고요. 가끔 제 팬이라고 하시는 분들 만나면 아직도 힘들어요. 나는 나의 즐거움을 위해 달려왔는데, 팬이라고 하시니까. 명분이 없잖아요. 물론 늘 다른 사람들의 행복도 같이 가면 좋겠지만 저한테 가장 중요한 건 저 자신이거든요.
송: 어떤 면에서는 잘 숨어 계신 것 같아요.
노: 맞아요. 그걸 굉장히 의도해요.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SNS에도 어느 정도 친근할 정도로만 오픈하고. 잘 된 건 굳이? 안 된 건 약이니까 더 크게 올리고(웃음). 가끔 어떤 분은 그러시거든요. “요즘 왜 방송에 안 나오세요? 힘내세요.” 그러면 그냥 “감사합니다” 해요.
송: 그런데도 아직 주류에 계신단 말이에요. 그게 제일 궁금했어요. 이유가 뭘까요?
노: 제가 깨달은 건 이거예요. ‘뭘 자꾸 하려고 하면 못 한다. 오히려 어떤 일에 큰 미련이 없거나, 적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때때로 적진에서도 나를 찾더라.’
송: 상대를 아쉽게 해야 한다는 건가요? (웃음)
인터뷰를 진행 중인 송길영 작가. 사진 폴인, 송승훈
노: 딱 그 지점인 것 같아요, 뭐든. 방송이건 제가 좋아하는 장사건, 만남이건.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하잖아요. 저는 인생의 1번이 재미거든요. 지금 하는 것보다 재미있는 게 생기면 바로 위치를 바꿔요. 연예인이라는 자리도 물론 감사했지만 막 좋아하지는 않았죠. 늘 그것만 꿈꾼 건 아니거든요.
송: 홍철님에게 재미란 뭔가요?
노: 사람마다 재미라는 게 다를 텐데, 어떤 사람은 그게 공부일 수도 있고 먹는 걸 수도 있잖아요. 저는 대화, 여행. 예를 들면 10년 전부터 생전 모르는 분들을 제 사적인 영역에 초대해서 밤새 이야기하고 여행도 가요. 인생 책 소개하기, 편안하게 입고 비 맞기, 홍철투어… 지금도 신청서 열어보면 대기하고 계신 분들 있거든요. 장문의 진정성 있는 글이 와 있고. 너무 신기해요.
예전에는 저만 유독 재미를 찾았는데 이제는 많은 분이 재미를 추구하시는구나. 시장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됐구나. 요즘에는 기업에서도 이런 걸 같이 하자는 제안이 와요. 운 좋게도 시대도 얻어걸리고(웃음).
송: 여러 제안이 오는군요?
노: 맞아요. “이 친구는 늘 재밌는 것만 한다. 같이 뭘 하면 즐겁다.” 제가 설파하지 않아도 소문이 난 거예요. SNS에 하고 싶은 걸 올렸을 뿐인데 연결이 되고, 자본이 모이고. 처음에는 주위에서 “너 그걸 왜 하니, 그 시간에 다른 걸 하면 더 이득인데” 했거든요. 신기해요, 정말.
노홍철에게 직업은 '일과 놀이가 일치하는 지점'이다. 사진 폴인, 송승훈
송: 재미를 넘어 제가 꽂힌 키워드는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거예요. 한국 사회는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사회잖아요.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참아라, 고생 끝에 낙이 온다.” 그런데 홍철님은 어떻게 일찍부터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어요?
노: 출발 자체가 함량 미달, 빈 그릇이다 보니 다 해볼 수 있었어요(웃음). 잃을 게 없잖아요. 만약 제가 다수가 원하는 학교도 가고, 남들이 선망하는 포지션도 도장 깨기 하듯 갔으면 그동안 노력한 게 아까워서라도 못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저는 그런 인고의 시간이 없었으니까 내가 뭘 해도 손해가 아닌 거예요. 잃을 게 1도 없다(웃음).
제가 자주 들은 말이 “얘는 참 착하고 재미있는데 이 신에서 원하는 건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예요. 그러니까 죽기 까무러치기로 내가 좋아하는 걸 해볼까? 해서 해보고. 궁지에 몰리면 내가 쥐인데, 고양이라도 확 한번 물어볼까. 미친 상상도 하고. 그런데 놀라운 건 좋아하는 걸 했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저한테도 남들 못지않은 능력치가 나오는 거예요.
송: 이렇게 되리라 예상했나요?
노: 전혀. 200% 아니었죠. 제 앞일을 모르잖아요. 그런데 한결같이 결과가 좋으니까. 아, 이건 운이 아니다. 당연히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 자기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면 괜히 더 피곤하고, 그만두고 싶잖아요. 그런데 좋아하는 걸 하면 똑같은 체력인데 그렇지 않더라. 저를 실험 대상으로 두고 숱하게 경험을 해보니까 확신하게 된 거죠. 이제는 100%, 200%.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답이다. 숱한 경험을 통해 깨달았죠." 사진 폴인, 송승훈
송: ‘좋아하는 걸 하세요’가 어떤 위안이나 가치에 대한 메시지가 아니라, 전략인 것 같아요. 보통은 그간 쌓아온 것 때문에라도 ‘하던 거 열심히 해야지’ 하거든요. 그런데 홍철님은 남들 모두 가는 ‘추천 경로’로 가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찾으신 셈이죠?
노: 제가 공대 나왔어요. 그 당시만 해도 공대 하면 한양대, KAIST. 물론 저는 그런 학교는 못 나왔고요. 이것도 우회 경로인데, 저희 아버지가 삼성전자에 다니셨거든요. 그때 하신 말씀이 “내가 인문계를 나와 근무해 보니 이공계 쪽이 훨씬 더 우대받더라.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두 아들은 이공계에 가면 좋겠다”. 그래서 적성검사를 했는데 저희 형은 인문계 쪽으로 월등히 높게 나오고, 저는 월등히 바닥을 치고(웃음). 저는 부모님 뜻도 따르고, 남들이 좋다는 진로도 가고 싶은데 너무너무 자격 미달이었던 거죠.
그래서 추천 경로로는 못 가니 우회 경로를 뚫게 된 거예요. 그런데 요즘 스케줄을 보면 너무나도 재미있는 게, 얼마 전에 한양대에서 강연 제의가 왔어요. 꼭 와달라고 하셔서 갔더니 시험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로 가득 메워져 있고…. 신기한 거예요. 하루에도 이런 일이 몇 번씩 벌어지니까. ‘아, 이제는 추천 경로로 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때로는 우회 경로가 더 빠르고 따뜻한 길일 수 있겠다.’ 저는 어제도 자기 전에 누워서 그런 말을 했거든요. “와, 이거 뭐야?”(웃음)
“마흔다섯 돼 보니 힘든 일은 쿠션 같아, 더 큰 것으로 돌아와.”
송: 늘 리마인드 하세요? ‘나는 시작부터 아무것도 없었다’고.
"홍철님은 홍철님 자체가 플랫폼인 것 같아요." 사진 폴인, 송승훈
노: 그렇죠. 제 사업자 등록증 상호명 중 하나가 이거예요. ‘너 커서 뭐 될래 했는데, 뭐가 된 노홍철’.
송: 그게 법인 이름이에요? (웃음)
노: 네, 법인이 4개예요. ‘주식회사 노홍철천재’ ‘주식회사 다시 태어나도 노홍철’ ‘꿈과 모험의 홍철동산’ ‘너 커서 뭐 될래 했는데, 뭐가 된 노홍철’. 제가 초·중·고 학년이 바뀌고, 학교가 달라져도 늘 듣던 말이 이거거든요. 너 커서 뭐 될래.
그런데 뭐가 되긴 됐더라고요, 지금 보면. 최근에는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 브랜드랑 협업해서 케이크를 만들었거든요. 저는 우리나라에 벤앤제리스라는 브랜드가 많이 안 알려졌을 때부터 그 브랜드를 너무 좋아했어요. 왜 좋아했냐면, 저는 스스로에게 항상 ‘재미없으면 왜 해’라는 질문을 던지잖아요. 이 회사의 모토도 ‘재밌지 않으면 왜 해?’거든요. 그런데 우리 살아봐서 알잖아요. 그 기조가 너무나도 쉽게 흔들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벤 형님, 제리 형님은 저보다 20~30년 먼저 그렇게 살고 계시고, 여전하고.
"이제는 노는 게 하나의 장르, 직업이 되고 있어요." 사진 폴인, 송승훈
송: 실제로 만났어요?
노: 네. 형님들한테 제가 너무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저를 예쁘게 봐주셔서 모든 걸 다 보여주셨어요. 사무실부터 회의실, 생산라인 할 것 없이.
송: 최고네요. 윌리웡카(로알드 달 소설『찰리와 초콜릿 공장』속 등장인물)네요(웃음).
노: 특히 기억 남는 게 생산라인에 방문했을 때예요. 그 많은 포지션 중 가장 자동화된, 아이스크림 뚜껑을 덮는 공정이 있었거든요. 그 포지션에 굉장히 복스러운, 곰돌이 푸 같은 친구가 일하고 있더라고요. 반복 업무가 지루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어디선가 매니악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이 친구가 리듬을 타면서 몸을 흔들고 있는 거예요. 저는 공장 많이 다녀봤으니까, 그 모습이 너무 좋고 생경해서 물었거든요. “이거 오늘만 그런 거야, 아니면 맨날 이런 거야?”.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넌 재미 없으면 일할 수 있어?”. 와, 가장 윗단의 벤 앤 제리 형님이랑 이 친구의 스피릿이 똑같은 거예요. 저는 그런 걸 보면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요. 신나게 일하고, 내 일에 만족하고. 그건 결국 나를 사랑하는 거잖아요.
″내 일에 만족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행복해요.″ 사진 폴인, 송승훈
저는 저희 직원들도 손님에게 뭔가를 드릴 때 “제가 만든 잼인데 한번 드셔보세요” 이런 말 할 때가 가장 좋거든요. ‘우리 대표님이 만든’이라고 안 하고 ‘내가 만든’이라는 표현을 쓰는 거. 그게 너무 좋아요.
송: 제가 들은 얘기가,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부장님” 하면 부장님이 다른 사람에게 “요즘 김 대리 편한가 봐? 웃더라고” 한다는 거예요. 일은 힘들어야 하고, 직장은 즐거움이 없는 곳이라는 걸 아직도 전제하는 거죠.
노: 우리는 웃어야 되는데(웃음).
송: 사업가지만 알려진 사람이잖아요.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신가요?
노: 방송인이든, 빵집 사장이든. 어떤 자리에서든지 내가 정말 열심히 노력해도 최악의 경우로 오인당할 수 있다. 그걸 알았어요.
저한테 안 좋은 이벤트가 있었잖아요. 당시 오랜 기간에 걸쳐 모든 걸 정리하고, 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외국에 갔었어요. 아, 나 다했다. 나한테 선물을 주자. 그러고서 ‘킹스맨’이라는 영화를 봤거든요. 너무 이입해서 영국 거리서 슈트를 맞춰 입고, 수염도 지금처럼 기르고, 가장 잘한다는 이발소에 가서 멋있게 차려입었어요. 저한테는 그때가 하고 싶은 걸 해서 가장 행복할 때였는데, 어떤 분이 저를 보고 사진을 찍은 거예요. 실시간 검색어가 있을 때인데 1위가 ‘영국에서 걸인으로 발견된 노홍철’ ‘삶을 포기한 노홍철’(웃음).
"내가 최선의 노력을 해도 최악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진 폴인, 송승훈
송: 엄청난 대조인데요(웃음).
노: 그때 제가 형님처럼 이렇게 웃음이 터지면서 더 자유로워졌죠.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는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내가 이거에 연연할 필요가 없겠구나. 그래,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야. 내가 의도한다고 해서 꼭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그 경험이 재미있었어요.
송: 어떻게 이렇게 긍정적일 수 있는 거죠?
노: 저도 제가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긍정적일 수가 있지? 어떻게? 그래서 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커리큘럼을 서칭했거든요. 그런데 영어도 있고 수학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접었죠(웃음).
송: 그럼 홍철님에게 모든 허들과 어려움은 교훈인가요?
노: 좋은 일은 늘 우리가 아는 것처럼 좋은 일인데요. 마흔다섯 돼보니까 안 좋은 일이 다 안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옛날에는 안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우리 어릴 때 하던 핀볼 게임 있잖아요. 볼이 탁 튀어서 쿠션에 부딪치면 1000점짜리가 3000점으로 튕겨져 나오고, 6000점으로 튕겨 나오고. 이제는 부딪치지 않아도 아는데, 힘든 일은 그냥 쿠션 같아요. 이것도 저것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고…. 지금은 뭐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으악!’이 아니라, ‘아~ 더 큰 거로 돌아오겠지.’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그렇게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되더라고요. 생각이 아니라, 검증되니까. 심지어 이제는 안 좋으면 안 좋은 일일수록, 비참해지고 하찮아질수록 엄청난 기대가 오니까 굉장히 설레죠. 마치 시그널처럼.
'홍철책빵'에서 판매 중인 베이커리. '좋아! 가는 거야!!'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사진 폴인, 송승훈
‘노홍철’이라는 플랫폼을 키우는 법
송: 사람을 좋아하시죠?
노: 너무 좋아하죠. 어릴 때부터, 과하게(웃음).
송: 제 생각에는 세상을 향한 센서를 늘리고 계신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배우고 싶은 거 아닐까요?
노: 선천적으로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또 다른 이유는 제 시야가 넓어진다는 거예요. 어릴 때 누가 “너 뭐 좋아해?” 물으면 바로 대답하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걸 명쾌하게 말했어!’라고 생각하고.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저는 단일 메뉴판을 보면서 답한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됐죠. 아, 이 세상에는 메뉴가 얼마나 다양한가(웃음). 이제는 여행을 가도 그냥 가지 않고, 건축가와 같이 가서 그 지역의 건축 역사를 듣거든요. 그런 게 너무 좋죠.
그런데 저는 이것도 일종의 우회경로 아닌가 생각해요. 만약 제가 형님처럼 다독할 수 있는, 집중력과 지구력이 있었다면 너무나도 알차게 이런저런 정보를 흡수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만한 집중력이 없다는 걸 노력해 보고 알았으니, 차선책으로 대화를 택한 거죠. 내가 안 해본 걸 경험해 본 사람이나, 궁금한 포지션에 있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 이게 나에게는 가장 빠른 우회 경로겠구나. 그러다 보니 정말 너무 재밌더라고요. 실직자부터 변호사, 기업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니까. 직급이나 지위 여하와 관계없이 다양한 깨달음과 배움을 얻거든요.
송: 어떤 면에서요?
노: 세 가지예요. 첫째는 그걸 할 때의 즐거움, 둘째는 대화를 하기 전과 후의 나를 비교할 때.
송: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보이니까요.
"사람을 만나는 것, 세상을 향한 센서를 늘리는 일 아닐까요?" 사진 폴인, 송승훈
노: 맞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재밌는 건 새로운 일을 할 때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가 훨씬 넓어졌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과도 훨씬 빠르게 나오더라. 그게 매출이 됐건 성장세가 됐건. 이런 경험을 하다 보면 뭐가 보여요. 형님이 시대를 예보하시는 것처럼(웃음). 뭐가 보이면 컨디션이 좋고요, 그러면 표정이 밝아요. 행복해져요. 그리고 남들이 나를 응원하고 좋아해 줘요. 그런 에너지가 모이면 저를 더 많이 찾고. 그럼 뭘 안 해도 삶이 재밌어져요. 옛날에는 재미가 없었는데. 저는 누가 저더러 마흔다섯이라 하면 깜짝 놀라거든요. 마음은 스물다섯이니까(웃음). 당장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지만, 늘 즐거움이 증폭돼 왔으니까 설렘이 크죠, 두려움보다는.
송: 경험의 지평을 늘려가면서 본인이라는 플랫폼을 키우고 계신 거네요. 그럼 계속 성장하시겠네요. 이 일을 즐기니까요.
노: 지금 느낌으로는 그럴 것 같아요. 좀 강렬하게 와요. 그런 느낌이. 이제는 이렇게 가도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전에는 몰랐거든요.
"뭔가 보이면, 삶이 재미있어져요." 사진 폴인, 송승훈
송: 어떤 점에서는 제 직업인 ‘마인드 마이너’를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마음을 캐고 있잖아요(웃음).
노: 그걸 의도한 건 아닌데 제가 체험했던 포지션들, 예를 들면 방송인이나 장사나 사업이나. 이런 것들이 같은 방향성을 띠잖아요. 다수의 사람을 상대로 마음을 얻는 것. 마음을 넘어 이익을 창출해 내는 것.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런 경험이 데이터로 쌓이니까 확실히 뭔가를 할 때 더 유리해지고, 우회 경로가 더 빨리 보이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송: 좋아하는 걸 하는 걸 넘어 홍철님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 플랫폼이 된 것 같아요.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께 혹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노: 제가 뭐라고 말씀드릴 자격도 안 되지만…. 저도 처음에는 너무 많은 손가락질과 걱정을 받았어요. 제 입으로 이런 얘기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손뼉쳐 주는 일부가 있어요. 나에 대한 우려와 걱정, 의심 이런 건 뭘 하든 있거든요. 그럴 때 지치지 않고 10년 이상 쭉 가면, 내가 설령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런 사람이 돼 있거나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을 해주더라고요.
저는 제 삶에 만족하거든요. 그만큼 누군가 한 명이라도 이런 만족감을 느끼는 분이 있으면 내가 살아가는 가치가 조금은 높아지겠다. 저 역시도 그랬고,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그냥 한번 해보시라. 일단 해보자는 말씀을 꼭 한번 드리고 싶어요.
"하고 싶은 걸 하세요." 사진 폴인, 송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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