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타 감독 박칼린
벌거벗은 남자들의 공연 ‘미스터쇼’로 대한민국을 뒤집어놨을 때 박칼린을 처음 만났다. ‘세상 말세쇼’란 비난에 “셰익스피어는 못 돼도 ‘섹스피어’로는 최고 공연”이라 맞서던 그녀는 무쇠도 씹어 먹을 듯한 기세였다. 그 후 10년. 다시 만난 박칼린은 조금 달라 보였다. 오합지졸 합창단을 향해 부라리던 눈매부터 한결 순해졌다. 간혹 봄바람 같은 미소도 스쳤다. 물론 착각이었다. “어제 새벽 1시까지 동네가 떠나가라 (스태프들한테) 소리 지른걸요? 하하!” 부산에서 보낸 유년기, 생선 뼛국물에 고아 먹던 콩나물이 ‘솔 푸드(soul food)’라는 그녀와 마주 앉아 ‘미스트롯3′ 얘기부터 시작했다.
◇정서주는 2% 미운 가수?
-뮤지컬 감독 박칼린이 트로트를 심사한대서 의아해한 시청자가 많았다.
“심사 요청이 왔길래 ‘왜 나냐’ 했더니 당신이 캐치(포착)한 걸 그대로 말해주면 된다더라. 그래서 오케이! 난 나대로 할 테니 딴 건 요구하지 마라, 다짐 받고 합류했다.”
-장르가 달라도 심사가 가능한가?
“음정, 박자, 스타성, 무대 장악력이란 기준은 어디나 같으니까. 플러스(게다가) 내가 트로트를 좋아한다.”
-실제로 트로트를 부르나?
“어릴 때 아버지가 흥얼거리시던 노래가 트로트였다. 내가 세 살 때 LA에서 부산으로 와서 여덟 살까지 살았는데 그 무렵이 이미자 선생님 전성기였다. TV 앞에 붙어 앉아 이미자 노래를 다 외울 정도로 따라 불렀다. 엄마도 팬이었다.”
-어머니는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아닌가? 딸 셋에게 자장가로 말러교향곡 1번을 틀어줬다는.
“성악을 전공한 엄마는 모든 음악을 사랑했다. 특히 이미자 노래를 들을 때마다 지구 상에 저런 창법으로 노래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감탄하셨다.”
-메인 마스터인 장윤정과 심사평이 다른 적도 꽤 있었다.
“트로트 대가인 김연자, 장윤정, 진성 선생님이 나보다 앞줄에 앉아 계셔서 그분들이 하트를 눌렀는지 안 눌렀는지 볼 수가 없었다. 따라서 눈치를 안 봐도 되었다(웃음). 나는 대세를 따르지도 않거니와, 거짓말을 하면 바로 티가 난다.”
-점수에 가장 인색한 마스터였다.
“의도는 없다. (음악 감독으로) 오디션 심사가 일상인 내 기준에 맞게 줬을 뿐이다.”
-박칼린은 참가자의 미래까지 생각하며 점수를 준다던데.
“타이밍을 중시한다. 지금은 아니어도 5년, 10년 후 꽃을 피우겠다 싶으면 버튼을 눌렀고, 재능은 뛰어나지만 아직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누르지 않았다. 너무 일찍 세상에 나와 온갖 상처를 받으면 다시는 노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내 판단이 다 옳은 건 아니다.”
-열두 살 빈예서가 그런 경우일까?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천부적 재능을 지닌 예서가 결승을 앞두고 실수한 것이 나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오래갈 수 있는 아이인데 지금은 빠르다. SNS에 마음 다쳐가면서 평생 음악을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누가 저 아이를 케어할(돌볼) 수 있지? 그 걱정이 앞섰다.”
-정서주가 ‘바람 바람아’를 부를 때 박칼린이 울컥하는 표정을 보고 우승을 예감했다는 시청자도 있더라.
“울컥? 눈물 흘린 건 김연자 선생님인데?(웃음) 내가 어떤 표정 지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정서주가 선곡을 잘한 건 분명하다.”
-결승에선 ‘더 높은 숫자의 버튼이 없어 아쉽다’고 극찬했다.
“그게 정서주의 2% 미운 점이다(웃음). 열여섯 살인데도 다른 경쟁자들한테 일절 마음을 주지 않더라. 얘는 ‘도코다이’(단독)구나 생각했다. 여론의 호감을 얻으려는 노력도 별로 하지 않았다. 스스로 절제할 줄 아는, 당차고 무서운 친구였다.”
◇한국 최초의 재즈, ‘비 오는 양산도’
-이미자 선생과도 인연이 있더라.
“10여년 전, 서울재즈페스티벌 개막 공연에 내가 이미자 선생님을 초대했다.”
-재즈페스티벌에 이미자를?
“나는 이미자의 ‘비 오는 양산도’가 한국 최초의 재즈라고 생각한다. 그 얘기를 제작진에게 했더니 다들 ‘비 내리는 영동교’ 아니냐고 묻더라, 하하!”
-정작 이미자 선생을 섭외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이다. 그래서 찾아뵙고 ‘비 오는 양산도’를 말씀드리니 당신이 이 노래를 어떻게 아냐고 물으시더라. 그래서 ‘저는 이게 선생님 최고의 곡이라고 생각한다’ 했더니 ‘이 곡을 아는 당신이라면 무대에 서겠다’ 하시더라. 완전 감동이었다.”
-올해 한국뮤지컬어워즈 대상을 받은 박칼린의 ‘시스터즈’는 한국 걸그룹의 효시인 1930년대 ‘저고리 시스터즈’부터 70년대 ‘희자매’까지 삶과 노래를 다룬 작품이었다.
“윤복희(코리안 키튼즈), 인순이(희자매)가 걸그룹 출신인 걸 아는가?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은 저고리 시스터즈 소속이었고, 해방 뒤 두 딸과 조카를 데리고 김 시스터즈를 결성했다. 김 시스터즈는 50년대 미국에 진출해 라스베이거스 공연이 매진될 만큼 한류 바람을 처음 일으킨다. 이들이 없었다면 K팝의 오늘이 있었을까? 국내외 자료 다 뒤지고, 생존해 계시는 선생님들 만나 인터뷰하며 울고 웃었다.”
◇절은 어릴 적 내 놀이터
-박칼린이 서울대에서 국악으로 석사 학위 받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부모님 덕에 동서양을 아우르는 문화를 흡수하며 자랐다. 아프리카, 인도 음악은 물론 국악에도 호기심이 많았는데 아버지 나라에서 욕먹지 않고 살려면 국악을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명창 박동진 선생에게 판소리도 배웠다.
“국악 작곡을 하느라 가야금과 대금을 배우다가 자연 판소리에 매료됐다. 어느 날 박동진 선생이 ‘너 소리해야 쓰것다’ 하시더라. 너무 신나 박카스 한 박스 들고 종로까지 버스 타고 가서 매일 소리를 배웠다.”
-전수자가 될 뻔했는데 배제됐다고.
“그건 박동진 선생 말씀이고, 심사에서 떨어진 이유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물론 열심히 했고, 내가 좀 잘하긴 했다(웃음). 근데 판소리를 외국인이 하면 내가 봐도 이상할 것 같긴 하다. 하하!”
-독실한 불자(佛子)라는 얘기를 최근 들었다.
“아버지 집안이 대대로 불교였다. 할머니 따라 어릴 때 절에 가서 스님들 옷자락 붙잡고 놀았다. 그렇다고 내가 불교 이론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월정사 의뢰로 불교 뮤지컬 ‘무량’도 발표했던데.
“주지 스님이 탑돌이를 소재로 작품을 써줄 수 없냐고 하셔서 예전에 써놓은 ‘석탑’이란 대본을 토대로 넉 달 만에 만든 것이다. 천년 전 석공들이 모여 사는 어느 산속 마을이 배경인데, 천부적 기술을 타고난 어린 석공이 불교의 여덟 가지 가르침을 깨달으며 우여곡절 끝에 석탑을 세우는 이야기다. 음악도 예쁘고, 불심(佛心)이 절로 일어난다고 평가받은 작품인데 더 많은 분 앞에서 공연하지 못해 아쉽다.”
-다음 작품의 주제는 무속, 만신이라고 들었다.
“국립창극단과 함께 오는 6월 무대에 올린다. 오대륙 무속인이 한국에서 강신(降神)으로 태어난 아이를 만나러 오는 이야기다.”
-왜 무속인가?
“나는 무속을 치유의 영역으로 본다. 생(生)이 인과응보라는 건 얼마나 심플하고 과학적인가. 내가 살던 미국은 인디언과 흑인들에게 피바람을 일으킨 대륙이다. 용왕굿, 땅 다지기굿이라도 해서 영혼들을 달래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다 이 작품까지 오게 됐다.”
-제목이 ‘만신: 페이퍼 샤먼’이다.
“종이접기(오리가미)는 동양 것인데 지금은 서양 과학에 그 원리를 빼앗겼다. 혈관 확장술에 쓰는 스텐트도 얇은 튜브를 넣었다가 확 펴는 종이접기의 원리다. 우주로 발사하는 위성도 마찬가지. 그게 원래 우리 거였다고 외치고 싶어서 ‘만신’에 접목했다. 모든 무대와 의상이 다 종이다.”
◇호랑이? 실수는 바로 사과한다
-박칼린은 편견 없이 모든 문화를 빨아들이는 사람 같다.
“엄마 덕분이다. UCLA에서 유학생들 영어(ESL) 선생으로 일했던 엄마는 프랑스, 브라질, 중동, 아프리카 등 우리 집에 각국에서 온 학생들을 하숙시켰다.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 인종과 문화로 형성돼 있는지 딸들에게 교육한다고(웃음). 내 친구 중엔 멕시코 갱단 아이도 있었다.”
-한국의 유교 문화와 충돌하는 경우는 없었나.
“서양 외모와 사고를 가진 내가 한국에서 살아남은 건 세 살 때 부산에 가서 젓가락을 먼저 잡았기 때문이다(웃음). 아버지는 선물은 삼세 번 거절해야 한다고 늘 가르치셨다. ”
-박칼린은 KBS 예능 ‘남자의 자격’에서 오합지졸 합창단을 성공시켜 리더십의 표상이 됐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나.
“물론이다. 그리고 나는 실수를 완전, 재빨리 인정한다. 바로 꼬랑지 내리고 사과한다.”
-’남자의 자격 2′에 합류하지 않은 이유도 인상 깊었다.
“내가 하는 일엔 반드시 퍼즐(과제)이 있어야 한다. 나는 시즌2로 말썽쟁이 10대들과 쇼콰이어 합창단을 꾸려보고 싶었다. 서로 화음 맞추고 춤도 추면서 자존감을 얻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고 싶었다. 그 순간만큼은 스타가 될 수 있으니까. KBS와 헤어져 우리가 직접 서울의 한 고등학교와 진행했다. 보면대 20개와 낡은 피아노 한대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정치에도 관심 있나?
“전혀. 나 같은 사람이 할 일은 좋은 공연 만들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아이디어를 주는 것이다.”
-여전히 호랑이 선생인가?
“알고 보면 온순한 야옹이다(웃음). 일에만 철저하다. 나는 밥 타임을 없앴다. 밥 먹으면서 회의하자더니 딴 얘기만 실컷 하고, 밥 먹은 뒤 커피 마시며 하자더니 또 수다만 떨더라. 남자들 술자리는 정말 최악이다. 나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박칼린
1967년 미국 LA에서 한국인 아버지, 리투아니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한 뒤 서울대에서 국악 작곡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명창 박동진을 사사했고, 부산시립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1995년 뮤지컬 ‘명성황후’ 음악감독으로 데뷔, ‘오페라의 유령’ ‘노틀담의 꼽추’ ‘아이다’ ‘미스터쇼’ ‘시스터즈’ 등 100여 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김윤덕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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