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주의 독거노남]
최철주의 독거노남-웰다잉 안내서
2023년 한 해 35만2700명이 사망했다. 그중 75.4%가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망장소가 주택인 경우는 15.5%에 그친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떠나는 게 한국인의 표준 일생이다. 그러나 대세를 따르는 게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각종 생명유지장치를 주렁주렁 달고 병원 침대에서 연장하는 삶이 과연 품위있는 인생일까. 은퇴 후 '웰다잉' 강사로 활약하고 있는 최철주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이 병원 대신 집에서 존엄하게 죽기를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6년간 죽음을 준비한 이어령
'시대의 지성'이라 불린 이어령 전 중앙일보 고문은 '존엄한 죽음'의 스승이 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의 대표 지성으로 불린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하 존칭 생략)은 2022년 2월 26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복막에서부터 암이 퍼지기 시작했지만 방사선 치료도, 항암 치료도 받지 않았다. 석달 혹은 여섯 달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 체크만 하며 ‘투병(鬪病)’ 대신 ‘친병(親病)’을 선택했다. 암과 싸우는 대신 친구가 되기로 한 것이다. 생로병사라는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서는 다른 이와 같은 패자였을지 모르지만 웰다잉의 좋은 모델로 남았다는 점에서는 역시 승자였다. 그는 끝까지 존엄을 지켰다.
▶“장관님, 암 그냥 놔둡시다” 이어령 웰다잉 택한 그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1059
이어령의 죽음은 앞서 보낸 딸 이민아 목사의 선택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2011년, 당시 미국에 거주하던 이민아 목사는 한국에 왔다가 난소암 4기 통보를 받았다. 그의 나이 겨우 52세였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몇 달 더 살 수 있다고 했지만 이를 거부했다. 몇 달 더 살겠다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으며 병원에서 죽기보다는 집에서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암 진단 6개월만에 평화롭게 떠났다. 당시 이어령은 딸의 그런 선택을 가슴아프지만 받아들였다. 그리고 5년 뒤, 이어령 자신이 암과 싸워야 하는 긴급한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했던 것이다.
▶“난 살기죽기 아닌 죽기살기”…이어령과 딸, 죽음은 닮았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4257
웰다잉의 선례가 된 최종현 회장
이어령에 앞서 웰다잉의 모범을 보여준 이로는 최종현 SK그룹 회장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한 시대의 큰 물결을 일으킨 인물들의 마지막 삶의 무대는 주로 서울대병원이었다. 국회에서 정치적 대결을 벌이던 내로라하던 핵심 인사들도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면 이 병원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로 실려 왔다. 그러나 최종현 회장은 달랐다. 세상의 돈과 권력·명예를 다 가진 총수가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거부하는 등 연명 의료 중단을 선언하고 집에서 통증 치료만 받다가 1998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식물인간이 돼서까지 죽는 기한을 늦추고 싶지 않다'는 육필 원고도 남겼다.
▶“내가 모르모트야? 난 싫다”…울림 컸던 최종현 회장 죽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27896
고통스러운 연명치료 끝에 떠난 일왕
역설적이게도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을수록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가 쉽지 않다. 그 죽음에 걸린 이해관계와 책임이 크고 복잡한 탓일 게다. 1989년 히로히토 일왕이 세상을 떠났다. 유흥가의 네온사인이 꺼지고 TV 드라마와 쇼 방영이 중단되는가 하면 왕궁 앞에서 우는 사람의 대열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일왕이 췌장암을 오래 앓으면서 고통스러운 연명 치료가 이어졌다는 것을 일본 국민은 거의 몰랐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 한참 후에야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진행됐던 존엄사 운동이 공개적인 활동으로 펼쳐졌다. 수많은 의료기기에 둘러싸여 힘겹게 생명을 이어가는 것보다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다운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좋겠다는 국민의 소망이 밖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철주의 독거노남최신 기사
▶육영수 피격도 목전서 봤다…죽음의 현장서 만든 ‘생사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8894나는 집에서 홀로 죽을 것이다
집에서 죽을 결심이 쉽지 않은 이유에는 홀로 사는 인구가 느는 탓도 있다.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외롭고 불쌍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 사회나 주변 사람들이 고독사라는 딱지를 붙였다. 하지만 1인 가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독거노인 비중이 커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홀로 세상을 떠나는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나라고 예외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고독사를 떠올리는 것은 사실 대단한 일을 결행하려는 각오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다. 그저 사는 데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의 반작용이다. 고독사라는 형태로 생을 마감하는 건 오히려 평화스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내 인생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행사하는 자기결정권의 결과이니 말이다.
▶“집에서 죽자” 난 오늘 결심했다…웰다잉 강사의 고독사 준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7869
'최철주의 독거노남'은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뉴스 '더중앙플러스'에서 인기리에 완결된 시리즈입니다. 더중앙플러스는 지혜롭고 지적인 독자들을 위해 중앙일보의 역량을 모아 마련한 지식 구독 서비스입니다. 더중플에서 웰다잉에 관한 더 깊이있는 통찰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투병 대신 친병, 암과 친구가 된 부녀
▶“장관님, 암 그냥 놔둡시다” 이어령 웰다잉 택한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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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살기죽기 아닌 죽기살기”…이어령과 딸, 죽음은 닮았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4257
다 가진 자에게도 쉽지 않은 존엄한 죽음
▶“내가 모르모트야? 난 싫다”…울림 컸던 최종현 회장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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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도 피할 수 없었던 연명 치료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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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남이 홀로 죽을 결심을 한 이유
▶“집에서 죽자” 난 오늘 결심했다…웰다잉 강사의 고독사 준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07869
정리=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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