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상식

女 19세, 男 40세부터 늙는다…AI가 찾아낸 ‘현대판 불로초’

해암도 2024. 2. 21. 07:04

불로장생의 꿈:바이오혁명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노화 방지 약물의 등장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 건강한노화(Sund Aldring)센터 연구진이 남녀 간 노화 시점과 속도가 다르다는 놀라운 내용의 논문을 지난 2월 23일 발표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 논문이 노화 속도를 늦추는 약물을 소개했다는 점입니다. 결론을 도출해 낸 방식도 독특합니다. 현미경을 들여다본 게 아니라, 인공지능(AI)이 의료 기록 빅데이터를 훑었습니다.

 

① 남녀 노화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

② 노화를 늦춰주는 약

③ 현대판 ‘불로초’ 세놀리틱

노화를 막는 물질을 찾기 위해 전 세계 바이오 기업들은 막대한 돈을 퍼붓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만 스무 군데가 넘는 기업이 현대판 ‘불로초’를 찾고 있습니다. 남녀의 노화 차이가 암시하고 있는 건 뭘까요. 노화를 막아준다는 약은 대체 어떤 것이며 그 효과는 어떻게 찾았을까요.

남성과 여성의 노화 시작 시점과 속도는 다르다. 이는 진화 과정에서 얻어진 특성으로 보인다. 남성은 오래 세포의 건강을 유지해야만 얻는 이득이 많고 여성은 반대로 세포의 이른 노화로 인해 이득이 있다는 것이다.

👴👵“남녀가 다르게 늙는 건 진화의 결과”

이번 코펜하겐대의 연구는 신생아부터 100세 넘는 노인까지 세대와 연령별로 노화의 패턴을 찾기 위해 진행됐습니다. 다양한 연령대 남녀 덴마크인 490만 명의 조직 샘플을 기록한 자료 3300만 건을 분석했죠. 1970년부터 최근까지 작성된 기록입니다. 147년 전에 태어난 1876년생의 자료도 있었습니다.

연구 방법은 생리의학 연구치고는 좀 특이합니다. 실험실에서 세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게 아니라 조직 샘플을 분석한 자료의 ‘글’을 바탕으로 노화와 연관된 임상적 ‘단어’나 ‘문구’를 추출했습니다. 이런 문구들을 인구통계와 연결 지어서 노화 패턴을 추적했습니다. 이 작업은 AI가 수행했죠.

그랬더니 병리학적으로 남녀가 노화 단계에 접어드는 시점이 다르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여성은 열아홉 살, 즉 신체적 발달을 마치자마자 바로 노화가 시작됐습니다. 남성은 마흔 살 전후에 병리학적 노화가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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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하지만 여성의 노화 진행 속도는 남성보다 더뎠습니다. 남성은 늦게 시작해서 가파르게 진행했습니다. 50세 전후에 노화 진행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가 70세에 이르자 다시 급격하게 빨라집니다.

마이클 벤 에즈라(Michael Ben Ezra) 코펜하겐대 건강한노화센터 연구원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덴마크 의료 데이터베이스는 50년 전부터 구축됐으며 상세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런 패턴을 발견하기가 쉬웠다”고 했습니다.

 

벤 에즈라 연구원은 “상관관계가 매우 뚜렷하기에 다른 인종으로 범위를 넓혀도 이런 남녀 차이는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다만 이 노화 패턴은 일반적인 현상을 기술한 것이므로, 개인에 따른 노화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벤 에즈라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일반적인 경향성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개인차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여성은 노화가 일찍 시작되지만 천천히 진행되고, 남성은 늦게 시작해서 빠르게 진행될까요. 연구진은 이를 자손 번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진화의 결과로 해석합니다.

모르텐 스카이뷔-크눗센(Morten Scheibye-Knudsen) 코펜하겐대 세포분자의학과 교수는 “원시사회에서 여성은 가족을 돌보고 남성은 사냥을 했다”면서 “여성은 노화를 일찍 시작함으로써 아이를 양육하는 데 이점을 얻었을 것이고, 남성은 노화를 늦게 시작함으로써 밖에서 사냥을 하면서도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겼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스카이뷔-크눗센 교수는 연구 결과가 성 편견을 강화하거나 조장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이번 연구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나온 결과”라며 “이미 노화가 생물학적 성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성은 아주 고령에서도 여성보다 운동 능력을 더 잘 보존하지만, 암 발생 빈도는 나이를 불문하고 여성보다 높다.

특이한 건 남성 노화가 시작되는 시점은 사실 고대인들의 평균 수명과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즉 남성은 살아 있을 동안은 젊음을 유지하다가, 세상을 떠날 즈음 돼서 노화가 급격하게 진행된다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노화를 늦춰주는 약 ‘닌테다닙’

연구진은 남녀 노화 특성을 발견한 AI를 이용해 또 다른 탐구를 진행했습니다. 지구 최대 병리학 데이터베이스인 펍메드(PubMed)를 활용했습니다. 이곳에 기록된 3500만 개 이상의 논문과 인터넷 사이트에서 노화 관련 키워드와 이를 경감해 주는 약물을 찾았습니다. 이걸 다시 덴마크인에게 노화를 일으키는 병리적 특징과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노화에 가장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약물은 ‘닌테다닙’이었습니다. 닌테다닙은 베링거인겔하임의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입니다.

 

특발성 폐섬유증은 폐 조직에 염증이 생기면서 섬유화가 시작돼 폐가 딱딱하게 굳어가는 병입니다. 초기엔 목이 간질간질하거나 마른 기침 증상으로 시작됩니다. 병이 진행되면 폐의 아래쪽부터 굳어갑니다. 10만 명당 10명 정도 걸리는 흔치 않은 병이지만, 진단 뒤 생존기간은 3년으로 예후가 매우 좋지 않은 병입니다.

닌테다닙은 이 병에 특별한 효과가 있는 치료제입니다. 폐 섬유화를 촉발하는 여러 성장인자 수용체를 동시에 억제합니다. 그런데 이 약이 노화도 늦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겁니다.

 

연구진은 노랑초파리를 대상으로 세포 노화를 실험했습니다. 닌테다닙 100μM 용량을 함유한 먹이를 먹은 초파리는 대조군에 비해 수명이 크게 늘었습니다.

벤 에즈라 연구원은 “폐의 노화 관련 키워드를 통해 닌테다닙이라는 약물을 찾아냈다. 닌테다닙은 세포 전반에서 노화를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연구는 키워드 추출을 통해 밝혀낸 것이니 한계가 있다”면서 “닌테다닙이 노랑초파리에서는 수명 연장의 효과가 있었지만, 인간에게도 그런지는 추후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국내 연구진도 지난해 닌테다닙이 노화 세포를 어떻게 사멸시키는지 메커니즘을 밝혀냈습니다. 닌테다닙은 노화 세포에서 STAT3라는 유전자를 차단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STAT3 유전자는 세포의 성장과 생존에 관여합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조현지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뉴바이올로지학과 초빙연구교수는 “닌테다닙이 STAT3 유전자를 억제해서 노화 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기전을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현대판 ‘불로초’ 세놀리틱을 찾기 위한 노력

닌테다닙처럼 노화 세포를 제거하는 약물을 ‘세놀리틱(senolytic)’이라고 부릅니다. 현대판 불로장생초인 셈이죠.

노화를 막기 위해선 노화 세포 제거가 핵심입니다. 노화 세포는 궤짝 안 썩은 사과처럼 다른 건강한 정상 세포도 병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염증을 일으키고 DNA 돌연변이를 만듭니다. 암세포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세놀리틱을 찾기 위한 경쟁은 매우 치열합니다. 칼리코(Calico), 바이오스플라이스(Biosplice), 인실리코 메디신(Insilico Medicine) 같은 유명 회사들은 각각 투자액 약 2조원, 1조원, 5000억원을 유치했습니다.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의 후원으로 설립한 유니티 바이오테크놀로지(Unity Biotechnology)가 이 분야 선두 주자로 꼽힙니다.

세놀리틱은 노화 세포를 제거하는 약물이다. 노화 세포가 몸에 만들어지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이를 제거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18년 미국 메이요클리닉을 비롯한 합동 연구진은 특정 세놀리틱의 효과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암 치료제인 다사티닙과 케르세틴을 섞어 세놀리틱을 만들어 쥐에게 투여하자 더 오래 살고 질병 위험도 낮았다고 합니다. 쥐 러닝머신도 다른 쥐보다 훨씬 잘 탔고 털도 윤기가 돌았다고 연구진은 전했습니다.

 

세계적 권위의 의학 기관 중에서 노화를 질병으로 인정한 곳은 아직 없습니다. 이 때문에 노화방지 약물이 시장에 나온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표 11판을 내면서 “노화는 본래의 능력을 저하시킨다”라는 새로운 표현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래서 의료계에선 노화를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공식적인 움직임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만약 WHO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같은 권위 있는 기관이 노화를 질병으로 인정하는 날이 오면 사람들은 노화를 완화하거나 방지하는 약물을 처방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노인을 ‘환자’로 분류하는 데서 오는,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에도 직면하겠죠.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노화 방지 약물의 등장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불로장생의 꿈: 바이오 혁명

인간이 건강을 결정하는 시대입니다. 기술이 질병을 통제하는 시대입니다. 세상엔 수만 가지 치료법과 신약이 떠돕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정보는 한정적입니다. 영상 시리즈 〈불로장생의 꿈 : 바이오혁명〉은 세계적 권위의 전문가 인터뷰를 토대로 세상을 선도하는 신약과 최신 치료법에 대해 가장 앞선 이야기를 전합니다. 새로운 치료법과 신약을 기다리시는 분, 바이오테크의 미래가 궁금하신 분, 생명과학의 놀라운 발전을 쉽게 이해하고 싶으신 분에게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에디터   이정봉   정수경   이가진      중앙일보     일시2023.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