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상식

요양 병원으로 가는 첫 출발점에 구강 노쇠가 있다

해암도 2024. 2. 14. 06:33

말 어눌해지고 음식 못 씹으면 사회활동 현격히 줄어
영양 부실, 신체 허약 악순환… 인지 기능 떨어져 치매도
검진 시스템 전무… 표준 검사법, 검진 인력 양성 시급

 

76세 최 모씨는 폐렴으로 서울 강남의 한 재활 병원에 3주째 입원해 있다. 나이 들어 면역력이 떨어진 탓인지, 폐렴이 잘 낫지 않고 있다. 폐렴의 원인은 음식물이었다. 어느 날 식사를 하다 사레들리면서 식도로 내려가야 할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 폐로 들어간 것이다. 거기서 염증이 생기면서 폐렴이 시작됐다. 이른바 흡인성 폐렴이다. 나이 들어서 삼킴 능력과 조화로움이 떨어졌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음식을 먹다가 흡인성 폐렴이 생긴 것이다.

◇구강 노쇠 느는데, 검진 시스템은 전무

이처럼 음식물이 폐로 넘어가 생기는 폐렴 환자는 고령 인구가 늘면서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 통계에 따르면, 음식물 흡인성 폐렴 환자는 2010년 8651명이던 것이, 2016년 1만2240명으로 약 50% 늘었고, 2022년에는 2만명에 육박했다. 최근 10년 동안 2배 늘었다. 구강 위생 상태 불량과 구강 내 세균 증식으로 초래되는 흡인성 폐렴 환자는 음식물 폐렴 통계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는 오는 2025년,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를 코앞에 두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 구강 기능이 떨어진 고령 환자들이 대거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실태 파악이 없고, 씹고, 삼키고, 말하는 구강 기능을 평가하는 검진 시스템은 전무한 상태다. 일반 건강검진센터에서 뇌기능 검진, 심장 기능 검진은 운영해도, 구강 기능 검진은 없다.

 

삼키고, 씹고, 말하는 구강 기능은 전신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게이트(gate, 입구) 역할을 한다. 구강 기능이 떨어진 구강 노쇠 상태가 되면, 잘 먹지 못해서 영양 부실이 오고 말이 어눌해지고 씹지 못해서 사회 활동 참여가 줄고, 구강 염증이 전신으로 퍼져서 만성질환을 악화시킨다. 이에 노인의학계에서는 고령자가 신체 허약으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드러눕거나, 조기 사망에 이르는 과정의 첫 출발점을 구강 노쇠로 본다. 구강 노쇠가 영양 부실을 부르고, 그것이 근감소증으로 이어지고, 결국 신체 허약으로 빠진다는 것이다. 이른바 구강 노쇠의 연쇄 체인이다. 구강 노쇠는 인지 기능도 떨어뜨려 치매 발생도 높인다.

그래픽=양인성

 

◇일본, 구강 기능 검진을 제도화

초고령사회 선배인 일본에서는 구강 노쇠를 의학적으로 구강 기능 저하증이라고 명명하고, 이를 찾아내고 진단하는 구강 기능 검진을 제도화했다. 2018년부터 건강보험으로도 적용하고 있다.

 

구강 기능 검진은 7가지를 평가한다.

①구강 위생 상태

②구강 건조

③교합력

④입술과 혀 운동 기능

⑤혀 힘이 떨어진 저설압(低舌壓)

⑥음식을 분쇄하는 씹기 능력

⑦삼킴 기능 평가 등이다.

 

7개 항목 중 3항목 이상에서 기능이 떨어져 있으면, 구강 기능 저하증으로 진단된다. 항목별 검사 장비가 도입되어 있고, 치과 의사들의 시행 교육이 활성화되어 있다. 전국 치과 병의원의 20~30%가 구강 기능 검진을 시행하고 있다. 구강 검진을 통해 파악된 구강 기능 저하 상태에 따라, 고령 환자에게 영양 섭취를 잘 할 수 있도록 덜 딱딱한 식사를 제공하거나, 물을 마시다가 사레들리지 않도록 걸쭉한 상태의 수분을 처방하여 보급한다.

 

일본은 구강 노쇠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일상 생활 속에서 구강 노쇠 가능성을 알아보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보급하고 있다. 딱딱한 음식을 먹기가 어려워졌느냐? 차나 국물을 마실 때 자주 사레들리는가? 틀니를 쓰는가? 입마름이 신경 쓰이는가? 마른 오징어나 단무지를 먹을 수 있는가? 등 8가지를 묻고 점수화해서 구강 노쇠 환자를 조기 발견하고 조기 개선에 나선다. 특이한 것은 질문 항목에 “반년 전보다 외출 횟수가 줄었는가?”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씹고 삼키고 말하는 구강 기능이 떨어지면, 여럿이 모이는 식사나 대화 자리에 참석을 꺼리게 되어 점점 사회적으로 고립된다는 의미다.

그래픽=양인성

 

◇한국형 구강 기능 검진 보급해야

 

지난해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대한노년치의학회 등은 한국형 구강 노쇠 진단 기준을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①저작 기능 ②교합력 ③혀의 근력 ④구강 건조 ⑤삼킴 기능 ⑥구강 청결 유지 상태 등 총 6항목 중 2항목 이상에서 기능 저하가 보이면 구강 노쇠로 진단한다. 하지만 이를 진단하는 표준 검사법이나 장비는 전혀 없고, 검진 시행 방법을 교육받은 치과 의사도 거의 없다. 진단 기준만 있지 진단 인프라는 없는 셈이다.

 

고홍섭(서울대치과병원 구강내과 교수) 고령사회 치과의료포럼 대표는 “일단 구강 기능 검진을 국내에서 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고, 이를 65세, 70세, 80세 등 생애 주기별 건강검진이나 노인 기능 평가에 포함시켜 제도화해야 한다”며 “현재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방문하여 치과 검진을 하는 촉탁의 치과의사를 구강 기능 검진의로 재교육시키고, 노인치의학 세부 전문 인정의를 대거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요양보험 적용 등급 판정을 받을 때도 구강 기능 검진을 넣어서 등급 판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구강 검진이 제도화되면 교합력, 저작력 등 정교한 진단이 가능한 치과 장비도 대거 국내에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구강 검진이 건강보험에 적용되어 일반인 대상 구강 기능 검진도 활성화될 수 있다. 고홍섭 교수는 “구강 건강이 전신 건강 입구이자 척도”라며 “구강 노쇠 환자를 조기에 찾아내고, 이를 개선하는 프로그램을 얼마나 활성화하는지에 따라 건강한 초고령사회가 되느냐 안 되느냐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