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프랑스 교과서에 ‘박정희 싣기’ 주장하는 세바스티앙 베르트랑 교수

해암도 2022. 12. 12. 06:37

“박정희와 드골, 국가에 대한 독특한 비전 가진 지도자”

⊙ “한국인들은 ‘사실’ 자체보다 ‘열정’에 근거해 사실을 바라보는 듯”

⊙ 육영수 여사 피격에도 의연한 박정희 대통령 모습 보면서 관심 갖게 돼
⊙ “유신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

사진=박정희 기념관

  푸른 눈의 역사학자는 20여 년 전, 미국의 한 방송사에서 방영한 〈Rise of Asia(아시아의 흥기)〉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에게 매료됐다. 이후 대학교수가 된 그는 한국 역사, 특히 박정희 대통령 연구가가 됐다. 세바스티앙 베르트랑(Sebastien Bertrand)은 교수 양성을 위해 순수학문을 연구하는 학교인 에콜 노르말 쉬페리어( École Normale Supérieure) 수료 후 2001년 역사과목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했다. 〈1918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성 요한 수도회〉라는 논문 주제로 2008년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현대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프랑스 그랑제콜 준비반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3년 만에 방한한 프랑스의 역사학자 세바스티앙 베르트랑 박사를 11월 3일에 만났다. 세바스티앙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방문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한국은 역동적”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Rise of Asia〉라는 다큐멘터리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발전에 관한 내용을 다뤘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에 관한 1970년대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내용 중에 박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가 총탄을 맞고 실려나가는 와중에도 의연한 모습으로 연설을 이어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차분할 수 있는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관심이 생겼습니다.”
 
  ― 그때의 기억이 박정희 대통령을 연구하게 하였군요.
 
  “네. 이후에 교수가 됐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할 계기가 생겼습니다. 가르치는 학생들도 오늘날 한국이 이룩한 눈부신 발전에 관심이 커서 자연스럽게 연구하게 됐습니다. 학생들과 한국 발전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그때 방송에서 봤던 박정희 대통령의 강인한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2016년이 마침 한국-프랑스 교류의 해여서 한국 주재 프랑스대사관과 함께 한국사를 연구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박정희는 한국사의 정점을 찍은 사람”
 
  ―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평가합니까.
 
  “평가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저희 같은 역사학자들은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술할 뿐입니다. 평가는 아니고 저는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사의 정점(頂點)을 찍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왜 그렇습니까.
 
  “한국은 냉전(冷戰) 이후 혼란스러운 상태였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이 냉전의 희생 국가로 전락하지 않기를 강력히 바랐던 것 같습니다. 철저한 애국자였고, 조국에 대한 자긍심이 있었죠. 한국이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국가가 되기를 바란 분이었습니다. 특히 유럽·아프리카 등과 외교하면서 한국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도록 했습니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들하고만 교류했다면 이토록 발전하지는 못했을 거라고 봅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의 방위산업이 독립되기를 바랐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 무기 생산을 독려했고, 미국이 우방국이긴 했지만 한국의 자력갱생을 추구했습니다.”
 
  ― 그렇게 보시는군요.
 
  “무엇보다 경제 부흥의 장인(匠人)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이지만, 이 시대의 한국에 어떤 경제 철학을 가진 리더가 필요했는지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확히 이 부분을 아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의 ‘하면 된다’는 정신에 무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배고픔이 무엇인지 알았던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이 배를 곯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면 된다’는 정신에 감동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

  세바스티앙 교수가 ‘무한 감동’을 받았다는 부분은 ‘민족중흥의 역사’ 중 일부로 아래의 대목이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창조적인 문화민족의 전통이 있었고, 또 우수한 인적자원이 풍부하게 있었다. 이런 자산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국민에게 강력한 자립에의 의지가 있어야 하며, 아울러 ‘하면 된다’는 자신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세바스티앙 교수의 얘기가 이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단순히 빈곤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라 교육·문화의 중흥을 이끌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입시를 없애 가난한 학생이라도 대학에 갈 수 있게끔, 대다수의 국민에게 교육의 기회를 줬습니다. 또 대한민국 국민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했고,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던 대통령이었습니다.”
 
  ― 박정희 대통령은 드골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을 좋아했습니다. 그의 리더십을 배우기 위해 1970년대 학자들을 프랑스로 보냈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죠. 박정희 대통령과 드골 대통령의 닮은 점, 차이점을 꼽자면요.
 
  “둘은 국가가 황폐해지는 것을 눈으로 본 군인이었고, 전쟁을 겪었습니다. 국가에 대한 독특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드골 대통령은 ‘내 인생을 통틀어 프랑스의 이미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한다’는 분이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5000년 역사에 대한 자긍심, 독특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국, 프랑스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통령 자리에 올랐고, 국가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했던 분들입니다. 게다가 둘은 단독적으로 독립국이 돼야 한다는 비전이 있었기에 드골 대통령은 원자력을 발전시켜 미국에 종속되지 않으려 했고, 박정희 대통령도 그러했다고 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드골 대통령이 1960년대에 프랑스를 재건한 모습에 감탄했고 연구했던 것 같습니다. 서신을 주고받을 만큼 가까웠으니 말이죠.”
 
  ― 드골 대통령이 1890년생, 박정희 대통령이 1917년생이니 나이 차가 꽤 나죠.
 
  “그렇죠. 드골 대통령은 68세, 박정희 대통령은 44세에 대통령이 됐습니다. 드골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프랑스는 어느 정도 부유한 나라였지만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비전과 용기가 있고, 실용주의적인 점이 닮았습니다. 드골은 TGV(고속철도)를 개발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었죠. 미래를 보는 프로젝트였습니다.”
 
 
  “프랑스인들은 단기간 경제 대국이 된 한국에 관심 커”
 

1963년 11월 25일 케네디 미국 대통령 진혼 미사를 올리는 성 마테 대성당을 향해 백악관을 출발하려는 박정희 대통령. 오른쪽 끝에 군모를 쓴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조선DB

  세바스티앙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 연구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민이 그에 대해 널리 알아야 한다며, 프랑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내용이 보다 깊이 있게 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 프랑스 교과서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얘기가 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 학생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어떤 모습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겁니까.
 
  “대학에 가기 위한 과정, 혹은 대학교 이후의 교과서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얘기가 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학생들은 한국의 경제 발전에 대해 관심이 많고, 오늘날의 한류(韓流)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많이 궁금해합니다. 최빈국이 어떻게 짧은 시간 안에 경제 대국이 됐는지 말입니다. 한국이 일궈낸 경제 기적은 단순히 ‘하면 된다’는 정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보다 친절히 설명해줘야 합니다. 혹자는 한국이 냉전 시대의 희생자였다고 생각하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불쾌해할 것 같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가 희생을 딛고 일어서기를 바랐던 분이니까요.”
 
  ―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의 경제 발전, 한류의 근원을 궁금해하는 줄 몰랐습니다.
 
  “프랑스인들이 한국에 대해 놀라고 매력을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청소년기에 삼성의 비디오 재생기를 이용했고, 보며 자랐습니다. 프랑스 국민은 과거에 일본 문화에 관심이 컸고, 일상 속에서 일본 문화를 쉽게 접하고 살았습니다. 저 역시 일본 문화와 함께 자랐는데 요즘의 프랑스 젊은이들은 한국 문화, BTS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적 창조성에 누구보다 놀라고 있습니다.”
 

 

佛 아티에(Hatier) 출판사 고2 교과서에박정희, 獨 방문 수록
 

1964년 12월 11일 베를린장벽에서 동독 지역을 바라보는 박정희 대통령. 이 사진은 프랑스 교과서에 실려 있다. 사진=조선DB

  ― 프랑스는 시민혁명, 68운동 등 시민운동이 가장 강한 국가 중 하나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공과(功過)가 분명한 사람으로 유신(維新) 독재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으로 평가받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프랑스인들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역사적 상황, 프랑스와의 차이점 등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한국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일어난 사실에 대해 제대로 말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역할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에 대해 많이 공부했고, 논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신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입니다. 국제적 정세, 정치적 이유, 경제적 이유 때문에 유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부분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프랑스 학생들이 배우는 아티에(Hatier) 출판사의 고2 교과서에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얘기가 일부 수록돼 있다. ‘남한이라는 분단국가의 수반이 독일을 방문해 감동을 하고 남북 대화를 추진한 것’에 대한 얘기다.
 
  “2019년 초 출간한 프랑스 아티에 출판사 역사·지리 교과서에 베를린 장벽에서 동쪽을 바라보는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프랑스 학생들은 이 교과서를 통해 당시 한국과 독일의 상황을 배우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베를린에서 미래의 한국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프랑스 학생들이 박정희 대통령이 일군 역사적 사실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제3 세계 국가들이 관심을 가진 적은 많았지만 한국보다 선진국이 관심을 보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왜 이 시점에서 프랑스인들이 박정희에 대해 알아야 할까요.
 
  “박정희 대통령은 프랑스에 대해 관심이 컸습니다. 제가 과거 그의 서재를 본 적이 있는데 프랑스 책 10권 정도가 꽂혀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드골 등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군주에 관심이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한국과 프랑스는 수교한 지 오래되어 친근함 또한 느꼈을 것 같고요. 이런 덕분인지 프랑스인들 역시 한국을 친근하게 여기고 많이 알고 싶어 합니다. ‘아시아의 작은 용(龍)’이었던 한국을 비롯해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에 관심이 많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과거 일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
 

세바스티앙 교수가 프랑스 아티에 출판사 고2 교과서를 들고 있다. 사진=박정희 기념관

  ― 박정희 대통령은 좌파 출신의 대통령이 나오면 업적이 평가절하되곤 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지지하지 않는 반대쪽 진영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분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많이 한 것으로 압니다. 좌우의 누가 권력을 잡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기억, 사실을 바로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 말처럼 쉽지 않은데요.
 
  “저는 역사학자로서 한 사람의 업적, 한 사람이 살아온 시대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은 간혹 ‘열정’에 근거해 사실을 보려고 하는데, 그런 자세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인물이든 공과가 있고, 또 개인적 성향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도자가 있죠.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온 시절은 냉전 직후였고, 북한의 위협이 여전히 높았으며 경제적으로 배를 곯아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오늘날의 시각으로 그를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겁니다. 저는 1917년생인 조부모에게 과거 프랑스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어떻게 가난을 극복했는지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분들의 영향으로 제가 역사학자가 된 것이기도 한데, 부강한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시각이 아닌 그 시절로 돌아가서 박정희 대통령을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 주위에서 프랑스 역사 공부하기도 바쁜데, 왜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을 연구하느냐는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우선 저는 프랑스 역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요(웃음). 박정희 대통령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나 할까요. 다양한 연령대의 한국 친구들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얘기를 할 때 정말 재미가 있고, 또 프랑스 친구들에게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을 소개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많은 자료, 정보를 공유해주신 분들이 있어 제가 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학자가 어떤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속한 곳이 자유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인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오롯이 사실에 근거해 더욱 잘 알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조선일보    2022,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