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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화가 지난 11월 10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월드컵대회에서 500m 세계신기록을 세운 뒤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photo AP |
이상화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500m 금메달리스트이다. 누구나 올림픽이라는 ‘꿈의 무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면 그 성취감에 휩싸이게 된다. ‘모든 것을 이뤘다’는 환희는 종종 허탈감으로 이어지곤 한다. 올림픽 후 새로운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내리막길을 걷는 선수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상화는 밴쿠버 동계올림픽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 부상 등을 모두 극복했다. 지난 시즌부터는 완벽에 가까운 무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이상화는 이번에 세계신기록을 세울 때 첫 100m를 10초21에 끊었다. 1월에 세계기록을 냈을 당시의 같은 구간 기록(10초26)보다 0.05초가 빨랐다. 100~500m 구간에서 줄인 기록은 0.01초였다. 스타트가 세계기록의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이상화는 스타트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었다. 2009년 말 37초24의 한국신기록을 세우고 3년 동안 이 기록을 깨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100m 랩타임이 10초30 안팎에 그쳐 초반 가속도를 붙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화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작년 여름 스타트 훈련에 많은 땀을 흘렸다. 캐나다 단거리 스타였던 케빈 오벌랜드(39)가 한국 국가대표팀 코치로 오면서 스타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타트 훈련은 복잡하지 않다. 선수가 허리에 탄성이 있는 튜브를 감은 채 빙판에서 달려나가면, 뒤에서 코치가 튜브에 연결한 밴드를 잡아 당겨 속도를 줄이려고 한다. 이때 선수가 밴드의 저항을 이겨내려고 힘을 쏟다 보면 자연스럽게 순발력이 좋아진다. 이상화도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방법을 썼다. 그런데 작년엔 같은 훈련으로 큰 효과를 누렸다. 근력이 좋아지면서 몸에 예전보다 강한 부하(負荷)가 걸려도 문제없이 소화했다는 뜻이다.
작년 7월 체육과학연구원이 측정한 결과에 따르면 이상화의 몸엔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체중이 65.6㎏(2010년 2월)에서 63.2㎏으로 줄었다. 허벅지 둘레는 57㎝에서 60㎝로 오히려 늘었다. 일반 남성(20~24세)과 비교하면 10㎝가량 더 굵다.
ISU(국제빙상연맹) 홈페이지에 있는 이상화의 경력을 보면 별명란에 ‘Ggul Beok Ji’라고 적혀 있다. ‘꿀벅지’의 우리말 발음을 영어로 옮긴 것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 이후 이상화의 별명은 ‘금(金)벅지’ ‘꿀벅지’로 굳어졌다. 역기를 어깨에 걸친 채 앉았다 일어나는 스쿼트 등으로 하체를 단련한 덕분이다. 이상화는 보통 140㎏, 최고 170㎏의 무게로 스쿼트를 한다. 전문 역도 선수 수준이다.
이상화의 상대근력(최대 근력을 체중으로 나눈 수치)도 334%(2011년 1월)에서 342%로 증가했다. 한때 360%에 육박한 적도 있다. 체지방을 줄여 몸을 가볍게 만들면서도 예전보다 더 큰 힘을 냈다는 의미다.
물론 이 측정치는 한창 근력 운동을 하며 몸을 만드는 도중에 나온 것이다. 시즌 중엔 많은 경기를 치르며 체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허벅지 등의 근육이 빠진다.
이상화도 ‘여자의 굵은 허벅지’ 얘기엔 민감하게 반응한다. 사실보다 과장됐다는 불평을 자주 한다. 지난 10월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D-100일을 맞아 언론 기자회견을 하면서는 “요즘은 ‘금벅지’라는 별명보다 ‘빙속 여제’가 더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또 이번 시즌을 앞두고 몸무게는 5㎏을 줄였다고 밝혔다. “요즘 단거리는 슬림한 몸매가 대세”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실제로 최근 월드컵 1차 대회에 나선 이상화의 상체는 한결 날씬해져 있었다. 이상화는 “예전엔 밤에 먹고 싶은 걸 참지 못해 음식을 일단 먹고, 다음날 운동을 해서 뺐다”면서 “이젠 훈련에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칼로리 섭취를 자제하면서 똑같은 훈련을 소화하다 보니 슬림하면서 단단한 체형으로 업그레이드됐다. 현재 몸무게는 60㎏(키 164㎝) 안팎, 허벅지 둘레는 밴쿠버 동계올림픽 무렵과 비슷한 56㎝ 정도로 알려졌다. 덩치는 작아진 대신 배기량은 커진 자동차에 비유할 만하다.
은석초등학교 1학년 때 쇼트트랙으로 출발해 4학년 때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이상화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500m에서 41초대에 진입했다. 당시 세계기록이 37초55(카트리오나 르메이 돈·캐나다)였다. 당시 이상화를 지켜본 국내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초등학생이 저렇게 잘 탈 수 있느냐”라는 반응이었다.
이상화는 어려서부터 남에게 지는 걸 싫어하고, 연습을 하다가 다쳐도 쉬는 법이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엔 동창인 모태범(24·대한항공) 등 남자 선수들과 같이 연습할 정도로 특출했다.
휘경여중 시절 이미 국내 무대를 휩쓴 이상화는 휘경여고에 재학 중이던 2004~2005시즌 월드컵 시리즈에 참가해 종합 14위, 2005~2006시즌엔 종합 5위를 했다. 만 17세 생일을 열흘 남겨 두고 출전했던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500m에선 5위를 했다. 3위와는 1, 2차 레이스 합계에서 단 0.17초가 뒤졌다.
이상화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도전자의 입장으로 출전해 ‘깜짝 금메달’을 일궜다. 본인의 바람대로 ‘인생 역전’을 이뤘지만, 올림픽 후 1년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불안과 걱정이 이어지면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2011 동계아시안게임에선 중국 선수들에게 뒤져 3위에 그쳤다.
이상화는 상담을 받고 심리 치료를 했다.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비웠다. 순위보다는 레이스에 집중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멈추는 순간 퇴보한다는 각오로 앞만 보고 달렸다.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이상화는 2012~2013시즌 시작부터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월드컵 시리즈, 월드컵 파이널, 종목별 세계선수권을 석권했다. 총 14번 500m 경기에 나서 1위를 12번 하고, 2위와 3위를 한 번씩 했다. 그야말로 ‘빙판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한국대표팀 감독을 지낸 김관규 빙상연맹 전무는 “지금의 이상화는 테크닉, 경기 운영, 컨디션 조절 능력, 노련미 등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스케이터”라고 말했다. 이상화 스스로도 “밴쿠버 때보다는 (나의) 레벨이 올라간 것 같다”고 말한다.
이상화는 운동 외엔 취미도 많지 않다. 가끔 전문 숍에 가서 네일아트(손톱 장식)를 하고, 피부 관리를 받고, 조립식 블록 완구인 레고(LEGO)를 모으는 것 정도다.
이상화가 내년 소치 동계올림픽 500m에서 우승하면 미국의 보니 블레어(1988·
1992·1994), 캐나다의 카트리오나 르메이 돈(1998·2002)에 이어 세 번째로 올림픽 2연패 이상을 달성한다. 블레어는 현역 시절 세계기록을 네 번 경신했고, 르메이 돈은 역대 최다인 여덟 번 세계기록을 바꿨다. 이상화도 ‘전설의 반열’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