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새끼 머리에 X덩이를 ‘뿌직’…코끼리의 기괴한 육아법

해암도 2022. 5. 29. 16:10

어미 배설물은 소중한 영양분 가득한 최고의 묘약
다른 짐승 배설물에서 칼슘 등 양분 취하는 동물도 적지 않 아

 

 

재작년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육중한 몸집의 어미 코끼리와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보이는 새끼 코끼리가 나란히 숲길을 가고 있습니다. 별안간 어미 코끼리의 몸 뒤쪽 끝이 마법의 문처럼 쑤욱 열리더니 몸색깔과 거의 비슷한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찰나와 같은 순간 방금 만들어진 덩어리는 중력의 법칙에 의해 땅바닥을 향해 수직낙하하죠.

 

그런데, 아뿔사, 그 뒤로 새끼 코끼리가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황토색의 덩어리는 새끼 코끼리의 머리통에 정통으로 떨어집니다. 사람으로 치면 영락없이 변태, 엽기적 아동학대로 당장 체포·기소될 사안이지만, 코끼리 세상에서는 험난한 세상에서 자식을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우려는 애틋한 모정이 본능적으로 발산하는 순간입니다.

이 암컷 코끼리는 새끼를 엽기적으로 학대하는게 아니라 건강하고 소중하게 지켜주려는 것이다. 어미에게서 막 나온 배설물이 새끼의 머리를 향해 낙하하고 있다. /Jens Cullmann/Kennedy News

 

사람에게는 그저 배설물로만 여겨지는 이 황갈색 덩어리는 생존의 묘약이거든요. 코끼리 새끼가 어미 똥을 냠냠 먹는 습성은 진작부터 포착돼왔답니다. 말 그대로 똥과 된장을 구분못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을 다 먹어치우려는 행동으로 보면 곤란합니다. 어미 코끼리의 배설물에는 생장과정에서 필요하지만, 지금 당장 갖추지 못한 박테리아가 가득하거든요.

 

이 박테리아는 각종 질병에서 새끼들을 보호해줄 면역 시스템을 가동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특히 어미가 바로 갓 생산된 따끈한 덩어리를 직접 새끼 머리위로 투하해줄 경우 면역체계 형성에 더욱 도움이 될 뿐더러 어미와 새끼의 스킨십을 좀 더 끈끈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고 하네요.

어미 코끼리에게서 배출된 배설물이 새끼의 머리통에 정통으로 맞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건강한 면역체계를 갖추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Jens Cullmann/Kennedy News

 

사실 코끼리의 똥은 모유만으로 충분하지 못한 영양분 섭취를 완벽하게 메워주는 소중한 보완재 역할을 합니다. 왜 그런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카리에가 사파리 공원 담당자의 설명을 곁들여봅니다. 코끼리의 대장에는 음식을 소화시키고 잘게 쪼개는 것을 도와주고 면역체계도 갖춰주는 박테리아가 있는데, 새끼가 이 박테리아를 자신의 신체에 장착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어미의 배설물을 바로 섭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끼는 어미젖을 먹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어미 배설물을 냠냠 먹습니다. 더구나 배설물의 75%는 물이고, 염분도 머금고 있으니, 그 자체가 훌륭한 영양식이라고 할 수 있죠. 70~80살 정도를 사는 것으로 알려진 코끼리는 인간과 생애주기가 가장 비슷한 동물 중의 하나입니다. 감정표현이 확실하고, 지능도 뛰어난 이 짐승의 도드라진 특징은 남녀유별과 장유유서 문화가 체득돼있다는 점입니다. 암컷과 수컷의 인생행로 자체가 틀립니다. 암컷은 할머니를 근간으로 한 모계사회를 이루며 새끼를 낳고 키우며 대대손손 족속이 이어준 삶의 지혜를 대물림하며 무리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반면 수컷들은 청소년 시기가 되면 무리에서 반강제적으로 쫓겨나, 또래들끼리 군집을 이루며 살다가 번식철이 될 때 암컷들과 잠시 만나서 짝짓기를 합니다. 짐승세상에서 나름 윤리와 철학이 있고, 죽은 동료를 애도할줄 아는 인간미 있는 짐승으로 이름나 있는게 코끼리입니다. 하지만 어떤 발정기의 수컷보다도 폭력적이고 괴팍하게 돌변시키는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 덩치가 작은 다른 짐승은 물론 사람과 민가를 공격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동양식은 여전히 적지 않은 부분이 연구 대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미의 배설을 새끼의 면역력 강화에 활용하는 애틋한 모정도 코끼리의 신비로운 삶의 한 부분이죠. 자신 또는 남의 배설물을 먹는 이런 행위를 영어로는 ‘coprophagia’라고 부르고, 식분증(食糞症)이라고 부릅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배설물을 먹는 ‘병’이라는 뜻이니, 비정상적인 행위로 보고 있다는 인간 특유의 시선이 깔려있습니다.

 
칼슘이 많기로 이름난 하이에나의 배설물. 뼈와 골수등을 즐겨먹는데 색깔이 다른 맹수의 그것과 확연히 다르다. /Pooseum 페이스북

 

그러나 건강을 위해서 또는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배설물을 섭취하는 경우를 찾는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토끼도 바로 자기 몸에서 배출된 말캉말캉하고 눅진한 첫 배설물을 바로 섭취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아파서가 아닙니다. 이 배설물에 미처 흡수하지 못한 중요한 영양소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먹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죠.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동글동글한 알약 같은 배설물 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2차’입니다.

 

배설물에 대한 탐닉은 단일 종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쇠똥구리 말고도 남의 배설물을 통해 생명을 강인하게 유지하는 대표적 동물이 아프리카 남부에 사는 표범무늬육지거북입니다. 이 거북이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것이 바로 하이에나의 배설물입니다. 다른 짐승도 아니고 왜 하이에나의 그것에만 몰두하는 까닭은, 살벌한 식습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이에나는 기본적으로 사냥꾼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죽은 사체도 뜯어먹습니다.

자신의 알들이 단단한 껍데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하이에나 배설물을 즐겨 먹는 것으로 알려진 표범무늬거북. /Naples Zoo

 

다른 식육목 맹수보다 월등한 치악력으로 뼈까지 오도도독 씹어먹고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을 줄 알지요. 이런 식습관 덕에 하이에나의 배설물은 그 어느 맹수의 배설물보다 칼슘이 풍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배설물을 섭취하면 훨씬 껍데기가 단단한 알을 낳을 수 있거든요.

 

사자에게 사냥당한 영양이 살코기와 내장이 제거된 채 뼈와 뿔과 남게 되면, 그걸 하이에나는 으적으적 씹어먹습니다. 그 뼛조각과 골수가 소화되고 난 뒤 배출된 배설물은 다시 거북 새끼들의 든든한 부화를 도와주는 거죠. 그 놀라운 매커니즘 속에 우리가 더럽다고 여기는 바로 그 ‘똥’이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바퀴를 우직하게 굴러가는 자연의 섭리는 정말이지 무섭도록 놀랍고 신비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