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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미국 플로리다 앞바다에 사는 산호에서 25년 동안 찾던 강력한 항암물질을 발견했다. 산호가 분비하는 항암물질은 물에 잘 녹아 먹는 약으로 개발하기 쉬울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유타대 약대의 에릭 슈미트 교수 연구진은 “플로리다 앞바다에 사는 연산호에서 항암물질인 엘류테로빈(eleutherobin)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지난 23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화학생물학’에 밝혔다. 연산호는 딱딱한 골격이 없이 부드러운 산호이다.
◇25년 만에 찾은 최강의 항암물질
엘류테로빈은 1990년대 호주의 희귀 산호에서 발견됐다. 산호는 이 물질로 천적의 세포골격을 파괴하는데, 실험실에서 강력한 항암 효과가 확인됐다. 주목나무에서 나온 유명 항암제인 파클리탁셀(상품명 탁솔)과 효능이 유사하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 뒤로 신약개발에 필요한 양만큼 엘류테로빈을 얻지 못해 연구가 발전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플로리다 앞바다에 사는 보통 연산호에서 엘류테로빈 전 단계 물질(전구물질)이 합성되는 것을 확인했다. 엘류테로빈 전구물질을 만드는 유전자도 확인해 실험실에서 대량 합성할 길도 열었다. 이는 약효 시험과 신약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돌고래가 산호에 몸을 문지르는 것은 산호에서 피부 염증을 치료하는 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제 사람도 산호의 도움을 받아 암을 극복할 길이 열린 것이다.
자연에는 약효물질을 분비하는 동물들이 많다. 최근 독사나 거미의 독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런 독성 물질은 먹잇감에 찔러 주입되는 방식이지만 산호가 분비하는 물질은 자신을 먹는 천적을 물리치는 목적이라는 점에서 먹는 약으로 개발하기 더 좋다고 설명했다.
◇항암물질 전단계 합성하는 유전자 확인
지금까지 엘류테로빈은 산호에 공생하는 생물이 분비한다고 생각했다. 연구진은 그와 달리 산호 자체가 만든다고 보고 플로리다 앞바다에서 가져온 산호에서 엘루테로빈 합성 유전자를 탐색했다.
하지만 유전자가 어떤 형태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탐색하기는 어려웠다. 슈미트 교수는 “질문도 모르면서 답을 찾는 셈이었다”며 “이를테면 요리법을 찾으려고 요리책을 펼쳤는데 한 글자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연구진은 다른 산호 종에서 유사 물질을 만드는 유전자 영역을 탐색했다. 다음에는 플로리다 연산호에서 해당 영역에 속하는 유전자들을 각각 박테리아에 집어넣고 배양하면서 어떤 물질이 나오는지 추적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연산호에서 엘류테로빈 전구물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연구진은 아직 엘루테로빈 합성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모두 찾지는 못했다. 앞으로 빠진 부분을 찾아 실험실에서 엘루테로빈 합성 과정을 재현할 계획이다. 논문 제1저자인 폴 세사 박사는 “언젠가 이 물질을 의사에게 건네주기를 바란다”며 “바다 밑바닥에서 실험실을 거쳐 병원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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