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미술계 떠난 조각가 강대철
전남 장흥에 대규모 조각굴 만들어… 7개 100m 길이, 예수·부처 등 새겨
“몬주익 마라토너像도 새겼지만… 모두 남을 위한 예술이었더라”
전남 장흥군 월암마을 사자산 기슭. 성인이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크기의 토굴 입구에 들어서니 지름 30m가량의 대형 원형 공간이 나타났다. 아치형 기둥이 돔 모양 천장을 받치고 있고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내부를 밝게 비췄다.
한쪽 벽면 조각상이 눈길을 끌었다. 나무 뿌리로 둘러싸인 석관 안에 누워있는 부처를 예수가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주위에는 허리를 굽혀야 지날 수 있는 작은 입구들이 있다. 그 안에는 총 길이 100여m에 이르는 크고 작은 토굴 7개가 서로 이어져 있다.
각각의 토굴 안에는 나무뿌리, 해골, 동물 등을 형상화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반가사유상 등 불상을 새겨 놓은 공간은 현대의 석굴암 같은 느낌이다.
대규모 ‘조각 토굴’을 만든 이는 조각가 강대철(75)씨. 21일 만난 그는 “나의 종교관을 표현하고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7년째 토굴을 파고 조각 작품을 만들고 있다”며 “계획을 정해놓은 게 아니라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토굴과 조각을 추가해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20여 년간 미술계에서 이른바 ‘잘나가는 조각가’였다. 월남전 참전 후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1978년 국전(國展) 문공부 장관상, 1998년 페루 리마 국제 조각 심포지엄 최고작가상을 받았다.
‘황영조 동상’으로 알려진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의 마라토너 동상도 강씨 작품이다. 그러나 2002년 돌연 미술계를 떠나 산중 생활을 시작했다. 지리산 생활에 이어 2005년 지금의 장흥 사자산 자락에 터를 잡았다.
“언제부턴가 저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분들의 요구에 맞춰 조각을 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돈과 명성은 얻을 수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은 이런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미술계를 떠났습니다.”
2015년 토굴을 처음 팔 때 계획은 10여 평 남짓 작은 토굴을 만들어 명상 공간으로 쓰려던 것이었다. 그런데 흙을 파다 보니 조각을 하기 좋은 지질이 이어져 나왔다. 조금씩 조각을 새기며 확장하다 보니 현재 규모가 됐다. 직접 포클레인으로 흙을 퍼내 큰 원형 홀을 만들고 시멘트로 구조를 안전하게 만든 뒤, 다시 삽과 곡괭이로 7개의 작은 토굴을 파들어갔다. 그는 “수없이 곡괭이질하고 쌓인 흙들을 밖에다 퍼나를 때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진다”며 “그 자체가 신성한 명상이더라”고 했다.
강씨는 최근 자신의 토굴과 그 속의 조각들을 소개하는 사진집과 작업하며 느낀 감상을 담은 시화집을 동시에 펴냈다. 사진집에 해설을 쓴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강씨의 토굴을 “경이로운 지하 미술관”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아직은 토굴을 일반에 공개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내 명상을 위해 만든 공간인데 대중에게 공개해 돈이나 명성을 얻으려 한다면 미술계 떠나기 이전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김영준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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