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버드대 최고 미래학자와의 대담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8년, 궁극의 질문
’무엇이 옳은가’는 생존에 시급한 물음
어제 맞아도 오늘 틀려… 옮음이 야만될 수도
인공 자궁, 기증 받은 자궁으로 잉태할 수도
’사악해지지 말자’ 사훈 삭제한 구글, 유감
옳은 일 하고 싶어하는 건전한 사람들 99%
어느 날 당신 책상 앞에 고소장이 날라와 있다. 송신인은 미래 세대다. 후손들이 미래의 법정에 당신을 소환해서 하는 질문은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할머니는 왜 그때 유전자 편집 기술을 사용하지 않아서 지금의 나에게 유전병을 물려주었나요?”
“할아버지는 왜 지각 있는 동물을 집단으로 도살하는 것을 알고도 육식 위주의 식습관을 바꾸지 않았나요?”
“억만장자 2,047명이 전 세계 극빈층의 가난을 일곱 번이나 끝낼 수 있었다는데, 안 그런 이유가 뭔가요?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의 교수’이자 ‘TED가 가장 사랑한 미래학자’로 꼽힌 후안 엔리케스는 괴물 같은 지성으로 기술과 도덕의 충돌을 낱낱이 분해한 후 구체적이고 담대한 질문이 담긴 책을 냈다.
‘무엇이 옳은가’.
도발적인 제목 그대로, 그는 미래의 윤리학자라는 포스 넘치는 캐릭터로, 우리 세대 상식의 문을 두드린다. ‘인간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 옳은가? 기술이 윤리를 바꾸는 것이 옳은가? 어제의 세계는 지금도 옳은가? 지금의 사회 구조 시스템은 옳은가?’ 궁극의 질문을 관통하는 결론은 하나다.
‘정의는 변한다’.
2014년 마이클 샌델이 하버드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구제 금융, 대리 출산 등 지금 시점의 윤리적 난제들을 케이스 스터디로 탐구해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후안 엔리스케는 IT 분야와 생명과학 분야에서 뻗어 나오는 싱싱하고 파격적인 질문을 융단 폭격처럼 쏟아부은 후, 더 큰 맥락에서 ‘성찰할 것’을 당부한다.
옳고 그름은 시간에 따라 바뀌며, 유일한 진리는 어제의 내가 틀렸다는 것 뿐이라고.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때마다 사과하고 진실의 세계를 양보하는 과학자처럼, 그가 취하는 태도는 ‘우아한 유보’다. 기술과 다양성 요구로 윤리의 골대가 변하는 와중에, 후안 엔리케스와 심도 깊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마어마한 분량의 답변을 다 싣지 못한 게 안타까울 뿐.
유전자 편집 기술부터 달라진 미국의 위상까지, 사라진 구글의 사훈부터 자율주행차의 오차 범위까지, 이토록 현란한 윤리적 딜레마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미래 세대에서 날아온 고소장이라니! 윤리가 이토록 몰입도 높은 주제였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어떻게 썼나요?
“보통은 구상에서 집필까지 6년이 걸립니다. 저는 명확한 개요와 논지 없이는 시작하지 않아요. 호기심을 발휘해서 증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글을 쓰지요. 윤리에 대해 다룬 이 책은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렸어요. 그럴 가치가 있었지만, 정말 고통스럽고 긴 시간이었어요.”
-’무엇이 옳은가’는 생명체의 역사를 관통하는 ‘빅 퀘스천’이지만, 일상적으로 던지는 나의 사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선생은 왜 이 시점에 이 질문을 던졌습니까?
“저는 많은 시간을 배우고, 생각하고, 가르치는 데 써왔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첨단 기술 분야인 합성생물학과 합성신경생물학에 투자하는 데 쓰고 있어요. 신기술의 위력을 알면 알수록, 기술이 인류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죠.
기술은 각 개인이 이 세계의 경로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갖도록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윤리와 겸허함에 대한 숙고 없이 이런 전진은 매우 위험해요. ‘무엇이 옳은가’는 우리의 생존에 매우 시급한 질문이 됐어요.”
-2014년 출간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에서 매우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습니다. 한국인은 ‘정의’보다는 ‘공정’에 예민한 사람들이라 다소 의아한 신드롬이었죠. ‘무엇이 옳은가’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정치 철학보다 더 넓은 시야를 다루고 있습니다. 2022년의 후안 엔리스케는 2014년의 마이클 센델이 던진 질문에서 얼마나 더 멀리 나아갔습니까?
“많은 사람이 스스로 옳고 그름의 차이를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일정 기간’이라면 그것을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개인이나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여기는 것은 시간에 따라 변합니다.
한때 나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을 살해하는 것이 ‘정당한’ 때도 있었어요. 카스트 제도나 봉건제 신분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공정’하던 때도 있었지요. 우리 조부모 세대가 오랫동안 정의와 공정이라고 믿었던 신념이나 행위가 오늘날 우리에게 혐오스러운 것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런데 우리 손주들이 바로 그런 끔찍한 눈으로 우리를 본다면 어떨까요? 예컨대 우리가 하루에 얼마나 오랜 시간 일했는지, 동물을 어떤 방식으로 대했는지, 또는 세계의 빈곤과 결핍을 얼마나 무심하게 대했는지 등등에 대해서요.
우리가 더 많은 생명을 공평하게 챙길수록 무엇이 정상인지에 대한 인식도 변해가겠죠. 바로 그 정상성이 당대의 법이라는 문서에 통합된 개념이 정의입니다. 그러나 윤리는 계속 진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옳음은 모두 틀렸다’고 가정하는 게 맞습니다.”
-’내가 사회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가’ 동시에 ‘우리가 타인을 정당하게 대접하고 있는가’ 이런 당대의 합의가 ‘정의’겠지요. 그런데 미래로 가서 지금의 나를 보는 방식은 마치 ‘스크루지의 여행’ 같습니다. 깊은 반성을 촉구하죠. 일종의 ‘거리 두기’ 효과인데요. 선생이 미래학자라는 점이 ‘옳고 그름’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데 더 도움이 됐습니까?
“과학 기술 트렌드, 투자 예측 등의 분야에서 앞자리에 있다 보면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산업 혁명 기술이 노예 제도라는 끔찍한 노동 시스템을 끝낸 듯이, 기술은 지금도 윤리라는 골대의 위치를 계속 이동시키고 있어요.”
-기술이 윤리의 골대를 어떤 방식으로 이동시키고 있죠?
“예컨대 우리 후손은 실험실에서 생육시킨 고기를 저렴하고 안전하게 먹고, 우리보다 한결 싸고 깨끗한 에너지를 사용할 거예요. 그래서 미래 세대는 “무슨 생각으로 지각 능력이 있는 동물 수십억 마리를 우리에 가둬 키우고 잡아먹은 거지?”라고 우리에게 따져 물을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고기를 먹는 즐거움을 포기 못 하는 저는 미래의 재판정에 소환되기도 전에 매우 찔리는 기분입니다.
“우리 후손들이 합성생물학의 세례를 받은 세대라는 점을 감안해야지요. 몇몇 전문가들은 2040년이 되면 육류의 60% 이상은 동물을 도축해서 만드는 것이 아닐 거라고 추정합니다. 미래 세대는 진짜 고기를 삼키는 행위만으로 혐오감을 느낄 수 있어요.
사실 돼지와 소와 닭 몇백억 마리를 키우고 도축하기 위해, 전 세계 곡식 절반 이상을 동물 먹이로 소비하는 지금의 시스템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요. 앞으로 대안 육류가 싸게 공급되면, 축산업자였던 할아버지를 둔 손주는 그 사실이 매우 당황스러울 수도 있어요.”
-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는 유전자 편집이지요. 상상할 수 있는 최선과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요?
“아직도 많은 사람이 치명적인 질병 가능성이 없는 한, 배아의 유전자 편집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술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도 여전히 ‘자연의 법칙에 섣불리 개입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만약 유전자 편집이 더 빠르고, 더 저렴하고 더 좋은 품질로 무엇보다 더 안전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 세상에서라면 무엇이 옳지 않은지에 대한 논리가 180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부모가 아이의 BRAC1, KRAS, 또는 P53번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었는데도 망설이다, 자녀가 암에 걸렸다면? 아이들이 부모를 원망하며 소송을 거는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겠지요. 아마도 후손들은 복제와 유전자 개선 등에 좀 더 과감할 겁니다.”
-지금의 기술은 생명의 순환에 어느 정도까지 관여하고 있습니까?
“수정란을 적극적으로 편집하는 게 아니라 원치 않는 형질이 없는 배아를 선택하는 소극적인 수준이에요. 치명적인 유전병을 예방하기 위해 제3의 부모가 가진 유전자를 태아에게 추가로 이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기증받은 안구처럼 기증받은 자궁으로 새 생명을 잉태할 수도 있을 거예요. 미래 세대는 임신 방법이 달라져서 이렇게 물을 수도 있어요.
“증조할머니는 태아를 몸에 넣고 어떻게 불편하게 걸어 다녔어요?”
그들 눈에는 출산의 고통을 참고 아이를 낳은 과거 사람들이 야만적이고 우둔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미숙아를 위해서 개발된 양수로 가득 찬 플라스틱 인공 자궁이 태초의 고향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겠지요.”
-실험실에서 뇌를 복제하고 있다는 소식도 놀라웠습니다. 장기 이식처럼 뇌 이식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인데, 이건 정말 판도라의 상자가 아닌가요?
“이미 NASA는 실험실에서 만든 인간의 ‘미니 뇌’를 테스트 삼아 우주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사이코패스의 뇌 배선을 바로 잡는 기술이 발명된다면, 사회는 사이코패스의 뇌를 강제적으로 바꿔야 할지 한바탕 거대한 고민에 빠질 겁니다.”
-우주여행을 위한 생체 변형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간다움’ ‘정체성’ 등을 위한 최후의 저지선은 어디까지라고 보십니까?
“우리 신체는 장거리 우주여행에 적합하지 않아요. 인간의 몸은 너무 연약하고, 방사능이나 열, 추위에 너무 취약합니다. 칼로리 소모도 많고, 결정적으로 지구와 가장 가까운 천체까지 닿기에도 우리의 수명은 너무 짧아요. 결론적으로 우주를 여행하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몸을 다시 설계해야만 합니다.”
-유전자 편집처럼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기다리는 첨단 기술은 또 뭐가 있지요?
“자율주행차를 봅시다. 자율주행차와 관련된 핵심 질문은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만들까’가 아닙니다. 핵심은 ‘허용 오차의 기준을 어느 선으로 정해야 하는가’죠. 10대 청소년과 노인에게 쉽게 차 열쇠를 맡기는 현행 운전면허 제도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합리적인 비용으로 더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면? 자율주행 자동차 도입 여부는 윤리 문제로 넘어가겠지요.”
-IT 기술 이야기로 넘어가 보지요. IT기술이 발달하면 필터링을 통해 거짓말은 퇴출되어야 마땅한데, 비윤리적인 가짜 뉴스는 왜 더 늘어날까요? 영화 ‘돈 룩 업’을 보면 인간은 종말에 이르고서도 ‘옳은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만 믿더군요.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이렇게 썼어요. ‘대중은 사소한 거짓말보다는 큰 거짓말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소셜미디어 시대에 의사소통은 더 파편화되고 정치인들은 커다란 거짓말과 끝없이 이어지는 거짓말의 효용을 발견했어요.
그들이 일으킨 분노는 뉴스미디어의 트래픽을 높이고 수익은 그와 비례해서 늘어나죠.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기술이 진실의 성격을 바꾸어 놓은 겁니다.”
-선생은 책에서 IT 기업이 부를 독점하고,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숨을 수 없는 디지털 감옥을 지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최근 페이스북도 내부고발 사례가 있었는데요. IT 리더들이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옳은 기준’을 만들어내야 할 중요한 시점이죠. 이런 시점에 2018년 구글이 사훈 중 ‘사악해지지 말자’를 없앤 것은 다소 충격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구글이 ‘사악해지지 말자’는 사훈을 없앤 것은 심각한 실수입니다. 물론 그것은 몹시 어려운 기준입니다. 그러나 점점 위험한 산업이라고 인식되는 기술 업계가 따라야 할 윤리적 핵심을 북극성처럼 제시한 사훈이었어요.
페이스북과 같은 거래적 세계관으로 이동하면서, 구글은 진짜 뛰어난 사람들을 끌어들일 기회를 놓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IT 기업의 상품을 사용해서 기회와 이익을 내는 것은 맞지만, 동시에 비용은 올라가고 개인의 사생활은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거대한 힘이 집중돼서 정치와 사회가 불안정해지는 만큼, ‘사악해지지 말자’는 원칙을 재생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자격은 머지않아 축소될 겁니다.”
-기술이 정체된 윤리를 혁명적으로 진전시킨 과거 사례로는 뭐가 있습니까?
“산업혁명은 수천 년간 지속돼 왔던 노예 제도를 불과 몇십년 만에 사라지게 했어요. 영국이 노예 제도를 가장 먼저 폐지한 국가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일찍 산업화했고 노예무역으로 직접 혜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죠.
1배럴의 석유는 인간이 5년 이상 쏟는 노동력과 같은 동력을 냅니다. 이 석유로 수천 마력의 힘을 낼 수 있는 기계를 가동해서 인간은 다른 인간을 사고팔지 억압하지 않고서도 한동안 더 나은, 더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아직도 노역에 가까운 노동 착취가 이루어지는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기술 발전이 더딘 지역이지요.”
-하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와 비교하면 윤리의 진화는 여전히 더디게 느껴집니다. 미국의 대법원이 서로 다른 인종의 결혼을 허용한 때가 1967년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어요. 그전까지는 인종 간의 결혼이 불법이었다니요! 제도가 문화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습니까?
“네. 다른 인종 간의 교제와 결혼은 예전보다 훨씬 일반적이에요.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속도도 아주 빠르죠.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거리에서 다양한 조합의 커플을 보더라도 이젠 아무도 놀라지 않아요.
제가 흥미롭게 보는 지점은 미래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입니다. 테크놀러지의 세례로 새로운 눈이나 팔다리를 갖게 된 사람들이, 더 나은 능력을 보이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 역시 크게 바뀌겠죠.”
-장애인이 히어로가 되는 로봇 기술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종종 봤습니다. 청각장애인 주인공들이 주연한 영화 ‘코다’가 이번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은 것만 해도 그렇고, 미국에서는 영화계가 ‘옳은 일’의 최전선에 있는 것 같더군요. 아카데미는 다양성을 받아들여서 근간엔 계급, 불평등, 소수자 영화를 전진 배치하는 경향이던데요. 창작자들이 생명 윤리, 다양성 등의 최전선에서 고발과 계몽에 앞장서는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창작자들이 세계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나’에 예민한 레이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예술가들은 보통 불의에 더 민감해요. 그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치죠.”
-종교계는 어떤가요? 모든 지도자는 윤리적 질문의 최전선에 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책임이 더 무겁습니다. 그분의 위치와 발언에 대해 코멘트를 한다면?
“다양한 성적 지향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점진적이며 미묘한 포용이 보수주의자 사이에서 분노를 일으키고 있어요. 교황은 ‘진리는 관계성의 문제’라고 발언했습니다. 단기간으로 보면 반발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교황의 이러한 개혁안들은 효과적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케네디 시대의 미국은 ‘위대한 나라’의 품위가 살아있었지만,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도덕적 퇴행을 보여준 나라로 전 세계인의 우려를 샀습니다. 미국이 앞으로 지도국가로서의 위신을 회복해서 미래를 이끌 수 있을까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 세계의 윤리적 비전은 어떻게 변화될까요?
“트럼프 정권은 미국이 지도국가로서의 지위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이용했습니다. 거대 제국의 지위가 흔들리고 경쟁 세력이 부상할 때면, 포퓰리즘과 분노가 흔하게 나타나죠. 전 세계 많은 사람이 분노에 차고 옹졸하며, 자기중심적인 미국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자동차가 갑자기 고장 나도 변함없이 도움의 손길과 따뜻한 환영을 경험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미국 사회는 여전히 놀랄 정도로 관용적이지만, 현재는 분열이 너무 큰 이익이 되기 때문에 국가 정치에 반영되지 않을 뿐이죠.
이 역설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미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열쇠입니다. 미국은 새롭게 부상하는 세계의 신흥 국가 세력과 공존하고, 교섭하며, 적응하는 방법도 배워야 합니다. 이미 예전에 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과거에서 배운 경험을 잊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죠.”
-코로나 이후 이제껏 우리를 지배하던 장벽은 무너질까요? 자연과 바이러스, 이웃과 이민자에 대해서 우리는 더욱 관대한 입장을 취할까요?
“그렇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타자화된 이들’을 탓하기가 너무 쉽기 때문이죠. 서로를 더 믿지 못하는 시기일수록, 더욱 협력해야 합니다.”
-심각하게 고민되는 지점이 있는지요?
“1950년대 이전에는 아무리 폭력적인 백만장자 소시오패스라도 지구에 사는 생명을 다 없애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게 가능해요. 핵무기가 확산하고 합성생물학이 번성할수록, 외톨이 국가의 나쁜 지도자들이 수백만의 생명을 해칠 수 있어요. 바로 그 점이 지구상의 많은 지역을 가난하고 광신적이며 화난 지금의 상태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죠.”
-질문을 바꿔보죠. 어제의 나는 오늘도 옳은가? 가치 기준이 바뀌면서 ‘내가 정의로운 사람인가’도 계속 시험받는 기분입니다. 아동 학대,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의 인권 기준도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입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깨어 있다고 자부하는 남자들조차 미래 세대가 고개를 흔들 정도의 쟁점들도 감을 못 잡고 있습니다. 계속 열어놓고 배워야죠. 현대 사회의 인간성은 진화하는 윤리에 의해 지속해서 업데이트됩니다.”
-선생은 대체로 ‘법 제도계(nomos), 자연계(physis), 기호계(semiosis)’라는 3개의 범주에서 제도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법 제도 속의 인간은 자연계의 생명 법칙에 관여하면서 ‘윤리’의 딜레마에 빠지고, 기호계의 예술가들은 그것을 고발하고 성찰합니다. 윤리가 진화한다는 것은 제도 안에서의 진화를 말하는 거겠지요?
“그렇습니다.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수록 우리는 다양한 제도의 문명과 정부, 산업을 만들 수 있죠. 각각의 범주가 선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산과 빙하 등 자연에도 법인격을 부여해서 보호하는 지구법학도 활발하더군요. 하버드대에서 강의할 때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칩니까?
“제가 강조하는 것은 ‘삶의 코드를 읽고 쓰는 능력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입니다. 인간은 점점 진화를 통제하면서 초인적인 힘의 소유자가 되어갑니다. 훌륭한 SF 작품들이 지적하듯, 창조 그 자체를 통제하는 힘을 갖게 될 때를 가정하고 준비해야죠.
제 수업의 핵심은 총명하고 문명적인 미래 세대가 ‘자신들이 언제든 틀릴 수 있으며, 지금이 아니더라도 훗날 옳지 않다고 밝혀질 수 있다’는 점을 납득시키는 겁니다. 이전 세대를 조금 더 겸허하고 용서가 담긴 시선으로 볼 수 있도록. 더 미래의 세대도 이와 같은 호의를 베풀 수 있도록 말이죠.”
-좀 뜬금없긴 하지만, 선하다와 옳다를 어떻게 달리 해석하나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신이시여, 당신의 가장 신실한 신도로부터 저를 지켜 주십시오’. ‘옳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 십자군 전쟁이 가장 선하지 않은 결말을 맞았어요. 아이러니죠. 선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토록 임의적입니다.
‘선하다’와 ‘옳다’가 과열되지 않는 최선의 저지선은 가치 판단을 유보한 ‘존중’입니다. 그래야 선의와 정의의 이름으로 잉태되는 제3의 분쟁과 혐오를 피할 수 있습니다.”
-선생은 이 책 ‘무엇이 옳은가’를 통해 윤리의 범주에서 종교를 분리하고, 기술과 문명 진화의 차원에서 접근했습니다. 종의 다양성, 생태계 균형, 이타적 유전자 등을 기반으로 인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큰 배움을 얻었어요. 미래 세대의 시선으로 자신을 관찰하다 보면 지금의 자리가 끝없이 상대화되더군요. 한편 성경은 선악과와 십계명과 산상수훈을 비롯한 과거 인간 행동의 수많은 윤리적 실패와 그를 예비한 신의 플랜B를 보여주는 궁극의 케이스 스터디지요. ‘시공간의 제약으로 선할 수 없는 인간’과 시간 너머에서 계도하는 ‘선한 전능자’의 구원의 서사는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옳은 것은 누구인가’에 대한 영감을 줍니다. 이렇게 미래와 과거로 ‘윤리 여행’을 하다 보면, 유한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옳은 것은 결국 ‘더 큰 맥락 속에 나를 던져보는 태도’ 그 자체라는 보편적 합일점에 이르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바로 정확하게 요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옳다’고 단정하는 대신 스스로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해야 합니다. 새로운 기술이 우리가 현재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자체를 계속 바꾸고 있어요. 과거를 조금 덜 엄격하게 판단할 수 있으면, 현재 우리의 확신도 경계할 수 있을 겁니다.”
-내 자식이 나를 어떻게 볼까? 후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가정만으로 우리는 더 윤리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더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라는 인식 그 자체죠. 그래서 아이들을 교육할 때도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는 점’을 가르쳐야죠. 동의하지 않아도 존중하는 태도로 들어야 한다고요.
본능적으로 아이들은 어른보다 타인에게 더 관용적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장애인이나 이민자, 성소수자에게 더 발전된 생각을 갖고 있죠. 인류에겐 점점 희망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옳고 그름’에 예민한 한국인들에게 더 나은 성찰을 위한 조언을 부탁합니다.
“나쁜 소식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세대 간 갈등과 윤리적 격변은 지금보다 더욱 심화할 거라는 겁니다. 좋은 소식은 세상 사람들의 99% 이상은 단지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건전한 사람입니다. 나와 정반대의의견을 가진 집단일지라도 그 개별적 인간성을 인식하세요.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각성해서 올바른 존재가 될 수는 없어요. 그러니 특정 잣대에 얽매이지 말고 연민, 겸손, 진실함으로 대화하세요. 끔찍한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품위 있는 인간들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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