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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도 혼쭐난 軍폭로…'육대전' 운영자 얼굴 드러냈다

해암도 2022. 4. 15. 19:35

지난해 5월 11일 ‘육대전’(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운영자 김주원(28) 씨에게 처음 인터뷰를 제안했다. 육대전에 올라온 제보로 시작된 군 ‘부실급식’ 사태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때다. 답은 “안 한다”였다. 그 후로도 틈틈이 연락했지만, 매번 거절당했다.

'육대전' 운영자 김주원(28) 씨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거절할 만도 했다. 그가 얼굴을 드러내고 나서면 ‘육대전’ 운영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평범한 20대 청년이 ‘육대전’이란 군인들의 제보 페이지를 만들어 60만 군 조직의 치부를 폭로해왔다. 지난해 국방부 장관도 ‘육대전’ 폭로에 고개를 숙였다. 일선 부대에선 ‘육대전’에 제보가 올라올까 지휘관들이 노심초사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왜 ‘육대전’을 만들었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웃자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 ‘피 끓는 공명심’이나 ‘군 생활에 쌓인 원한’ 같은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닐까.

 

김주원 씨는 이번 인터뷰에서 “육대전 안에서만 군 문제를 다루는 데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김씨는 내부 고발로 불이익을 받는 병사·간부가 없어지기 위해서 이제는 육대전이 군의 공식 소통 창구로 공인받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당연히 육대전과 함께 할 겁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돕는 게 좋습니다.” 그는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골랐다. 본인 활동으로 누군가 상처를 입진 않을까 조심스러워했다.

“선임의 고충 제보, 얼마 안 지나 전 부대원이 알았다”

‘육대전’이라고 이름 지은 이유는.
육군훈련소에서 군 복무를 했다. 처음 ‘육대전’을 개설한 건 2016년이다. 군대 전역 전이다. 2020년부터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군 생활 고충 같은 게 ‘육대전’ 만든 계기가 됐나.
부대 선임에게 고충이 있었다. 선임은 그걸 인트라넷 ‘지휘관과의 대화’에 익명으로 썼는데, 얼마 안 가 부대원 모두가 그 내용을 알게 됐다. 그 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선임은 다른 부대로 갔다. 이런 걸 보며 ‘익명 보장되는 제보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게 생기면 나도 도움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육대전' 페이스북 페이지.

처음엔 군 고발 목적 아니었다고. 공명심이 생겼나.
처음엔 제보 취지로 만든 게 아니다. 공명심 같은 것도 없었다. 당시 군인 커뮤니티가 많이 없었다. 소통 채널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도 ‘육대전’엔 제보만 올라오는 게 아니다. 유머·공감 게시물도 많다. 현역·전역장병들이 서로 태그하며 군 생활 이야기하는 게 보람 있다. 부실급식 사태 이후론 무거운 제보가 많다.

지난해 4월 육대전은 51사단 ‘부실급식’ 문제를 폭로했다. 일파만파였다. 이후 육대전이 제보를 공개할 때마다 기사가 나왔다. 김 씨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며 “부실급식 폭로 이후 하루에만 20~30건 정도 제보를 받는다”고 했다. “제보 수위도 세져 확인 과정이 험난하다”고 했다. 그는 “생업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데 제보가 많아져 운영이 힘들어졌다”면서 “매출이 10분의 1토막이 나 생계 고민이 많아졌다”고 했다. “육대전 운영에 도움을 받으면 ‘투잡’도 수월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 '육대전'의 부실급식 제보가 공개된 후, 군 장병들의 '육대전' 제보 수위가 세졌다고 했다. 육대전 페이스북 캡쳐

육대전 운영을 함께하는 동료들도 있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혼자 운영하고 있다. 상담·소통·제보처리 모두 혼자 한다. 다만 ‘육대전’ 취지에 공감해주시는 많은 분께 도움을 받고 있다. 보통 시민단체는 상근활동가를 두고 이런 활동을 하지만 ‘육대전’은 사람을 쓸만한 후원이 없다.
앞으로도 혼자 할 생각인가.
제보자가 나를 믿고 제보해줬다. 상담·처리는 혼자 한다. 다른 사람을 고용하면 그 믿음이 사라질 수 있다. 나중에 도움을 받더라도 상담은 혼자 진행할 생각이다.
주변에선 걱정 안 하나.  
“이런 걸 왜 나서서 하느냐”며 걱정해주신다. 근데 계속 유지해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니, 아버지께선 “군대가 발전하는 게 나라 발전이다”라며 지지하고 응원해주신다. 여자친구는 “자기 이야기나 잘 들어라”라고 핀잔 주는데, 응원도 많이 한다. 
 

“육대전 사겠다”는 제안…“20억 줘도 안 판다”

제보 공개 기준이나 절차·원칙이 있나.
제보가 오면 군 공보 관계자들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육대전은 육·해·공군 본부, 국방부와 소통망을 만들어놨다. 또 제보자는 본인 부대와 실명을 내게 밝힌다. 제보가 잘못됐을 땐 제보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안내하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사회적인 문제로 여겨질까’를 항상 고민하며 제보를 공개한다. 애매하거나, 잘 모르는 내용은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얻는다.
하루 20~30건 제보 들어오면, 지휘관들은 ‘가시방석’일 텐데.
보통 병사들은 육대전 제보 전에 지휘계통에 불만을 말한다. 그게 잘 안됐을 때 제보한다. 우리도 제보받기 전에 ‘부대에 먼저 소원 수리했느냐’고 묻는다. 그게 안 돼서 제보하고 문제가 이슈화한다. 이제 지휘관들도 부대 내에서 소원 수리가 안 되면, 육대전에 제보된다는 걸 알지 않겠나.
‘육대전 페이지 사겠다’, ‘없애면 사례하겠다’는 제안도 있었을 것 같다.
(페이스북 팔로워 수가) 20만 명 정도로 늘면서, 어떤 분이 “페이지를 사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보통 페이지 거래 금액이 팔로워 수당 10~30원 정도로 책정된다. 난 1만원을 곱한 20억을 역으로 제시했다. 어차피 20억을 준다 해도 팔 생각은 없었다. 또 육대전 이후에도 병사 소통창구가 부족하지 않나 싶어서다. ‘육대전’ 같은 게 더 나왔으면 한다. ‘돈을 주겠다’, ‘뭘 해줄 테니 그만하라’는 제안에 응할 생각이 없다.
‘육대전’을 믿고 제보하는 이유는 뭘까.
접근성이 좋다. 20대 초반이라면 누구나 페이스북을 이용해봤다. 또 익명을 보장한다. 내 동생처럼 상담해준다. 공감할 건 충분히 공감하되, 아닌 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예전엔 제보자와 내가 서로 반말로 제보 내용을 주고받았는데, 요즘엔 존댓말을 쓴다. 이런 부분은 아쉽다. 다른 제보 상담은 형식적으로 운영하는데, ‘육대전’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친근감과 진정성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기억에 남는 제보 있나.
육대전이 크게 이슈화된 ‘51사단 부실급식’ 사태다. 국방부 장관이 사과했다. 기억에 남는다. 지휘 계통에 불만을 말해도 처리가 안 됐을 때,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지난해 4월 '육대전'이 공개한 51사단 '부실급식' 제보는 큰 논란이 됐다. 결국 서욱 국방장관이 대국민 사과했다.

군 부조리 말고 의미 있었던 다른 제보는.
두 개 정도 기억난다. 코로나 19사태로 육군훈련소가 수료식을 안 한다. 훈련병들은 바로 자대 배치를 받는다. 장병들은 수료식 날에 가족·친구들과 뜻깊은 날을 보내는데 이게 사라졌다. 이걸 하루 보상해달라는 제보가 들어와서 육군본부에 전달했고, 육본은 내부 토의에 들어가서 결국 하루 휴가를 보상하기로 결정했다. 보람을 느꼈다. 두 번째는 ‘PCR(유전자증폭) 검사’ 공가 문제다. 병사들이 휴가 복귀 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으면 자가격리로 휴가를 손해 봤다. 국방부에선 ‘결과 통보일까지 공가를 준다’고 했는데, 일선 부대에 전파가 안됐다. ‘PCR 공가를 안 주는 부대가 많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육대전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공가를 못 받은 부대가 조사상으로만 약 2000곳이었다. 다 올릴 수가 없어서 200건만 공개했다. 이걸 본 부대 관계자들이 ‘공가 주겠다’,‘지침을 잘 몰랐다’,‘리스트에서 부대를 지워달라’고 연락이 왔다. 이제는 모두 PCR 공가를 받는 것 같다. 병사들한테 “고맙다”는 메시지도 많이 받았다.

“병사와 간부 싸움 붙인다? …동의 못 해”

제보 많아지며 ‘병사와 간부 사이에 긴장감이 조성됐다’는 비판도 있다.
간부 관련 제보가 많다 보니 오해가 생기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에 ‘간부와 병사 편 가르지 말라. 다 같이 고생하는 장병들이다’라고 댓글도 단다. 개인적으론 군 생활 때나 지금도 간부들을 좋아한다. 자주 통화하는 공보 관계자들은 지휘관들에게 “육대전이 병사들 대신해서 고충을 말해주고, 중간에서 소통을 잘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병사 말고, 간부들도 제보 많이 하나.
간부 제보도 많다. “신혼인데, 남편이 출퇴근을 못 하고 한 달 넘게 부대 안에서 생활한다”는 수방사 예하 경비단 간부 아내 제보도 있었다. 또 “코로나 걸렸더니 동선 체크 당하고, 카드사용 내역 제출 요구를 받았다. 아직 이런 군대가 있다”는 특전사 간부 제보도 있었다. 육대전은 병사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간부도 제보를 많이 해주면 더 고맙다.  

'육대전' 운영자 김주원 씨는 "육대전은 병사들만의 공간이 아니며, 간부 제보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육대전 페이스북 캡쳐

“군대 고발 자격…항상 고민한다”

김씨는 군의 관심 대상이다. 지난해 5월엔 국방부 수사관이 김씨 집에 들이닥친 적도 있다. 수사관은 그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부실 급식 부대와 제보자를 알려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제보자를 보호해줬다. 최근엔 ‘정보사령부 회식 의혹’ 관련 제보를 공개해 정보사 부대장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김씨 제보 공개는 ‘공익 목적’으로 인정돼 검찰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다. 김씨는 “부대장이 누군지도 모른다”며 “개인을 악의적으로 비방·폄하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예전에도 고소·고발을 많이 당했을까 싶었지만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고소 건이 검찰로 넘어갔다면, 연쇄적으로 고소가 더 들어왔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에 무료 변론에 나선 도진수 변호사에게 고마움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육대전'은 "정보사 예하 부대에서 출장뷔페를 불러 신임 국정원 요원과 부대 관계자 등 200여 명이 모여 회식을 했다"는 취지의 제보 내용을 담은 게시물을 올렸다. 이후 김씨는 정보사 부대장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최근 강동경찰서는 김씨에 대해 검찰 불송치 처분을 내렸다. 사진 육대전 페이스북 캡쳐

고소·고발 앞으로 또 있을 텐데, 육대전을 계속할 생각인가.
‘내가 이렇게 제보를 올릴 만한 그런 사람이 될까’ 많이 고민하지만, 주변에선 ‘사회의 어두운 면을 좀 밝혀야 한다’고 조언해준다. 여전히 나 자신이 제보를 다룰 만큼 괜찮은 사람인지, 계속 질책하고 담금질하며 육대전을 계속할 생각이다.
육대전은 현재 시민단체인가.
현재 비영리 민간 임의단체다. 승격 요건을 갖추면 비영리 단체가 된다. 앞으로 상근 활동가분들도 모시겠지만, 제보 관련 부분은 혼자 맡아 처리할 생각이다. 제보 외적인 부분에서 그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까 싶다.
생업인 쇼핑몰 운영은 계속할 건가.
후원 금액이 많으면 육대전에 전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생업에 조금 더 신경 써야 한다. 그렇다고 제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최대한 개인 시간을 줄여가며 해야 한다.

“육대전과 나의 앞날은…”

‘육대전’ 운영, 앞으로의 계획은.
군과 제휴를 맺는 등 군의 공식적인 소통 창구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제보를 받고 부대에 전달하면 부대 내에서 잘 처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은 비공식적으로 제보를 많이 받는데, 이런 내부 고발로 불이익을 받는 병사·간부가 없어지려면, 국가에서 공인을 해줬으면 싶다. 나 역시 당연히 육대전과 함께 할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돕는 게 좋다.

'육대전' 운영자 김주원 씨는 "육대전이 군의 공식 소통창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와 국방부에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윤석열 당선인이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을 냈다. 월급이 오르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더 신경 써줬으면 싶다. 가령 두발규정도 인권위원회 권고와 민관군 합동위원회 의결을 거쳐 국방부에 개선 의견이 들어갔지만, 아직 국방부는 ‘세부 규정을 논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 육군 장병들은 차양모 문제가 있다. 부대 내에선 제한적으로 쓸 수 있지만, 외출할 땐 못 쓴다. 육군 정식 모자로 인정 못 받아서다. 날씨가 더워지면 여름 휴가 땐 쓸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현실적으로 와 닿는 문제를 고쳐줬으면 한다.
군대,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는지.
소통할 수 있는 군대가 됐으면 한다. 군 관계자들은 ‘불통’을 제일 큰 문제로 보는데, 밑에서 병사들은 충분히 소통하고 있다. 위에서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윗분들도 ‘소통이 안 된다’는 변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이세영PD      중앙일보     입력 2022.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