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우크라 전쟁 오래 안 갈듯…푸틴 치명타 입을 수도”

해암도 2022. 4. 1. 19:19

세계적 전쟁 권위자 로런스 프리드먼 교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 달을 넘어섰다. 뜻밖이다. 우크라이나가 잘 버티고 있다. 러시아는 고전하고 있다. 양쪽의 평화협상도 진행 중이다. 타결되는 듯했으나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결국 장기전으로 가는 것일까? 최후의 승자는 어느 쪽일까? 전쟁 이후 세계는 어떻게 될까? 요즘 비즈니스 리더와 투자자 등이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경제 전문가나 투자 고수 등이 속 시원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전쟁은 팬데믹처럼 경제 외적인 변수(exogenous variable)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전쟁·전략 전문가인 로런스 프리드먼 영국 런던대 킹스칼리지 석좌 교수를 줌(Zoom)으로 인터뷰한 이유다. 프리드먼 교수는 『전쟁의 미래』와 『전략의 역사 1, 2』 등을 썼다.

 

1차대전식 소모전은 양측에 부담

푸틴이 유야무야 끝낼 가능성 커

시간 끌수록 러시아 약점만 노출전쟁 지지한 세력도 큰 상처받아

북한은 세계서 가장 퇴행적인 곳제재와 당근, 장기적인 전략 필요

 

러시아군 사기·보급 모두 추락

로런스 프리드먼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상태인가.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의 장군들이 처음 세운 작전계획대로 되고 있지 않은 듯한데?

“작전계획에 전혀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푸틴과 그의 장군들은 공격 개시 2~3일 안에 수도인 키이우와 북동부 중심지인 하르키우 등 주요 지역을 점령하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러시아군의 보급과 사기, 무기 상황 등 모든 게 문제투성이다.”

 

최후의 승자는 어느 쪽일까.

“우크라이나 사태는 군사작전으로나 외교 담판으로 끝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푸틴이 선뜻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결국 푸틴은 제3의 길을 선택할 전망이다. 바로 시간을 끌어 사태가 유야무야되도록 할 가능성이 있다.”

 

민간인 피해가 급증하고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장기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유야무야가 장기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 우크라이나 시민과 군은 사기가 높다. 반면 러시아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수적으로 우세하다. 우크라이나 주요 거점을 놓고 치열하게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사이 평화협상 등 외교적 움직임도 보인다. 내가 보기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1차대전 참호전처럼 교착상태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 경제적으로 힘들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오랜 기간 버티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1차대전은 1914년 7월에 시작됐다. 전쟁 첫해 독일군이 기세 좋게 프랑스 파리 근처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참호를 파고 공방만을 이어가는 교착상태가 1917년까지 이어졌다. 1차대전은 소모전의 대명사다. 병사 900만 명 이상이 숨졌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는 올바른 방향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고전하고 있다. 사진은 우크라이나군이 동부 도시 트로스얀네츠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낸 뒤 28일 시내로 진입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푸틴 축출을 시사했다. 이번 전쟁으로 푸틴이 권좌에서 밀려날까.
“우크라이나와 전쟁이 러시아엔 재앙과 같아 푸틴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현재 상황이 러시아군에 너무나 치욕적이다. 러시아군, 그들이 누구인가. 2차대전 때 히틀러 군대를 물리쳤다는 자부심이 강한 세력이다. 푸틴의 권위는 이번 전쟁을 비판하며 거리 시위를 벌이는 러시아 시민뿐만 아니라 전쟁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푸틴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보는 세력에 의해서도 위협받을 수 있다. 다만, 푸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축출될지는 현재 알기 어렵다.”
 
글로벌 정치지형에서 푸틴의 상대인 바이든이 지금까지 보여준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바이든은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제재하면서 우크라이나를 돕고 있다. 올바른 방향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현재 미 대통령이라면 바이든만큼 푸틴을 압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그 바람에 중국 리더들이 대만 등 이웃을 공격해도 미국이 군대를 직접 파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까.
“미국에는 대만보호법이 제정돼 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 관계다. 미국의 대응이 대만이나 동맹인 한국,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폴란드가 공격받았을 때와 우크라이나 침공받았을 때 다를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동맹이 아니다.”
 
G2인 미·중이 국제정치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맞서는 와중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졌다. 이번 전쟁이 주요 강대국 사이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전쟁 이후 상당 기간 다른 전쟁을 벌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너무나 많은 약점이 노출됐다. 러시아가 더 이상 강대국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중국의 정치인과 군사전략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들이 이번 사태로 얻을 교훈은 ‘아주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전쟁도 여차하면 최악의 전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이번 전쟁 주목하는 이유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등으로 러시아 탱크를 효과적으로 부수고 있다. 기갑부대의 무용론이 커지고 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공격 헬기가 등장할 때 탱크는 더 이상 쓸모없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그러나 탱크를 중심으로 한 기갑부대가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공중과 지상 엄호부대의 지원을 받는 진용을 갖춰 기갑부대를 운영했는지가 핵심이다. 러시아는 엄호부대 없이 기갑부대를 앞세우다 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직후 많은 기업이 경제제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최근 30~40년 동안 국제관계에서 유지되온 ‘경제 우선’ 대신 ‘안보 우선’ 트렌드가 힘을 얻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세계화 흐름이 끝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팬데믹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다. 기업인들이 잊고 지낸 전쟁이란 리스크가 되살아났다.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고민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팬데믹 이전까지 글로벌 공급망은 늘 작동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지금은 전염병이나 전쟁 등 비즈니스 리더들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의해 공급망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를 늘 해야 하고, 돈을 들여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제 글로벌 공급망은 고효율-저비용 시스템이 아니다.”

러시아 국민, 푸틴에 등돌릴 수도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제재하고 있다. 이제 러시아가 글로벌 경제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인가. 한국 기업은 전쟁이 빨리 끝나 러시아와 교역을 다시 하고 싶어한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평화협상에서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푸틴은 철군 등의 조건으로 제재 해제를 내걸 가능성이 크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제재를 푸는 데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미국은 푸틴을 권좌에서 밀어내기 위해 경제제재를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유럽은 부분적으로 제재해제를 원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산 에너지와 원자재 등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제재의 부분적 해제는 가능하다.”

프리드먼 교수는 “미국과 유럽이 경제제재를 이어가면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자존심이 상한 러시아인들이 푸틴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제재가 너무 가혹하면 러시아 국민이 푸틴을 중심으로 뭉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느 정도 고통을 줘야 러시아 국민이 푸틴한테서 멀어질지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험했다. 전략 전문가로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면.

“아주 고립적이고 퇴행적인 곳이 북한이다. 당장 북한 내부에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변화시킬 카드가 거의 없다. 차라리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북한이 핵을 가졌다는 사실을 한국과 미국이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당근을 제시하는 전략만이 남아 있는 듯하다.”

 
 

로런스 프리드먼 교수

전쟁과 군사전략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영국 맨체스터대와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했다. 국제전략연구소(IISS)와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런던대 킹스칼리지 전쟁센터 석좌교수다. 그는 2009년 이라크 전쟁의 공식 조사단으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는 국내에 번역·소개된 『전쟁의 미래』와 『전략의 역사 1·2』 외에도 『전쟁 억지력』 『걸프전』 『전략 연구의 변화』 『냉전』 등이 있다. 프리드먼 교수는 『적들의 선택: 미국이 직면한 중동 세계』로 2009년 뛰어난 논픽션 작품에 주는 라이오넬 겔버상을 받았다. 『전략의 역사』는 2013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에 올랐다.

 

 

강남규 S팀 기자  중앙일보     입력 2022.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