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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가들이 만든 탄소중립안, SF영화에도 나오지 않을 기술”

해암도 2021. 10. 4. 08:26

[이영완이 만난 사람] - 탄소중립위 시나리오 비판에 앞장서온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지난 8월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이어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순배출량 대비 35% 이상’으로 명시한 ‘탄소중립기본법’까지 통과했다. 이에 따르면 당장 올해부터 매년 2402만t씩의 탄소를 줄여야 한다. 현대제철이 1년간 배출하는 양(2224만t)보다 많다.

 

하지만 정부의 탄소 감축 계획은 허황된 공상과학(SF)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국 61개 대학의 교수 225명으로 이뤄진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는 정부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대해 “실현 가능성에 대해 숙고한 흔적이 전혀 없는 졸속 계획이자 비과학적 선동”이라고 비판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탄소중립은 기술 혁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며“과학적 근거 없는‘무탄소 신전원’대신 탄소 배출 없는 원전으로 재생에너지를 보완하자”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에교협 공동 대표인 이덕환(67)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는 지난 1일 서울 성수동 개인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정부의 탄소 중립 시나리오는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 없고 경제적으로 국가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비현실적인 계획”이라며 “친환경과도 거리가 멀어 탈원전 기조를 고착화시키려는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기관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과 산업기술연구회 이사 등을 지냈으며, 과학 저술로 과학기술 대중화에 앞장선 과학자이다.

 

-정부의 탄소 중립 계획에 무슨 문제가 있나.

기술에 대한 비전이 전혀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탄소 중립은 기술 혁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핵심인 발전(發電) 부문을 보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전원의 70.8%를 차지한다. 그런데 태양광과 풍력은 햇빛이 강한 낮이나 바람이 불 때만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간헐성, 변동성을 보완할 수단이 제시되지 않았다.

 

-재생에너지 발전이 안 될 때는 다른 데서 보완할 수 있지 않은가.

현재는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이 그 역할을 한다. 필요하면 5분 안에 가동해 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소 감축을 위해 화석연료를 쓰는 발전은 배제됐다. 반면 수소로 전기를 만드는 연료전지는 2050년에 비중이 1.4%에 그치고, 원전도 6.1%이다. 나머지 21.4%를 차지하는 이른바 ‘무탄소 신전원’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전원을 보완책으로 제시했는데 화학 전공자로서 뒤집어질 정도로 경악했다. SF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해괴한 기술이다.

 

-탄소 배출 없이 전기를 생산한다면 좋은 일 아닌가.

무탄소 신전원이라는 수소 터빈은 수소를 산소와 함께 연소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수소를 어디서 가져올지 전혀 대안이 없다. 현재 제철공장이나 정유공장에서 나오는 부생수소는 양도 적고 비료화학공장에서 전량 소모된다. LNG를 뜨거운 수증기와 반응시켜 만드는 개질 수소도 마찬가지다. 개질 과정에서 생산하는 수소의 10배가 넘는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그보다 LNG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훨씬 더 친환경적이다. 결국 태양광·풍력·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를 뽑아내면 친환경이라고 하는데, 전기를 사용해 생산한 수소로 다시 전기를 만들겠다니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수소가 포함된 암모니아를 이용한 발전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암모니아 발전은 더 황당하다. 암모니아도 자연에 대량으로 존재하는 천연자원이 아니다. 지금처럼 비료 공장에서 질소 고정 기술로 암모니아를 만들려면 엄청난 전기가 들어간다. 또 암모니아의 연소열은 천연가스의 34%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열량을 얻으려면 천연가스보다 3배나 많이 태워야 한다. 암모니아는 인체와 환경에 독성이 매우 강한 휘발성 물질이고 대기에 노출되면 초미세 먼지를 만든다. 기후 위기를 얘기하면서 효율도 낮고 대기오염을 유발할 수 있는 암모니아로 전기를 만들겠다니 말이 안 된다.

 

지난 8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대안)이 통과됐다. /국회사진기자단

 

 

-태양광·풍력 발전이 가능한 시간에 만든 전기를 저장해둘 수도 있지 않나.

정부 목표대로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태양광·풍력으로 생산한 전력을 저장하기 위한 에너지 저장 장치(ESS) 구축에만 최대 1248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탄소중립위원회 내부 검토 결과로 확인됐다. 그것도 10년마다 교체해야 한다. ESS는 리튬이온배터리로 결국 탄소(흑연 음극) 덩어리이다. 배터리 만들면서 막대한 탄소를 발생시킨다면 발전소에서 탄소를 줄이는 게 의미가 없어진다. 태양광발전을 위해 서울시 면적의 10배가 더 필요하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전력 생산 외 다른 주력 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는 말이 나온다.

철강산업이 대표적이다. 제철 공정은 용광로에 철광석, 즉 산화철을 넣고 산소를 떼 내 철만 남기는 것이다. 코크스가 바로 산소를 떼 내는 환원제 역할을 한다. 탄소 덩어리인 코크스를 쓰지 말자고 용광로를 전기로로 대체할 수는 없다. 전기로는 열을 높여 고철을 녹일 뿐이지 철광석을 환원시킬 수 없다. 코크스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쓰자는 이른바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은 전 세계에서 어디에서도 상용화되지 않았다.

 

(일본 철강연맹은 수소 환원 제철이 상용화되는 시기를 2100년으로 잡았다.)

 

-다른 산업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석유화학산업은 화석연료를 원료로 쓰니 당연히 탄소 중립으로 산업계가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정부 탄소 중립 시나리오는 석유에서 나오는 원료인 나프타를 바이오 원료로 바꾸라고 제시했다. 나프타가 에너지원이면 몰라도 소재라는 점에서 검증 안 된 바이오 원료로 대체할 수 없다. 또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도 화석연료 대신 폐플라스틱을 태우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플라스틱도 화석연료에 나온 물질이다.

 

-정부의 탄소 중립 계획에 왜 기술적 비전은 없는가.

교양 서적 몇 권 읽은 과학기술 문외한들이 모여 논의를 하다 보니 대안이 모두 검증되지 않은 미래 기술밖에 없다. 만약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비전이 있는 기술을 제시했다면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췄을 것이다. 이를 테면 핵융합 발전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가 공동으로 핵융합 발전소를 개발하고 있지만 원전과 비슷한 기술로 봤는지 빠졌다. 신형 원전 기술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의 독특한 반기술적 정서를 반영한다.

 

-원전은 탄소 중립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원전은 기본적인 전력 수요를 감당하는 기저 전원이면서 태양광·풍력 발전의 간헐성, 변동성을 보완할 수 있다. 원전은 탄소도 배출하지 않지만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서 역할이 없다. 태양광·풍력 발전 기술의 발전만 전망하고 안전성이 강화된 토륨 원전, 소형모듈원전(SMR)의 가능성은 언급하지 않았다. 원전은 안전해서가 아니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으므로 탄소 중립의 중심에 서야 한다. 원전이 위험하다면서 수출산업으로 키우자는 것은 자가당착 아닌가.

 

-정부는 탄소 대신 수소로 세계경제를 이끌 수 있다고 한다.

정부는 수소가 우주의 75%를 차지하는 청정 에너지원이라고 한다. 맞는다. 그런데 태양 같은 항성에 다 있다. 6000도 이상 뜨거운 별에서 누가 수소를 가져올 것인가. 지구에서 수소는 다 탄소, 산소에 붙어있어 희귀 자원이다. 결국 수소는 일차 에너지가 아니라 전기에너지, 열에너지를 투입해 만드는 이차 에너지이다. 우리가 세계 수소연료전지의 43%를 공급하는 수소 강국이라지만 시설 용량은 600메가로 원전 1기 절반에 불과하다. 수소차도 대부분 내수시장에서 팔렸고 아직 폭발 위험, 연료전지 효율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래도 탄소 중립으로 가는 것은 세계적 대세 아닌가.

기후 위기가 아니더라도 화석연료가 한정된 자원이어서 고갈 위기가 있고, 화석연료 사용으로 환경과 보건 문제가 심각하다. 저개발 국가에서 조리용으로 화석연료를 쓰다가 조기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100만명이 넘는다. 장작 때는 나라에는 고효율 석탄 화력발전소를 지어주는 것이 현실적 탄소 감축안이다. 마찬가지로 서비스 산업 중심인 유럽식 탄소 중립이 제조업 중심의 우리나라에 바로 대입될 수는 없다. 텅 빈 거름 지게라도 짊어지고 선진국을 따라 나설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탄소 중립을 질퍽한 잔치판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남보다 앞장서서 현란한 막춤을 출 이유가 없다.

 

-기술적 대안도 비전도 없이 왜 정부는 탄소 중립을 서둘러 밀어붙일까.

탈원전 대못 박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의도도 의심된다. 탄소중립 기본법이 83개조로 구성됐는데 이 중 20개조가 조직 만드는 내용이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아래로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탄소중립지원센터, 실천연대, 협동조합 등 시도·군구까지 전국에 조직을 만든다. 정말 대통령이 쓰레기 분리수거의 경험으로 탄소 중립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지, 아니면 과거처럼 친정부 단체를 만드는지 알 수 없다.

 

 

☞이덕환

서울대 화학과를 나와 미국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34년간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를 지내고 정년퇴임했다. 대한화학회 회장(2012)을 역임했고, 현재 탄소문화원 원장과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 협의회(에교협)’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과학 저술가로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안전・보건의료 등 사회 전반에 대해 2600여 편의 칼럼・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와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를 비롯해 교양 과학 서적 20여 권을 번역했고, 과학기술훈장(웅비장)・대한민국과학문화상・과학과사회소통상(한국과학기자협회) 등을 받았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