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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안하고 5년만에 4억→21억…41세 파이어족 성공 비결

해암도 2021. 9. 23. 04:36

[오늘, 퇴사합니다]

 

한국 사회에 파이어족이 상륙했다. ‘경제적 독립, 조기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앞글자를 딴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을 통해 40대 초반 전후에 은퇴를 꿈꾸는 이를 일컫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젊은 고학력ㆍ고소득 계층으로 퍼졌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파이어족이 늘어나는 한국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취업난에 자본 소득에 비해 뒤처지는 노동 가치, 불안정해지는 고용과 길어진 수명 등이 조기 은퇴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키즈’로 자란 MZ세대는 주식ㆍ부동산ㆍ암호화폐 등 재테크로 은퇴자금을 마련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중앙일보는 40대에 조기 은퇴의 꿈을 이룬 한국판 파이어족을 만났다.

[오늘, 퇴사합니다] ①부동산으로 21억 모아 은퇴한 김도협씨

39살에 순자산 21억원을 모아 조기 은퇴한 김도협(41)씨. 지난해부터 제주도를 '여행' 하듯 살고 있다. 사진은 아들 김세헌(8)군과 제주 구좌읍 아부오름에 오른 모습이다. 사진은 김도협씨 제공

 

 

“대기업 타이틀이 삶을 보장해주진 않더라고요. 월급에 기대 사는 리스크를 줄이기로 했죠.”

 

이달 초 제주도 동쪽 바닷가 마을인 구좌읍에서 만난 김도협(41)씨 얘기다. SK케미칼에 근무했던 그는 2년 전 회사를 관두고 파이어족(조기 은퇴자)이 됐다. 대기업 명함을 포기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김씨는 2008년 부산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STX조선해양에 입사했다. 취업하면 안정된 삶이 보장될 줄 알았다. 장밋빛 전망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물거품이 됐다. 조선업 불황이 지속하면서 구조조정이 수년간 이어졌다. 인력 조정 압박을 피해 2014년 SK케미칼로 이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맡은 신사업 성과가 부진하면서 부서가 해체 위기에 놓였다.

 

김 씨는 “더는 내 삶을 남(회사)에게 맡겨선 안 되겠다 싶었다”며 “하루빨리 월급을 대체할 현금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경제적으로 독립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조기 은퇴를 결심한 지 5년 만에 종잣돈 4억원을 21억원(부동산 포함)으로 불렸다. 은퇴자금 목표로 삼았던 16억원을 넘어서면서 마흔살에 퇴사하겠다는 계획도 1년 앞당겨졌다. 이후 ‘한 달 살기’로 제주도 곳곳을 여행하며 살다가 올해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구좌읍에 잠시 정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끝나면 온 가족이 세계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김씨는 “이제 일을 하거나 시간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 자유롭다”며 “시간 부자라는 게 파이어족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도협씨는 파이어족이 된 이후 마음 내킬 때 가족과 캠핑을 떠나고, 산책을 갈 수 있는 '시간 부자'가 된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꼽았다. 사진은 김씨 집에서 10분 가량만 걸어가면 나오는 세화해수욕장. 사진 염지현.

 

 

그에게 은퇴자금을 모은 비결과 파이어족으로 사는 삶, 그리고 앞으로 계획을 들어봤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은퇴자금 목표를 16억원으로 정한 이유는.

“세 가족이 1년에 평균 4000만원을 쓴다. 대략 40년 치 생활비를 따져보니 16억원 정도였다. 여기에 고정적이진 않더라도 투자나 강연 등 부수적인 수입이 있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둬도 사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부동산 투자로 목표 금액을 초과한 순 자산(21억원)을 모아서 퇴사했다.”

 

투자 성공 비결은.  

“저평가된 지역의 단지를 싼값에 매수하는 전략이 통했다. 2016년부터 서울 아파트값이 들썩일 때 오히려 수도권 신도시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상승기에 접어들면 지역 간 가격 격차가 줄어드는 ‘갭 메우기’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2018년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효과를 기대하고 파주 운정신도시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당시 창릉 등 3기 신도시가 주목받을 때라 상대적으로 싼값에 아파트 분양권을 사들이고, 청약에도 당첨됐다. 아파트 두 채 수익률은 투자원금 대비 2배 이상이다. 2019년에는 집값이 급락한 부산 대연동과 사직동의 저평가된 단지를 사들여 자산을 불렸다.”

 

부동산에만 베팅한 이유가 있나.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돈을 굴릴 수 있는 투자처가 필요했다. 주식은 아무래도 하루종일 시세에 신경을 써야 해서 회사 업무에 방해될 수 있다. 무엇보다 부동산 투자는 확신이 있었다. 조기 은퇴를 결심한 뒤 2년간 고3 수험생 마냥 부동산 시장을 공부한 덕분이다. 매일 오전 6시30분에 회사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두시간씩 부동산 관련 책을 읽고 개인 블로그에 정리했다. 발품도 팔았다. 토요일에는 수도권 신도시 중심으로 임장(부동산 현장 답사)을 다녔다. 기회가 왔을 때는 대출까지 활용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었다.”

 

현재 파이프라인(현금흐름) 어떻게 되나.  

“은퇴 이후 자산 포트폴리오에 변화가 생겼다. 차익실현으로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의 비중을 기존 99%에서 70%까지 낮췄다. 나머지는 전세보증금을 비롯해 달러, 배당주식, 현금 등으로 갖고 있다. 앞으로 파이프라인을 더 늘리는 게 목표다. 현재는 아파트 월세로 230만원을 받고, 부동산 관련 강연과 유튜브 활동 등으로 100만원가량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또 현재 배당주 투자로 받는 월평균 10만원 수준의 배당액은 내년까지 100만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파이어족이 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은퇴 자금을 모으는 것보다 양가 부모를 설득하는 게 더 어려웠다. 어머니께서는 ‘왜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려고 하냐’며 반대했다. 아무리 투자를 한다고 해도 ‘그 집 아들 일 안 하고 논다’는 식의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던 듯하다. 하지만 그동안의 투자 경험을 살려 재개발 투자로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드리자 반응이 달라졌다. 또 요즘 백화점 등에서 부동산 관련 강연한다는 얘기에 안심하는 분위기다.”

 

파이어족으로 살아보니.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 가장 좋다. 회사 다닐 때는 맞벌이 부부라 돈(월 소득)은 지금보다 많이 벌었는데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았다.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느라 지쳐 있었다. 요즘엔 원하는 시간에 캠핑을 떠나고, 바닷가를 산책한다. 얼마 전에 매실을 잔뜩 사다가 매실청을 담갔다. 회사 다닐 때는 엄두도 내지 못한 일들이 이제 소소한 일상이 되고 있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2030을 위한 팁이 있다면.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 과거처럼 회사가 정년을 보장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미리 은퇴 준비를 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50대에 준비 없이 은퇴하면 더 막막할 수 있어서다. 다만 은퇴 이후 어떻게 살고 싶은지,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지 등 구체적 계획을 세운 뒤 실행해야 한다. 파이어족이 되는 건 단순히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과정이다."

 

앞으로 계획은.

"부동산 투자 경험이나 전략을 투자자에게 알려주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보다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최근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에 도전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1.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