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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세 철학자 “文, 취임사와 정반대....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

해암도 2021. 9. 13. 11:53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공산 치하에 살아보고 군사독재도 겪어본 사람으로서 지금 한국을 보면 전쟁의 폐허에서 60~70년 쌓아 올린 나라가 무너지는 기분”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약속한 나라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1일 인천 집필실에서 만난 101세 철학자는 “나라 없이 산 우리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있던 사람들과는 다른 애국심이 있다”며 “그 마음을 버릴 수 없어 이렇게 고언(苦言)을 한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정철승 변호사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김형석 교수를 향해 “이래서 오래 사는 게 위험하다”는 등 막말을 한 게 계기였다. 하지만 김 교수는 “그것은 개인적인 일이고 문제 삼고 싶지 않다”며 이달 말 국회 통과가 예고된 언론중재법과 퇴장을 6개월 남긴 문재인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법치국가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는데 문재인 정부가 언론중재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불필요한 법을 급조해 국민을 더 불행하게 한다고 그는 진단했다. 김형석 교수는 “국가가 언론과 시장의 자율성을 통제하는 방향, 즉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며 “정부 통제가 점점 심해지면 결국 중국과 비슷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언론중재법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부끄러운 역사를 만드는 일”이라며 “심하게 말하면 ‘문재인 보호법’”이라고 일갈했다.

 

김형석 교수는 또 지난 광복절 기념식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일본을 향해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말했고 광복회장은 ‘친일파를 처단하자’ 했는데, 손발이 안 맞는 쇼였고 국민을 우롱했다”며 “유해가 돌아와 현충원에 안장된 홍범도 장군이 처음에는 독립운동을 했지만 나중엔 공산당원으로 일한 행적을 정부가 모르진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교육과 문화의 하향 평준화도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北서 살 때 경험해보니 언론통제는 자유통제 신호… 文대통령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101세 철학자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통창 앞에 앉아 있었다. 지난 11일 오후 인천 을왕리 낙조대카페 옆 집필실. 책상엔 친필 원고가 놓여 있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난 것은 정철승 변호사의 막말 파문(“이래서 오래 사는 게 위험하다” 등)이 계기였지만 그는 훨씬 더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정치에 관심 두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은데 1920년 일제시대에 태어나 공산 치하에 살아보고 군사독재도 겪어본 사람으로서 더 두고 볼 수는 없어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 이달 말 국회 통과가 예고된 언론중재법, 퇴장이 6개월 남은 문재인 정부, 다음 대통령의 자격 등에 대한 고언(苦言)이 쏟아져 나왔다.

 

◇국가가 퇴행한다

 

김형석 교수는 광복 이후 전두환 정권까지를 ‘권력국가’로 정의했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한 그 시기에 우리는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을 겪었다. “김영삼 정부부터 현재까지는 ‘법치국가’이며 여기서 멈추면 안 되고 ‘선진국가’로 올라가야 하는데 퇴행 징후가 보인다”고 그는 우려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신생국, 후진국은 민도가 낮아 권력 국가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 이승만 독재가 심해질 땐 4·19로 막았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초기에 애국심을 가지고 한 일은 다 좋았다. 국민이 그 덕에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정권욕이 강해지고 영구 집권을 노리며 유신헌법을 만든 뒤론 업적이 없고 과오만 쌓였다. 그때부터 전두환 정권이 끝날 때까지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1990년대 우리 대표단이 평양에 갔을 때 김정일이 한 말이 우습다.”

 

–김정일이 뭐라고 했나.

“당신네는 5년마다 정권이 바뀌어 믿을 수가 없다. 나는 군대를 장악하고 있으니 끄떡없다. 그 자랑은 사실 ‘북한은 아주 후진 국가, 권력국가’라는 소리였다(웃음). 우리는 애써 법치국가까지 올려놓았는데 역설적으로 지금 대단히 위태롭다. 국민의 자율성이 확대되는 선진국가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러다 다시 권력국가로 돌아갈까 겁난다.”

 

–왜 그렇게 판단하나.

“불필요한 법을 정부가 자꾸 만든다. 집값 잡겠다고 급조한 법 때문에 국민은 더 불행해졌다. 정직한 사회는 깨지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됐다. 뭐든지 법과 권력으로 해결하려 든다. 언론중재법도 그렇고 국가가 퇴행 중이다. 정부 통제가 심해지면 중국과 비슷해진다.”

 

–해결할 방법은.

“다가오는 대선에서 국민의 올바른 선택을 바랄 수밖에 없다.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언론중재법은 언론통제법이다

 

–유엔과 세계의 언론 단체들이 반대해도 집권 세력은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인다.

“언론중재법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언론통제법이라고 답하겠다. 언론을 통제하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모자를 벗기면 머리가 나타나듯이, 말만 중재지 내용은 통제다. 유엔과 선진국들이 ‘한국이 저 수준밖에 안 됐나’ 놀란다. 내가 북한에서 경험해 보니 언론 통제는 자유 통제의 신호탄이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짓이다.”

 

–왜 그렇게 단정하나.

“민주주의에서 언론은 공기와 같다. 문제가 있어도 상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왜 정부가 나서나. 동기와 목적이 순수하지 않다. 언론중재법은 정권 유지를 위한 법이고 좀 심하게 말하면 ‘문재인 보호법’이다.”

–현실적으로 야당이 국회 통과를 막긴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에도 양식 있는 의원들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동생이나 아들이 이 법을 만드는 데 앞장선다면 ‘역사에 부끄러운 한 페이지를 만들고 있다’고 꾸짖을 것이다. 야당이 여당과 절충한다는 것도 민주주의가 뭔지 모르는 행동이다.”

 

–그럼 무력하게 보고만 있나.

“지금은 가슴 아프지만 국민이 깨어날 것이다. 애국심으로 뭉치면 훗날 바로잡힌다고 나는 믿는다. 아닌 것은 아무리 분칠을 한들 아닌 것이다.”

 

 

◇경제는 망쳤고 정치는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제2의 4·19가 일어날 뻔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내가 강연에서 좀 직설적으로 비판하면 중앙정보부가 전화했고 몇 번은 연행도 됐다. 지금 그 정도는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에 정말 묻고 싶다. 당신들이 5년간 한 일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이었는지 정권 유지를 위한 것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잘못했나.

“초창기에는 가난한 국민을 위한다고 한 일이 경제를 망쳐놨다. 소득 주도 성장도 한심한 정책이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문 대통령이 자랑할 게 있으면 나타나고 없으면 숨는다. 국민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진영을 위해 권력을 잡은 거다. 애국심이 있는 대통령이라면 자화자찬 못 한다. 아직도 부족하고 할 일이 많다고 말하지. 또 통합을 하겠다더니 국민을 두 쪽으로 갈라놓지 않았나. 겪어 보니 정의의 가치도 모르는 지도자였다.”

 

–무슨 뜻인가.

“자기 편이면 정의이자 선이고, 아니면 불의이자 악이었다. 정의는 평등을 위한 수단이 결코 아니다. 민주주의 정부는 더 많은 국민이 더 인간답고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좌파랄까 운동권은 경제적으로 평등하면 누구나 행복해질 거라고 착각한다. 다음 대통령도 이런 사람이면 국가 수준이 중국과 비슷해질 것이다. 더 추락하면 북한이 된다. 교육과 문화의 하향 평준화는 무서울 정도다. 60~70년 쌓아 올린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최근 일본 산케이신문과 인터뷰하며 ‘문 대통령이 일제시대 항일운동가처럼 존경받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광복절에 대통령은 일본을 향해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말했고 광복회장은 ‘친일파를 처단하자’고 했는데 손발이 안 맞는 쇼였고 국민을 우롱한 기념식이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돌아와 현충원에 안장됐는데, 그의 행적이 이중적이라는 사실을 대통령이 모르진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독립운동을 했지만 나중엔 공산당원으로 일했고 독립군이 많이 희생됐다. 통일된 뒤라면 모를까, 지금은 현충원이 아니라 평양으로 가야 더 어울릴 사람이다.”

 

◇다음 대통령의 자격

 

–'대선 앞두고 野 유력 후보 겨눈 공수처’가 오늘 신문 헤드라인이다.

“읽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동기도 목적도 불순하다. 제3자인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자기 편에게는 너그럽고 반대편엔 합리적 의심이라며 수사까지 한다면 정의롭지 못 한 정부다. 지금 이 나라를 장악한 두 세력은 법조계와 운동권 출신이다. 공통점은 뭔지 아나? 국제 감각이 없다. 정치인은 기업가를 보고 배워야 한다.”

 

–직접 만나본 윤석열 전 총장의 인상은?

“검찰에서 그렇게 사심 없이 일한 사람도 드물다. 만나 보니 법조인으로 있을 사람이지 정치를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정부가 쫓아내는 바람에 저렇게 됐지만 정치를 한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고 그릇이 크더라. 좋은 일꾼만 함께하면 괜찮을 것 같다.”

 

–다음 대통령의 과제랄까 자격이라면.

“문재인 정부가 남겨 놓은 한국병부터 고쳐야 한다. 국민 분열이 심각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민과 신뢰 회복부터 해야 한다. 유권자는 정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

 

–입이 있는 후보는 다 그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감별하나.

“국민이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겪어 봤으니까. 나처럼 나라 없이 살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있던 사람들과는 다른 애국심이 있다. 우리는 전쟁 후 폐허에서 대한민국을 건설했다. 유례 없는 압축 성장을 경험한 한국인에겐 그만한 안목과 저력이 있다.”

 

–흑백논리와 편 가르기가 고질적인 문제다.

“지금 흑백논리가 남은 분야는 공산주의와 탈레반 같은 잘못된 분파밖에 없다. 영국이나 미국 사람을 만나보면 흑백논리가 없다. 우리는 조선왕조부터 원수 갚느라 다 죽이고 은혜 갚느라 끼리끼리 뭉쳤다. 공산주의가 그래서 무너진 거다. 현실에는 밝은 회색과 어두운 회색이 있을 뿐, 흑도 백도 없다. 세계는 다원사회로 가고 있다.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는 낡은 생각이다.”

 

–소셜미디어(SNS)가 발달하면서 인간관계는 넓어졌지만 얕아졌다. 정철승 변호사처럼 저격을 하기도 한다.

“읽어 보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말았다. 딸은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편지를 썼다는데 내가 꾸짖었다. 성숙한 사회에서는 SNS도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저격도 자정 작용이 일어나도록 놔둬야 한다. 미국인에게 총기 사고가 저렇게 자주 일어나는데 왜 규제를 안 하냐고 물으면 ‘총기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다 갖고 그럼에도 사고가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게 아메리카’라고 답한다.”

 

김형석 교수는 “그것이 미래 지향적”이라며 “후진국가는 미래를 안 보고 과거에 붙잡혀 있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다시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서해가 보였다. 이 철학자가 탈북할 때 목숨 걸고 건너온 그 바다였다.

 

☞김형석

1920년 평남 대동 출생. 도산 안창호 강연을 들었고 윤동주 시인과 동문수학했으며 김일성이 초등학교 선배다. 스물다섯 살에 광복을 맞았지만 환희는 짧았다. 공산주의를 경험하다 탈북했고 서른 살에 6·25전쟁, 40대엔 4·19를 목격했다. 일본 조치(上智)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연세대 교수로 퇴직한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 ‘백년을 살아보니’ 등 베스트셀러가 많고 요즘도 왕성하게 집필과 강연을 한다. 틀니나 보청기, 지팡이 같은 노년의 그림자는 아직 없다.

 

 

 

박돈규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