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자의 빅테크-36]
나이 19세, 직업은 팝 가수. 인스타그램 팔로워 304만명. 인스타그램 게시물 광고 한 개당 1000만원, 2020년 한 해 벌어들인 돈 130억 원. 전 세계서 가장 유명한 인플루언서인 '릴 미켈라'의 숫자들입니다. 19세의 나이에 벌써 수백만 팔로워를 보유했고요. 지난해에만 무려 130억원을 벌어들였죠.
나이 22살, 이름 오로지. 인스타그램 팔로워 7만명. 신한라이프와 쉐보레, 아모레퍼시픽, 반얀트리 호텔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광고를 찍어대는 무시무시한 신인도 있습니다. 그가 출연한 신한라이프 광고 유튜브 영상은 게시 한달여만에 1100만여 조회수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두 명의 인플루언서는 보통의 인플루언서와 다른 게 있습니다. 다소 섬뜩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오로지는 바로 진짜 인간이 아니라 '가상인간'이거든요.
아담, 김래아, 네온까지...한국에서 선보였던 가상인간
7만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 가상인간 `로지`.<사진=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가상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일명 '버츄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라고 불리는 이 존재는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지니고 행동합니다. 다만 실제 인물은 아닙니다. 사실 가상인간은 한국인들에게 낯선 경험은 아닙니다. 1998년 1월에 '사이버가수' 아담이 가상인간의 세계를 열었던 경험이 있죠.
키 178㎝에 몸무게 68㎏의 잘생긴 사이버가수 아담은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가상인간이었는데요. 첫 앨범만 무려 20만장을 판매하며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비용에 비해 수익이 크지 않자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 20여 년이 훌쩍 지났고, 코로나19로 가속화한 비대면 세계에서 다시 가상인간이 화두가 되고 있는 겁니다.
보험사 신한라이프 광고에 등장한 가상인간 '로지'는 지난해 8월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만들었습니다. 실제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과 똑같다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구체적인 프로필이 있고요. 명확한 세계관도 부여되거든요. 로지는 세계여행과 요가, 러닝, 패션 등에 관심이 많은 22세 여성이고요.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매년 같은 날에 생일을 셀 뿐이죠. 나이를 먹지 않는 22세예요.
성격도 설정됐습니다. 자유분방하고 사교적인 성격이라 로지의 인스타그램 안에서는 그와 같은 성격이 엿보입니다. 로지가 처음 등장하자 외모가 신선하다는 평이 많았죠. MZ세대들이 특히 좋아했는데요. 이유가 있습니다. MZ세대가 선호하는 얼굴형을 모아 만들었거든요. 그랬더니 '흔하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얼굴'이 나타나게 됐죠.
국내에서는 사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을 중심으로 가상인간을 활용한 마케팅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미래에서 온 아이'라는 이름에서 따온 LG전자의 김래아는 올해 1월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1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비쳤죠. 진한 분홍색 후드티를 입고 단발머리를 한 서울에 사는 23세 여성이 바로 김래아의 기본 프로필이고요. 거기다 성장 스토리도 탄탄합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후 가족이 거제도 구조라마을로 이사했고요. 김래아는 그곳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성장합니다. 청소년기에 잠시 런던으로 유학도 갑니다. 낯선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다 음악에서 위로를 받았고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되죠. 이 같은 구체적인 프로필을 기초로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해 4개월여간 자연어 정보 수집·학습을 통해 목소리까지 갖게 됐습니다.
LG전자는 CES 2021 행사에서 김래아가 직접 LG의 신제품들을 소개하도록 했습니다. 호텔 등 특정 공간의 위생을 위해 방역 작업을 하는 'LG 클로이 살균봇'과 2021년형 LG 그램,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적용한 전문가용 모니터 'LG 울트라파인 올레드 프로' 등 LG 제품을 김래아는 영어로 소개했죠.
LG전자의 김래아보다 1년 더 일찍 세상에 모습을 알린 삼성전자의 가상인간 '네온(NEON)'은 이제는 점차 상용화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미래기술 사업화 벤처 조직 '스타랩스'가 개발한 네온은 지난해 CES 2020에서 처음 공개됐어요.
수십조 '인플루언서 시장' 잡아라...해외서는 가상인간 마케팅 봇물
19세 팝 가수 가상인간 `릴 미켈라` <사진=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캡쳐>
한국 시장에서는 로지의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김래아와 네온, 아담까지 이제 막 소환된 수준이지만 전 세계에서는 이미 가상인간을 활용한 마케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인간은 미국 LA에 사는 19세 팝 가수 '릴 미켈라'인데요. 2016년 등장한 브라질계 미국인인 미켈라가 지난해 벌어들인 돈만 130억원(약 1170만달러)에 달합니다. 미켈라의 인스타그램 폴로어는 304만명이 넘었고요. 인스타그램 게시물 광고 한 개의 단가만 1000만원(약 8500달러) 수준으로 알려졌어요. 미켈라는 현재 샤넬, 프라다, 버버리,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 모델도 맡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도 2019년 릴 미켈라를 활용해 갤럭시S10 신형 모델의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죠.
이 밖에도 세계 최초의 가상 수퍼모델 '슈두'도 인스타그램 폴로어 21만명을 보유한 가상인간입니다. 2017년 4월에 데뷔한 흑인 여성인 그는 큰 키와 매력적인 마스크를 지녔고요. 일본 최초의 버추얼 모델인 '이마'는 글로벌 가구 기업 이케아 모델로 활동하면서 하라주쿠 이케아 매장에서 3일간 생활하는 동영상을 공개한 바 있기도 합니다.
가상인간을 만들려는 시도는 국내외에서 점차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AI와 AI 오디오 스타트업 타입캐스트가 영상·음성에 특화된 AI 반도체를 적용해 가상인간 콘텐츠 개발에 나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타입캐스트는 AI 성우 서비스로 현재 140명 이상의 AI 성우 목소리를 제공하고 있어요. 이용자가 텍스트를 입력하면 가상인간을 통해 AI 음성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가상인간을 활용한 브랜드 마케팅은 앞으로도 더욱 고도화될 전망이에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이커머스가 쇼핑을 장악한 상황에서 온라인과 메타버스 등 새로운 저변에서 활동할 신(新)인플루언서가 필요해졌다는 것인데요. 특히 이들이 특별한 구설에 휩싸일 필요도 없는 '항상 관리되는' 인플루언서라는 점도 브랜드들의 선호가 높아지는 지점입니다.
가상인간 로지를 만든 백승엽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대표는 "로지는 셀럽 인플루언서라고 이해하면 된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이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백 대표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게 넘쳐나는 시대가 됐다. 특정 브랜드를 소비하게 만드는 것에도 대중이 힘을 쏟아야 이뤄질 수 있다. 아바타들이 활동하는 미래 아바타 시대에는 어떻게 하면 그 아바타를 자신들의 플랫폼 위에 묶어두고 더 많은 시간을 어떻게 뺏어올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승부수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 비지니스인사이더인텔리전스는 기업들이 인플루언서에게 쓰는 마케팅 비용이 2019년 80억달러에서 2022년 150억달러 수준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 비용의 대부분은 가상 인플루언서가 담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전략을 짤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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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용 기자(hsygd@mk.co.kr) 입력 202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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