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고 ‘모두 까기’라는데…모두 칭찬하고 모두 까는 게 당연하다. 누군 까고 누군 안 까는 게 비정상이지.”
‘이준석 돌풍에 찬물 끼얹지 말라’는 비판에 대한 진중권(59) 전 동양대 교수의 답이 될 수 있을까. 그는 “대중이 듣고 싶은 말보다 들어야 할 말을 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준석 대표가 꺼낸 능력주의, 경쟁 지상주의에 실망한 나머지, 지난 1년 반이나 줄기차게 비판했던 진보 진영의 “위선주의자”가 그리울 지경이라고 했다.
진보에서 다시 희망을 찾는가 싶지만 그는 그러기에 앞서 “풀어야 할 크고 중요한 숙제가 있다”고 한다. ‘조국의 강’을 건너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 14일 진중권(59) 전 동양대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정수경PD
이야기 들어보면 보수에 애정이 없어 보인다.
애정은 없다. 내가 생각한 것과 반대로 간다. 따듯한 공동체주의 보수를 기대했는데, 노골적으로 ‘정글의 법칙’, ‘동물의 왕국’을 말한다. 차라리 (진보는) 위선적이지만 옳은 얘길 한다. 고작 이거(능력주의) 하려고 1년 반 동안 그렇게 싸웠나 싶다. 죽 쒀서 개 줬다. 이런 느낌이다.
조국사태 표창장 위조 논란…“3년 끊은 담배 다시 피웠다”
위선에 갇힌 진보 재건(再建), 뭐가 걸림돌인가.
조국이 문제다. 적어도 국민의힘은 이준석을 통해 ‘탄핵의 강’을 건넜다. 민주당은 ‘조국의 강’을 못 건넜다. 이번에 회고록 낸 걸 보고 충격받았다.
국민의 힘은 이준석 당대표 당선으로 탄핵의 강을 건넜다. 민주당은 송영길 당대표가 표면적으로는 '조국사태 관련 사과를 하며 '조국의 강'을 건넌 듯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조국의 시간’ 다 읽어봤나.
아니 그걸 뭐하러 읽나. SNS 글 모아놓은 거라던데. SNS 올라온 건 예전에 다 읽었지. 인용해서 글 쓰느라.
조국 사태 당시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지냈나.
그 전에도 (연락은) 없었다. 기자들 모여 회견했을 때 마지막으로 연락했다. 회견 내용 듣고 찝찝했지만, (질문) 방어하느라 고생했다는 생각에 ‘수고했다’고 문자 보냈더니 ‘열심히 하겠습니다’였던가, 존댓말로 답장이 왔다. 단체 문자 같았다. 그게 마지막이다. 그 후 표창장이 가짜라는 걸 알게 됐고 스토리가 시작됐지.
지난 2019년 9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표창장 논란 당시 마음이 복잡했을 텐데. 이후 교수직도 내려놨다.
그렇다. 3년 끊은 담배를 다시 피웠다.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민주·정의당 의원들에게 전화 돌리면서 “절대 (장관) 임명 안 된다. 표창장 가짜다. 리스크를 안으면 안 된다”고 설득했다. 근데 그들은 나와 판단이 달랐다. 표창장이 진짜냐 가짜냐 따지기보다 진짜로 만드는 게 과제라고 생각했다. 가짜라 할지라도 ‘우리가 막을 수 있다’ 이런 태도였다. 거짓말하자는 얘기다. 당시 모 의원은 내가 전화하면 “어~어~ 나를 설득하려고 하지마”라고 말했다. ‘아 이 사람들이 이렇게 정치를 하는구나’ 싶었지.
애정 갖고 조언한 거로 보이는데.
진짜 성실하게 ‘견적’ 내줬다. 근데 안 듣는다. 비판을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조국이 민주당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망쳤다. 진보진영의 법과 윤리·도덕적 정당성을 망쳤다. 지지층 사기가 오를 수 없다. 윤리·도덕적 우월성 때문에 진보 진영을 지지하는데, 이걸 없앴다. 김어준은 진보 진영의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을 망쳤다. 광신도를 만들었다. 표창장이 위조라는 게 드러났는데도 지지자들이 못 받아들인다. 현실 감각을 잃게 했다. 민심과 당심을 분리했다. 재보선이 그 결과다.
“순교자 이미지 연출…조국, 정치 생명 끝났다”
조국은 지지자들에게 여전히 인기다.
(인기는) 안 깨진다. 일부 사람들에겐 계속 남을 것 같다. 얼마 전 한 방송에 같이 출연한 진보 진영 사람들은 송영길 민주당 대표 사과로 ‘조국의 강을 건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사과받는 국민 입장에서 납득되는 사과를 해야지, 지지자들끼리 납득하면 되느냐”고 반문하니, 오히려 나보고 “조국의 강을 못 건넜다”고 말했다.
순교자 심정도 엿보인다.
그걸 스스로 연출한다. ‘가족의 피’ 얘기하고…그리스도 보혈(寶血) 같은 것 아닌가. ‘서초동 십자가’ 이런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정당화하며 무너지지 않으려 한다. ‘나는 검찰개혁 하다 억울하게 희생당했다. 이런 희생으로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도입됐다’ 이거다.
지난 2019년 10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과 서초역 일대에선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조국 수호 검찰개혁을 외치며 촛불을 밝혔다. 뉴스1
조국은 정치에 또 나설까.
못하지. 어디 나올 건가. 부산에서 될까. 서울에서 될까. 정치적 생명은 끝났다. (정치 욕심은) 미련이다. 본인은 할 생각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없을 거라고 본다. 그 정도 판단은 할 거라고 본다. 다만 나르시시스트적인 표상(表象)이 있다. 그게 안 깨지길 원하는 것 같다. 그래야 버틸 수 있으니까. 그 표상이 주관에만 갖춰지는 게 아니라 객관적 승인을 받을 집단이 필요하다. 나름대로 현실성이 있다. 그래서 지지자들에게 계속 메시지 보내고 책도 내는 것 같다. 실존적으로 버티는 방법이랄까. 소수라도 순교자로 인정받아야 그 힘으로 버틸 수 있다는 생각 갖고 있지 않을까.
진보가 ‘조국의 강’을 못 건넜다고 보나.
일종의 종교·신앙이다. 처음엔 지지층을 이용하려고 했겠지. 검찰 압박해 수사 막거나 단념하게 하려면 외부 여론 압력 가해야 하니까. 이걸 위해 어떤 반대에도 흔들리지 않게 신념화를 시켰다. 그들은 아직 가짜를 진짜로 믿거나, (그들의) 상태가 좀 나으면 “가짜지만 그게 뭔데”, “고작 표창장 하나” 이런다. 실제로는 11개 혐의가 유죄로 인정받았는데 축소해서 이해한다. 그리고 핵심 지지층은 어떤 사안의 해석 방향을 결정하는 ‘넛지(nudge)’ 역할을 한다. 그 방향으로 여론이 만들어지면 친문(親文) 세력은 당내 헤게모니 잡는데, 이걸 활용한다. 벗어날 수가 없다. 지금 상황이면 친문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는데, 다 그대로다. 당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 (친문에게는) 조국(祖國)보다 조국(曺國)이 더 중요하지 않나. 그거랑 똑같다.
“‘산업·민주화’ 다음 이야기는…”
진보가 다시 일어서려면 뭐가 필요할까.
그걸 고민 중이다. 일단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위대한 이야기가 끝났다. 둘 다 근대화 프로젝트다. 좌파·우파 이념 둘 다 소구력을 잃었다.
민주화 다음 이야기 뭘까.
올해 초부터 그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엄두가 안 나더라. 3회까진 썼는데…일단 첫째는 ‘정체성 정치’ 탈피다. 정책들이 이념 과잉(ideology-laden)이다. 정치를 국가·민족과 동일시해선 안 된다. 헌법적 정체성이라고 해야 할까. 대한민국 헌법에 동의하면 어느 나라 출신이든 대한민국 시민으로 인정해주는 것.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도 필요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란 두 개의 거대한 이야기가 끝났다. 다음은 어떤 이야기를 채워야 할까. 조은재PD
누가 주도할까.
일단 헤게모니는 이준석이 잡아갔다. 2030 담론을 ‘능력주의’로 잡았다. 아직 사람들은 실력주의가 왜 나쁜지 모른다. ‘능력, 실력대로 하자는 데 그게 왜 나빠?', '시험 안 보고 사람 뽑는 게 나쁜 거 아니야?' 이게 보통 한국 사람들 많이 갖는 생각이다. 이런 게 잘 먹히고 선동도 잘 된다. 한편 진보는 뭐하느냐, 아예 접근을 못 한다. 자기들 말을 스스로 배신했다. 조국도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가 살만한 개울 만들자더니, 자기 딸은 (개울에) 안 살게 하고 용 만들려고 한다. 개울이 살만하지 않다고 판단한 거지.
보수와 진보, 그리고 대표 주자들의 행보는 어떨까.
민주당은 리버럴(liberal) 정당으로 돌아오고, 정의당은 급진성을 회복한 진보정당이 되어야 한다. 보수는 합리적이고 온건한 공동체주의 보수로 가야 한다. 대선주자들 같은 경우 여·야 모두 편견 없다. 이재명 지사는 거버너(governor)로서 탁월한 능력 있지만, 포퓰리스트적인 특성이 있다. 갈라치기, 이벤트 정치는 마음에 안 든다. 윤석열 전 총장은 검찰 갈등 과정 버틴 부분 높게 평가하지만 대선 후보가 그걸로만 되진 않는다. 메시지가 아직 없다. 그가 말하는 ‘공정’이 형식적으로 그치면 안 된다. 이준석이 들어와서 이상하게 꼬일 수도 있다. 보수 진영에 그런 이데올로기가 있느냐고 했을 때 사실 없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그걸 해줬는데, 지금 보수진영에 그런 그룹이 없어 보인다. 메시지를 보고, 누구와 일하는지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듣고 싶은 말보다 들어야 할 말 하는 게 내 역할
한동안 ‘진중권 저널리즘’이라며 언론을 비판하는 소리도 많았다.
SNS에 수많은 사람이 글 쓰는데 ‘왜 진중권 것만 보도가 됐느냐’를 주목해야 한다. 사회가 어떤 메시지를 요구했고, 아무도 얘기 안 했고 내가 말했으니 보도된 거다. 그걸 눈감아버리고 부정적인 것만…나를 공격하고 싶은데, 못하니까 핑계를 댄 것뿐이다.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기사화되는 것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왜 그런 게 있느냐를 봐야지.
진중권은 ″듣고싶은 말이 아닌 들어야 할 말을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싸우나.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자기 할 일 하는 거다. 난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들어야 할’ 말을 한다. 보통 사람들은 ‘들어야 할 말’은 듣기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욕을 먹는다. 이건 내가 내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 편에서 이쪽 욕하면, 저 사람들이 환호하고, 저쪽 욕하면, 이 사람들이 환호한다. 비난하건 환호하건 정작 난 상관없다. 환호가 내 것이 아니고, 비난이 나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그냥 나는 내 일을 할 뿐이다.
논객의 자세 같은 건가.
논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래야 한다. 난 참정권이 있다. 국가공동체 일원의 책임감도 있다. 어느 진영·정당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다. 정당 심판자가 돼서 마음에 들면 표를 주고 아니면 안 준다. 사람들은 자꾸 어디 속해야 안정감을 느끼는데 굉장히 잘못됐다. 그러면 자기가 없어진다. 조국 옹호하고 그런 사람들은 결국 자기가 없는 거다. 레밍인가, 쥐가 이렇게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다 뛰어내리는…”
언제든 비판 방향이 바뀔 수도 있겠다.
정치가 피아식별이 확실한 컴퓨터 게임이 아니지 않나. 대의가 문제고, 도덕과 윤리가 있고, 그걸 평가하는 일이다. 유치함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애들처럼 편 갈라 앉아서 패싸움이나 하고. 짜증 난다. 나보고 ‘모두까기’라고 말하는데, 모두 칭찬하고 모두 까는 게 당연하다. 누군 까고 누군 칭찬만 하는 게 비정상이다. 내가 성격파탄자나 이상한 사람처럼 말하는데 이게 정상이다. 대부분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정치나 정당에 환장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정치도 그렇고 이상한 사이비 종교처럼 되어버렸다. 스트레스다.
외롭지 않나.
외로울 틈이 없다. 나는 내가 있으니까. 혼자 버티는 게 정상이다. 다른 사람의 지지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진중권 VOICE 인터뷰 1편 진중권 "진보 위선과 싸운 결과가 이준석?…죽 쒀서 개 줬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21.06.21
영상=정수경·조은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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