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카드 3년차에 회사 그만둔 한정수씨
“이제 시작일뿐, 좋은 일 할 궁리에 신나요”
20대에 투자로 돈 벌어 은퇴하고 투자사 차린 파이어족 한정수씨가 2021년 4월 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인의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진지하게 비트코인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한 20대 청년을 만난 것은 1년 전쯤이었다. 신한카드 사원이었던 한정수씨는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 “비트코인은 미래의 금”이라고 이야기했다. 입사한 지 2년여 만에 투자로 1억 정도를 모았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다. 그런 한씨가 지난달 회사를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투자로 무려 30억원을 벌어서 말이다.
한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이른바 ‘파이어족’이다. 투자로 돈을 벌어 29세에 사표를 내고 ‘자유인’이 되었다.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파이어(FIRE)족’은 영문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앞글자를 딴 말로 경제적 자유를 얻어 회사를 일찌감치 그만두는 이들을 가리킨다.
서울 신사동에 친구 2명과 냈다는 사무실을 지난 6일 찾아갔다. 약 130㎡(약 41평)짜리 널찍한 공간에 가구는 책상, 의자, 소파가 전부였다. 스케이트보드도 보였다. 한씨는 티셔츠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었다. 시계 또한 투자 차원에서 샀다고 했다. 그는 “생각보다 퇴사 시기가 빨리 왔다. 운이 좋았다”라며 웃었다.
◇투자로 30억 수익, 3년 다닌 신한카드는 퇴사
-돈이 얼마나 생겼을 때 퇴사 결심을 했나요.
“저는 회사 생활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투자로 돈을 불리다 보니 투자를 위한 의사결정에도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도박처럼 하는 게 아니니까요. 입사 초기엔 막연하게 ‘30억원 정도 모이면 그만두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15억원 정도가 되니 투자에 더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졌습니다. 운좋게 그 목표가 빨리 달성됐고 올해 3월에 퇴사했습니다.”
-어디에 투자해 그 많은 돈을 벌었나요.
“지금 제 투자 포트폴리오는 60% 정도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30% 정도가 주식(해외와 국내 포함), 10% 정도는 현금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테슬라는 15배 정도로 올라 수익률은 가장 높은 편인데, 투자 규모가 비트코인 등이 더 커서 수익은 거기서 더 많이 났습니다. 현금은 혹시 무언가가 폭락해, 매수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고요.”
20대에 투자로 돈 벌어 은퇴하고 투자사 차린 파이어족 한정수씨가 2021년 4월 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인의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암호 화폐에 베팅하기가 겁나지 않던가요.
“제가 비트코인 투자를 공부한 건 2018년부터였습니다. 비트코인이 2017년 크게 올랐다가 2018년 폭락을 했는데 주변에 코인 투자를 했다가 망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잡코인’을 사서 수익률이 마이너스 99%라는 친구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코인 투자를 많이 하나 호기심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지식이 좀 있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비트코인 이것 참 엄청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씨는 경영학과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했다.)”
-어떤 점이 대단하던가요.
“코드(컴퓨터 프로그램)로 만들어진 화폐라는 개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라지기가 불가능한 화폐를, 코드로만 만들어낸 거죠. 살펴 보니 비트코인은 발행 물량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이른바 ‘반감기’가 4년마다 오더군요. 2012년, 2016년, 그리고 2020년이 반감기인데요, 그 시점을 기준으로 약 1년~1년 6개월 동안 폭등했다가 잠시 폭락하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비트코인 가격이 내려갈 때 조금씩 사두다가, 2020년 5월에 비트코인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나름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돈을 모아두고 있었습니다. 정말 오래 기다렸어요. 그런데 그 5월이 오기도 전에, 코로나가 먼저 닥치고 말았습니다.”
20대에 투자로 돈 벌어 은퇴하고 투자사 차린 파이어족 한정수씨가 2021년 4월 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인의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코로나는 어쩌면 기회, 투자 위해 처음으로 빚 냈어요”
한씨는 코로나로 증시가 폭락하던 지난해 3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 이 정도 폭락장은 쉽게 다시 보기 어렵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 대출로 주식과 비트코인을 추가로 샀다.
-당시엔 시장에 공포가 팽배했는데 어떻게 빚까지 내서 투자할 생각을 했나요.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2020년 3월 코로나 폭락이 시장의 흐름만 보면 비슷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사실 금융위기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세대입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으니깐요. 하지만 금융위기를 다룬 ‘빅쇼트’라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다섯 번이나 봤고, ‘저렇게 큰돈을 벌 기회도 오긴 오는구나. 기회가 오면 나도 잡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어요. 저는 홍보팀에 있어서 신문을 매일 봤는데, 코로나 초기 분위기가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신문 1면은 무시무시한 뉴스로 도배가 됐죠. 저는 금융위기 당시의 신문을 찾아서 보면서 그때 시장이 반등하는 과정을 공부했어요. 유튜브도 뒤졌고요. ‘아, 이번 폭락장은 신이 주신 기회다’란 확신이 200% 들어 대출을 받았습니다. 1억원 정도를요.”
-그 돈으로 어디에 투자했습니까.
“너무 무서웠어요. 대출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하루에 코스피가 50~100씩 떨어지고 마지막엔 1600에서 1450까지 150포인트가 미끄러졌어요. 겁이 나서 초기엔 ‘망하지 않을 회사’ 위주로 투자했어요. 금융주나 현대차 같은 주식을 분할 매수 했어요. 제가 ‘바닥’에 주식을 사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무릎’ 정도에 살 수는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증시가 하락할수록 좀 더 많은 비율의 돈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분할 매수를 했어요. 저런 주식들은 원래 큰 수익이 나지 않는데 코스피가 반등하며 몇 주 사이에 수십%씩 올랐어요. 비트코인은 600만원 정도까지 폭락을 하더군요. 전부터 작년 5월에 많이 사려고 계획했던 비트코인이 가격까지 떨어진 셈이니 많이 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0일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6700만원 정도다.)
직장 다니고 투자하면서 모은 한씨의 돈은 지난해 3월 1억3000만원 정도였다. 여기에 1억원 대출을 더한 그의 투자금은 지난해 4월 말 2억3000억원이었는데 증시와 비트코인이 살아나면서 7월엔 3억6000만원, 9월엔 4억원, 12월 말엔 9억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지난 3월 30억원을 넘었고 요즘은 35억원 선을 오간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세상학개론’에 계좌를 때때로 공개한다.)
-최근엔 무엇을 샀나요.
“최근엔 팔란티어라는 미국 데이트 분석 소프트웨어 회사 주식을 1억원어치 정도 샀어요. 조금 일찍 샀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팔란티어 주가는 한때 39달러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24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4~5년 정도 길게 두고 보면 유망하다고 믿어요. 저는 테슬라 주식도 한 5년 정도 보고 투자했는데 갑자기 1년 만에 10배 넘게 오르는 경험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 ‘기회를 놓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업의 미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들면 좀 이르다 싶어도 사는 편이에요.”
영화 '빅쇼트'의 한장면. 배우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 실제 인물 마이클 버리는 빌 애크먼처럼,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시장 폭락에 베팅해 거금을 벌었다.
◇“돈은 수단일 뿐, 저희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돈이 많아지니 좋아진 것을 묻자 그는 “걱정 않고 택시 탈 수 있는 것”이라며 웃었다. 한씨는 아직 차도 운전면허도 없고 집도 없다. 부모님 집에 함께 산다. 사무실을 함께 얻은 친구들 모두 파이어족이다. 한 명은 신한카드 동기고, 다른 한명은 교보생명에 다녔다. 이 셋은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 자유롭게 머리를 맞대려고 사무실을 만들었다고 했다.
-출퇴근도 합니까.
“근무 시간은 정해 두었어요. 화·목·토 오전 11시~오후 4시에요. 휴가는 1년에 500일이고요, 하하. 쉬고 싶은 날 맘대로 쉬어도 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사실 세명 다 매일 사무실에 나와요.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게 너무 즐거워서요.”
-무슨 계획을 주로 세우나요.
“여러가지요! 조만간 함께 법인을 세울 계획인데요, 아이디어가 좋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도 좋을 것 같고 저희가 직접 사업을 해볼 구상도 하고는 있어요. 세계 부자 순위를 보면 상위권은 대부분 사업가이지 투자자는 거의 없잖아요. 정말 큰돈을 벌려면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최대한 넓게 끼치고 싶어요.”
-요즘 밀레니얼들은 ‘선한 영향력’이란 단어를 많이 쓰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 친구들도 사회에 뭔가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돈이 목적이 되면 슬프잖아요. 저도 투자를 할 때 돈 많이 버는 게 목적은 아니었어요. 좋은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을 돕고,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은데 젊은이들은 돈이 없고, 그러다 보니 돈부터 벌고 싶어진 거죠. 돈은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론 어떤 일을 하고 싶어요?
“한국의 1세대 기업가는 삼성·현대 등을 세웠죠. 인터넷 붐을 탄 네이버·카카오 등의 창업자가 2세대 기업가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1990년대생 중에도 이런 멋진 기업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가로 성장해서 기부도 많이 하고 싶고요.”
한씨와 함께 퇴사한 신한카드 동기는 퇴직금을 모두 기부했다고 한다. 한씨도 유튜브로 번 돈은 전부 기부하려고 기부처를 찾는 중이다. 그는 “우리가 큰돈을 벌어 운 좋게 일찍 퇴사할 수 있었던 배경엔 코로나라는 재난이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사회에 정말 많은 것을 환원하고 싶다”고 했다.
사무실을 나오기 전, 한 후배가 꼭 좀 대신 물어달라는 질문을 했다.
-비트코인, 혹시 지금 투자해도 괜찮을까요.
“제 생각에 장기적으론 괜찮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는 ‘장기’가 어떤 분들에겐 좀 길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5~10년 정도를 보면 괜찮다는 뜻입니다. 과거를 보면 비트코인 폭등 뒤에는 폭락이 따라왔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요즘 달라진 점은 기업들의 비트코인 투자가 늘었다는 겁니다. 저희가 좋아하는 어구가 있어요. ‘계절은 예측할 수 있지만 날씨는 예측할 수 없다.’ 1~2년 앞만 본다면 가격이 어떻게 움직일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길게, 정말 길게 본다면 여전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신영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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