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힐링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My octopus teacher)’
*경고*이 다큐를 보면 한동안 문어를 먹기 어려워질지도
넷플릭스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사람이 무언가에 매료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 대상 자체가 꼭 외적으로 매력적이게 보일 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관심을 기울인 시간이 쌓인 만큼이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를 결정짓는 게 아닐까. 나태주 시인이 ‘풀꽃’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 그런 이유로 ‘문어’에 푹 빠진 남자가 있다.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문어만 바라보는 남자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속 주인공이자, 감독인 ‘크레이그 포스터(Craig Foster)’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남자, 문어에 빠지다
어느날 홀연히 크레이그 앞에 나타난 암문어. /넷플릭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남서부에 위치한 ‘웨스턴케이프’의 해안가에서 자란 그는 열정적으로 일하던 다큐 감독이었다. 다만 그 열정이 너무 지나쳤을까. 쉬지 않고 일하던 그는 어느 순간 몸과 마음 모두가 지쳤음을 느끼고, 우울감과 불면증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그는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향의 아름다운 바닷속으로 돌아가 매일 그림 같은 해초숲 사이를 헤엄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적인 ‘그녀(She)’, 암컷 문어와의 만남을 갖게 된다.
사실 크레이그가 본 암컷 문어의 첫 인상은 ‘이상한 물체'였을 뿐이다. 당시 암문어가 서식지 근처에 살고 있던 파자마 상어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주변 조개껍데기를 있는 대로 주워 모아 몸에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습이 오히려 크레이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결국 그는 매일 같이 문어를 관찰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빨판 하나가 다가와 손을 잡았을 때, 비로소 이 흐물거리는 생명체를 ‘그녀(She)’로 느꼈다'
크레이그 앞에서 매력을 발산하면서도, 밀당(?)하는 것도 잊지않는 암문어. /넷플릭스
아가미가 없는 크레이그가 매일같이 숨을 참고 바닷속에서 문어를 쫓아다니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파도와 물결의 세기에 따라 돌과 해초가 나부끼는 해저에서 문어굴까지 가는 길을 외워서 헤엄치고, 막상 문어를 발견해도 친해지기 전까진 겁을 먹지 않게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그 노력이 가상해서였을까. 어느날 갑자기 암문어가 빨판이 다닥다닥 달린 손 하나를 뻗어 크레이그의 손을 잡는다. 개와 고양이 수준의 지능을 가진 문어가 매일같이 자신을 찾아온 이 이상한 사람을 기억한 것이다.
이때부터 문어는 크레이그에게 ‘특별한 존재’로 각인된다. 떨어뜨린 카메라에 놀란 암문어가 다른 곳으로 도망가버리자 각종 과학 논문을 뒤져가며 끈질기게 그 흔적을 추적해 다시 찾아냈을 정도다. 마치 헤어진 연인을 쫓아가 붙잡는 것처럼 말이다. 이후에도 문어는 크레이그와 친해질 듯 말 듯 소위 ‘밀당(밀고당기기)’을 계속하지만, 방 한 켠을 암문어 사진으로만 가득 채우는 크레이그의 열성에 문어는 결국 크레이그의 가슴에 폭 안길 정도로 점차 그에게 친밀감을 표시하기 시작한다.
문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크레이그. /넷플릭스
◇인간이 문어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사실 다큐 중간중간 크레이그가 매일 스토커 수준으로 문어를 쫓는 모습을 보다 보면, “그 정도 정성으로 종일 쳐다보면 돌멩이도 사랑하겠다”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안에 수석을 모셔 놓고 매일같이 천으로 닦으며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크레이그는 시종일관 “이 문어에겐 사람이 배울 만한 특별함이 있다”고 주장한다. 뼈도 없이 흐물거리고, 자주 인간에게 붙잡혀 식탁에 올라오는 문어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얼핏 봐선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크레이그의 시선을 쫓아 차근차근 살펴보면 식탁 위에 오른 문어에게서는 생각지 못 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암컷과 수컷이 짝짓기 후 모두 죽어버리는 문어는 태어난 순간부터 홀로서기가 시작되는 생물이다. 주변의 지형과 비슷한 색으로 피부색을 변화시키게 된 것도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다니다 천적에게 공격당하는 걸 막기 위해 자연 속에서 혼자 터득한 생존 본능이다. 그 과정에서 상어 등 천적에게 습격당했을 때 빠져나가는 기지도 익혔다. 어찌보면 태어나서는 부모님, 자라면서는 선생님으로부터 지식을 전수 받는 인간보다도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토록 생존을 갈구하는 문어가 자식을 낳을 때 만큼은 목숨을 버리는 희생을 순순히 감수한다. 고작 갑각류 쪼가리로 몸을 두르고서 파자마 상어에게도 용감히 대처하던 문어가 자신의 알을 번식시키기 위해서 이빨 하나 없는 물고기의 밥이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알을 낳은 뒤 마치 “일생에 주어진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모습으로 죽음을 태연히 기다리는데 그 표정이 스스로를 되묻게 만든다. “나는 지금 어떻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문어가 그립다며 울먹이는 크레이그. /넷플릭스
◇문어가 그립다며 울먹이는 크레이그가 찌질하지 않은 이유
크레이그는 문어를 관찰하면서 자신의 삶에서 고갈됐던 ‘인생의 목적’을 조금씩 되찾는다. 아들과 함께 해초숲 사이 문어를 쫓으며 가족과 교감하는 의미를 다시 되새겼고, 문어와의 추억이 깃든 해초숲을 지키기 위해 환경운동가들과 보호활동도 새롭게 시작한다. 그만큼 “문어가 그립냐”는 질문에는 “아직도 보고싶다”며 울먹인다.
중년 남성이 ‘문어 때문에’ 울먹이는 건 사실 흔한 장면이 아니다. 앞서 크레이그와 문어가 나눈 365일을 모른다면 그런 모습이 낯설고 이상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 다큐를 끝까지 함께 지켜봤다면 오히려 그의 울먹임에 눈물이 핑 돌게 된다. 마치 오래 사귄 반려동물처럼 크레이그를 알아본 문어가 그의 손을 살포시 잡아주는 장면을 보고나면 어느새 문어가 나의 손도 잡아준 것만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 최근 우울한 기분에 시달렸다면 이 다큐 속 아름다운 해초숲과 귀여운 문어를 보며 위로를 받아보는 건 어떨까. 단, 부작용으로 당분간 문어 숙회에 젓가락 대기가 꺼려질지도 모른다.
개요 자연과학 다큐 l 남아프리카 l 1시간 25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
특징 힐링, 감동, 귀여움
평점 IMBD 8.3/10 로튼토마토 100%
윤수정 기자 조선일보 입력 202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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