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공무원 최고령 합격자 임정근씨의 새로운 도전]
7급 공무원으로 10년 보낸 뒤 22년 전 그만두고 여러가지 일
7급 공무원으로 10년 보낸 뒤 22년 전 그만두고 여러가지 일
"더 보람있는 일 하고 싶어서 장애인 복지시설서 근무하다가 사회복지 공무원에 도전했죠"
"제 또래 면접관이 묻더군요, 20대 팀장 모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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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공무원 합격자’임정근(57)씨가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의 공원에서 합격 소감을 밝히고 있다. 15대1 경쟁률을 뚫고 사회복지 공무원이 된 그는‘봉사하는 인생 2막’을 기대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임씨는 이런 과정을 거쳐 연천군 사회복지직 9급에 합격했다. 공무원 시험 나이 제한 폐지 이후 역대 최고령 합격자이며, 89명과 경쟁해 최종 6명에 이름을 올렸다. 남양주에 사는 임씨는 인터뷰를 청하자 "10년간 공무원 생활 경험이 있다. 자랑할 일 아니고, 신문 날 사람도 아니다"면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두세 번 요청하자 결국 "멀리서 왔는데 점심이나 드시라"고 말문을 열었다.
동국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1년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 법무부·서울지방법원·노동부 등에서 근무했다. 당시엔 '무촌지(無寸志) 공무원'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촌지를 받지 않는 그가 창구에 앉자 "법원 창구가 이상해졌다"는 소문도 돌았다. "구미지방노동사무소에서 근로감독관으로 근무할 때는 월급 떼인 여공(女工)들을 도와줬습니다. 체불 임금을 받은 10대 소녀 여공들이 그저 엉엉 울더군요."
때로 독불장군(獨不將軍)으로 불렸던 그의 공무원 생활은 10년 만인 1991년 끝났다. 인권 변호사가 될 생각으로 법서(法書)를 들고 사법시험 준비를 했지만 갑작스레 책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나빠져 3년 만에 뜻을 접었다고 한다.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딴 뒤 아파트 관리사무소 일을 한 적도 있다.
"뭔가 더 보람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결심, 2010년 남양주의 한 장애인 복지 시설 생활지도원으로 취직한 이후 그의 생은 변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의 목욕을 돕고, 때론 맨손으로 대소변을 받았다. 그때 남을 위해 일하는 기쁨을 알았고, 그들을 위해 남은 삶을 보내고 싶어졌다고 한다.
2011년 9급 사회복지 공무원에 임용된 외동딸(27)과 함께 공부해서 지난해 2월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사회복지사 자격증 2급을 땄다. 두 달 뒤인 4월, 역시 함께 1급을 취득했다. 이후 임씨는 본격적인 공무원 자격시험 공부를 해서 이번에 합격했다. 그의 합격으로 가족은 '사회복지 패밀리'가 됐다. 그의 아내(54)도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 공부를 시작했다. 임씨의 여동생(50)은 이미 남양주시 장애인복지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복지 공무원은 올 들어 4명이 자살했을 만큼 업무가 고되다. "사회복지 공무원인 딸도 매일 밤 11~12시에 퇴근합니다.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공직 생활인 만큼 3만5000여 연천군민의 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는 3년 뒤 정년(60세)을 맞게 되면 사회복지 단체를 설립할 꿈을 갖고 있다. 평상복 차림으로 기자를 만난 임씨는 "가족에게 근사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며 검정 양복으로 갈아입고 돌아와 카메라 앞에 섰다. 최종 면접 당시 차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