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춘성스님이 서울역에서 전차를 타셨다 .....
유명한 법설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 시절 어느 날 춘성은 독실한 불자였던 육영수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그는 육영수에게 우리 뽀뽀나 한번 해볼까라고 하여 불자들과 수행원들을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그의 농담을 잘 알던 육영수는 웃으면서 그의 농담을 받아들였다. 한번은 춘성이 육영수의 생일에 초대되어 특별히 청와대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가 특별히 법문을 청하자, 춘성 스님은 마이크 앞에 아무런 말도 않고 잠자코 있었다. 30분이 경과한 뒤 결국 참가자들의 기다림이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 춘성 스님은 법문을 설파했다. 그 중에 한마디는
"오늘은 육 영수 보살이 지 애미 보지에서 응아하고 나온 날입니다."
듣고 있던 귀부인과 대중들은 영부인의 생일에 한 이 법문에 놀라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웃으면서 대단하신 분이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은퇴와 최후
"열반에 들어 다비를 하고 난 후, 스님의 사리가 안 나오면 신도들이 실망 할텐데요?"
"야, 이 시발 놈의 자식아! 내가 신도들에게 보여주려고 사느냐?
. 1977년 8월 22일 오후 7시 15분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사에서 입적에 들었다. 당시 춘성의 세수 87세, 법납 74세였다.
滿月靑山無寸樹(만월청산무촌수) / 만월 청산에 나무 한그루 없으니
懸崖撤手丈夫兒(현애철수장부아) / 절벽에서 손을 놓으니 대장부로다
八十七年事(팔십칠년사) / 팔십칠년의 인생사가
七顚八倒起(칠전팔도기) /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나
橫說與竪說(횡설여수설) / 횡설수설 하고 다녔으니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 / 붉게 달아오른 화로의 한 조각 눈이었구나.
그는 평생 취침에 들 때 이불을 덮지 않고 잠을 잤다. 이유는 이불이 이불(移佛) 또는 이불(離佛)이라 하여 부처와 불심에서 떠날수 있다는 것이 그가 평생 이불을 덮지 않는 이유였다.
현애철수
어느날 절벽에서 나뭇가지를 놓을수 있는 자야 말로 대장부라며 백범 김구의 일화를 소개하며 '득수반지무족기 현애철수장부아'(得樹攀枝無足奇 縣崖撤手丈夫兒, 나뭇가지를 잡아도 발에는 힘주지 않고, 언덕에 매달려도 손에 힘주지 않는 것이 대장부다.)라는 주제로 법문을 설파할 때였다. 그런데 절벽에서 떨어지면 죽는다는 것만 생각한 어느 수행자가 법문이 끝난 뒤 나중에 춘성 스님에게 찾아와 '백척간두에서 다시 한발을 더 내디면 그 다음 경계는 어떤 것'인가를 물었다. 그러자 춘성이 "야 이 자슥아, 내가 떨어져 봤어야 알지."
파격적인 법문
1960년대 서울 근교 어느 비구니 사찰 중창불사를 위한 법회에 코트와 백, 사치스러운 외제 옷 등으로 호화롭게 꾸민 귀부인들이 많이 오자 다음과 같은 법문 끝에 파격적인 한마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상 생략)... 시집 장가가는 데는 자지와 보지가 제일이듯. 중창불사 하는 데는 돈이 제일이니 오늘 이 법회에 온 인간들아 돈 많이 시주하고 가거라!"
그의 마지막 파격적인 한마디는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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