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정부 가상화폐 과세 검토한다는데

해암도 2017. 11. 17. 11:47

"핵심은 구매시 10% 세금, 거래소들 脫한국할 수도" 

세계 주요국들 자산으로 보고 세금 부과
부가세에 대해선 재화냐, 화폐냐 엇갈려
대부분 나라 화폐 성격 인정 세금 미부과

호주 정부는 비트코인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 방침을 밝힌 이후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영국으로 빠져나가는 사태를 겪었다. 부가세가 부과되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구매할 때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부가세 세율 10%를 적용해보면 비트코인을 100만원 구매할 때 10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블룸버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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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산으로 분류 ‘소득세, 법인세, 양도소득세’ 등 부과 가능

국내 가상화폐 시장이 커지면서 ‘과세’ 방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9월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법무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가상통화 대응 관계기관 합동 대스크포스'를 통해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논의하면서 과세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뚜렷한 가상화폐 과세 기준이 없다. 한국은 물론 여러 국가들이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 정의를 명확하게 내리지 못하고 있어서다. 가상화폐는 획득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개인이나 회사가 갖는 자산의 성격을 가지는 반면 재화나 용역을 거래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 화폐의 일종인 결제 수단의 성격을 지닌다.

세계 주요국의 과세 동향을 감안하면 전문가들은 가상화폐 과세의 핵심은 ‘화폐 성격의 인정 여부’라고 보고 있다. 가상화폐를 결제 수단인 화폐의 일종이라고 인정할지, 안할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상화폐의 과세 방법으로는 부가가치세, 사업소득세, 양도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등이 거론된다. 이 중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나머지 세목들은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볼 경우 과세가 어렵지 않다. 정부가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보고 기존에 있는 세금 제도를 적용하면 된다. 정부가 가상화폐의 화폐적 성격에 대해 뚜렷하게 규정하진 않아도 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영국, 독일 등 다수 국가들은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분류해 관련 세법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해당 세목들에 대한 가상화폐 과세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가상화폐 이용 증대에 따른 과세상 쟁점 분석 및 대응 방안 연구'에 따르면 가상화폐 사업소득세는 소득세법에 열거된 사업 소득에 직접 해당하지는 않으나 포괄적으로 규정된 소득세법 제 19조20항에 의해 과세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양도소득세와 법인세도 가상화폐가 주식 또는 기타자산과 유사하기 때문에 과세가 가능하며, 상속증여세도 증여세법에 의해 과세가 가능하다고 바라봤다.

신상화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관세연구팀장은 “양도소득세의 경우 주택을 넘겨도 세금이 부과되며, 법인세의 경우 기업이 가상화폐를 처분할 때 해당 시점의 보유 가치에 과세를 하면 된다”라며 “사업소득세, 양도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등은 가상화폐에 대한 화폐로서의 인정 여부가 정해지지 않아도 과세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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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가세법은 재화 혹은 자산이냐, 화폐냐 판단 필요

반면 전문가들은 부가세의 경우 정부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행법에 따르면 부가세의 과세 대상은 ‘사업자가 행하는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과 재화의 수입’이다. 재화는 재산 가치가 있는 물건과 권리를 뜻하며, 용역은 재화 외 재산 가치가 있는 행위 등을 말한다.

정부가 가상화폐 공급을 재화나 자산으로 보면 부가세를 당연히 부과해야 한다. 가상화폐를 거래소에서 구매할 때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가세 세율이 10%인 점을 감안하면 가상화폐를 100만원 구매할 때 10만원을 세금으로 더 내야 한다. 총 110만원이 필요한 셈이다. 예를 들어 법정통화를 소지하고 있는 소비자 A는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구매한 후 관련 가상화폐를 이용해 물품을 샀고, 물품을 공급한 판매자 B는 다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환전했다고 가정하면 소비자 A와 판매자B는 모두 10%의 부가세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세계 주요 국가들은 가상화폐에 부가세 부과를 하지 않거나 해당 과세 제도를 없애고 있다. 재화나 서비스로 공급된 가상화폐가 일종의 ‘거래의 매개체’로 화폐 성격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가상화폐가 지닌 화폐의 성격을 부가세법상에서는 일부 인정한 셈이다. 미국, 영국, 일본은 가상화폐에 대해 부가세를 부과하지 않으며, 독일과 싱가포르만 부과하고 있다. 호주도 부가세를 부과하다가 면세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최고사법기구인 유럽사법재판소도 지난 2015년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바꾸는 거래는 부가가치세 부과 대상이 아니다’고 판결하면서 가상화폐 공급에 화폐적 성격이 있다고 인정했다.

따라서 가상화폐에 대한 부가세 부과 여부는 관련 산업에 곧바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 나라가 가상화폐에 부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 호주처럼 거래소의 탈(脫)한국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가상화폐 구매자들이 우리 나라에서는 10% 세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에 국내 거래소를 이용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 가상화폐 시장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신 팀장은 “정부가 가상화폐에 과세를 한다고 하면 부가세를 제외했을 때 별도의 법적 규정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며 “결국 문제는 부가세 부분인데, 부가세에 대한 건 세계 주요국들인 가상화폐 시장 경쟁자들이 이미 부과하지 않는 걸로 (법적 규정을) 정리해 버린 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우리 나라만 가상화폐에 부가세를 부과한다면 호주처럼 거래소들이 다 이전하면서 관련 산업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있다”라고 전했다.

가상화폐 과세를 위해서는 세원 추적이 어려운 점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가상화폐가 '익명성'이라는 특성이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거래소 등 가상화폐 거래를 매개하는 중개인들을 규제하면서 과세 정보를 축적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가상화폐 과세 방향은 지난 9월 관계부처 합동 TF의 발표처럼 가상통화의 법적 성격, 주요국 과세 동향 등을 고려해 검토할 것이다”라며 “아직 방향이 정해진 건 없다”라고 말했다.


  • 세종=전슬기 기자   조선    입력 : 2017.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