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1000종류
상위 10개 시가총액만 150조원
빠르고 거래비용 거의 들지 않아
ICO 투자 유치, 환전 등 활용 늘어
가상화폐 거래량 1·2위 거래소 한국에


블록체인 시스템의 익명성은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강점은 거래 과정에서 모든 시장 참여자에게 데이터가 전송돼 투명성이 확보된다는 것이고, 약점은 범죄자들이 악용할 것이라는 우려다. 실제로 범죄자들이 가상 화폐를 현금으로 인출하는 데 몇 차례 성공했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이런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현재 제도권이 사용하는 고객신원확인(KYC) 시스템을 통해 철저히 조사한다면 사기꾼들의 행위는 줄어들 것이다. 그렇지만 기존 제도권 금융과 똑같은 잣대로 규제하는 이런 방식은 결국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새로운 금융시스템에는 새로운 룰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은행 간 통신협정(SWIFT·스위프트)은 터무니없이 비싼 수수료(환율 포함)가 필요하고 거래를 완료하는 데까지 2~3일이 걸린다. 가상화폐는 수수료가 거의 없이 15~20분 만에 국제 송금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결제 시스템인인 스위프트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는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 화폐의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이종의 가상 화폐를 서로 환전하려는 수요 또한 늘고 있다. 현재 가상화폐 간 교환 거래량은 하루에 3조 달러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거래량이 많은 가상화폐 거래소 두 곳은 빗썸과 코인원으로 모두 한국에 있다. 원-리플 환전 거래량은 비트코인-달러 환전 거래량보다 많을 정도다.
거품 논란 속 상업은행도 뛰어들 채비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은 가상화폐 거래소 상위 10곳 가운데 세 곳이 있을 정도로 가상화폐 분야에서 선두에 서 있다. 과열을 막는다는 측면에서 한국 금융위원회의 ICO 금지 결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비트코인을 합법적인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고 가상통화 11종류의 거래를 허용하는 정책을 내놨다. 이런 사실을 고려할 때 최근 중국이나 한국의 개입은 미성숙한 조치였다. ICO를 전면 불허하는 대신 일반 투자자를 상대로 리스크에 대한 정확하고 적합한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조치 정도로 충분했다. 촘촘한 규제보다 전체 비트코인 시장을 포괄적으로 감독하는 방식이 가상화폐 시장에서 한국의 비교 우위를 유지시키는 방법이 될 것이다.
JP모건의 최고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은 비트코인을 곧 탄로날 사기라고 비난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한 다수 학자들은 비트코인의 현 가격이 거품이라고 주장한다. 일정 측면에서 이 같은 우려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렇지만 혁신의 쓰나미는 은행가나 규제 당국에 의해 가로막히지 않을 것이다. 스위스 UBS는 도이체방크·HSBC 등과 컨소시엄을 맺고 디지털 화폐인 ‘공용결제화폐(USC)’를 개발해 내년 상용화에 나설 예정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상화폐는 돈이 발명된 이래 가장 큰 금융 혁신이다. 가상화폐는 금융 중개에 있어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됐으며 이젠 아무도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 규제 중심의 제도권 금융은 밖에서 기술 혁신의 형태로 나타난 새로운 적수를 만나게 됐다. 지금까지 은행들은 새로운 기술 혁신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제도권 금융은 이제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 시그널은 명확하다. 가상화폐는 이미 나타나 있고 이제 새로운 자산 형성 수단으로 인정해야 한다.

전 옥스퍼드대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