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 화폐 비트코인 가격이 올해에만 5배 넘게 올랐는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나는 “미리 알았다면 전 재산을 투자할 걸 그랬다”며 아쉬워하는 쪽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투자하려니 상투 잡을까 걱정이라 언뜻 손이 안 가는 소심남이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다. 윤석구(62) 형이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석구 형을 안 지는 10년이 좀 넘었다. 홍보 대행회사를 창업해 오랜 세월 잘 경영한 뒤 후배에게 넘겨준 ‘성공한 사회인’이다. 마당발이라 이곳저곳 모임에 회장·부회장 감투도 쓰고 있다. 그런 그가 암호 화폐에 쌈짓돈을 투자한 건 지난 6월이다. 시작은 50대 지인이 올봄 트레이드코인컴퍼니(TCC)를 소개하면서였다.
암호 화폐발 경제 혁명 시작
화폐 정부 독점 시대 끝내고
모든 거래, 모든 개인이 공유
사적 금융의 비밀·자유 보호
“암호 화폐 선점한 국가가
미래의 부 선점할 것”
블록체인은 4차혁명 핵심 기술
전통 산업 잣대 들이대며
정부 “막고 보자”론 미래 없어
처음엔 그도 무척 의심스러웠다고 했다. “비트코인이 돈이 되겠어. 진짜 돈도 아니잖아.” 언론을 통해 비트코인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남의 얘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복해서 설명을 듣고 공부를 하고 난 뒤 그는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은 적극적으로 남들에게 투자를 권하고 있다. 석구 형은 장황하게 TCC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11/02/b224481d-98d8-4179-aaef-8973ffc5cf19.jpg)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TCC는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1위부터 10위까지 암호 화폐를 인공지능(AI)으로 거래해 초단기 차익을 내는 회사다. 그렇게 만들어낸 수익을 매일 배당금으로 돌려준다. 기본이 원금의 0.4%씩, 많을 때는 0.7% 이상 배당이 나온다. 한 달이면 15%다. 게다가 다단계 판매 방식을 채택했다. 투자자를 끌어오면 그 투자자가 투자한 금액의 10%를 떼준다. 자신이 유치한 투자자가 또 다른 투자자를 끌어오면 5%, 그다음 투자자는 3%, 2%, 1%씩을 받는다.”
누가 봐도 요즘 유행한다는 암호 화폐를 동원한 폰지 사기(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요, 명백한 유사수신 행위인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TCC가 아주 특별한 알고리즘을 사용해 암호 화폐 거래에서 매일 수익을 내고 있으며 평균 수익률이 연 80%가 넘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1850만원을 투자해 5비트코인을 샀는데 4개월 만에 13비트코인(약 9000만원)으로 불었다고 했다. 며칠 전 나와 지인들은 “위험하니 빠져나오라”고 했지만 그는 씨익 웃고 말았다. 흘려듣는 눈치였다. 나는 그가 결코 빠져나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얼마 전엔 형과 누나도 투자자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그는 “매일 비트코인에 대해 공부한다”며 “비트코인의 미래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투기와 투자는 구분하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성공하면 투자, 실패하면 투기”다. 이때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기준은 버블이다. 암호 화폐에 대한 논란 첫 번째도 이것이다. 과연 버블인가 아닌가. 2009년 등장한 비트코인 가격은 2010년 0.05달러였다. 최근엔 6000달러를 넘어섰다. 7년 만에 약 12만 배로 불어났다. 2년 만에 노동자 연봉의 20배 넘게 급등했다가 하루아침에 폭락한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1635~37) 뺨친다. 진단과 전망은 월가에서도 크게 엇갈린다. 월가의 애널리스트 로니 모아스는 “3년 내 2만 달러가 될 것”이라고 호언한다. 연내 1만 달러 돌파를 예상하는 곳도 꽤 있다.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 짐 로저스는 “진작 비트코인에 투자했어야 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반면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은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말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 랠리 핀크는 “암호 화폐는 불법 자금의 돈세탁 지표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누가 봐도 요즘 유행한다는 암호 화폐를 동원한 폰지 사기(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다단계 금융사기)요, 명백한 유사수신 행위인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TCC가 아주 특별한 알고리즘을 사용해 암호 화폐 거래에서 매일 수익을 내고 있으며 평균 수익률이 연 80%가 넘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1850만원을 투자해 5비트코인을 샀는데 4개월 만에 13비트코인(약 9000만원)으로 불었다고 했다. 며칠 전 나와 지인들은 “위험하니 빠져나오라”고 했지만 그는 씨익 웃고 말았다. 흘려듣는 눈치였다. 나는 그가 결코 빠져나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얼마 전엔 형과 누나도 투자자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그는 “매일 비트코인에 대해 공부한다”며 “비트코인의 미래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투기와 투자는 구분하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성공하면 투자, 실패하면 투기”다. 이때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기준은 버블이다. 암호 화폐에 대한 논란 첫 번째도 이것이다. 과연 버블인가 아닌가. 2009년 등장한 비트코인 가격은 2010년 0.05달러였다. 최근엔 6000달러를 넘어섰다. 7년 만에 약 12만 배로 불어났다. 2년 만에 노동자 연봉의 20배 넘게 급등했다가 하루아침에 폭락한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1635~37) 뺨친다. 진단과 전망은 월가에서도 크게 엇갈린다. 월가의 애널리스트 로니 모아스는 “3년 내 2만 달러가 될 것”이라고 호언한다. 연내 1만 달러 돌파를 예상하는 곳도 꽤 있다.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 짐 로저스는 “진작 비트코인에 투자했어야 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반면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은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말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 랠리 핀크는 “암호 화폐는 불법 자금의 돈세탁 지표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11/02/f17f69d2-df28-4827-90d7-3c7644d15b37.jpg)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 최초의 암호 화폐 거래소인 코빗의 공동 창업자 김진화(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새 기술에 대한 투자는 투기와 구별하기 어렵다”며 “버블이라고 해도 (튤립 버블처럼) 파국적인 버블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술 분야 시장조사회사 가트너의 하이퍼 커브를 근거로 든다. 하이퍼 커브는 신기술이 등장하면 초기엔 투기적 투자가 일어났다가 급락, 이후 천천히 상승하는 곡선을 말한다.<그림> 누구 말이 맞을지 확인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더 본질적인 논란이 있다. 암호 화폐가 법정 화폐를 과연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달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디지털 화폐의 특성을 파악하고 직접 발행할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권고안을 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이미 내부용 암호 화폐를 만들어 사용 중이다. 중국도 시범 운용을 마쳤다. 우리는 좀 더 조심스럽다. 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은 “중앙은행이 암호 화폐를 발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대신 “(한의학과 양의학처럼) 법정 화폐와 공존하는 공생 관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암호 화폐 논란은 그러나 빙산의 일각이다. 더 근본적인 변화의 힘은 암호 화폐 뒤에 숨어 있다. 암호 화폐를 만든 기술,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거래 정보를 기록한 장부다. 암호 화폐의 가치를 입증하는 증서와 거래 기록을 16진수로 암호화해 놓은 내용을 블록이라고 하고 이 블록이 10분 단위로 연이어 생겨나기 때문에 체인이라고 부른다. 블록체인은 연결의 기술이다. 각 블록은 정교한 수학 공식을 사용해 그 직전의 블록에 연결하는 식으로 맨 처음 거래까지 연결한다. 체인이 꼬리를 물고 생기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위·변조가 불가능해지는 구조다. 현재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은 이미 어느 개인이나 국가도 없앨 수 없는 수준까지 와 있다. 김진화는 “양자 컴퓨터가 나오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블록체인은 서로 관련이 없는 모든 기업이나 거래를 연결할 수 있다. 음식·처방약부터 다이아몬드·팔찌까지 모든 상품의 공급과 거래를 ‘신뢰’라는 사슬로 연결한다. IBM은 이미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와 함께 제조업체, 세관 공무원, 농부를 연결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 중이다. 성공하면 거래·운송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유통 혁명이 가능해진다. IBM의 연구 책임자 아빈드 크리스나는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는 것”이라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은 또 분산의 기술이기도 하다. 분산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지금까지 화폐는 집중의 기술이었다. 신용·부채·발권력을 국가 권력에 집중시키는 데 주로 쓰였다. 귀금속 화폐가 중세 이후 급속히 지폐로 대체된 것도 그래서다. 지폐는 중앙 집권화를 수월하게 했다. 암호 화폐는 정반대다. 모든 거래 기록을 모든 개인에게 분산한다. 국가 권력의 독점에서 벗어난 최초의 화폐다. 정부가 화폐의 가치를 정하는 법정 화폐와 달리 자유롭다. 중앙은행을 통한 통화 증발에 따른 인플레이션이나 넘치는 유동성에 의한 양극화 같은 경제·사회적 결함이 애초부터 없다. 블록체인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론물리학의 세계적 석학 미치오 카쿠는 “세상을 바꾼 것은 기술”이라며 “첨단 기술의 발달은 빅브러더 대신 스몰브러더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게 될 것”(『미래의 물리학』)이라고 했다.
블록체인은 과연 세상을 바꿀 도구가 될 수 있을까. 김진화는 “그렇다”는 쪽이다. 그는 “당장 자본시장의 미래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은 암호 화폐 발행(ICO: Initial Coin Offering)을 통해 자본시장을 분권화·민주화한다. ICO는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이 암호 화폐를 발행해 그 화폐를 구매하는 사람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기업 가치가 높아지면 암호 화폐 가치도 덩달아 높아진다. 모든 사람이 이익을 나눠 갖는 구조다. 지금까지의 기업공개(IPO)와는 다르다. IPO는 주로 주주와 경영진이 이익을 나눠 가졌다. 소액 주주는 상대적으로 투자액에 비해 적은 몫을 받았다. ICO는 이런 중앙집중적인 자본시장의 생리를 벗어나 가장 분권화한 자본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블록체인이야말로 자본시장의 ‘특이점(싱귤래러티)’인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의 뿌리 기술도 블록체인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이 주인공인데 그것들을 연결·분산해 신뢰와 안전을 담보하는 유력한 기술이 블록체인이기 때문이다. 김진화는 “예컨대 10년 뒤 북한 해커의 무인자동차 해킹을 막으려면 블록체인 기술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다.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지금은 ‘전자 상품’으로 돼 있는 암호 화폐의 법적 지위도 제대로 만들어줘야 한다. 전자금융결제법 제정 등을 통해 암호 화폐를 주식처럼 예탁할 수 있도록 하고 거래소에 대한 감사·감독 체계도 갖춰야 한다. ICO도 활성화해야 한다. 지난달 한국은 ICO를 전면 금지했다.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유사 수신 행위 등 소비자 피해를 막는 게 시급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가 개발을 막는 순간 블록체인 기술은 물론 4차 산업혁명에도 뒤처지게 된다. 한국은행은 암호 화폐 발행 계획이 아예 없다. 이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은 “위대한 국가는 위대한 화폐를 보유한다(Great powers have great currency)”고 했다. 강대국엔 자국의 기축통화가 유리하다. 하지만 약소국은 세계 화폐가 유리하다. 그래야 환율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암호 화폐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따라갈 것인가 선도할 것인가. 오늘 암호 화폐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더 본질적인 논란이 있다. 암호 화폐가 법정 화폐를 과연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달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디지털 화폐의 특성을 파악하고 직접 발행할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권고안을 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이미 내부용 암호 화폐를 만들어 사용 중이다. 중국도 시범 운용을 마쳤다. 우리는 좀 더 조심스럽다. 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은 “중앙은행이 암호 화폐를 발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대신 “(한의학과 양의학처럼) 법정 화폐와 공존하는 공생 관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암호 화폐 논란은 그러나 빙산의 일각이다. 더 근본적인 변화의 힘은 암호 화폐 뒤에 숨어 있다. 암호 화폐를 만든 기술,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거래 정보를 기록한 장부다. 암호 화폐의 가치를 입증하는 증서와 거래 기록을 16진수로 암호화해 놓은 내용을 블록이라고 하고 이 블록이 10분 단위로 연이어 생겨나기 때문에 체인이라고 부른다. 블록체인은 연결의 기술이다. 각 블록은 정교한 수학 공식을 사용해 그 직전의 블록에 연결하는 식으로 맨 처음 거래까지 연결한다. 체인이 꼬리를 물고 생기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위·변조가 불가능해지는 구조다. 현재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은 이미 어느 개인이나 국가도 없앨 수 없는 수준까지 와 있다. 김진화는 “양자 컴퓨터가 나오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블록체인은 서로 관련이 없는 모든 기업이나 거래를 연결할 수 있다. 음식·처방약부터 다이아몬드·팔찌까지 모든 상품의 공급과 거래를 ‘신뢰’라는 사슬로 연결한다. IBM은 이미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와 함께 제조업체, 세관 공무원, 농부를 연결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 중이다. 성공하면 거래·운송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유통 혁명이 가능해진다. IBM의 연구 책임자 아빈드 크리스나는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는 것”이라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은 또 분산의 기술이기도 하다. 분산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지금까지 화폐는 집중의 기술이었다. 신용·부채·발권력을 국가 권력에 집중시키는 데 주로 쓰였다. 귀금속 화폐가 중세 이후 급속히 지폐로 대체된 것도 그래서다. 지폐는 중앙 집권화를 수월하게 했다. 암호 화폐는 정반대다. 모든 거래 기록을 모든 개인에게 분산한다. 국가 권력의 독점에서 벗어난 최초의 화폐다. 정부가 화폐의 가치를 정하는 법정 화폐와 달리 자유롭다. 중앙은행을 통한 통화 증발에 따른 인플레이션이나 넘치는 유동성에 의한 양극화 같은 경제·사회적 결함이 애초부터 없다. 블록체인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론물리학의 세계적 석학 미치오 카쿠는 “세상을 바꾼 것은 기술”이라며 “첨단 기술의 발달은 빅브러더 대신 스몰브러더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게 될 것”(『미래의 물리학』)이라고 했다.
블록체인은 과연 세상을 바꿀 도구가 될 수 있을까. 김진화는 “그렇다”는 쪽이다. 그는 “당장 자본시장의 미래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은 암호 화폐 발행(ICO: Initial Coin Offering)을 통해 자본시장을 분권화·민주화한다. ICO는 기술을 보유한 벤처기업이 암호 화폐를 발행해 그 화폐를 구매하는 사람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기업 가치가 높아지면 암호 화폐 가치도 덩달아 높아진다. 모든 사람이 이익을 나눠 갖는 구조다. 지금까지의 기업공개(IPO)와는 다르다. IPO는 주로 주주와 경영진이 이익을 나눠 가졌다. 소액 주주는 상대적으로 투자액에 비해 적은 몫을 받았다. ICO는 이런 중앙집중적인 자본시장의 생리를 벗어나 가장 분권화한 자본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블록체인이야말로 자본시장의 ‘특이점(싱귤래러티)’인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의 뿌리 기술도 블록체인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이 주인공인데 그것들을 연결·분산해 신뢰와 안전을 담보하는 유력한 기술이 블록체인이기 때문이다. 김진화는 “예컨대 10년 뒤 북한 해커의 무인자동차 해킹을 막으려면 블록체인 기술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다.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지금은 ‘전자 상품’으로 돼 있는 암호 화폐의 법적 지위도 제대로 만들어줘야 한다. 전자금융결제법 제정 등을 통해 암호 화폐를 주식처럼 예탁할 수 있도록 하고 거래소에 대한 감사·감독 체계도 갖춰야 한다. ICO도 활성화해야 한다. 지난달 한국은 ICO를 전면 금지했다.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유사 수신 행위 등 소비자 피해를 막는 게 시급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가 개발을 막는 순간 블록체인 기술은 물론 4차 산업혁명에도 뒤처지게 된다. 한국은행은 암호 화폐 발행 계획이 아예 없다. 이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은 “위대한 국가는 위대한 화폐를 보유한다(Great powers have great currency)”고 했다. 강대국엔 자국의 기축통화가 유리하다. 하지만 약소국은 세계 화폐가 유리하다. 그래야 환율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암호 화폐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따라갈 것인가 선도할 것인가. 오늘 암호 화폐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입력 2017.11.02
뱀다리 하나: 애덤 스미스 시절의 영국은 금· 은화를 같이 화폐로 쓰는 금·은 복본위제였다. 그는 화폐의 조건으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막 은행들이 발행하기 시작한 지폐에 대해 그는 이런 경고를 남겼다.
기업이나 상인들은 종전의 금과 은으로 포장한 도로로 여행할 때보다 훨씬 더 위험해졌다. 지폐를 사용하는 것은 다이달로스(새의 깃털과 촛농으로 만든 날개를 만들어 아들 이카로스에게 주었다)의 날개에 매달려 여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폐를 다루는 어리숙한 사람들의 실수에 의해 위험과 곤란에 처할 뿐 아니라 분별력과 실력 있는 사람들도 지켜줄 수 없는 위험과 곤란이 닥칠 수도 있다.”(『화폐 이야기』에서 재인용)
400년 전 스미스의 경고는 암호 화폐에 대해서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석구 형, 스미스의 경고문에서 지폐 대신 암호 화폐를 넣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