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개가 먹는 사슴 고기는 한 끼에 1만5000원, 사람은 3000원짜리 짬뽕!

해암도 2017. 9. 4. 08:29

 "犬公용 사슴고기 식당 있다는데…" 

인문학 강연 2題

지난 주말 서울과 경북 칠곡에서는 두 건의 인문학 강연이 있었다. 신화적 상상력을 연구해온 중문학자 정재서 교수의 정년 퇴임 강연과 소설가 김훈의 ‘소설과 인생’ 강연이었다.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의미를 되짚는 강연을 지상중계한다.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퇴임 강연]


"인간과 자연의 공존 중시… 동양 신화의 역할 커질 것"


"요즘 과학자들이 동양신화 속에 나오는 '용(龍)'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연구해 봤더니, 그 정체가 양쯔(揚子)강의 악어였답니다. '봉황'은 산꿩이었고요." 정재서(65)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데,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된 겁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용'과 '봉황'이 그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줬던 상상력 아니었나요?"

지난 1일 서울 이화여대 인문관에서 열린 강연 '신농(神農), 사피엔스, 포스트휴먼'은 정년을 맞은 정 교수의 고별 강연이었다. 1984년부터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동양적인 것의 슬픔' '동아시아 상상력과 민족서사' 등의 연구서를 내며 중화주의를 벗어난 자생적 한국 동양학의 정착에 힘썼다.

정재서 교수는 고별 강연에서 “테크놀로지의 발달 속에서도 신화적 상상력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서 교수는 고별 강연에서 “테크놀로지의 발달 속에서도 신화적 상상력은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이날 축사를 맡은 시인 황지우씨는 "정 교수가 국내 처음으로 역주(譯註)한 신화서 '산해경(山海經)'이 나를 포함한 시인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강연에는 정민 한양대 교수, 전호태 울산대 교수, 오태석 동국대 교수 등 학자와 연구자·학생 100여 명이 참석해 귀를 기울였다.

정 교수는 "과학이 발달했다는 것은 과거의 지혜를 일축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고대의 인문학적 지혜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을 거쳐 인간의 모든 것을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가 오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신화가 지닌 상상력, 교감 능력, 스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시대를 이끌 인문학적 능력이 바로 신화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가 지닌 상상력이 그렇게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반인반수(半人半獸)라고 하면 사람을 해치는 뿔 달린 괴물을 떠올립니다. 인어(人魚)라고 하면 아름다운 젊은 여성을 생각하게 되고요." 따지고 보면 이것들은 그리스 신화와 안데르센 동화 속 이미지일 뿐이다.

"고구려 오회분 5호묘 벽화에는 그리스의 미노타우로스처럼 소 머리를 한 신농이 등장하는데, 그는 숭배의 대상인 신(神)이었습니다. '산해경'에는 '아저씨 인어'가 나오고요." 결국 현재 우리가 지니고 있는 상상력은 서구에 의해 '표준화'된 상상력이었던 것이며, '서구 제국주의'는 상상력까지 착취했던 셈이라고 정 교수는 말했다.

정 교수는 "과거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했던 근대 산업화 시대에는 인간 중심의 그리스·로마신화가 적합했지만, 바야흐로 인간과 자연이 교감·공존하고 감성 능력이 복권되는 시대에는 동양신화의 역할이 크게 기대된다"고 했다. 반인반수인 신농이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합일과 융복합의 표상으로 거듭나리라는 것이다.

[소설가 김훈 '소설과 인생' 강연]


"그 옆 골목엔 3000원 짬뽕집… 내 글에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

소설가 김훈(69)씨가 지난 1~2일 경북 칠곡군 송정 휴양림에서 독자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김훈과 함께하는 소설 낭독 캠프'를 열었다. '이야기 경영연구소'(대표 이훈)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 나온 김훈씨는 '소설과 인생'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우리 역사는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가건물 같다"며 "가건물 의식을 불식시키고 우리의 고향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 저의 개인으로서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밝혔다.

김씨는 전쟁과 기아가 이어진 한국사를 되돌아보며 반구대 암각화와 '삼국유사'를 통해 작가의 역할을 에둘러 설명했다. 그는 '삼국유사'에 실린 황룡사 창건 설화를 언급했다. 신라 진흥왕이 왕궐을 지으려 한 터에 황룡이 나타나자 그곳에 사찰을 지었고, 인도에서 금과 구리로 만든 불상을 배에 띄워 보냈다는 것.

“일연 스님이 일흔 살을 넘겨 ‘삼국유사’를 쓴 마음을 헤아리려 한다”고 밝힌 소설가 김훈씨.
“일연 스님이 일흔 살을 넘겨 ‘삼국유사’를 쓴 마음을 헤아리려 한다”고 밝힌 소설가 김훈씨. /박해현 기자
김씨는 "일연 스님 때는 이미 몽골 침입으로 황룡사가 잿더미가 됐지만, 그 피해에 대해 일언반구 없이 신라인이 황룡사를 처음 구상했을 때 평화와 화해의 꿈이 무엇이었고, 인도 같은 곳에서 우리의 꿈을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썼다"며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무너질 수 없는 인간의 꿈과 마음을 기록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씨는 "마음은 역사의 일부가 아니라 마음으로 역사를 구성할 수 있다"며 "실증주의를 공부한 분들이 '삼국유사'는 역사가 아니라 이야기 책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연이 일흔 살을 훨씬 넘긴 나이에 설화 자료를 짊어지고 '삼국유사'를 쓰려고 인각사에 들어간 모습을 상상하면 눈물겨운 일"이라고 자신의 내면을 내비쳤다.

김씨는 "얼마 전 반구대 암각화를 보러 가서 온종일 유심히 들여다보고 왔다"며 "만년 전 반구대의 남자들은 호랑이도 고래도 잡던 멋진 사내들이었지만 요새 그런 남자는 없다"고 탄식했다. 그는 "반구대 그림을 보면서 저런 삶의 구체성을 쓰는 것이 내 소설과 삶을 밀착시켜나가는 길이 아닌가"라며 그가 사는 일산의 신풍속도에 대해 한마디했다.

"24시간 영업하는 짬뽕 가게가 있다. 돈이 있는 사람은 9000원짜리를 먹고, 밤새 알바를 끝내고 온 듯한 젊은이들은 3000원짜리를 먹는다. 그 옆 골 목엔 개 식당이 많이 생겼다. 개를 먹는 식당이 아니라, 개에게 밥을 먹이는 식당이다. 개가 먹을 사슴 고기는 한 끼에 1만5000원, 샐러드는 유기농 식품이다. 개가 줄을 서서 먹는다. 그 옆 골목에 가면 젊은이들이 3000원짜리 짬뽕을 먹는다. 이것이 시장의 자유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이런 일상을 어떻게 소설로 써야 하는지, 고민에 빠지게 한다."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칠곡=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입력 : 2017.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