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품 그 도시]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 졸업. '하퍼스'와 '이코노미스트' 편집인, CNN 간판 정치토크쇼 진행자,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명망 있는 정치 칼럼니스트 중 하나. 마이클 킨슬리를 정의하는 말은 그의 일생을 추측해볼 수 있을 만큼 화려하다.
하지만 '42세에 파킨슨병을 선고받은 환자'라는 말만큼 극적이진 않다. 특히 그가 "파킨슨병은 노화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정신이 깜빡깜빡하고 손이 떨리고 몸이 경직되고 움직임도 둔하다. 나로서는 나이는 젊었으되 동년배들에 비해 20여 년은 앞서 노화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담담히 말하는 순간에는 더 그렇다.
파킨슨병에 대한 내 지식은 빈약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킨슨병 환자가 '백 투더 퓨처'의 마이클 J 폭스라는 것 정도를 알 뿐이다. 그 역시 배우로 한창 활동할 시기에 이 병을 진단받았다. 그의 나이 31세 때였다.
"인생은 불공평하다. 특히나 사람마다 서로 다른 길이의 수명을 누리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신문에서 부음 기사를 넘길 때 60세에서 90세 사이에 죽은 이들에 대한 기사에는 눈길을 멈추게 되지 않는다. 물론 간혹 멈출 때도 있긴 하지만, 60세와 90세 사이에서는 언제 죽어도 '정상적인' 수명을 누린 것으로 간주된다. 90세는 60세보다 50퍼센트를 더 산 것으로,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도 말이다."
71세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걷기조차 힘든 71세도 있다. 같은 노인이라도 엄청나게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베이비붐 세대가 펼치는 생의 마지막 경쟁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문득 사노 요코의 책 '죽는 게 뭐라고'가 떠올랐다. 책에선 암 선고를 받은 그녀가 의사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 이때 바로 문제의 '55세'라는 말이 나온다. 박사 말에 따르면 55세까지는 유전자가 생존, 생식 모드로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은 대체로 평등하게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쉰다섯 살 이후 유전자의 가장 큰 의무, 즉 종족 보존이 끝나면 생물학적으로는(사회학적으로는 다르지만) 인간은 필요 없는 존재가 된다. 그때부터 이전의 생활 습관이나 유전적 요인에 의한 개인의 노화 차이는 극적으로 벌어진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지만 죽는 순서는 없다. 32세처럼 보이는 12세는 존재하지 않지만, 62세처럼 보이는 82세는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이다. 우리가 나이 듦에 공포를 가지고 있다면, 바로 이 노화의 속도 경쟁 때문일 것이다. 파킨슨병의 기이한 점이 있다면 또한 그 속도와 관련 있다. 파킨슨병을 앓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병으로 갑자기 죽진 않기 때문이다. 파킨슨병 환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85세를 넘겨 생존한다.
"중년에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신통치 않은 학생이었다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과 관련된 소중한 결론이다. 우리가 성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전까지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가 변하면서 새로운 판이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실패한 사람도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운이 따르면 최후에 웃는 사람, 즉 승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중년의 성공도 최후의 웃음은 아니다. 인생의 마지막 챕터에 들어서면 다시 한 번 새로운 판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당신이 얼마나 오래 살게 되는지, 노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 암이나 파킨슨병을 피하는 데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이 모든 것은 이전 라운드에서 당신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했던 요소들과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다. 바로 거기에 삶의 정의가 존재한다."
바로 거기에 삶의 정의가 존재한다!
근래 들어 이 문장이 제시하는 '정의'의 맥락만큼 통절한 말을 본 적이 없다. 명문대를 나온 부장판사라는 스펙이 마지막 라운드, 즉 건강의 측면에선 영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에서 인생은 얼마간 평평해지며 평등해지는 것일까. 생의 마지막이 되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마지막에는 그에게 결정적 깨달음을 선사한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첫 번째, 그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단지 수영장에서 90대 노인을 만난다. 하지만 노인이 자신이 '판사'였다고 밝히는 순간, 그는 한물간 노인네가 과거의 영광을 우리며 남은 생의 시간을 죽이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때의 일을 그는 칼럼으로 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손자가 보낸 독자 투고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다. 그 노인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삶은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큰 열정을 쏟아 부었다는 걸 알게 된 탓이다.
두 번째, 그는 비행기에서 로버트 맥나라마를 만났다. 미국 국방부장관을 7년이나 역임했던 맥나라마는 베트남전쟁의 당위성을 설파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이후 속죄의 뜻을 내비치면서 80대 나이에 젊은 여성과 (죽은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리조트에서!) 스키 여행을 다니며 행복한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세 번째, 그는 물품창고에서 정신지체를 앓는 사환과 만난다.
앞선 두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라운드를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방식으로 향유했다. 그는 그것을 '뛰어난 성적으로 레이스를 완주한 마라토너'에 비유했다. 하지만 정신지체 사환이나 자신은 인생의 첫 라운드, 혹은 2, 3라운드부터 문제가 생긴 경우였다. 정신지체로 태어나는 것과 42세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것은 인생을 빠르게 달리는 데 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성공한 사람도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느냐이며, 어떻게 죽느냐는 것은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어떻게 늙어가느냐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마라톤에서 마지막 구간의 질주가 성적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인 것처럼 노년과 죽음은 서로 등을 밀착해서 맞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42세에 파킨슨병을 선고받은 환자'라는 말만큼 극적이진 않다. 특히 그가 "파킨슨병은 노화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정신이 깜빡깜빡하고 손이 떨리고 몸이 경직되고 움직임도 둔하다. 나로서는 나이는 젊었으되 동년배들에 비해 20여 년은 앞서 노화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담담히 말하는 순간에는 더 그렇다.
파킨슨병에 대한 내 지식은 빈약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킨슨병 환자가 '백 투더 퓨처'의 마이클 J 폭스라는 것 정도를 알 뿐이다. 그 역시 배우로 한창 활동할 시기에 이 병을 진단받았다. 그의 나이 31세 때였다.
"인생은 불공평하다. 특히나 사람마다 서로 다른 길이의 수명을 누리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신문에서 부음 기사를 넘길 때 60세에서 90세 사이에 죽은 이들에 대한 기사에는 눈길을 멈추게 되지 않는다. 물론 간혹 멈출 때도 있긴 하지만, 60세와 90세 사이에서는 언제 죽어도 '정상적인' 수명을 누린 것으로 간주된다. 90세는 60세보다 50퍼센트를 더 산 것으로,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도 말이다."
71세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걷기조차 힘든 71세도 있다. 같은 노인이라도 엄청나게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베이비붐 세대가 펼치는 생의 마지막 경쟁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든다고 그는 말한다.
문득 사노 요코의 책 '죽는 게 뭐라고'가 떠올랐다. 책에선 암 선고를 받은 그녀가 의사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 이때 바로 문제의 '55세'라는 말이 나온다. 박사 말에 따르면 55세까지는 유전자가 생존, 생식 모드로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은 대체로 평등하게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쉰다섯 살 이후 유전자의 가장 큰 의무, 즉 종족 보존이 끝나면 생물학적으로는(사회학적으로는 다르지만) 인간은 필요 없는 존재가 된다. 그때부터 이전의 생활 습관이나 유전적 요인에 의한 개인의 노화 차이는 극적으로 벌어진다.
태어나는 순서는 있지만 죽는 순서는 없다. 32세처럼 보이는 12세는 존재하지 않지만, 62세처럼 보이는 82세는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이다. 우리가 나이 듦에 공포를 가지고 있다면, 바로 이 노화의 속도 경쟁 때문일 것이다. 파킨슨병의 기이한 점이 있다면 또한 그 속도와 관련 있다. 파킨슨병을 앓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병으로 갑자기 죽진 않기 때문이다. 파킨슨병 환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85세를 넘겨 생존한다.
"중년에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신통치 않은 학생이었다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과 관련된 소중한 결론이다. 우리가 성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이전까지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가 변하면서 새로운 판이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실패한 사람도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운이 따르면 최후에 웃는 사람, 즉 승자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중년의 성공도 최후의 웃음은 아니다. 인생의 마지막 챕터에 들어서면 다시 한 번 새로운 판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당신이 얼마나 오래 살게 되는지, 노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 암이나 파킨슨병을 피하는 데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이 모든 것은 이전 라운드에서 당신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했던 요소들과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다. 바로 거기에 삶의 정의가 존재한다."
바로 거기에 삶의 정의가 존재한다!
근래 들어 이 문장이 제시하는 '정의'의 맥락만큼 통절한 말을 본 적이 없다. 명문대를 나온 부장판사라는 스펙이 마지막 라운드, 즉 건강의 측면에선 영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에서 인생은 얼마간 평평해지며 평등해지는 것일까. 생의 마지막이 되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마지막에는 그에게 결정적 깨달음을 선사한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첫 번째, 그는 자신이 살던 아파트 단지 수영장에서 90대 노인을 만난다. 하지만 노인이 자신이 '판사'였다고 밝히는 순간, 그는 한물간 노인네가 과거의 영광을 우리며 남은 생의 시간을 죽이고 있다고 믿게 된다. 그때의 일을 그는 칼럼으로 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의 손자가 보낸 독자 투고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다. 그 노인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삶은 가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큰 열정을 쏟아 부었다는 걸 알게 된 탓이다.
두 번째, 그는 비행기에서 로버트 맥나라마를 만났다. 미국 국방부장관을 7년이나 역임했던 맥나라마는 베트남전쟁의 당위성을 설파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이후 속죄의 뜻을 내비치면서 80대 나이에 젊은 여성과 (죽은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리조트에서!) 스키 여행을 다니며 행복한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세 번째, 그는 물품창고에서 정신지체를 앓는 사환과 만난다.
앞선 두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라운드를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방식으로 향유했다. 그는 그것을 '뛰어난 성적으로 레이스를 완주한 마라토너'에 비유했다. 하지만 정신지체 사환이나 자신은 인생의 첫 라운드, 혹은 2, 3라운드부터 문제가 생긴 경우였다. 정신지체로 태어나는 것과 42세에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것은 인생을 빠르게 달리는 데 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성공한 사람도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느냐이며, 어떻게 죽느냐는 것은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어떻게 늙어가느냐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마라톤에서 마지막 구간의 질주가 성적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인 것처럼 노년과 죽음은 서로 등을 밀착해서 맞대고 있는 것이다."
노년의 자존심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세대로서의 연대와 책임, '홀로'가 아니라 '함께' 노년을 겪어가는 것, 개인이 아닌 세대로서의 평판에 신경 쓰는 것!
이것이 남들보다 20년 이상 빨리 늙어본 한 남자가 말한 노년을 현명하게 맞는 방법이다.
이것이 남들보다 20년 이상 빨리 늙어본 한 남자가 말한 노년을 현명하게 맞는 방법이다.
백영옥·소설가 조선일보 입력 : 2017.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