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은 왜 압도적 1위가 됐나

해암도 2017. 8. 15. 08:12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방황과 고뇌, 그리고 그 극복을 담은 소설 '데미안'
독자 투표 결과 이제 막 성인이 된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1위로 뽑혔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뚫고 '데미안'이 1위로 꼽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러스트=안병현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년(成年)에게 이보다 어울리는 격려가 있을까.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방황과 고뇌 그리고 그 극복을 담은 소설 ‘데미안’이 독자 투표 결과 이제 막 성인이 된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1위로 뽑혔다.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일지도. 유복하게 자라난 에밀 싱클레어가 신비로운 동년배 데미안 막스를 만나 자신을 찾는 이야기로, 청춘을 위한 성장소설로 널리 알려졌다. 너무 유명해서 작년에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 앨범 콘셉트로 ‘데미안’을 활용했을 정도다. 소설가 헤르만 헤세(1877~1962)가 1919년 책 속 주인공 이름과 같은 가명 ‘에밀 싱클레어’로 발표했다.

대부분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자라나서 뒤늦게 홀로서기를 하는 한국에서 성장통은 격렬하다. 입시, 취업, 결혼이라는 삶의 문턱 앞에서 허덕이며 진짜 자기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조차 부족한 현실이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부모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다 자기 자신은 잊고 마는 청년들에게 이 책이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일 것이다.


독자 투표에서는 소설과 자기계발서가 1~10위를 모두 차지했다. ‘삼국지’(2위), ‘토지’(4위), ‘태백산맥’(6위) 같은 대하역사소설이 한 자리씩을 차지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왕자’,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소설만 7권이었다. 아들러 심리학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린 ‘미움 받을 용기’가 비소설 중에서는 제일 높은 5위를 차지했다. 이어 ‘자존감 수업’(6위) ‘아프니까 청춘이다’(8위) 같은 자기계발서가 이름을 올렸다.


독서 편식을 막기 위해 조선일보 문학·출판팀은 논픽션 위주로 책을 선정했다. 유발 하라리가 지금의 문명(文名)을 떨치게 한 ‘사피엔스’는 만장일치로 이름을 올렸다. 스테디셀러 ‘이기적 유전자’ ‘월든’ ‘총 균 쇠’ ‘코스모스’ 같은 책들도 고른 지지를 받았다.


창창한 미래를 앞둔 이들에게, 그렇기 때문에 읽어야 할 책 한 권을 넣었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 신경외과의로서 눈부신 미래가 약속됐던 나이 36세에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2년 뒤 숨진 미국 의사의 회고록이다. 그는 발병 사실을 알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고, 신경외과 수련의실로 돌아갔으며, 아이도 가졌다.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1만 시간의 법칙을 대중적으로 소개한 ‘아웃라이어’도 이름을 올렸다.

필사책 열풍 덕분에!
"'데미안의 새’처럼 공부도 정치도 죽을 힘 다했어요"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    편집=오현주     입력 : 2017.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