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금수저 돌 선물

해암도 2016. 12. 31. 04:57

아기 돌 선물로 금반지 대신 금수저가 등장해 인기를 모은다는 보도가 나왔다. 알아보니 진짜 숟갈로 쓰기는 힘들고 금 반 돈이나 한 돈으로 시늉만 낸 숟갈이다. 숟가락 모양으로 만든 반지도 있고 스푼과 포크 세트도 나와 있다. 자식한테 금수저 타고난 것 같은 팔자를 물려줄 수 없는 부모들이 돌잔치 때만이라도 한번 손에 쥐여주라는 상술이다.

▶대학 나와도 일자리 잡기 힘들고 취직해도 집 장만하기 힘든 사회가 되니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에 '수저 계급론'이 오르내렸다.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 가운데 자신이 어느 등급에 해당되는지 알아보는 체크리스트도 인터넷에 나돌았다. 플라티늄 수저, 다이아몬드 수저, 플라스틱 수저하는 식으로 변형 수저론도 나왔다. 

[만물상] 금수저 돌 선물
▶우리 사회는 대체로 금수저 출신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정당한 노력보다는 부모 덕에 잘사는 사람이 많다는 인식 때문이다. 금수저가 갑질하면 국민의 분노 지수는 곱절로 높아진다. 얼마 전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서 난동 부린 30대는 모 중소기업 대표의 아들로 밝혀지면서 신상이 몽땅 털렸다. 그래선지 정치판에서는 서로 수저 계급이 낮다고 내세우기 바쁘다. 황교안 총리는 기자간담회에서 "여러분은 나를 '금수저'라 생각하는데 흙수저 중의 무(無)수저"라고 했다. 흙수저보다 더 낮은 계급 무수저로 자칭하면서 주가를 높여온 대표 주자는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수저 계급론은 서양에서 왔을 것이다. '은숟갈 물고 태어난다'는 영어 표현이 있다. 부잣집에 태어났다는 뜻이다. 은 숟갈을 비롯해 은제 식기는 유럽에서 주로 귀족들이 사용했다. 우리에게 수저는 은수저든 놋수저든 물질적 이미지는 아니었다. '산이 저문다/노을이 잠긴다/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김광균의 시 '은수저'는 저녁 밥상에 죽은 자식 은수저를 얹어놓고 눈물짓는 부모 마음을 담았다.

▶계층 이동의 역동성이 사라져가는 한국 사회에서 수저 계급론은 젊은이들의 자조를 담아낸다. 하지만 커다란 찌개 그릇에 온 식구가 숟가락 푹푹 담궈 나눠 먹는 문화에서 수 저는 곧 가족애(愛)다. '애들은 자라서 객지로 나가고/ 당신과 나/ 둘만 사는 집이라/ 숟가락 두 개 젓가락 두 매/ 이렇게 수저통에 넣어두면 되는데/ 그래도 섭섭하여/ 애들 셋과 사위 하나를 보태서/ 숟가락 넷과 젓가락 네 매를 더/ 수저통에 꽂아 두었다'(임술랑 시 '숟가락 여섯'). 돌 맞은 아이에게 쥐여줘야 할 건 금수저보다는 부모 사랑일 것이다.

 조선일보  강경희 논설위원     입력 : 2016.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