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 한가운데서 마음 한편에 평화가 가득했던 순간을 표현한 듯해서 마음이 짠하네요.”(천은영·42)
“이중섭 작품 중에 이렇게 서정적이고 평온한 색감의 작품이 있다는 건 몰랐어요.”(최지민·17)
‘황소’도, ‘가족’도 아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을 본 관람객 547명을 대상으로 ‘유화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설문한 결과 ‘벚꽃 위의 새’(1954년)가 110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설문은 지난달 14~17일 진행됐다.
이중섭 하면 자동 연상되는 황소 그림이나 아이들을 그린 작품을 제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이 1위를 차지한 건 의외의 결과다. 관객들은 새로운 이중섭의 면모에 감동했다. 비취색 은은히 감도는 배경을 벚꽃 가지가 가로지른다. 하얀 새가 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았지만 만개한 벚꽃은 그 무게를 못 이긴 채 후두둑 낙하한다. 새의 시선이 머문 곳엔 파란 청개구리가, 화면 구석엔 깜짝 놀라 날아가는 노랑나비가 있다. 황소로 대변되는 이중섭의 기운 생동하는 필획과는 사뭇 다른 보드라운 서정이 보는 이의 마음을 잔잔하게 해준다.
2위(71표)는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돌아오지 않는 강’(1956년). 소년이 지친 표정으로 창문에 기대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본다. 집 뒤로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돌아오는 어머니 모습이 보이지만 그 모습은 관객만 볼 수 있을 뿐 소년은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전쟁으로 북에 남겨두고 온 어머니를 향한 이중섭의 그리움이 짙게 밴 작품 이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권덕훈(29)씨는 “생의 끝자락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서린 작품이라 그런지 보는 내내 애잔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이중섭이 가족과 제주도에서 피란 생활을 하면서 단란했던 때를 그린 ‘바닷가의 아이들’(1952~1953년)과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황소’(1953~1954년)가 각각 53표를 얻어 공동 3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