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 시비 잘 날 없는 미술시장
미술가는 진짜 자기 작품이라는데, 화랑업자와 감정가들은 가짜라고 뒤에서 수군거린다. 급기야 경찰이 가짜를 색출하겠다고 나섰는데, 작가에겐 문제의 작품들을 보여줄 수 없다고 퇴짜를 놓는다. 작가는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가 있다고 반발하고, 업자들은 작가가 적극 진실을 밝혀야한다고 채근하고 있다.
천경자 ‘미인도’ 진위 논란 이어
이우환 70년대 ‘점’ ‘선’ 연작도 잡음
작가 “본 것 중엔 위작 없다” 했지만
화랑업자·감정가들은 ‘가짜’ 의구심
경찰 개입으로 격화…여전히 미궁
이우환 70년대 ‘점’ ‘선’ 연작도 잡음
작가 “본 것 중엔 위작 없다” 했지만
화랑업자·감정가들은 ‘가짜’ 의구심
경찰 개입으로 격화…여전히 미궁
거장 작품 관리할 재단설립 ‘제자리’
학자·업자·작가 유족간 주도권 다툼
미술시장 감정기구 분열…권위 추락
학자·업자·작가 유족간 주도권 다툼
미술시장 감정기구 분열…권위 추락
이렇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들이 지금 국내 미술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60년대 일본에서 ‘모노하(物派)’란 현대미술 운동을 주도했고, 명상적인 점·선 그림들로 서구에서 각광받으며 세계적 거장이 된 이우환(80) 작가가 논란의 표적이다. 그가 세계미술계에 널리 알려지지않았던 70년대 그린 작품들의 진위 여부를 놓고 작가와 화랑업자들이 상반된 견해를 내세우며 서로 맞서는 모양새다.
이우환, 천경자 등 대가들의 작품을 둔 진작·위작 논란이 한국 미술시장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국내 경매사 케이옥션의 작품 경매 모습. 케이옥션 제공
지난해 세상을 떠난 한국화 거장 천경자 화백의 경우는 양상이 거꾸로다. 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천 화백이 그린 작품이라며 소장품 ‘미인도’를 아트포스터로 만들어 팔자, 작가가 조악한 가짜라고 반발하면서 비롯된 진위작 시비는 화랑들과 미술관 쪽이 여전히 진작이라고 강변하면서 작가가 타계한 뒤에도 진실이 가려지지 않고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또다른 거장 이중섭, 박수근의 진위작 시비가 유족, 화랑업자들 사이에 불거져 법정까지 공방이 이어졌다. 법원이 진위 판단을 내리긴 했지만, 명확하게 진상이 규명된 사례는 없다. 끊일 사이 없는 진위작 시비들로 국내 감정전문가들의 권위만 땅에 떨어진 셈이다.
이우환 작가의 경우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과 2014년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궁 설치 전시 등으로 국제적 성가를 높였으나, 국내 시장에선 불거진 위작 시비로 명예와 시장 유통 등에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발단은 2012년께부터 블루칩 상품으로 꼽히는 70년대말 작품 ‘점’ ‘선’ 연작들이 대거 한국시장에 유입되면서 비롯됐다. 화랑업자들이 주도해 만든 한국미술품감정협회 등은 이 작품들의 재료나 화폭 등에서 새것의 느낌이 강하게 나거나 색감이 조악하다며 의구심을 제기했다.
위작이 500점 넘게 돌고 작가가 70년대 초기작들을 다시 그린다는 소문들도 퍼졌다. 게다가 협회 쪽은 자체적으로 진위가 의심스럽다고 지목한 작품 일부를 이 작가가 직접 보고나서 진작이라고 뒤집자 2013년 3월 감정을 중단해버렸다. 내부 논란이 커지자, 작가는 그해 10월 친분이 깊은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과 신옥진 부산 공간화랑 대표에게 감정을 대행하는 위임장을 써줬으나, 두 화상은 그뒤에도 감정서를 발급하지 않았다. 거래가 어렵게 된 일선 화랑들의 불만이 비등했고, 협회와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우환 '점으로부터'
갈등을 풀려는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작가는 국내 미술계 지인들에게 문제의 작품들이 “70년대 말 일본 동경화랑에 신세를 지면서 위탁했던 것들이 최근 국내 시장에 무더기로 들어온 것 같다”고 해명했고, 2014년 4월24일치 <한겨레>인터뷰에서 “시중에 유통되는 작품들을 모아 세차례 검토해봤는데, 내가 본 작품 중에 가짜는 없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인터뷰 보도 직후 작가는 서울 인사동에서 협회 관계자들을 만나 문제되는 작품들은 앞으로 함께 검토하자고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뒤에도 협회 쪽과 작가가 함께 작품을 검토하는 자리는 꾸려지지 않았고, 위작설은 특정 화랑 부탁을 받은 전문위조범이 이 작가의 가짜작품들을 그려 거액을 벌었다는 풍문으로 더욱 커져갔다.
지난해 6월 경찰이 이런 설을 내사하다 공식수사에 착수하고, 위작 유통설이 돌던 몇몇 군소화랑과 미술품감정협회를 압수수색하면서 위작시비는 표면화했다. 연말엔 갤러리현대가 설립한 케이(K)옥션 경매에도 불똥이 튀었다. 12월 이 경매사 경매에서 4억9000여만원에 낙찰된 78년작 ‘점으로부터’ 연작의 화랑협회 감정서가 과거 다른 작품 감정서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나 수사는 경매사와 갤러리 현대, 화랑협회로 확대됐다. 현재 경찰수사를 놓고 위작전문가 ㅎ씨를 주범으로 지목해 일본에 있는 그를 뒤쫓고있다거나 조사 받은 화랑계 인사들이 위작유통을 대부분 부인했다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풍문들도 흘러나온다.
서구의 미술시장에서는 이우환 작가처럼 작품 진위를 놓고 생존 작가와 업자들이 대립하는 사례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정신적 하자가 없다면 작가가 자기 작품을 가장 잘 알고, 위조된 작품을 진짜라고 우길 수 없다는 게 상식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존 작가의 견해가 진위 판정의 핵심 잣대이며, 감정서보다 작품 출처와 소장 경위 등을 담은 기록이 중시된다. 법적 소송 등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작가와 유족 견해를 존중하는 게 불문율이다. 2차 대전 당시 호텔을 전전하면서 매일 막대한 분량의 스케치 그림을 호텔 쪽에 건네며 생활했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진작 시비가 단적인 사례다. 전후 이 작품들이 시장에 쏟아지자 진작 여부를 확인하려는 경매사의 문의에 피카소는 일일이 확인해줄 수 없어 그때그때 기분 내키는대로 진작을 판정해줬고, 경매사 쪽이 별 이의 없이 이를 수용했다는 일화는 서구 미술계에서 꽤 유명하다.
이우환 작가 쪽이 위작을 전면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대리인인 최순용 변호사는 1월25일 낸 보도자료를 통해 “‘내가 보고 확인한 작품 중에서 위작이 없다’고 말한 작가 인터뷰 내용이 ‘내 작품은 위작이 없다’식으로 보도된다”고 지적하면서 “다른 작가 작품과 마찬가지로 위조품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감정가와 화랑업자들은 많은 위작들이 거래되는데도 작가가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덮으려했다거나, 감식안이 의심된다는 식의 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이 작가는 이에 대해 2014년 <한겨레>인터뷰에서 “시장에서 날 제거하고 작품값을 떨어뜨려 이득 보려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고 화랑업자들과 날을 세웠다. 그는 인터뷰 이후 이어진 통화에서 이런 후일담도 털어놓았다.
“<한겨레> 지면에 인터뷰가 보도된 직후 감정협회에서 보자고 해서 다음날(2014년 4월25일) 만났다. 함께 나온 박명자 회장이 중단된 감정을 재개해야 한다고 다급하게 말하면서 가짜작품 1점을 봤다고 전해줘 놀랐다. 나는 감식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협조하겠다고 했다. 뒤이어 만난 다른 유력 화랑 대표는 오래 전부터 내 작품을 고액을 들여 사모았는데, 가짜가 많이 유통되면 누구보다 손해가 클 것 같아 걱정이라고 털어놓더라.”
감정협회를 이끌어온 송향선 가람화랑 대표는 당시 기자에게 조금 다른 얘기를 했다. “(이 작가를 만난) 그날은 화합하는 자리였다. 문제 있는 것은 같이 검토해보자는 쪽으로 이야기했다. 작가도 혼쾌히 동의했다. 위작 유통은 앞으로 위축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작가가 자기 작품의 위작을 얼마나 판별할지는 의문이다. 많으면 잘 모르는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그날 만남 뒤로 함께 작품을 검토하자는 ‘합의’는 끝내 실현되지 않았고 위작 실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 수사를 부르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결과적으로 작가의 감정 대행권한을 위임받은 갤러리현대, 부산공간화랑과 감정협회쪽이 작가와의 만남 뒤에도 위작 의혹에 제대로 공동대응을 하지 않았던 셈이다. 풀지 못한 다른 갈등이 있었던 걸까. 협회쪽 한 관계자는 감정의 앙금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작가가 만나기 전에도 협회 쪽에서 작품들을 보러 오시라고 여러차례 청했으나 응답도 없이 묵살당한 적이 있다. 작가 작품들을 유통하려는 일선 화랑들이 감정을 위임받은 갤러리현대 등을 계속 찾아가도 감정서를 받지 못하니 더욱 반감이 쌓였을 거다.”
이 작가와 친분이 있는 미술계 한 관계자는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2000년대 이후 국내 시장에서 이 선생 작품값이 치솟자 일본에서 70년대 그린 작품들이 상당수 들어왔는데, 근대미술 중심인 감정협회에서 이런 작품들을 판정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도 작품 대부분이 진작이 아니라고 판정을 내려 소장자들이 협회에 항의하는 일도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작가가 절친한 두 화랑에 감정을 위임했고, 감정권을 뺏긴 협회 쪽은 나름 불만이 쌓여 위작 시비가 확산되는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주목되는 건 갤러리현대의 박명자 회장이 작가의 재단을 만들려다 여건이 되지않아 감정을 포기했다는 증언이다. 이 화랑 사정에 밝은 한 미술인은 “박 회장이 애초 감정권한을 위임 받으면서 재단을 만들어 진위 판정 기준이 되는 진작도록(카탈로그 레조네)을 내고, 감정서 발급 여건도 강화하는 해결책을 구상했다”고 전했다. 과거의 거래·소장기록이 어느정도 입증되는 것만 진품으로 인정하려 했으나, 여전히 출처와 진위가 모호한 작품들만 계속 들어오고, 협회의 권한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발급을 단념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현재 박 회장은 “이 작가에 대한 내용은 일체 말하지 않겠다”며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런 곡절과는 별개로 감정협회는 지난해 초부터 이우환 작가의 작품 감정을 슬그머니 재개했다. 감정서 대행을 맡은 두 화랑이 발급을 포기하자, 송향선 대표 등이 나서 시장 혼란을 막기위해 다시 감정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여름 경찰수사가 표면화되기 전까지는 초기작을 포함한 이우환 그림이 종종 들어왔다가 그뒤로 뜸해졌다고 한다. 협회 쪽의 한 인사는 “매주 금요일 10여명의 화상과 평론가 등이 모여 감정하는데, 논란이 많은 70년대 ‘점’ 연작은 가급적 빼고 다른 이우환 작품들을 다 본다. 색이나 재료 등이 새것이거나 생경한 경우 논의 끝에 가짜 판정을 내린 적도 있다. 나중에 작가나 소장가가 반발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여지껏 이의제기는 없었다”고 전했다.
현재 시장에서 이우환 작품은 70년대말 점선 연작들을 빼면, 거래가 잘되는 편이다. 80년대의 ‘바람’ ‘동풍’ 연작들은 값이 치솟을만큼 인기다. 떠들썩한 논란에도 작품의 시장가치는 건재하다는 얘기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는 “수사 내용도 알려진만큼 이제 관건은 문제가 된 작품들을 작가와 일본 등의 외국 전문가들에게도 공개해 철저하게 검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일부 전문가들은 경찰 수사에서 논란이 된 작품 실물을 작가에게 공개하지 않고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난해 12월 케이옥션에서 위조감정서가 붙은 채 낙찰된 78년작 ‘점으로부터’ 연작을 비롯해 일부 군소화랑에서 압수했다는 그림들은 일체 실물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천경자 작품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어온 ‘미인도’또한 91년 이래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이와 관련해 이우환 작가는 지난 연말 한 언론인터뷰에서 경찰 쪽에 압수된 작품을 보겠다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이달초 위작시비와 관련해 언론사에 내놓은 서면답변서에서는 “위작품 자체를 직접 본 적이 없다. 작가가 이번 사태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있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사태를 만들었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달라”고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경찰은 작가도 논란의 당사자란 이유로, 작품 공개에 부정적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감정전문가 ㅊ씨가 경찰한테서 의뢰받은 문제작품 12점을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보고나서 모두 위작 결론을 내렸다는 주장을 일부 언론에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이 아직 위작 전모를 발표하지 않았고, 국내 감정전문가들이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작가를 뺀 일부 인사의 사견만으로 위작을 단정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들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직접 실물을 보게 하고 진위에 대한 견해를 밝혀야, 논란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말이다. 평론가 이주헌씨는 “국내 위작들의 수준이 정교한 편이 못된다. 문제의 작품들이 우선 공개되고, 작가와 그의 70년대 초기작에 정통한 일본쪽 미술인들도 불러 국내 전문가들과 세밀하게 분석하면 진위는 드러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국내 미술판에서는 진위작 시비에 대처하기 위해 대가들의 작품을 관리할 재단 설립과 전작도록 제작, 감정인력 양성, 감정기구 통합 등의 대안들을 20여년간 줄곧 거론해왔다. 하지만 화랑가는 여전히 냉소적이다. 학자, 업자, 유족 사이의 감정 주도권 다툼으로 감정기관들이 이합집산하면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려 왔기 때문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등록 :2016-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