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기를 통해 변화된 삶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부부. 이들의 단순하지만 행복으로 꽉 찬 삶에 대하여.

휘둘리지 않고 자존적으로 살기 위해
용인 신도시에 있는 132㎡ 규모의 집에서 나와 서울 후암동 자투리땅에 59.4㎡짜리 5층 주택을 지은 영화 <아가씨> 일본 총괄 프로듀서 김종대 씨, 인테리어디자이너 권희라 씨 부부. 그들은 구도심 후암동에 새로 집을 지으면서 집의 평수를 줄인 대신 지속가능한 자존적 삶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얻었다.
“신도시 생활이 저희 부부에게는 맞지 않았어요.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무시한 채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듯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구조도 그렇고, 집 밖을 나가면 소비를 부추기는 프랜차이즈도 즐비했죠. 아이를 낳고 살면 살수록 사람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후암동 집은 전에 살던 집보다 작은 평수다. 때문에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이 바로 비우기, 짐을 줄이는 일이었다.
“원래 먹을 것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쉽게 사는 편이 아니에요. 보통 싸니까, 예쁘니까 등 여러 가지 기준으로 소비를 하는데 저희 부부는 비교적 소비 기준이 명확하죠. 제아무리 수백만원짜리 명품이 좋다고 해도 취향에 맞지 않으면 사지 않아요.”
아이 장난감이나 교구 역시 주변에서 물려받아 사용했고 시기가 지나면 그들 역시 다른 아이들에게 물려줬다. 그러나 이렇게 소비 취향이 분명한 부부라도 아파트와 신도시 생활은 끊임없이 남과의 비교를 불러일으키고 소비를 부추겼다. 그런 일상은 부부에게 굉장히 불편했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는 자존적인 인생을 살고 싶었어요. 아파트는 태생적으로 구조가 모두 똑같기 때문에 남과 비교를 할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 휘둘리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저희 가족만의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집을 지었어요.”

부부는 새로 집을 지으면서 물건이든 마음이든 낭비를 하지 않는 삶을 원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집을 단순화시키기 시작했다. 거추장스러운 포장과 장식을 모두 거둬내니 오롯이 자신과 가족의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자존감 높은 집이 완성됐다.
“최신 유행이라고 하는 화려한 벽지로 장식하고 명품 브랜드의 장식품을 가져다 놓는다고 해서 좋은 집일까요. 집은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잖아요. 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반영된 레이아웃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좋은 집이 나와요.”
그는 외형적인 장식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동선과 공간을 배치하는 레이아웃이라고 강조한다. 가장 좋은 레이아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계속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만 한다. 그 역시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고민했고, 지속적으로 레이아웃을 수정해 가족에게 맞춤복처럼 꼭 맞는 집을 완성했다.

“작은 집이기 때문에 공간의 가변성에 가장 집중했어요. 집의 원형은 바로 오두막이잖아요. 침대를 놓으면 침실이고, 스토브를 놓으면 부엌, 창 앞에 책상을 두고 책을 보면 서재가, 음식을 먹으면 식탁이 되는 것처럼 하나의 공간이 다양한 기능을 겸할 수 있도록 가변성을 더하면 보다 넓고 단순한 공간을 완성할 수 있어요.”
부부는 비록 단순하고 소박한 집이지만 그들에게 최적화된 공간에 머무르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삶을 단순하게 재정비하기 위한 방법들을 더 많이 고민하게 됐다.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맞추며 살기 위해
권 대표는 딸 아민이를 임신하면서 인테리어 일을 잠시 쉬고 재봉틀로 아이 옷을 만들고 화초를 키우고 목공으로 필요한 물건을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수공예적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 발포상회(www.sparklingshop.co.kr)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그 후 영화 기획을 하는 남편은 발포기획을, 인테리어를 하는 아내는 발포도건이라는 각각의 회사를 열었다.
“남편과 저는 영화와 인테리어라는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볼 수 있어요. 디자인도 기획이고, 영화도 역시 기획이 중요하잖아요. 이런 공통분모가 있다 보니 일상적으로든 일이로든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일하는 공간과 주거공간이 함께 있다 보니 부부는 그전보다 대화가 더 많아졌다. 신도시에 살 때는 아침마다 헐레벌떡 일어나 아이를 깨워 유치원에 보내고 급히 사무실로 출근해도 출근시간을 한참 넘겼다. 지금은 아침마다 부부가 함께 남산을 산책하고, 출퇴근 거리가 1~2분밖에 되지 않는 1층 사무실에서 여유 있게 작업한다. 산책을 하면서 나눈 이야기는 그들이 원하는 ‘흔들리지 않는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며, 일적으로도 많은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해준다.
가계부에도 큰 변화가 일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자동차를 쓸 일이 거의 사라졌고, 마트에서 대량으로 구매하기보다는 시장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것만 사다 보니 씀씀이가 줄었다.
“집 밖에 나가면 예전과 달리 프랜차이즈가 하나도 없어요. 편의점이 유일하죠. 차도 거의 안 써요. 차를 타고 나가면 소비를 계속 부르게 되는데, 웬만하면 걸어서 다니고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요. 시장도 가까워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장을 보니 식재료를 집에 쌓아두는 일도 거의 없어졌어요. 집 근처에 큰 도서관도 있으니 책 역시 굳이 집에 쌓아둘 필요가 없더라고요.”

집이 바뀌자 삶도 바뀐 것이다. 일터가 집에 있지만 그들은 일이든 생활이든 무리를 하지 않는다. 일만큼 생활도 중요하고, 생활만큼 일도 중요하다. 그 사이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며 소소한 행복을 즐기는 것이 그들이 사는 방식이다.
“남들과 똑같이 살았던 쳇바퀴에서 벗어난 느낌이에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아파트가 아닌 내 생활에 꼭 맞는 집 짓기를 시도해보세요. 비록 과정이 쉽지는 않더라도 그를 통해 얻는 삶의 변화는 굉장해요.”
그들은 그들의 집을 뜻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강연도 하고 파티도 열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처럼 자신에게 꼭 맞는 집 짓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책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도 출간했다. 책을 낸 이유도 바로 많은 사람들과 집 짓기 경험을 공유하며 소통하고 싶어서다.

“집에 있는 게 스트레스라면, 가족의 얼굴에서 웃음보다 지친 표정을 더 자주 보게 된다면 주거공간을 한번 변화시켜보세요. 아파트가 아닌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다양한 주거 형태를 고민해보는 것도 지치고 힘든 삶에 활력과 터닝포인트가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집은 결코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다. 이제는 재테크의 수단도 될 수 없다. 집은 하루하루를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삶을 담는 그릇이다. 이들의 집과 라이프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삶의 모습을 한번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