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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 스님의 물음 “뭐가 그리 바쁘노?”

통도사 극락암 조실로서 참선수행을 이끌고 대중교화에 힘쓴 경봉 스님. /효림출판사 제공 한 노스님이 산길에 앉아 있는데 한 젊은 승려가 지나다 물었답니다. “오는 중[僧]입니까? 가는 중[僧]입니까?” 분명 노스님을 희롱하는 언사였기에 시자(侍者)는 발끈했지요. 그러나 노스님은 태연하게 한 마디했답니다. “나는 쉬고 있는 중이라네.” 멋진 유머로 한방 먹인 이 분은 경봉(鏡峰·1892~1982) 스님입니다. 통도사 극락선원 조실(祖室)을 지낸 한국 현대 불교의 대표적 고승이시지요. 80세가 넘은 고령에도 매월 첫째 일요일이면 극락암에서 1000여명 청중을 상대로 법문을 하셨다지요. 스님 법문의 인기 비결은 내용이 쉽고 유머러스하게 불교 가르침의 핵심을 일러줬기 때문이랍니다. 화장실에 ‘해우소(解憂所)’라..

2022.08.10

『하얼빈』 펴낸 김훈 "영웅보다 인간 안중근을 그리고 싶었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전후에 초점을 맞춘 장편소설 『하얼빈』(문학동네)을 출간한 소설가 김훈. 젊은 시절 읽은 일본인들의 안중근 신문 조서를 읽고 충격받다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고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서른한 살 안중근이 우덕순에게 묻는다. 1909년 함께 이토 히로부미 처단에 나섰던 그 우덕순이다. "자네는 권총이 있는가? 총알은 몇 발 있는가?" 우덕순의 대답은 호신용으로 사둔 중고 권총이 있다는 것, 총알 일곱 발로 꿩을 잡고 세 발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헐렁한 대화는 이어진다. "꿩을 쏘고 남은 총알로 이토를 쏘는구나." 안중근의 말에 "나는 사냥꾼이 아니지만 이토는 꿩보다 덩치가 크니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덕순이 답하자 안중근이 소리 내어 웃는다...

2022.08.03

“비록 독거노인이라도… 시설보다 집에서 죽음을 준비하라”

어떻게 죽는것이 가장 편할까?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우에노 지즈코 지음|이주희 옮김|동양북스|216쪽|1만3500원 “혼자 사는 노인이 혼자서 죽는 게 뭐가 나쁜가. 이런 죽음을 고독사(孤獨死)라고 부르기 싫어서 그냥 속 시원하게 ‘재택사(在宅死)’라는 말을 만들어버렸다.” 이 도발적 주장의 주인공은 도쿄대 명예교수 우에노 지즈코(74). 사회학자이자 대표작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0)로 한국 사회에서도 크게 주목받은 여성학자다. 우에노는 지난해 출간한 이 책에서 “일본은 이미 초고령사회를 넘어서 매년 태어나는 아이보다 삶을 마감하는 노인이 더 많은 다사(多死)사회, 즉 ‘대량 죽음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고령자 가구의 독거 비율이 가파르게 증가한 이 시점, ‘어디에서, 어떻게 죽..

2022.07.02

창의성은 머리가 아니라 여기에서 나온다...뇌과학자의 걷기 예찬[BOOK]

책표지 걷기의 세계 셰인 오마라 지음 구희성 옮김 미래의창 ‘걷기는 몸에 좋고, 뇌에 좋으며,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 256쪽 분량의 책 『걷기의 세계』를 압축한 문장이다. 저자 서문 중 일부다. 해가 갈수록 주변에 걷기를 좋아하는 지인이 늘어나고 있다. 산을 오르고, 둘레길을 돌고, 해변을 산책한다. 왜 걷냐고 물으면 “건강에 좋아”, “한 번 걸어봐”라는 알쏭달쏭한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점점 걷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조심해도 소용없다. 연로한 모친은 얼마 전 평지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다치고 수술을 받았다. 아파보면 안다. 걷기는 생존의 기초 조건이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걸음마는 ‘생명의 울림’이다. 걸으면서 우리는 뭔가에 몰입한다. 생각의 실타래가 술술 풀릴 때도 많다. 마이크..

2022.06.04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친구” 英 최고 지성, 찰스 핸디의 마지막 충언

세계적인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 병상 인터뷰 삶의 끝… ‘누구를 도왔나, 얼마나 배웠나’ 남아 마지막 쿼터… 좋았던 시간만 떠올라 세상의 기반은 튼튼한 우정… 숫자는 환상 타인을 위해 내가 잘하는 것에 최선 다해야 손주들에게 쓴 편지, 마지막 저서로 출간 "저는 여러분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세계적인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Charles Handy)가 생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인터뷰에 응했다.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찰스 핸디가 손주들을 위해 쓴 이 자애롭고 ‘공적인’ 서간문을 책으로 읽게 된 건 행운이었다. 내가 ‘황홀’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을 용서해 주시길. 우리는 복식 호흡을 위해 인류 보편의 지식인 ‘고전’을 읽고, 피부 호흡을 위해 당대의 날 것인 ‘에세이’를 취한다. 탁월한 ..

2022.03.13

韓은 어떻게 수백년동안 ‘中 제국’과 공존할 수 있었나

■ 제국과 의로운 민족│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옥창준 옮김│너머북스 티베트·몽골·대만 등 中에 편입 한반도는 명·청 지배서 벗어나 조선 ‘의’를 중심으로 나라 정비 성리학 이념 고리로 중국과 밀착 특별한 이웃·안전 보장 장치로 지식의 우위도 독립유지에 한몫 신간 ‘제국과 의로운 민족’은 한·중 600년사를 통해 한반도가 중국의 직접적인 정치 지배를 받지 않은 요인을 ‘유교적 의로움’과 ‘지식의 우위’에서 찾는다. 이미지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대첩을 묘사한 기록화. 자료사진 한·중 양국 600년史 되짚으며 반중정서속 미래관계 해법 고민 “한반도는 어떻게 중국과 수백 년 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단 한 번도 ‘중국 제국’의 일부가 되지 않았나.” 오드 아르네 베스타 미국 예일대 사학과 교수는 하버드대 강..

2022.02.19

힘들 때 기대어 울 수 있는 ‘절친’은 몇명일까요

프렌즈|로빈 던바 지음|안진이 옮김|어크로스|584쪽|2만2000원 “괜찮다.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없다.” 곽경택 감독 영화 ‘친구’의 명대사 중 하나. 친구란 정말 서로 ‘미안한 것 없는’ 존재일까? 우리와 관계 맺는 수많은 사람들 중 어디까지를 ‘친구’라 부를 수 있을까? 진화인류학자인 로빈 던바(75) 옥스퍼드대 교수는 ‘친구’를 이렇게 정의한다.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앉아 있다가 우연히 만났을 때 그냥 보내지 않고 옆에 앉히고 싶은 사람.” 던바 교수에 따르면 한 사람이 안정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친구’의 수는 최대 150명이다. 그는 1992년 인간의 뇌는 사회적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발달해 왔으므로 뇌의 크기와 용량으로 인간관계를 예측할 수 있다는 ‘사회적 뇌 가설’을 발..

2022.01.08

“당당한 체구에 담뱃대 물고”… 독일인이 본 구한말 조선인은 ‘우아한 루저’

독일인 3명의 ‘구한말 조선 답사기’ 19세기 말 여행 자료 국내 첫 소개 당대 복식-백두산 탐사기록 등 담겨 1898년 조선에 도착한 독일 산림청 공무원 크노헨하우어(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조선에서 금 채굴이 가능한 광산을 찾아 나서기 전 탐사대와 함께 찍은 사진. 정은문고 제공 “당당한 체구의 잘생긴 사람들이 상점 앞에서 긴 담뱃대로 흡연하거나 수다를 떠는 등 ‘우아한 루저’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1913년 4월 조선에 온 독일 예술사학자 페테르 예센(1858∼1926)이 쓴 ‘답사기: 조선의 일본인’ 중 일부다. 그는 당시 독일 문화부 후원으로 문화정책 구상차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조선을 답사했다. 일제에 의해 서양 복식이 확산된 상황에도 상의부터 신발까지 온통 흰색 한복을 갖춰 입..

2021.12.22

엄마만으론 힘들어… “인류 번식의 ‘에이스 카드’는 외할머니”

美 인류학자인 저자 “인간은 ‘대행 부모’와 돌봄 공유하며 진화” 보릿고개 시절, 외할머니와 살면 아동의 생존율 크게 높아져 “출산율 높이려면 돌봄시스템 필요” 어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 세라 브래퍼 허디 지음|유지현 옮김|에이도스|540쪽|2만5000원 인간의 아이는 모든 유인원 중 가장 크고 천천히 자라며, 가장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나 인간의 출산 간격은 다른 유인원에 비해 짧다. 오랑우탄은 길게는 8년에 한 번 새끼를 낳고, 대형 유인원의 평균 출산 간격은 6년가량이지만, 수렵 채집민 기준으로 인간 어머니는 평균 3~4년 간격으로 출산한다. 인류학자이자 UC데이비스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를 “인간이 ‘대행 부모’를 통한 ‘돌봄 공유’가 가능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저자는 150만년 ..

2021.12.20

대통령,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결국에는 품성’(인간적 됨됨이)

다음 대통령 임기 5년이 대한민국의 향후 50년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다소 실망스럽다. 비전은 없고 온통 의혹과 네거티브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 이런 답답함에 환한 빛을 비춰주는 인상적인 안내서가 있다. 바로 로버트 윌슨이 엮은 ‘결국에는 품성’(Character Above All·1996)이다. 캐릭터(character)란 품성, 인격, 개성 등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전문가 10명이 각각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조지 부시까지 미국 대통령 10명의 품성을 분석한다. 그들의 결론은 대통령의 업적이 ‘결국에는 품성’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국민을 살리는 대통령, 죽이는 대통령’(199..

2021.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