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래 칼럼]
38년 전 自國 우선주의 첫 피력
중국의 WTO 가입 허용은 중국으로 富를 넘긴 바보짓
제조업만이 평범한 미국인에게 중산층 진입 승차권 제공
"어떤 惡役도 마다 않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 사업가 시절인 1987년 9월, 10만달러의 광고료를 내고 뉴욕타임스 등 유력지 3곳에 ‘미국 국민에게 보내는 서한’을 실었다. 그는 “일본과 우방 국가들이 미국을 이용해 왔다. 그들은 막대한 돈을 벌면서도 우리가 제공하는 안보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흑자 머신(profit machine)인 그들에게 세금을 물려 무역 적자를 해소하고 농민과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썼다.
이 서한의 전체 내용도 지금의 주장과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미국의 주류 언론이 즉흥적인 포퓰리즘의 산물로 치부하는 트럼프주의가 사실은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세계관임을 시사하는 셈이다. 어떤 학자들은 그 뿌리를 미국 초대 재무 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보호주의에서 찾기도 한다.
트럼프는 당시 광고를 게재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고 반향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발언을 주목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무역 전문 변호사이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USTR(미국무역대표부) 부대표를 지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였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1기 때 USTR 대표를 맡아 트럼프의 생각을 구체화하고 실행에 옮겼다.
트럼프주의자들의 바이블로 통하는 라이트하이저의 저서 ‘자유무역이라는 환상(No trade is free)’을 읽어보면 트럼프의 목표는 명확하다. 제조업 부활을 통한 양질(良質)의 일자리 창출이다. ‘생산의 나라’ 미국이 첫째이며 ‘소비의 나라’ 미국은 그다음이다. 제조업이 강해야 보통의 미국인들이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승차권을 얻을 수 있고, 진정한 혁신과 기술의 축적도 제조 현장에서 나온다고 확신한다.
1990년대 WTO(세계무역기구) 출범과 함께 급격히 진행된 세계화로 미국의 산업이 금융과 소비 중심으로 재편됐지만 월가(街)의 투자은행이나 수입업자 등 소수의 엘리트 집단에 수혜가 집중됐을 뿐 보통의 미국인들은 아르바이트 등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며 삶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제조업 일자리 수백만 개가 사라져 2001년부터 16년간 미국의 실질 중위 가구 소득 증가는 4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트럼프주의자들은 특히 2001년 주적(主敵)인 중국의 WTO 가입 허용을 미국의 제조업 기반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바보 짓이라고 비판한다. 중국산 제품에 영구적인 최혜국대우를 부여하면서 미국 기업들이 줄줄이 생산 터전을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옮기게 했고, 중국이 기술 탈취와 차별적 보조금, 환율 조작, 정부 규제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미국 기업들을 침탈하는데도 WTO는 아무런 역할도 못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2001년부터 20년간 미국의 대(對)중국 무역 적자가 무려 5조3900억달러(약 7830조원)에 달했는데, 이는 미국의 소비가 중국의 성장을 견인하면서 미국의 부(富)가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트럼프주의자들은 땅을 친다. 게다가 자유무역이 일당 독재 국가인 중국의 변화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도 어리석은 망상임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자유무역 역사 뒤집기가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우방국마저 고개를 젓게 하는 트럼프의 관세 전쟁이 미국의 고립을 초래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트럼프 집권 이후 역설적으로 중국·홍콩 증시로 글로벌 투자금이 몰리는 것은 금융 부자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오만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억만장자 대통령이 서민과 노동자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악역(惡役)을 자처하는 모습은 부럽기도 하다. 적어도 그는 제조업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고 있다. 그가 우방국에 온갖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을 조기 종식하려는 것도 서둘러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고 중국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제조업과 무역의 나라인 한국에서는 미래를 걱정하는 지도자들이 안 보인다. 여야 할 것 없이 눈만 뜨면 “네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따지는 법 기술자들만 넘쳐 날 뿐 정작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치 지도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산업계에 민폐를 안 끼치는 것만으로 천만다행이라고 위안해야 하나.
조형래 부국장 조선일보 입력 2025.03.11.
'논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판사와 법원 따라 극과 극, 재판 아닌 도박판 (0) | 2025.03.28 |
---|---|
누가 지금과 같은 정치의 책임자인가 (0) | 2025.01.24 |
'윤석열의 끝'이 '이재명의 시작'은 아니다 (0) | 2024.12.07 |
정말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0) | 2024.12.05 |
나라인가, 아내인가 (0) | 2024.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