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출산 장려용 복지정책은 왜 계속 실패하는가

해암도 2024. 3. 20. 08:34

[朝鮮칼럼]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동기가 있어야 행동
대한민국 수도권은 초고밀도 인구
밀도 높아 경쟁 심해지면
결혼·출산 미루고 자신에게 투자
복지 정책은 착한 제도지만
출산율 높이는 데는 낙제점
원래 계획 있던 부부에게만 도움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지난 2월 28일 통계청은 우리나라의 작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72명이었다고 발표했다. 2022년(0.78명)보다 0.06명 줄었다. 게다가 작년 4분기는 0.65명으로 출산율 감소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더 충격적인 수치는 서울시의 0.55명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에 1.3 이하로 내려온 이후 계속 추락하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2.0 정도는 되어야 기존 인구수를 유지할 수 있는데, 이대로라면 대한민국 자체가 소멸될 날이 멀지 않았다. 왜 우리 사회는 지난 10여 년 동안 몇 십조를 투입하고도 전 세계 유례없는 초저출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까?

 

인간은 의도(의향)가 있는 동물로 진화했다. 가령, 출산이라는 고귀한 행위의 경우에도 인간은 아이를 갖고 싶은 의향이 있어야 아이를 낳으려는 시도를 하는 존재다. 따라서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남녀 한 쌍이 자신의 아이를 낳고 ‘싶게끔’ 사회의 제반 조건을 만들어주면 된다. 즉, 관건은 ‘우리의 출산 장려 정책이 실제로 커플들의 출산 동기를 높이게끔 설계되었는가’다. 인간은 무언가를 하고 싶어야 하는 존재이며, 동기 따위는 필요 없는 단순 기계가 아니다.

 

이런 동기의 관점에서 보면 그동안 우리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은 영점 조정이 안 된 미사일이다. 기존의 초저출산 문제의 해법은 섬세하지 못한 복지 제고 정책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복지 예산을 늘리면 반등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당혹스러운 실패를 경험했다. 최근에는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 외에도 돌봄과 양성평등 같은 유·무형의 문화적 가치를 제고하려는 정책적 시도를 해왔지만, 청년들의 출산 동기는 오히려 더 감소했다. 복지를 높이면 출산 의향이 증가할 거라는 예측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이쯤 되면 정책적 절망 상태다.

 

그러나 이제라도 기존 정책의 영점 조정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복지 정책은 착한 제도이지만 출산율을 높이는 기제로 작동하지는 않았음을 솔직히 받아들이고 새로운 접근을 해야 한다. 4년 전, 감사원과 우리 연구실은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 우리의 가설은 한마디로 “수도권의 높은 인구 밀도를 감지한 청년들이 초경쟁 모드로 전환되어 결혼과 출산보다 자신의 교육과 경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초저출산의 원인이 낮은 수준의 복지가 아니라 수도권의 높은 인구 밀도라는 얘기다.

 

진화심리학 분야의 생애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환경에서는 갑작스러운 부상이나 사망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장기적 투자를 하지 않는다. 대신 빨리 결혼하여 자녀를 많이 낳는 방법으로 위험을 분산한다. 인구 밀도가 낮은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전략이 통한다(빠른 생애사 전략). 반면 인구 밀도가 높아 사회적 경쟁이 심한 환경에서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장기적인 투자자 모드로 전환하는데, 이런 전략은 꽤나 합리적이다(느린 생애사 전략). 왜냐하면 주변에 많은 경쟁자가 있을 때 무턱대고 출산을 해서 가족 모두의 생존율을 낮추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는 출산 대신에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쓰는 합리적 전략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구 밀도가 높은 대한민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출산율이 낮은 것은 당연한 현상이고, 대한민국 내에서도 인구 밀도가 높은 시군구일수록 합계출산율이 낮은 것도 동일한 틀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인구 밀도가 ‘이 순간 자신이 더 성장할 것이냐 자녀를 출산할 것인가’라는 기로에서 전략적 선택을 하게끔 촉발하는 생태적 요인이라는 사실이 새로운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주변에 얼마나 많은 경쟁자가 즐비하는지를 감지하지 못하고 애를 낳은 부모는 생존과 번식의 승자가 되기 힘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붐비는 도시 풍경을 보여주거나 웅웅대는 소음을 들려주면 출산 동기가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다.

 

그래서 초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질문은 이제 출산 ‘의도’를 향해 재조준되어야 한다. 아무리 착하고 좋은 지원 정책이라도 출산 동기를 높이지 못한다면 재고되어야 한다. 그것은 결국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 소멸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복지라는 백약은 이미 출산 의도가 있는 개인의 출산 행동을 촉진할 수는 있어도, 높은 인구 밀도로 인한 낮은 출산 의도 자체를 제고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장대익 가천대학교 창업대학 석좌교수 · 진화학      조선일보      입력 202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