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을 물러난 뒤 지하철 고객이 된지도 여러 해가 됐다. 처음엔 앉으나 서나 모두가 ‘손기계’를 들여다보는 풍경이 신기하더니, 어느새 나도 그 중 하나가 됐다. 문자를 두들기는 데 정신이 팔려 하차 역을 놓친 적도 몇 번 있다.
2년 전 인터넷 건전문화 워크숍에 초청했던 영국의 중독심리학자 마크 그리피스 교수에게 물었다. “이쯤 되면 스마트폰 중독 아닌가?” 그는 업무용으로 그러는 건 중독증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안심은 했지만 눈이 너무 피곤하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스크린 기반 기술’에 빠져 살고 있다. 밤낮 없이 크고 작은 스크린에 매달려 있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2년 전 인터넷 건전문화 워크숍에 초청했던 영국의 중독심리학자 마크 그리피스 교수에게 물었다. “이쯤 되면 스마트폰 중독 아닌가?” 그는 업무용으로 그러는 건 중독증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안심은 했지만 눈이 너무 피곤하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스크린 기반 기술’에 빠져 살고 있다. 밤낮 없이 크고 작은 스크린에 매달려 있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TV가 세상을 바꾼다"
20세기를 마감하며 나온 명작 다큐 시리즈 가운데 ‘영상시대’가 있었다. TV가 세상을 바꾼 얘기였다. 텔레비전이란 용어는 1900년에 처음 등장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1880년대부터 동영상을 전송하려는 사람들의 꿈과 실험이 특허로 등록된다.

미국의 발명가였던 필로 팬스워스(1906년 8월19일~1971년 3월11일). [사진 위키피디아]
그중 미국 팬스워드(P. T. Farnsworth)의 작품이 오늘날 TV의 기원이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집에서 열네 살까지 살았다는 그는 스물한 살에 동영상을 전자빔으로 스캔하는 기술 설계에 성공한다.
그가 전송한 첫 번째 이미지는 선이었고, 그 다음 그의 카메라는 $ 로고를 향한다. 투자자가 “우리 언제쯤 달러 구경을 하게 될까?” 물었기 때문이라 한다.
1930년대 이후 전자식 TV는 실험방송에 들어가고, 35년에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송출을 시작한다. 36년 영국에서는 BBC가 세계 두 번째로 TV방송을 시작한다. 이어서 미국에서는 39년 RCA가 뉴욕의 세계박람회 개막식을 방영한다. 여기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TV에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이 무렵의 기술 수준은 열악해서, 카메라 1대가 영상을 담았고, 조명이 불같이 뜨거웠고, 백색 조정이 어려워 검정색 립스틱과 녹색 메이크업을 했다 한다.
41년에는 흑백 TV의 상업방송이 시작되고, 야구 경기 시작 전에 최초의 상업광고가 나간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의 TV 보급대수는 7000대 정도. 본격적인 상업방송이 시작된 47년에는 4만4000대, 51년에는 1200만대로 늘어난다. TV보다 더 빨리 보급된 기술은 일찍이 없어, 55년엔 미국 가구의 절반에 흑백 TV가 들어간다.
54년에는 1000달러짜리 전자식 컬러 TV가 출시되나, 72년에 가서야 흑백 TV의 판매를 앞지르게 된다. 문명사적으로 가장 극적인 동영상 이미지 위력을 보여준 사건은 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우주인의 귀환이었다.
그가 전송한 첫 번째 이미지는 선이었고, 그 다음 그의 카메라는 $ 로고를 향한다. 투자자가 “우리 언제쯤 달러 구경을 하게 될까?” 물었기 때문이라 한다.
1930년대 이후 전자식 TV는 실험방송에 들어가고, 35년에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송출을 시작한다. 36년 영국에서는 BBC가 세계 두 번째로 TV방송을 시작한다. 이어서 미국에서는 39년 RCA가 뉴욕의 세계박람회 개막식을 방영한다. 여기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TV에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이 무렵의 기술 수준은 열악해서, 카메라 1대가 영상을 담았고, 조명이 불같이 뜨거웠고, 백색 조정이 어려워 검정색 립스틱과 녹색 메이크업을 했다 한다.
41년에는 흑백 TV의 상업방송이 시작되고, 야구 경기 시작 전에 최초의 상업광고가 나간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의 TV 보급대수는 7000대 정도. 본격적인 상업방송이 시작된 47년에는 4만4000대, 51년에는 1200만대로 늘어난다. TV보다 더 빨리 보급된 기술은 일찍이 없어, 55년엔 미국 가구의 절반에 흑백 TV가 들어간다.
54년에는 1000달러짜리 전자식 컬러 TV가 출시되나, 72년에 가서야 흑백 TV의 판매를 앞지르게 된다. 문명사적으로 가장 극적인 동영상 이미지 위력을 보여준 사건은 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우주인의 귀환이었다.

인류 최초로 달 착륙의 꿈을 싣고 150만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케이프케네디 기지의 발사대를 떠나는 아폴로 11호. [사진 중앙포토]
우리나라는 54년 서울 보신각 앞에 공용 TV수상기 1대를 설치한 게 효시다. 2년 뒤엔 ‘활동사진이 붙은 라디오’란 TV방송이 개시된다. 6·25 전쟁 후 KBS 라디오 복구를 위해 미국 RCA의 기자재를 도입하면서 수수료 대신 TV를 들여와 KORCAD-TV로 실험방송을 한 것이다.
58년 국내 TV 보급은 7000대 정도. 61년에는 KBS TV가 채널을 가동하면서 국영 방송시대를 열고, 64년에는 민영 TBC 방송국이 문을 연다. 66년에는 국산 TV 샛별 생산이 시작된다.
오늘날의 TV 보급대수는 통계 자체가 무의미하다. TV를 한 대 이상 둔 우리나라 가구는 97%를 넘고, 세계적으로 21억대라고 한다. 스마트, 커넥티드(6억 8천만대), 디지털 TV 등 이름부터가 다채롭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융합혁신의 대표적 분야다. 음성 커뮤니케이션, 동영상 이미지, 컴퓨터, 게임, 인터페이스 등이 합종연횡해서 새로운 미디어와 플랫폼으로 융합되고 있다. 이런 기술혁신으로 전통적인 미디어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직면했고, 변화는 이미 진행형이다.
58년 국내 TV 보급은 7000대 정도. 61년에는 KBS TV가 채널을 가동하면서 국영 방송시대를 열고, 64년에는 민영 TBC 방송국이 문을 연다. 66년에는 국산 TV 샛별 생산이 시작된다.
오늘날의 TV 보급대수는 통계 자체가 무의미하다. TV를 한 대 이상 둔 우리나라 가구는 97%를 넘고, 세계적으로 21억대라고 한다. 스마트, 커넥티드(6억 8천만대), 디지털 TV 등 이름부터가 다채롭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융합혁신의 대표적 분야다. 음성 커뮤니케이션, 동영상 이미지, 컴퓨터, 게임, 인터페이스 등이 합종연횡해서 새로운 미디어와 플랫폼으로 융합되고 있다. 이런 기술혁신으로 전통적인 미디어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직면했고, 변화는 이미 진행형이다.
광고시장도 모바일의 새 바람이 일고 있다. 바이럴(Viral) 열풍이 그것인데, 바이러스와 오럴의 합성어다. 소비자들이 유튜브 등 모바일 기기를 통해 상품, 콘텐츠 등을 입소문으로 마케팅하는 것이다. TV 광고보다 분량이 꽤 긴데, 며칠 새 수백만 건의 조회 기록을 올리며 기세가 대단하다. 올해 바이럴 수요는 지난해의 두 배가 됐고 금융권을 중심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TV의 출현, 인간사·정치 판도에 영향
TV 출현으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안방에서 잡히는 세상이 됐다. 인간의 활동영역 전반에 걸쳐 그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가장 주목할 것은 TV가 정치 판도에 미친 영향이다. 1960년 미국 대선 사상 최초의 TV토론은 가장 유명한 사례다. 당초 열세이던 케네디 후보가 첫 번째 TV토론에서 현직 부통령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역전시킨 사건이다. 네 살 차이인데, 웃음 띤 케네디는 젊고 세련되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고, 닉슨은 피로해 보이는 데다 도중에 진땀까지 흘렸다.
◇TV의 출현, 인간사·정치 판도에 영향
TV 출현으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안방에서 잡히는 세상이 됐다. 인간의 활동영역 전반에 걸쳐 그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가장 주목할 것은 TV가 정치 판도에 미친 영향이다. 1960년 미국 대선 사상 최초의 TV토론은 가장 유명한 사례다. 당초 열세이던 케네디 후보가 첫 번째 TV토론에서 현직 부통령 닉슨을 근소한 차이로 역전시킨 사건이다. 네 살 차이인데, 웃음 띤 케네디는 젊고 세련되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고, 닉슨은 피로해 보이는 데다 도중에 진땀까지 흘렸다.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왼쪽)과 리처드 닉슨 미국 전 대통령(오른쪽). [사진 중앙포토]
당시 3대 TV의 생방송을 지켜본 시청자는 7000만 명, 미국 가구의 TV 보유율은 87%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똑같은 방송토론을 라디오로 들은 사람들은 닉슨이 이슈마다 잘 준비됐다면서 토론의 승자라고 평했다는 것이다. 샘플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이미지 정치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주로 90년대에 공개된 사실이지만, 건강으로 따지면 케네디 상원의원은 여러 가지 질환으로 증세가 심각했다. 척추 통증 등으로 스테로이드류를 비롯한 숱한 약물을 복용하는 처지였다. 닉슨의 건강은 양호했다. 그러나 유세 도중 차 문에 다친 무릎에 염증이 생기는 바람에 월터 리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는다. 퇴원 후 곧 TV(흑백)에 출연하면서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것도 실수였다. 이후 두 번째 TV 토론부터는 분장을 한다. 닉슨은 두 번째, 세 번째 TV토론에는 이기고 네 번째는 비긴 것으로 나온다.
트루먼 전 대통령은 43세였던 케네디에 대해 너무 젊고 경험이 없다면서 지원을 하지 않았다. 당초 판세는 닉슨이 이길 것으로 관측됐는데 뒤집힌 것이다.
선거에 패하고 난 뒤 닉슨은 자신이 TV토론에서 내용(substance)에 치우쳐 영상의 이미지를 놓쳤다고 말했다. 그는 캠페인에서 경륜을 강점으로 부각시키려 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기자가 “국정에서 닉슨 부통령의 주요 아이디어가 무엇이었냐”고 묻자 “일주일 시간을 주면 하나 생각해낼 것 같다”고 답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조크라고 얼버무리려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전 세계인에게 영상매체의 파워를 충격적으로 실감케 한 것은 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이었다. 누구나 자기의 위치에서 프론티어 개척의 미국 대통령이 비명에 가는 세기적 사건을 생생하게 목격한 것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두 번째(첫 번째는 맥킨리 대통령의 암살로 42살에 대통령이 된 시오도어 루즈벨트)로 젊은 나이에 백악관에 입성한 케네디는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받은 대통령이었다. 재임 2년 10개월 동안 굵직하고 미묘한 국제적 이슈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갔던 케네디 암살사건 전모는 음모론 속에서 미궁으로 남아 있다.
트루먼 전 대통령은 43세였던 케네디에 대해 너무 젊고 경험이 없다면서 지원을 하지 않았다. 당초 판세는 닉슨이 이길 것으로 관측됐는데 뒤집힌 것이다.
선거에 패하고 난 뒤 닉슨은 자신이 TV토론에서 내용(substance)에 치우쳐 영상의 이미지를 놓쳤다고 말했다. 그는 캠페인에서 경륜을 강점으로 부각시키려 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기자가 “국정에서 닉슨 부통령의 주요 아이디어가 무엇이었냐”고 묻자 “일주일 시간을 주면 하나 생각해낼 것 같다”고 답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조크라고 얼버무리려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전 세계인에게 영상매체의 파워를 충격적으로 실감케 한 것은 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이었다. 누구나 자기의 위치에서 프론티어 개척의 미국 대통령이 비명에 가는 세기적 사건을 생생하게 목격한 것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두 번째(첫 번째는 맥킨리 대통령의 암살로 42살에 대통령이 된 시오도어 루즈벨트)로 젊은 나이에 백악관에 입성한 케네디는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받은 대통령이었다. 재임 2년 10개월 동안 굵직하고 미묘한 국제적 이슈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갔던 케네디 암살사건 전모는 음모론 속에서 미궁으로 남아 있다.

1963년 11월22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링컨콘티넨털 오픈카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하던 도중 리 오스왈드에게 피격당해 숨졌다. [사진 중앙포토]
◇이미지 정치의 심화…2015년 '괴짜' 대선후보 트럼프의 등장
이미지 정치는 세월 따라 더욱 기승이다. 왜곡도 더 심해질 것이다.
최근 미국 대선 운동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이미지 메이킹도 그렇다. 1000억 원짜리 자가용 비행기로 유세를 다니는 부동산 재벌이 여론조사에서 ‘가장 서민적인 후보’ 1위, ‘가장 강력한 지도자’ 1위라고 한다.
TV토론을 보자면 참기가 어려울 정도의 컨텐트와 화법인데, 트럼프 바람은 꺼지지 않는다 한다. 그러더니 급기야 ‘모든 무슬림의 미국 입국 금지’ 발언으로 온통 시끄럽다. 아주 자극적인 내용을 아주 쉽게 전달하는 TV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의 경험이 그의 자산이라니 어리둥절하다.
☞관련 기사: 백악관 "트럼프 독설 쓰레기통 가야…대통령 자격 없다"(중앙일보 12월10일자)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를 보자. 국무부 장관 시절 공적인 이메일도 개인 이메일 계정을 통해 주고 받았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클린턴 재단의 인적 물적 자원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의혹 등으로 곤경에 처했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설득력 있는 화법으로 거짓의 이미지를 벗어났고 민주당 후보로서 대세론을 굳히고 있다 한다.

미 대선 유세 중인 힐러리 클린턴. [사진 중앙포토]
2년 전쯤 힐러리에게 대선에 나설 것인지를 묻는 CNN 대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마무리 답변이 재치 있다. 시청자 이메일에서 “당신은 많은 일을 했고, 이제 손주들과 여생을 즐길 만도 한데 굳이 대선에 나서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이 들어왔다. “그 말도 맞다. 그런 여생도 즐거울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대선에 나와도 되고 할머니는 안 된다는 이유가 있나?”
◇"소셜미디어(SNS),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출현 예고"
TV는 이미지 정치를 탄생시켰지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런데 최근의 소셜 미디어(SNS) 확산은 대의 민주주의의 규범을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출현을 예고하는 듯하다.
정치 홍보전략에 의해 SNS상에서 각색된 스토리를 확산시켜 대중의 판단을 조작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지에 기반한 소통에서는 정체성이나 논리와는 무관하게 원초적인 방식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SNS),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출현 예고"
TV는 이미지 정치를 탄생시켰지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런데 최근의 소셜 미디어(SNS) 확산은 대의 민주주의의 규범을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출현을 예고하는 듯하다.
정치 홍보전략에 의해 SNS상에서 각색된 스토리를 확산시켜 대중의 판단을 조작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지에 기반한 소통에서는 정체성이나 논리와는 무관하게 원초적인 방식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의 이미지 시대는 오프라인 세상까지 바꾸고 있다. ‘이미지 시대’(2012년)란 책에서 저자 앱콘(S. Apkon)은 동영상 이미지가 21세기 언어라면서 커뮤니케이션의 제1 수단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유튜브 등의 동영상이 말이나 글보다 훨씬 감응력이 크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컨퍼런스와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에서도 프레지(Prezi) 같은 새로운 포맷이 인기를 끌고 있다. 방송매체도 기존의 언어가 아닌 감성적인 메시지가 주도한다. 문화 자체가 이미지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미지가 언어를 대체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이미지 조작을 위한 수단과 방법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성형산업의 융성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그보다 이미지 중심의 사회·문화에서 인간의 사고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 자신도 이미지 작업을 하면서 거기 치중하다 보면 내용이 소홀히 다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글자도 마치 그림처럼 그냥 보고 넘어가려 한다. 프레지나 동영상 슬라이드를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사람은 오감을 느낄 때마다 생각(thought)이 생산된다고 한다. 놀랍게도 하루에 7만 가지 생각을 하며 산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지 의존의 경우 이성보다 감성이 사고를 좌우한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표현처럼 이미 ‘생각을 안 하는 시대(Unthinking Age)’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지가 전달하는 감성적 판단은 때로 이성적인 논증과 어긋난다.
그렇다면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하는데, 허구와 실체 사이를 구분하는 기능은 어떻게 되는 건지, 답은 누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렇듯 이미지가 언어를 대체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이미지 조작을 위한 수단과 방법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성형산업의 융성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그보다 이미지 중심의 사회·문화에서 인간의 사고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 자신도 이미지 작업을 하면서 거기 치중하다 보면 내용이 소홀히 다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글자도 마치 그림처럼 그냥 보고 넘어가려 한다. 프레지나 동영상 슬라이드를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사람은 오감을 느낄 때마다 생각(thought)이 생산된다고 한다. 놀랍게도 하루에 7만 가지 생각을 하며 산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지 의존의 경우 이성보다 감성이 사고를 좌우한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표현처럼 이미 ‘생각을 안 하는 시대(Unthinking Age)’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지가 전달하는 감성적 판단은 때로 이성적인 논증과 어긋난다.
그렇다면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하는데, 허구와 실체 사이를 구분하는 기능은 어떻게 되는 건지, 답은 누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중앙일보] 입력 2015.12.11

